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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쪽 아니고 강승원이라고요 (3/121)


#3. 그쪽 아니고 강승원이라고요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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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입던 팬티를 훔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당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백번 양보해 모르는 사이면 그럴 수 있다 쳐. 강주원이면 무려 베프의 형 아니냐고!

휴대폰에 연락처도 없는 사이긴 해도 돌려받을 방법을 떠올리자면 수도 없이 많다. 승원에게 내 연락처를 물어볼 수도 있고 직접 보기 껄끄럽다면 승원에게 받아 오라고 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이야? 며칠 후면 자연스레 회사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달라고 하면 기꺼이 가져다줄 것을 경찰에 신고를 해?

강주원 진짜 미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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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작성 끝났으니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간단한 조사를 마친 경찰이 불쌍한 눈으로 혜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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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분과 화해 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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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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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예. 도난 물품은 잘 돌려주세요. 그 참에 오해도 좀 푸시고.”

경찰은 아마도 이 문제를 연인 간의 애정 싸움 정도로 치부한 듯했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할 거다.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요식행위는 해야겠고, 진중하게 조사를 하기엔 너무 하찮은 사안이라 대충 몇 마디 주의를 주고 돌려보내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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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진짜. 강주원 죽었어.”

벌건 대낮에 경찰서를 나선 혜주의 눈빛은 전투 본능으로 이글이글 끓고 있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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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깟 팬티가 뭐라고!”

그 반반한 낯짝에 기필코 던져주고 말리라.

혜주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딩동! 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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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씨! 좀 나와봐요. 우리 할 얘기 있죠?”

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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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방금 물 트는 소리 다 들었다고!”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콧김이 뜨거워졌다. 혜주는 주원의 팬티가 들어 있는 까만 비닐봉지를 와락 구기며 다시금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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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집 비번 알아. 지금 안 튀어나오면 문 따고 들어갈 거니까 말로 할 때 엽시다. 네?”

잠시 후 달칵 문이 열렸다. 주원인 줄 알고 다다다 쏘아붙이려던 혜주는 익숙한 얼굴에 조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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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승원아.”

승원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새벽까지 게임이라도 한 건지 머리가 까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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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곱 좀 떼고 나오려는데 왜 이렇게 보채. 들어와.”

승원은 자연스럽게 몸을 비켜 현관문을 잡아주었다. 평소 같으면 냉큼 들어가 사발면이라도 끓여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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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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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이 형? 오전에 본가에 일이 있다고 갔어. 형 보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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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할 말이 있어서. 집에 없으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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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야!”

돌아서는 혜주를 승원이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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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찮아?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없어서 걱정했잖아.”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니 가슴이 아렸다.

네 그 눈빛은 가끔 많은 걸 기대하게 했었지.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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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니야.”

선을 긋는 듯한 말투에 승원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잠시 어버버하던 그가 돌아서는 혜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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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왜 말도 없이 먼저 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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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칫집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잖아. 화장실 가서 속 좀 비우려 했는데 건물 화장실이 잠겨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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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쓰려고 아지트에 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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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가 뭐가 있어. 왜, 내가 네 집에서 물건이라도 훔쳤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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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라…… 후우, 그냥 터놓고 물어볼게. 너 정말 우리 형 그날 귀국하는 거 알고 있었어?”

스토커냐고 묻는 거였다.

내가 거기 간 건 너 때문이었어. 너한테 고백하려고 그런 거라고!

목구멍 끝까지 그 말이 치달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을 들키는 순간 제일 소중한 친구를 둘이나 잃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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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나도 좀 당황해서 해명 못 했는데 이참에 확실히 얘기할게. 화장실 쓰려고 아지트 간 거고, 강주원이 거기 있는지는 몰랐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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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희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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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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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승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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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네 주머니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말이야. 그게 신경이 쓰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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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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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한테 들려주라고 다희가 추천해준 곡이라면서…… 맞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때 흘러나온 고백송은 다희가 직접 추천해준 곡이 맞았다.

요새 내가 들떠 보인다고, 우리 사이에 못 할 얘기가 뭐가 있냐고 달달 볶는 통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살짝 귀띔해주었더니 빨리 고백하라고 성화였었지. 그러면서 그 노래를 추천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제 남친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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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지지배.’

혜주는 태연한 척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이어진 승원의 질문에 아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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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노래가 왜 그때 나왔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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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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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한테 들려줄 노래였다며. 그런데 그 집엔 우리 형이랑 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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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혜주는 급히 손을 들어 승원의 말을 저지시켰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좋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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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남자가 있어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아지트에 흘리고 왔던 거라고 둘러댈까? 물론 너나 너희 형은 아니라고 단단히 못 박으면 될 거야.’

좀 부실한 변명이겠지만 지금은 그게 최선이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막 입술을 떼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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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지, 너 여기서 뭐하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강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가에 다녀왔다고 하더니 주말인데도 말끔한 슈트 차림이다. 뭇 여성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근사한 모습이었으나 입가에 띤 미소만큼은 사악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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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찾아온 거야?”

그가 등 뒤에 서자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졌다. 열린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덩치 큰 두 남자 사이에 끼니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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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보죠. 우리 할 얘기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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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받을 물건도 있지. 가져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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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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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손은 안 댔지?”

저 인간이 기어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까드득. 혜주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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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건드리기도 싫어서 봉지째 들고 왔습니다. 조용한 데로 옮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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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

강주원이 씩 웃으며 고갯짓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궁지에 몰린 쥐를 가지고 놀 듯 장난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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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시원해요?”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꾹꾹 눌러 두었던 분노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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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이깟 일로 경찰에 신고를 하다니 제정신이에요? 명백한 공권력 낭비예요! 이깟 팬티, 더러워서 누가 가진다고!”

혜주는 까만 봉지를 한껏 구겨 강주원의 얼굴로 던졌다. 봉지에 가격당해 볼썽사납게 구겨질 얼굴을 기대한 야심찬 한 방이었으나 결과는 대실패.

처억!

정확히 미간으로 날아든 봉지를 그가 한 손으로 잡아챘다. 그러곤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근처의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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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으니 됐어. 가라.”

하, 진짜 나랑 해 보자는 건가.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경찰에 신고까지 하더니 이제 와서 쓰레기통에 버려? 모욕감을 주려는 거면 성공했고 도발하는 거라면 제대로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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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긴 어딜 가? 거기 딱 기다려요!”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혜주는 쓰레기통에 직접 손을 넣었다. 그러곤 쓰레기 더미에서 꺼낸 까만 비닐봉지를 강주원의 코앞에 확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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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서 입어요.”

강주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툭 혜주의 손을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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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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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한테 중요한 물건이니 그렇게 기를 쓰고 찾으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까지 해가며 찾은 물건이니 가져가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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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물건 맞아. 그런데 네가 내 팬티에 뭔 짓을 했을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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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강주원 씨!”

강주원은 더 들을 이유가 없다는 듯 돌아섰다. 혜주는 비닐 봉지를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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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멈추라고!”

흔들흔들. 돌아선 채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하는 손이 어찌나 얄미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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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강주원! 이 개싸가지야!”

몇 번의 부름에도 꿈쩍 않던 그가 마지막에 붙인 한마디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눈빛은 오싹할 만큼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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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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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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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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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원 통해서 가져다 달라고 했으면 얌전히 돌려드렸을 거예요. 내 손이 닿아 불쾌한 거라면 새 속옷으로 보상할 수도 있었다고요! 이런 일로 경찰까지 부르다니, 너무 과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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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고 내 벗은 몸을 봤고 덤으로 팬티까지 훔쳐 갔지. 여기서 팩트 아닌 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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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연예인 납셨네요. 혹시 도끼병 있어요? 내가 그쪽 좋아해서 몰래 그 집에 들어가 팬티를 훔치기라도 했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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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고백했던 여자가 마침 귀국하는 날 찾아와 입던 팬티를 훔쳐 갔다.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해석이 되는데.”

뭐 틀린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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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말해요! 팬티 훔친 거 아니라고요! 그 집에 물건을 가지러 갔는데 그쪽이 갑자기 욕실에서 나왔고, 너무 놀라서 자빠졌고, 떨어트린 물건을 집는다는 게 실수로 그쪽 속옷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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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 물건이 천년 묵은 짝사랑을 고백하는 그런 내용이었고 말이지?”

하아. 결국 또 도돌이표다.

그날 주머니에 있었던 물건에 대해 똑바로 해명하지 않으면 이 상황은 끝나지 않을 거다.

혜주는 더 이상 숨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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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승원이한테 줄 선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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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게 어디서 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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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 빼빼로도 승원이 줄 거였고요.”

굳은 결심이 서린 눈동자가 강주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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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아니고 강승원이라고요. 알아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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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강주원이 미주알고주알 떠들 것도 아니잖아? 강주원이 알아도 상관없다고.
 
주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너른 어깨너머로 승원이 보인 건 그때였다. 그는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듯한 표정에 혜주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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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방금 대화를 들은 건 아니겠지?’

혜주는 시선을 떨구며 황급히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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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원한텐 비밀로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주원은 벌게진 귓불만 보고서도 혜주의 등 뒤에 누가 왔는지 짐작을 한 듯했다. 그가 건조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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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말에 책임져야 할 거야.”

곧이어 승원이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혜주는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

집으로 돌아온 주원은 곧장 욕실로 향했다. 조금 전 쓰레기통에서 꺼낸 비닐봉지를 쳐낼 때 묻었는지 손등에 찐득한 오물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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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 죽겠네, 진짜.”

그는 미간을 구기며 손을 박박 씻었다.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가택 무단침입에 팬티 도난에, 귀국하자마자 수난당한 쪽은 난데 뭘 잘했다고 득달같이 찾아와 팬티를 얼굴에다 집어 던지냐고.

그나마 동생 친구니까 경찰에 신고한 걸로 그쳤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동네방네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쪽을 줬을 거다.

게다가 뭐? 강승원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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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는 10년 전 빼빼로 데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안고 있던 사람 키만 한 빼빼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땀에 잔뜩 젖어 있던 잔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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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오빠 드세요.

 
염소처럼 떨리던 목소리와 벌겋게 달아오른 귓불까지.

그건 좋아하는 사람 앞이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감정이었다. 동네에서 오며가며 몇 번 인사한 적은 있지만 제대로 대화 한마디 해 본 적 없는 사이였다.

느닷없는 고백에 면역이 된 돼서 그런지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 놀랍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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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승원이라고? 개풀 뜯고 앉았네.’

주원은 혜주가 사력을 다해 털어놓은 진심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그녀가 승원을 좋아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정말 승원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10년 동안 뭐한 건데? 고백할 타이밍이 적어도 백 번은 있었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고백을 자신에게 두 번이나 했다는 것만으로도 증거는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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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놓고 이제 와서 발뺌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쪽팔렸나 보네.”

픽 웃은 주원이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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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원은 돌아보지 않은 채 귀찮은 내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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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얘기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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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승원은 심드렁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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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형이랑 혜주가 하는 말을 들었어. 좀 이상한 얘길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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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기.”

반문하는 주원의 음성에 긴장감이 어렸다.

이 자식, 설마 오혜지가 자길 좋아한다는 얘길 들어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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