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 정말 여기서 자고 가요? (20/121)


#20. 정말 여기서 자고 가요?
2022.08.07.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배 뜨려면 아직 좀 남았네.”

“그러게요.”

주위를 둘러보는 혜주의 뺨이 아직 발그레했다. 아까 주원에게 안긴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깟 포옹이 뭐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건지, 별일 아니라고 의식적으로 열감을 가라앉히려니 더욱 의식이 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되게 없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왕복 티켓 안 끊어도 될 뻔했어요.”

“그러게.”

주원 역시 어색한 건 마찬가지라 둘 사이의 대화가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별일 아니었다 치부하려는 혜주와 달리 그는 아까의 포옹을 ‘별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강주원 인생에 처음으로 저지른 일탈 같은 포옹이었다.

마음이 요상하게 들썩였다.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뜨거운 무언가가 저를 들여다보라 자꾸 손짓하는 것 같았다.


“어?”

그때 혜주가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선착장 바리케이트를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다급히 차에서 내린 혜주가 따지듯 물었다. 빵모자를 쓴 아저씨가 벌써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들은 듯 건성으로 대꾸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오늘 배 못 떠유!”

“뭐라고요?”

“집으로 싸게싸게 돌아가시라구유!”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여기에 우리 집이 없으니까 그렇죠!”

“집이 어딘디.”

“서울이요.”

“그려? 좋은 데 사는구먼.”

아니, 그런 대답이나 듣자고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황당한 혜주가 더듬더듬 되물었다.


“아저씨, 이건 말도 안 돼요. 가는 티켓도 이미 끊어놨는데 갑자기 배가 못 뜬다뇨! 이것 보세요. 오후 6시 배잖아요.”

빵모자 아저씨는 혜주가 내민 티켓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내일 써도 안 닳아유.”

“티켓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요!”

“풍랑으로 배 못 뜨는 일이야 비일비재한 것인디 그걸 나한테 따지면 우짠대유.”

턱없이 느긋한 아저씨를 보며 혜주가 입을 딱 벌렸다.

강주원과 단둘이 섬에 들어오며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단둘이 섬에 갇히면 어쩌지? 시간이 늦어 배가 없다거나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거나 하면?

물론 주원을 음흉한 늑대로 치부하려는 불순한 의도는 없다. 다만 혜주 스스로 요새 주원을 보면 이상한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 최대한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괜한 걱정에 티켓도 왕복으로 끊어두었고 일기예보도 확인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라고 했단 말이다!

그런데 강풍주의보라니! 배가 못 뜬다니!


“……어쩌죠?”

시크하게 할 일을 마치고 휘적휘적 사라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혜주가 물었다.


“회사에 연락부터 해. 숙소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정말 여기서 자고 가요?”

“다른 방법 있나?”

예상외로 주원은 선선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혜주는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왜 당황하지 않아? 왜 그렇게 태평한 건데?


“저기유.”

그때 가버린 줄 알았던 빵모자 아저씨가 돌아왔다. 그가 숙소를 검색하고 있는 주원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숙소 필요하면 얘기해유. 우리 고모가 기똥차게 경치 좋은 데서 민박을 하니께.”

“호텔은 없습니까?”

“서울 촌놈 여기 또 있네. 개미 콧구멍만 한 섬에서 호텔 찾는 미친놈이 어디 있당가유?”

“…….”

“어이구야, 빨리 잡지 않으면 큰일 날 턴디. 강풍 땜시 발이 묶인 관광객이 한둘이 아니랑께요.”

주원이 망설이자 그가 혼잣말을 하며 돌아섰다.


“방도 두 개밖에 안 남았다는디…… 아유, 알아서 해유. 이 넓은 섬 안에 그쪽 뒤통수 붙일 자리 하나 없겠수?”

“저기요. 잠시만요.”

빵모자 아저씨가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갈 거유?”

 

*

빵모자 아저씨의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방이 두 개밖에 안 남은 게 아니라, 애초에 방이 두 개밖에 없는 집이었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도로 옆에 딱정벌레처럼 붙어 있는 허름한 숙소를 보고 혜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호텔까지야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겉모양은 이래도 방은 깨끗해유. 고모! 손님 왔슈!”

마음이 바뀔세라 아저씨가 얼른 집주인을 불렀다. 가옥 안에서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송희가 왔다고?”

“손님이유, 손님! 후딱 방에 불부터 지펴유!”

황토로 지어진 두 채의 가옥 중 하나가 주인집인 모양이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독채의 문이 두 개인 것으로 보아 다행히 방은 두 개인 듯한데, 도어록도 아니고 열쇠형 문이라 다소 조잡해 보였다.


‘창호지가 아닌 게 다행이지 뭐야…….’

정원은 열 걸음이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담벼락 앞에 주인이 손때가 묻은 항아리가 쪼르르 서 있다.


‘지금이라도 여길 탈출해야 하나?’

마음은 굴뚝같은데 굽은 허리로 얼른 불을 지피러 들어가는 할머니를 보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혜주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긴 그림자가 불쑥 말을 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주원은 민박이라 이름 붙인 이 허름한 황토집이 황당하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방문을 차례로 열어본 그가 오른쪽 방을 선택하자 뒷짐 지고 서 있던 빵모자 아저씨가 호들갑을 떨었다.


“잘생긴 총각이 매너도 좋구먼? 아가씨 쓰라고 큰방을 양보했나 부네. 저 방이 화장실도 딸려있고 화장대도 있어서 쓰기 좋을 거여. 특급 호텔이랑께!”

“네…….”

“아가씨도 어여 들어가 봐.”

그러곤 혜주의 등을 떠밀었다. 상황이 이쯤되니 이제 혜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늘 같은 대표님이 괜찮다는데 일개 직원이 투정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혜주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아직 불을 때지 않아 그런지 황토방은 싸늘했다. 쑥 향기가 은은하게 밴 방안은 무척 단출했는데, 한쪽 구석에 목재로 된 화장대가 놓여있고 반대쪽엔 이불과 베개가 쌓여 있었다. 아궁이로 직접 불을 때는지 아랫목 장판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래도 나름 깨끗이 정돈되어 있어 하룻밤 정도는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꼬르륵. 이불을 깔아놓고 좀 누워 있다 보니 배가 고팠다.


‘저녁은 뭘 먹지?’

혜주는 엎드린 자세로 주변 맛집을 검색했다. 민박 주변에 몇몇 식당이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 해산물 위주라 썩 당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은 배 안 고픈가?’

슬슬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얘기하려는 찰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짧고 간결한 소리가 딱 강주원이었다.


“밥 먹게 나와.”

혜주는 반색하며 문을 열었다.


“어?”

주원은 어느새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흰색 티셔츠에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맨날 와이셔츠 입은 모습만 보다가 후드를 뒤집어쓴 걸 보니 체대 오빠 느낌이 물씬 났다.


“옷은 어디서 났어요?”

“차에.”

“아…… 혹시 남는 옷은 없겠죠?”

“응, 없어.”

이 매정한 남자 같으니라고. 혜주는 구시렁대며 방을 나섰다.

밤이 되니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가 요리를 해주어 강풍을 뚫고 거리를 헤맬 일은 없었다. 톳나물과 조개탕, 제육볶음으로 한 상 차려진 음식은 보기에도 퍽 맛깔스러웠다. 혜주는 주인 할머니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우와. 혜주는 한술 뜨자마자 감탄을 내뱉었다.

쌀알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더니 어찌나 고소한지 맨밥으로만 한 공기 뚝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개탕은 칼칼하면서도 짭조름해 간이 딱 맞았고 제육볶음은 두툼한 육질이 일품이었다. 여기 묵길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렇게 맛있어?”

“대표님도 한번 먹어보세요. 맛집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여기가 찐맛집이네요.”

“오혜주 오버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주원이 픽 웃으며 조개탕을 한 술 떠먹었다. 이내 크게 벌어지는 그의 눈을 보고 혜주가 깔깔 웃었다.


“어때요? 진짜 맛있죠? 오버 아니라니까요.”

“어, 맛있네.”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깊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아까 쉬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혜주가 말을 꺼냈다.


“어떤 방식으로 설문을 하면 좋을까 정리를 해보려고 태양파래김에 대한 리뷰를 좀 찾아봤거든요? 리뷰에서 좀 특이한 내용이 있더라고요.”

“어떤?”

“경쟁사 제품 리뷰는 대부분 호평 일색이더라고요. 가끔 포장이 미비했다, 제품이 파손되었다 등의 이유로 1점을 준 리뷰도 있었지만요. 그런데 태양파래김의 리뷰는 극과 극이더라고요. 만족한다는 사람 반, 재구매하지 않겠다는 사람 반.”

“경쟁사의 리뷰 테러인가?”

“그렇다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게, 다들 맛있다는 데는 동의를 하더라고요. 재밌는 부분은 여기예요.”

짜잔. 혜주가 수첩에 끼적인 내용을 내밀었다. 그 안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바삭바삭’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리뷰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예요. 특이한 건 어느 한쪽은 바삭바삭하다고 느꼈고, 다른 쪽은 바삭바삭하지 않다고 느꼈다는 거죠.”

“바삭바삭의 기준에 개인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유독 태양파래김에 그런 리뷰가 많다는 건 생각해 볼 문제군.”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주원에게 동의를 받아 기쁜 듯 혜주가 활짝 웃었다.


‘밥 먹는 내내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나 했더니 저거였어?’

주원은 ‘바삭바삭’ 네 글자에 동그라미를 치며 또다시 뭔가를 생각하는 혜주를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저 조그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기특했다. 귀엽기도 하고.

사람은 겪어봐야 알고 직원은 일을 시켜봐야 안다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신월도에서 새로 발견한 혜주의 모습에 자꾸만 가슴이 뻐근해진다.

*

밤이 깊으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잦아들자마자 툭, 툭, 천장을 두드리던 빗소리에 혜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신발!”

어릴 적 종종 놀러 갔던 할머니의 집은 대청마루가 있는 주택이었다. 마루 밑에 훌렁훌렁 벗어두었던 신발이 밤새 내린 비로 쫄딱 젖어 있던 경험을 몇 번이나 해본 혜주는 비가 오면 제일 먼저 신발을 들여놓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넓적돌에 가지런히 벗어둔 구두가 이미 젖어 있었다. 얼른 구두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려던 혜주의 눈이 문득 주원의 방을 향했다.


‘기왕이면 대표님 신발도 무사히 지켜주는 게 낫겠지? 서울 촌놈이 신발 들여놓을 줄이나 알겠…… 으응?’

혜주는 당황한 눈으로 넓적돌을 바라보았다. 주원의 신발이 없었다.


“어디 갔지?”

창문을 보니 까맣게 불이 꺼져 있다. 혹시 몰라 문 앞에서 고양이처럼 불러보았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이 인간 나만 두고 튄 거 아니야?”

튀어봤자 신월도 안이겠지만 연고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나만 남겨두고 가는 건 상도가 아니지!

혜주는 분개하여 슬리퍼를 꿰고 우산을 들었다. 항아리가 쪼르르 놓인 담벼락을 지나니 주차장이 나왔다.

주원은 그곳에 있었다. 잔잔해진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그의 SUV가.

차박용으로 개조한 까만색 차는 트렁크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뒷문이 지붕 역할을 하여 비를 완벽히 막아주었고 천장엔 알전구가 반짝였다. 주원은 완전히 젖혀진 시트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 야밤에 나만 두고 어딜 갔냐고 따지려던 혜주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짓, 얕은 숨, 바다를 향한 새카만 눈동자가 뇌리에 꽉 들어찼다. 한없이 정적인 그 모습은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알 수 없는 울림이 느껴졌다.


“왔어?”

인기척을 느낀 주원이 돌아보았다. 혜주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섰다.


“왜 차에 있어요?”

“잠이 안 와서.”

“낯선 곳이라 그런가? 의외로 예민한 구석이 있네요.”

“좀 앉을래?”

툭툭. 주원이 옆자리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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