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 미래의 사위님 (57/121)


#57. 미래의 사위님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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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식품 서베이가 완료됐다.

기존에 태양식품 파래김을 접해보지 않은 사용자와 한 번 이상 구매한 경험이 있으나 다른 브랜드로 갈아탄 사용자를 나누어 진행한 모바일 서베이를 분석한 결과, 꽤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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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파래김은 전통적으로 고객 충성도가 높은 제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태양파래김의 국내 판매율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2, 30대 신규 고객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욱 팀장과 루비를 비롯한 사업팀과 마케팅팀이 모인 회의.

혜주는 서베이 분석 결과를 그래프화한 PPT를 띄워놓고 발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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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 고객을 대상으로 태양파래김을 재구매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다소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맛은 있는데 바삭바삭하지 않다는 리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모집단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는 정반대죠.”

화면을 넘기자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같은 제품을 두고 한쪽은 매우 바삭바삭하다고 평가했고 다른 한쪽은 바삭바삭하지 않다고 평가한 것이다.

서베이 대상자의 연령, 취향, 성별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는 경우는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유독 한 가지 포인트에서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태양파래김의 경우 ‘바삭바삭함’에 대해 의견이 갈렸는데 혜주는 이 포인트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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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바삭바삭하지 않다고 평가한 대상자를 분석한 결과 20대가 압도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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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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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중에서도 혼자 사는 젊은 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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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특이하네. 20대만 입맛이 다를 리는 없고 말이야.”

욱 팀장이 펜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루비는 무심결에 “우리 김 되게 바삭바삭한데.”라고 중얼거렸다가 혼자 뜨끔해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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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혜주는 팀원들이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 후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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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젊은 층, 이른바 혼밥족의 경우 김을 보관했다가 다시 먹는 경우가 많죠. 이 경우 타 브랜드 제품에 비해 신선도가 빠르게 떨어진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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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루비가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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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알겠네요! 태양파래김은 다른 제품과 달리 인공적인 보조제를 사용하지 않거든요. 눅눅함 방지를 위해 최소한의 방부제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놓곤 또 혼자 뜨끔하여 말을 얼버무렸다.

욱 팀장은 예리한 눈매로 루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혜주에게 시선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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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 씨 분석 결과는 잘 봤어. 그런데 김 한 팩을 다 못 먹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한 팩에 꼴랑 열 장 들어 있는 걸 누구 코에 붙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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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다이어트 열풍으로 인해 남녀불문하고 식사량 자체가 많이 줄었죠. 밥 대신 닭가슴살 등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경우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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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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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을 뒷받침할 서베이를 하나 더 진행했습니다. 다음 페이지에서 말씀드리죠.”

혜주가 포인터로 페이지를 넘겼다.

욱 팀장의 의문 정도는 진즉 예상한 듯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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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족의 한 끼 식사를 분석한 그래프입니다.”

하얀 페이지 위에 갖가지 수치가 나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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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0대 혼밥족은 한 끼에 150에서 200그램의 밥을 소비합니다. 평균적으로 4개의 반찬을 놓고 먹죠. 위 수치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밥 한 끼에 총 15회 남짓 숟가락질을 하게 되는데요. 모든 반찬을 골고루 먹는다고 가정하면 반찬 하나당 4, 5회의 섭취를 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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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팩에 들어 있는 김이 열 장이니 김이랑 김치만 놓고 먹는 게 아니면 남길 수밖에 없다는 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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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여기서 혼밥족의 특성이 또 드러나는데요. 자취하는 젊은 층의 경우 남은 김은 따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했다가 다음 식사 때 꺼내먹는 게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서베이 결과가 유의미해지죠.”

혜주는 “바삭바삭하지 않다”는 문장을 포인터로 딱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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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파래김이 바삭바삭하지 않은 게 아니라 ‘개봉 후 보관 시’ 타 제품에 비해 바삭바삭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건 이번에 진행한 서베이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결론이었다.

사업팀과 마케팅팀은 분주하게 메모를 시작했다. 서베이가 완료됐으니 이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대안을 마련할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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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2, 30대를 타겟팅해서 혼밥김을 개발하는 건 어떨까요? 기존 제품의 3분의 2 정도로 구성한 양에 제품명은 혼밥파래김으로.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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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식품 측에 분석 결과를 전달해봐야 알겠지만 신제품 출시엔 시간이 걸릴 거예요. 포장 용기부터 새로 찍어내야 하니까요. 비용도 무시할 수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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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분석 결과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 반응을 평가해보면 어떨까요? 요새 제습 기능이 추가된 밀폐 용기가 많잖아요. 대형마트에서 진행하는 분기별 프로모션 때 사은품으로 해당 용기를 제공하는 거죠. 일명 눅눅방지 패키지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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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괜찮네요. 프로모션 진행 가능한지 태양식품에 건의해볼게요.”

사업팀과 마케팅팀의 의견이 활발하게 오갔다.

혜주의 작은 관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타고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회의실 가장자리에 앉은 다희 역시 분주하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누가 볼세라 왼손으로 수첩을 가린 채 혜주가 말한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정리하던 그녀는 혜주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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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들키진 않았겠지?’

황급히 메모를 마친 다희는 빽빽하게 적힌 수첩을 쫙 찢어 투명 파일 사이에 숨겼다.

파일 사이로 [서베리아 면접 준비]라는 글자가 슬쩍 드러났으나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날.

혜주는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오늘은 수철의 생일이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을 뭘 그렇게 챙기냐며 그냥 집에서 쉬라고 수철이 만류했지만 혜주는 한 번도 그의 생일을 거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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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가족 생일을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긴단 말이야?’

혜주는 준비한 선물을 들고 기쁜 마음으로 고향을 향했다.

짧은 청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겉엔 하얀색 린넨 블라우스를 걸친 혜주는 직장인일 때의 모습보다 훨씬 싱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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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기차역 도착했어요. 어젠 잘 잤어요?

출발할 때 보낸 메시지에 대해 주원의 답이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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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버지는 뵈었어?

잘 잤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응’ 한 글자가 전부였기에 혜주는 그가 어제도 잠을 설쳤다는 걸 눈치챘다.

정말 잘 잤다면 혜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푹 잤다’고 말해주었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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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네, 정말…….’

이럴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 있어도 별로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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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버스 타고 집으로 가고 있어요. 역에서 20분이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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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생신인 줄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하나 들려 보낼 걸 미처 생각을 못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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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아빠 앞에서 자기소개 개판으로 한 거 잊었어요? 남친 있는 줄도 모르는데 선물은 무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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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되게 뒤끝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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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앞으로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우리 아빠 아무한테나 선물 안 받아요. 미래의 사윗감 정도는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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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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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가긴 가는데 왜 말 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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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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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 돌리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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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주 껴안고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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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도요.

주원과 시시콜콜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혜주는 주원에게 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긴 후 아파트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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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여전하네.”

수철이 사는 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도 넘은 아파트였다. 시가지에서 멀지 않아 위치는 좋지만 혜주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살던 곳이라 다소 낡은 곳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왜 낡은 집에 사냐고 혜주가 몇 번이고 이사를 권했지만 수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봄이 되면 혜주가 처음 다닌 유치원 앞에 만개한 매화 앞에서, 여름이 되면 혜주와 우산을 쓰고 걷던 작은 다리 위에서, 바람이 선선한 날엔 혜주와 김밥을 싸서 나들이를 갔던 공원에서, 수철은 늘 사진을 찍어 보내곤 했다.

20년 새 무성하게 자란 매화나무와 작게 느껴지는 다리를 보며 혜주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곤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수철이 그곳을 떠나지 못한 건 동네 곳곳에 딸과의 추억이 가득하기 때문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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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왔어. 어? 아줌마도 일찍 오셨네요?”

집 안에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온 미옥이 혜주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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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 왔어? 정말 오랜만이구나! 왜 이렇게 살이 빠진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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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가 고돼서요, 흑흑. 이 맛있는 냄새는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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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랑 잡채 좀 했어. 너 좋아하는 매운 등갈비찜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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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그 많은 걸 혼자 하셨어요? 오늘은 그냥 외식하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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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인데 미역국은 끓여야지. 어서 들어오거라.”

미옥은 늘 그렇듯 푸근하게 혜주를 맞아주었다.

수철과 미옥은 결혼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부부와 다름없었다.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서로를 살뜰히 챙겼고 마음도 잘 맞았다.

몇 해 전 미옥이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는 동네에서 두 사람을 부부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철이 아플 때 누구보다 정성껏 간호했던 미옥이라 혜주 역시 그녀를 잘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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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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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나오시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철이 베란다 문을 열고 나왔다. 딸 온다고 대청소라도 한 모양인지 손에는 걸레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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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왔어? 바쁜데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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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아줌마 보고 싶어서 왔지.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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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다. 어여 앉아.”

혜주를 앉혀놓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미옥이 미역국을 떠서 수철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에 혜주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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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진짜 잘 어울리시네. 그냥 결혼하시면 좋을 텐데.’

혜주가 알기로 수철이 여러 번 프러포즈를 했음에도 미옥이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수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미옥에게 딸린 애물단지 때문이었다.

매번 사고를 쳐서 학교로 불려오게 만들고, 양아치들과 몰려다니며 삥을 뜯다 경찰서에 불려가고, 한숨 돌릴라치면 오토바이 사고에, 스물이 훌쩍 넘어서도 돈 벌 생각은 안 하는 한량.

형편이 어려운 미옥에 비해 수철은 제법 동네에서 알아주는 알부자였다. 수철과 결혼을 하면 필립은 믿는 구석이 생겼다고 더욱 활개를 치고 다닐 게 뻔했다.

지금껏 도와준 것도 미안한데 그 철딱서니 없는 놈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할 수는 없다며 미옥은 여러 번 수철의 청혼을 거절했다.

혜주는 그게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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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 왔어요! 롱타임노씨!”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애물단지가 도착했다. 무선 헤드셋을 목에 걸고 껄렁껄렁하게 걸어온 필립이 수철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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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택아, 아저씨 생일이니 케이크라도 사 오라고 했잖아.”

역시나 빈손인 걸 확인한 미옥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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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긴 돈이라도 주면서 해야지. 카드 긁었는데 잔액 부족으로 뜨잖아. 그리고 나 이제부터 춘택이 아니고 필립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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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그, 이 화상아.”

미옥의 핀잔에도 필립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네 사람이 모두 모이자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따뜻한 요리도, 근사한 선물도 준비되었는데 상은 어딘지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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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엔 촛불 불어야 하는데 준비를 못 해 미안하네요. 지금이라도 나가서 사 올까?”

미옥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필립이 사 올 거라 믿고 혜주에게도 케이크는 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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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안 불면 어때요. 상차림이 이렇게 훌륭한데 여기 있는 것만 먹어도 배 터지겠어요, 허허!”

수철은 신경 쓰지 말라고 미옥을 다독였다. 그러나 미옥의 마음은 영 불편하기만 했다.

딩동! 딩동!

그때 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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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수철이 의아해하며 일어났다. 인터폰을 받으니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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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배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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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이요? 올 데가 없는데……. 여기로 온 거 맞아요?”

수철의 물음에 퀵 기사가 배달물을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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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주소 맞는데요. 오수철 님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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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맞는데 누가 보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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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요. 미래의 사위님이 보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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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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