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 더는 참을 수가 없어졌을 때 (59/121)


#59. 더는 참을 수가 없어졌을 때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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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는 정신없이 택시를 잡았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에 서울로 가는 방법은 택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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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급해요!”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숨만 헐떡이는 주원의 목소리를 듣고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대충 지갑만 챙겨 들고 택시에 오른 혜주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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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괜찮아요?”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주원이 짧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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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하나도 괜찮지 않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주원이 고르지 않은 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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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생각나는 사람이 너밖에 없었어.

혜주의 가슴이 꽉 조여왔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히히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게 미안했다.

혜주는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며 주원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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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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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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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택시 탔으니까 한 시간 반쯤 후에 봐요.”

평소 같으면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고, 밤에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말했을 주원은 대답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혜주는 만족했다.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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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하면서 갈까요?”

혜주는 오늘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얘기했다.

수철이 케이크를 반이나 먹어 치운 일, 예비 사위와 먹겠다며 술을 꼬불쳐 둔 일, 필립이 지갑을 털어간 일 등등.

이런 얘기가 지금 주원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쉬지 않고 말했다. 많이 놀랐을 주원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목이 쉬어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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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원의 호흡이 점차 평온해졌다.

그 사이 택시는 점차 서울에 다다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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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 줘, 주원아…….”

고저 없는 그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섬뜩했다.

깊은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들려온 혜림의 음성에 주원의 사지가 뻣뻣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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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원은 몇 날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온몸의 기력이 빠진 상태였다. 기절하듯 잠들면 어쩌면 오늘은 무사히 건너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잠에 빠져든 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들려온 목소리에 주원은 공포를 넘어선 절망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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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머리맡에 팥이며 마늘이며 십자가도 가져다 두었고 성경책도 구해 펼쳐놓았다. 본가에 가서 혜림의 흔적이 담긴 물건도 불태웠고, 혜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상에서 혜주를 떠올리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실패한 건 마지막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원은 자기 직전까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오늘은 그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변한 건 없었다.

스르륵-

방문 앞에 서 있던 새카만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듯 다가온 그것이 천천히 침대를 타고 올라왔다. 마치 뱀이 나무 밑동을 감고 올라오는 것처럼 느릿느릿, 그러나 쉬지 않고 부지런히.

선연히 느껴지는 그림자의 움직임에 주원의 심장 근육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스윽-

핏기 하나 없는 손이 주원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형체 없는 그림자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주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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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선 안 돼. 곧 사라질 꿈일 뿐이야.’

파르르, 속눈썹이 전율했다.

주원은 주먹을 꽉 쥔 채 꿈을 외면하려 애썼다. 가위에 눌린 듯 사지가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피부를 타고 올라오는 감촉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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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끝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버텨, 강주원.’

매일 겪는 공포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십 마리의 뱀이 득시글거리는 방 한가운데에 묶여 있는 기분이었다.

피부에 닿은 끈적한 느낌, 목 언저리를 향해 느릿하게 움직이는 무게감…….

방 안을 채운 공기조차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압박감 속에서 주원은 소리 없이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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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꺼져!’

사람을 말려 죽일 작정이라면 머지않아 성공할 것 같았다. 잠을 못 자서 죽든 심장마비로 죽든 스스로 혀를 깨물든 오래지 않아 결판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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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야?’

주원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꽉 다물린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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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길 바라는 거지? 죽어서 네 곁으로 가길 바라는 건가?’

생각해 보면 혜림은 악몽 속에서 늘 같은 말을 했었다. 같이 있어 달라고, 나만 혼자 두지 말라고.

그래, 그녀가 원하는 목적은 주원의 죽음일 지도 모른다. 지난 십 년간 악몽에 시달리며 끝까지 외면하려 했지만 결국 깨달아버린 결론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러곤 사흘에 한 번씩…….

점점 짧아지는 악몽의 주기에도 굳건히 버텨왔다. 흐릿하던 실체가 점차 선명해지고 손이 닿을 듯 가까워졌을 때도 악몽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죽음이 관을 덮듯 스르르, 혜림이 몸 위를 덮쳐 올 때도 버텼다. 언젠가는 끝날 일이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며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였다. 도리가 없었다.

냄새.

냄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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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 줘, 주원아…….”

가슴을 타고 올라온 새카만 그림자가 귓가에 속삭였다. 벌어진 입술에서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끔찍한 냄새가 훅 끼쳤다.

그건 죽음의 냄새였다.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감이 밀려왔다. 차가운 손길이 처음 몸에 닿던 순간에도 참아냈던 주원이지만, 이번만큼은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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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제발!”

쿵!

주원은 몸부림치며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꿈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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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헉…….”

몸을 웅크린 채로 그는 한참을 떨었다. 잔뜩 흘렀던 땀이 식자 한기가 몰려왔다.

혜림의 손길이 닿았던 목 언저리가 아직 끈적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곳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냥 죽어버릴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을 잘 수도, 온전히 깨어날 수도 없는 상황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끝없는 나락이었다.

혜림의 손이 마지막에 닿은 곳이 목이었다. 그다음은 어디가 될까? 그 손으로 목을 조르려나? 그러면 정말 난 죽게 되는 걸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꿈이 지속되면 머지않아 영영 깨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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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주원은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다.

이 순간 떠오르는 건 오직 혜주의 얼굴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란 걸 알았지만 지금 당장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에야 비로소 막혔던 숨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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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야…….”

그 후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혜주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녀는 이미 택시를 타고 오는 중이었다.

미안했다. 그러나 눈물 나게 반가웠다.

이 깊은 새벽에 족히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망설임 없이 달려와 준 그녀는 지금 주원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녀가 뭘 해줄 거라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곁에 있고 싶다는 일념 하나가 그를 버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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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꾸벅꾸벅 조는 경비원을 지나 오피스텔 밖으로 나온 주원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얗게 흩어지는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새삼 처치가 처량했다.

연달아 세 개쯤 폈을까.

혜주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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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와 있어요?”

혜주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주원이 성큼 택시에 다가섰다. 미리 준비한 오만 원권 여섯 장을 떠안기듯 기사에게 건네고 혜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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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러곤 폭 덮듯이 혜주를 끌어안았다.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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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이렇게 있어.”

오혜주 하나 왔는데 세상이 평온해진다. 지금껏 악몽에 시달린 게 꿈인 것처럼 아득히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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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붙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혜주가 그의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며 물었다.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 주원은 확실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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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거 상관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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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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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고.”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적어도 뜻대로 움직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끝이 언제가 되든 결정은 내 몫으로 남겨둘 거다.

마지막 순간 너를 아쉬워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까지 망설이고 싶지 않아.

지금은……. 그래, 적어도 지금은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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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가.”

혜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주원이 속삭였다.

이 선택의 끝에 죽음이 있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다.

*

두 사람은 포근한 침대 위에 함께 누웠다.

주원이 건넨 티셔츠로 갈아입은 혜주는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민망한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원의 허리를 꽉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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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해가 뜨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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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쉬폰 커튼이 드리운 창문에서 동살이 밝아오자 주원은 충혈된 눈가를 조금 찌푸렸다.

깊은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는 걸 볼 때면 기분이 무척 더러워지곤 했다. 오늘도 잠은 다 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품 안에 혜주가 있고 굳은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있다. 지독한 악몽을 꾼 게 불과 두 시간 전인데 그 끔찍한 기억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따뜻한 손길이었다.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주며 주원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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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일까.”

혜주는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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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 적이 있어. 너랑 이렇게 누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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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해. 나랑 누워서 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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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거 했다는 얘긴 안 했는데.”

주원이 픽 웃으며 혜주의 뺨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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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긴 했지만.”

덧붙인 말에 혜주의 귓불이 빨개졌다.

항상 장난을 거는 건 그녀인데 얼굴을 붉히는 것도 그녀다.

주원은 그게 못 견디게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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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주 보고 누워서.”

주원이 혜주의 귀 뒤로 머리칼을 넘기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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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만지고.”

커다란 손이 티셔츠 아래로 들어왔다. 허리 안으로 파고들어 가볍게 잡아당기는 손길에 둘의 몸이 밀착되었다.

터질 것처럼 팽팽해진 주원의 몸이 혜주에게 닿았다. 혜주는 뺨을 붉히면서도 피하지 않고 주원을 마주 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입술이 귓불에서 뺨으로, 그리고 다시 입술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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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맞췄어.”

축축한 살덩이가 잇새를 가르고 들어왔다. 완전히 뒤엉키기 전, 탐색하는 것처럼 입안 곳곳을 유영하곤 다시 빠져나간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멈춰선 주원이 혜주의 배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한 손으로 혜주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가느다란 손목은 저항 없이 침대에 꾹 눌렸다. 혜주의 머리 위로 팔목을 모아쥔 주원이 지그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랫입술이 그의 입안으로 먹혀들어 가는 기분은 참을 수 없이 아찔했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얽힌 살덩이가 서로를 탐하고 끝없이 갈구했다.

그가 뱉은 호흡이 혜주의 몸을 데웠다. 신음과 함께 뱉어낸 혜주의 숨은 금세 그에게 먹혔다.

축축한 입술이 턱을 따라 내려갔다. 목덜미에 붉은 자국을 남기며 그림을 그리듯 살갗에 칠을 한다.

말려 올라간 티셔츠 아래로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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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 곳곳에 날 새기고 더는 참을 수가 없어졌을 때.”

그간 참아왔던 모든 걸 터트리듯 주원은 거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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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혜림으로 바뀌었어.”

아아.

혜주는 그제야 처음 주원이 뱉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달콤한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혜주는 안타까운 마음에 주원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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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서운 일을 당하고 어떻게 버텼을까……. 그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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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어, 혜주야.”

다독이는 혜주를 오히려 달래며 주원이 등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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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무섭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을 거야.

혜주를 내려다보는 주원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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