귀국 (1)
파이널 7차전이 끝난 뒤, 나는 보스턴에서 시작되는 횡단 여행을 시작했다.
당초의 계획으로는 보름 안에 전부 끝내고 귀국을 하려 했으나 미국 땅이 생각 이상으로 넓은 탓인지 계획이 크게 틀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여행 일정을 넉넉하게 잡으며 느긋하게 LA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마이애미에 도착했을 즘에는 LA에서 열리는 우승 퍼레이드에 참여를 해야 했기에 주은이 일행은 마이애미에서 관광을 하게 두고 홀로 LA에 돌아오기로 했다.
LA는 당연하게도 축제 분위기였다.
클리퍼스 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레이커스 팬들이나 다저스 팬들도 자기 지역에 트로피를 가져왔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 줬다.
그 떠들썩했던 우승 퍼레이드가 끝나고 다시 마이애미로 가기 전.
나는 잠시 프런트에 방문해 최근에 보여 주고 있는 트레이드 움직임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멜로와 러브를 내보내다니….’
러브야 대체 자원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스윙맨의 부재로 고통받던 우리 팀에게 멜로는 마지막 조각이었다.
그런 선수를 내보낸다고 하니 프런트의 움직임에 의문이 생겼으나 쿱착 단장의 말을 들으니 전부 납득이 됐다.
“카와이 레너드요…?”
“그래, 만약 그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카멜로 앤서니의 방출도 없을 테니 너무 걱정 말게.”
레너드와 카멜로.
공격력은 멜로가 위에 있지만, 수비력은 레너드가 더 괜찮았다.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든 선수이기도 하고.
‘수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긴 하겠어.’
이번 시즌에 흠이 하나 있었다면 수비력이었다.
카멜로 앤서니-러브-요키치로 이어지는 프런트코트 라인업이 공격력은 정말 좋아도 수비력은 의문부호가 뒤따랐으니까.
그로 인해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그 고생을 했었다.
이게 레너드-요키치-마크 가솔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만들어진다면 프런트코트 수비력은 더할 나위 없어진다.
높이는 물론이고 림 프로텍팅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
공격력도 쏠쏠하니 리그 최고 수준의 조합이라고 봐도 됐다.
기동력 문제가 있으니 나나 빌이 더 뛰어 줘야 하겠지만, 그 부분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구단은 진심이야.’
진심으로 왕조를 세우려 하고 있다.
그런 구단의 확고한 비전을 보는 건 소속 선수로서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 * *
마이애미에서 다시 LA로 돌아온 날은 7월 23일이었다. 파이널 7차전 이후 정확히 한 달 하고 일주일을 여행 휴가로 보내 버린 것.
미국이 넓은 것도 넓은 것이지만, 임신한 주은이에게 무리가 가지 않게끔 느긋하게 움직인 것이 컸다.
주은이도 만족했는지 다음 여행은 출산 이후 둘째와 같이 가는 게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역시 집이 좋다. 자기야, 저녁 차려 줄까?”
“오늘은 내가 할게. 앉아서 쉬고 있어.”
“응…. 그럼 같이하자.”
시즌 중에는 아무래도 집안일을 전부 맡겨 둘 수밖에 없기에 이런 때라도 내가 하기로 했다.
주은이는 내 옆에서 슬쩍슬쩍 도와주며 말을 건다.
“근데 자기, 한국에는 언제 돌아갈 거야? 기사 보니까 한국에서도 언제 돌아오는지 궁금해하더라고.”
“그러게. 여행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귀국 타이밍이 묘해졌네.”
딱히 돌아갈 동기부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주은이는 안전하다고 말은 들었어도 장시간 비행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을 미국으로 초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은이도 이미 한 달이나 유치원을 쉬었는데 더 쉬기도 애매한 상황이었고.
“선영이도 지금 여름방학이라서 굳이 갈 필요 없다더라고. 2학기부터는 여기 고등학교 진학 준비만 하면 돼서 여유가 있고.”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귀국할게.”
복싱이나 방송에 관련해서 일이 있었다.
“방송….”
주은이는 그 말에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여자 아이돌들 만날 수 있어서 좋겠다.”
“왠지 말에 뼈가 있으신데요?”
“그냥 말해 봤어. 재밌게 하고 와.”
그때 우다다 하며 지은이가 달려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빠가 밥 만드는 거야!?”
“맞아, 좋지?”
“응! 나 동그랑땡 먹고 싶어!”
“오케이, 그럼 선영이 언니랑 수저랑 포크 놔 줄래?”
내가 밥을 차리면 고기반찬을 많이 해 주는 덕인지 지은이는 기뻐 보였다.
그러니 내가 한 달 정도 집을 비운다는 말에 세상을 잃은 표정이 된다.
“나도 아빠랑 귀국할래.”
“다음에 같이 가자, 지은이가 엄마랑 동생 지켜 줘야지.”
“이잉….”
“그리고 선영이도 당분간 여기 있을 거야. 그러니까 착하게 있자?”
“그러면, 그러면…. 아빠는 내 친구들 만나고 와! 다들 아빠 보고 싶댔어. 경민이랑 민서랑 효민이랑….”
“친구 소개해 주는 거야?”
“응! 같이 놀아! 그리고 여기로 같이 와!”
말은 안 해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운지 지은이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얘기하기 시작했다.
주은이는 그 모습을 슬픈 눈으로 보더니 내게 말한다.
“자기야, 지은이 친구들도 미국에 초대해 볼까?”
“그러면 좋은데…. 애들이잖아. 초대를 하려면 그쪽 부모님들도 같이 초대해야 하니까.”
초대하는 입장에서 체류비나 비행기표 정도는 제공을 해야 했다. 미국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은 절대 만만치 않으니까.
그게 한두 명이면 모를까 여러 명을 초대한다고 하면 족히 1억은 나올 거다.
우리 입장에서 큰돈은 아니지만,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한다고 그 정도 금액을 쓴다는 게 교육적으로 어떨까 싶었다. 우리 애에게도, 그 애들에게도 말이다.
그 일로 잠시 얘기를 하고 있자니, 뒤늦게 돌아온 수영 아줌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영 아주머니는 중간까지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했지만, 중간부터는 남편 최종훈을 따라다니며 사교 파티에 출석을 했다.
그게 꽤나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는지 손녀를 보자마자 꼭 끌어안았다.
“우리 지은이, 여행 재밌었어?”
“네! 재밌었어요!”
아주머니는 우리의 고민거리를 듣자 단번에 답을 내놨다.
“그러면 지은이는 나랑 성현이랑 같이 돌아갔다가 오면 되지 않겠어? 마침 나도 한국에 있는 짐을 가지러 갔다 와야 하거든. 내가 일주일 정도 데리고 갔다 올게.”
“앗…! 괜찮으시겠어요? 지은이 보기 힘드실 텐데….”
“괜찮아, 원래 애들은 지은이처럼 떼도 쓰고 말썽도 피우고 그러는 거지. 선영이는 그런 게 없어서 오히려 아쉬웠다니까?”
주은이는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고마워요, 어머님. 언제나 이렇게 도와주시고….”
“당연한 건데 무슨 소리니.”
“당연한 거라니요. 어머님 같은 분이 어디 계시다고요.”
하하호호, 하여간 사이가 좋다.
그때 차를 주차하고 온 병식 아저씨가 끼어들어 왔다. 은근슬쩍 얘기를 들었는지 내게 말한다.
“그렇게 된 거면 성현아, 간단하게 육아 예능이라도 찍어 보지 않을래?”
“육아 예능요?”
“요즘에 국내에서 육아 예능이 엄청나거든. 그냥 지은이랑 놀러 갔다 오는 거 한번 찍으면 돼. 굳이 카메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만 보여 줘도 되는 거지. 마침 잘됐다, 우리 소속사 아티스트들은 죄다 젊어서 애 딸린 사람이 없었거든.”
“으음….”
약간 거부감이 있었으나 지은이는 이미 이성현의 딸이라며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오히려 공식적으로 공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의사를 물어보자 지은이는 크게 흥분했다.
“나 TV 나가고 싶어! 할머니랑 갈래요!”
본인이 가끔씩 경기장 중계 화면에 잡힌다는 것도 모르고 TV에 한번 나가 보고 싶다며 난리를 피우는 지은이.
그렇게 우리는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성현의 귀국 소식에 방송사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성현 금의환향 소식에 방송사들 안절부절. 물밑에선 이미 경쟁 돌입해….]
[클리퍼스 선수들 뜬다! 선수들 방한 일정 공식화.]
[어쩌면 별들의 전쟁이!? 이성현 측 “재밌는 경기 보여 드리고 싶다.”]
성현의 흥행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올림픽에서 정점을 찍은 줄 알았던 흥행력을 리카르도 알멜다, 모하메드 사다트와의 매치로 경신을 하더니, 지난 시즌 샌안토니오 시리즈, 그리고 올 시즌 골스와 보스턴 시리즈로 정점을 찍었다.
지금에서야 TV 시청률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며 시청률의 의미가 적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시리즈 평균 22.4%를 기록했다.
언론에선 인터넷 중계 수치를 합하면 최소 40% 이상은 될 거라며 성현의 파급력을 공인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현은 또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클리퍼스 동료들뿐만 아니라 친분이 있는 다른 구단의 선수들의 방한까지 추진한 것이다.
아예 NBA 사무국과 소통을 하며 이벤트 매치를 준비했다.
사무국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성현의 소속사인 IYF에게 협업을 제안. IYF 측이 중계권 판매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면서 방송사들은 애간장이 타는 상황이 됐다.
이 이벤트 매치의 파급력을 생각해 보면, 중계권을 따내기만 하면 큰 폭의 흑자가 약속된 상황.
그런 와중, 사무국 측에서 1차적인 선수 라인업을 공개했다.
[데미안 릴라드, 지미 버틀러, 존 월 방한 확정! 올스타급 이벤트 매치 될 수도.]
[프리시즌 직전에 경기할 듯…. 클리퍼스 선수들도 총출동.]
미국 국가대표팀이 방한을 하여 국내 선수들과 경기를 한 적은 있어도, NBA 선수들 간의 매치가 추진된 적은 없었다.
국내 팬들은 그 부분에 열광했다.
《NBA 애들이 국내 팀 양학하는 거 보는 것보단 이게 낫지ㅋㅋ》
《ㅇㅇ아예 상대가 안 되는 것보단 그래도 밸런스가 맞는 게 볼 맛이 남.》
《라인업 봐라ㄷㄷ 갈매기랑 헤이워드까지 오네.》
《보스턴 애들은 왜 없음? 릅신이랑 폴신 보고 싶은데.》
《보스턴 애들이 오겠냐?ㅋㅋ 골스랑 오클라호마 애들도 안 오는데.》
《클리퍼스 애들만 와 줘도 고맙다고 절해야 되는 수준인데 라인업 미쳤네 진짜.》
그렇게 기대감이 커지면서 중계권에 대한 가치도 폭등했다.
어떻게든 성현의 환심을 사려는 방송사들의 눈치 싸움으로 인해 귀국장은 난리 통이 벌어졌다.
“우와….”
귀국장의 인파를 본 성현은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지난 시즌이나 WCB 챔피언이 됐을 때보다도 더한 환영인파.
여기저기 귀국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보였고, 방송사 아나운서와 기자 들이 공격적으로 취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열기에 딸 지은은 겁을 먹어 성현의 바지를 잡으며 매달렸다.
성현은 병식에게 슬쩍 말한다.
“아저씨, 지은이랑 수영 아주머니 데리고 먼저 가 주세요.”
“그래, 금방 매니저를 보내 줄게. 잠깐만 고생하고 있어라.”
그렇게 먼저 빠져나가는 병식 일행에도 포커스가 집중됐다.
지은은 결국 울음을 터뜨려 엄마를 부르짖으며 귀국장을 빠져나갔다.
‘몇 시간은 붙들려 있겠네.’
성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대응을 했다.
먼저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선 우승에 대한 소감이나 10월에 있을 이벤트 매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미 쉴 만큼 쉬었으니 천천히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다는 말은, 크레이그 켐벨과의 크루저급 타이틀 매치를 준비하신다는 거군요?
“예, 그걸 위해 시차 적응이 끝나면 가장 먼저 체육관으로 갈 예정입니다.”
성현과 켐벨의 경기 날짜는 발표만 되지 않았을 뿐, 내부적으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매치.
성현은 마지막이 될 그 경기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겠다 마음먹고 있었다.
인 유어 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