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 나도 너였어, 혜주야 (42/121)


#42. 나도 너였어, 혜주야
2022.10.23.


너무 울어서 이불이 눅눅했다.

금세 곯아떨어진 승원의 옆에서 다희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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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주? 혜주 너 맞아?

 
캄캄한 동굴에 동앗줄이라도 내려온 듯 반기는 목소리.

혜주를 부르는 승원의 눈빛이 너무 절실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받아보고 싶던 그 눈빛에 다희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혜주가 아니라 천다희라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사랑하는 다희라고.

이름을 말하는 순간 차갑게 식어버릴 그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캄캄한 방 안은 승원의 코 고는 소리로 가득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알코올이 방 안에 차는 듯했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몸은 몇 달 전보다 확연하게 말라 있었다. 날개뼈가 툭 튀어나올 정도로 마른 등을 다희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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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

자신을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라고 표현하는 남자에게 안겼다.

연거푸 혜주의 이름을 부르며 저를 밀어붙이던 남자의 몸 아래에서 다희는 몇 번이나 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다희는 묻고 싶었다.

그걸 정말 실수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오늘 밤. 굳이 혜주인 척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착각을 해주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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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라고 생각하고 싶었겠지. 그게 널 이렇게 만든 거야.’

두 번 실수는 고의라고 분명 경고를 했는데도 넌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내일이면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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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탓을 하겠지만 모든 것의 시작엔 네가 있었어. 적어도 널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던 이상 네게 한 내 고백은 무죄. 그렇지만 술김에 저질러버린 네 경솔함도 무죄일 수 있을까?’

꿈결에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제 몸을 꽉 껴안은 승원을 보며 다희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기왕이면 네가 처절하게 깨달았으면 해.

실수가 반복되면 책임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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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승원은 상쾌하게 눈을 떴다.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로또 맞은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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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는 간 건가?”

함께 누웠던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너무 간절해서 꿈을 꾼 건가 잠시 헷갈렸지만 베갯잇에 묻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보고 확신했다.

어제 일은 꿈이 아니었다.

승원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간밤을 곱씹었다. 하도 취해 기억이 드문드문했다.

혜주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를 안고, 뜨겁게 품으며 느꼈던 황홀한 기분.

혜주야…… 라고 부르는 말에 응, 하고 희미하게 대답하던 목소리만 떠올랐다.

시원한 물로 달뜬 몸을 식힐 때 불현듯 주원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잠시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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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만났고, 내 친구였고,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가 먼저 좋아했고…… 그러니 그녀 역시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가져도 되지 않을까?’

늘 양보해주던 형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었다.

출근 후 승원은 본능적으로 혜주의 자리를 먼저 찾았다.

이미 출근한 그녀는 업무에 열중이었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골똘히 모니터를 쳐다보는 모습에 섣불리 말을 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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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오전 내내 곱씹던 승원은 점심 시간 직후에 혜주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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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비상계단 문을 열고 들어온 혜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원이 다희와 사귀기 시작한 후 회사에서도 따로 불러내거나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자신처럼 상기된 모습이길 바랐던 승원은 조금 김이 새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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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잘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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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혜주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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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잘 들어갔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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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없이 사라졌길래 걱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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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내가?”

아무리 눈치 없는 승원이라도 상대가 이 정도로 뜬금없어하면 이상한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뒷골을 타고 흐르는 불안함 속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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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랑 잔 거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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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혜주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벌어졌다.

너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고 하나. 혜주의 상태가 딱 그랬다.

금붕어처럼 입술만 벙긋거리던 혜주가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툭! 위층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놀란 혜주가 올려다보니 루비가 허둥지둥 서류철을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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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깜짝이야! 손이 미끄러졌네. 이놈의 핸드크림이 왜 이렇게 미끄러워?”

혼잣말을 하며 쏜살같이 사라져버린 그녀의 뒤로 달카닥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혜주는 너무 놀라 루비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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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소리야. 내가 너랑 왜 자?”

루비가 사라지자마자 혜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무 황당한 얘기를 들으니 멍하다가 어이가 없다가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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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 아파? 갑자기 사람 불러내서 한다는 소리가 뭐 그따위야?”

잔뜩 상기된 승원의 얼굴을 보니 더 화가 났다. 그가 말하는 ‘잤다’는 의미가 확 와닿아서.

돼지캠프를 할 때 아지트에서 뒹굴거리다 잠든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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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까지 데려다준 거 너 아니었어?”

승원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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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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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칫집에 온 사람, 정말 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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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였겠지. 너는 사귀는 사람도 헷갈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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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분명히 너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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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길 왜 가? 저번에 불났을 때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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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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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해? 정 의심스러우면 사장님한테 물어보든가.”

혜주는 끔찍한 소리라도 들은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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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너 술 덜 깬 거 같다. 웬만하면 조퇴 신청하고 들어가서 쉬어.”

혜주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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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혜주야!”

승원은 급한 마음에 덥석 혜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예전 같으면 아무 소리도 안 했을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손목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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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너 오늘 왜 이래? 다희가 너랑 나 사이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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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는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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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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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거든.”

혜주는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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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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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헤어졌어.”

정적이 흘렀다.

다희와 승원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헤어졌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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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희 표정이 안 좋았구나.’

승원이 갈수록 야위어가던 사정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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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헤어졌는지는 안 물어?”

승원이 물끄러미 혜주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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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너희들 둘 사이의 일은 알아서 해결해.”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혜주는 듣고 싶지 않았다. 불안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승원의 간절한 얼굴이 이별의 이유로 제 이름을 들먹일 것 같아서.

다희가 그런 것처럼, 또 제 탓을 할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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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였어, 혜주야.”

그리고 그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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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너였더라. 이제 와서 이런 말하는 게 웃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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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안 웃겨. 강승원.”

혜주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와서, 왜.

그토록 듣고 싶을 땐 딴 곳만 보더니, 이제 와서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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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혜주는 붉어진 눈시울로 승원을 노려보았다.

그를 짝사랑한 시간이 자그마치 십 년이었다. 생각하면 웃음이 나고, 보면 설레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두어 번 고백할 타이밍을 놓치니 그냥 이대로도 좋은 것 같아서 친구로 그의 곁에 머물렀다.

먼지 앉은 책장처럼 방치된 사랑은 커지다, 낡아지다, 너덜거렸다. 그것 그대로도 나쁘지는 않았다. 터질 것처럼 두근대던 가슴이 편안해져서 오히려 좋았다.

승원이 다희와 사귀는 걸 알게 된 후 마음을 접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습관처럼 그에게 향하는 시선을 붙잡고 그의 소식에 무던해지려 노력했다.

눈물 흘리던 날이 있었고, 뒤척이는 밤이 있었다.

몇 날을 그렇게 견뎌낸 후에야 비로소 그를 잊었다.

이제 겨우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데 넌 왜 헛소리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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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나였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왜 그렇게 당당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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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내 성격 알잖아.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멍청한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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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내린 결론이 틀렸다고는 생각 안 해? 그 정도로 멍청한데 이번 결론이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는 있어?”

그녀답지 않게 독설을 퍼붓는 혜주를 보며 승원은 고개를 떨구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눈가가 시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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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습관처럼 미안해진다.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죄로 모두에게 죄인이 된 그는 그저 미안하단 소리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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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할게.”

쾅!

혜주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승원은 비상계단에 주저앉아 울었다. 베갯잇에 머리카락을 남기고 간 여자가 누군지 깨닫고 나니 더욱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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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욕지거리를 들어도 싼 놈이야, 넌.’

언제부터인가 인생이 참 버겁다.

어린애도 아닌데 그렇게나 눈물이 났다.

*

똑똑.

주원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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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냐, 너.”

멍하니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던 혜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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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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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데. 팔보채 앞에 두고 고사 지내냐.”

맙소사, 팔보채를 앞에 두고 멍을 때리다니.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사건을 저질러버린 혜주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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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오늘 이상한 일이 있어서 생각 좀 하느라고요.”

혜주의 뇌리에 아까 승원이 했던 말이 왱왱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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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였어, 혜주야.

 
감히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승원의 마음은 트럭처럼 혜주를 쾅 치고 지나갔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고 나중엔 장난인가 했다. 놀랍고, 당황스럽고,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원망스러웠다.

그런 얘길 하려거든 내가 정말 절실할 때 해주지. 이제는 아무것도 바뀔 게 없는데 그런 말을 뭐하러 해.

혜주는 주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했다. 승원의 형인 그와 사귀기로 결정했을 땐 차라리 해묵은 짝사랑을 승원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작이 그러했듯 조용히 혼자 접으면 그만이니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뒤늦게 마음을 들켜버리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승원의 마음까지 알게 되니 덜컥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친구의 형을 좋아하는 것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형을 좋아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멀리 내다보면 더더욱 불편한 문제였다. 그리고 혜주는 그런 마음을 주원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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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원이를 만났어요.”

혜주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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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일단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좀 어이없는 얘기가 될 것 같기는 한데, 오빠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사실 입을 떼기까지 고민을 거듭했었다. 이제 막 연인으로 발전한 사이에 과거의 일을 들먹이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모르지 않으니까.

게다가 상대가 형제지간이니 더욱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혜주는 언젠간 주원도 이 문제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알게 될 문제라면 제 입으로 털어놓는 편이 깔끔했다.

쿵쿵.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를 일이다. 시간을 끌면 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혜주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냅다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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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원이가 저를 좋아한대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차마 주원의 반응을 살피진 못했다. 그러나 책상 위에 고인 싸늘한 침묵만큼은 생생히 느껴졌다.

혜주는 진득하게 땀이 배인 손을 움켜쥐며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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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걜 오랫동안 짝사랑한 것도 알고 있더라고요…… 어휴, 걘 왜 쓸데없는 얘길 해서 사람을 흔들어 놓는 건지 모르겠네요.”

침묵이 길었다.

말도 안 하고 가버렸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반응이 없어 혜주는 떨구었던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주원은 팔짱을 낀 채 혜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몹시 냉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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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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