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 우리 쭈야 (99/121)


#99. 우리 쭈야
2023.05.11.



 
[국밥에서 벌레가 나왔어요. 벌써 반이나 먹었는데ㅠㅠ게다가 벌레가 잘려 있었어요. 충격…… 곧바로 병원 가서 위세척하고 누워 있어요. 같이 먹은 동생은 트라우마로 당분간 국밥은 쳐다보지도 못할 거 같데요ㅠㅠ]

[앗, 저도요. 얼마 전에 국밥에서 벌레 다리가 나와서 식겁!!! 가게에 전화해서 얘기했더니 자긴 세스* 쓴다면서 절대 조리 중에 들어갔을 리가 없데요. 그럼 제가 일부러 벌레를 집어넣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내 돈 주고 그런 짓을 왜 하겠어요? 어이가 없어서 다시는 그 집에서 안 시켜요.]

[이 정도면 벌레 국밥 아닌가요ㄷㄷㄷ사장님 위생 좀 신경 써주세요!!!]

최신 페이지를 장식한 리뷰는 온통 벌레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혜주의 눈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국밥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수철은 위생과 정직을 영업 모토로 삼을 만큼 가게 위생에 신경 쓰는 편이었다.

아주 오래전 가게 방역이 다소 생소한 개념일 때부터 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동네에서 제일 먼저 방역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금껏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그 흔한 컴플레인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수철이었다.

그런데 국밥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그것도 이렇게 연거푸?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한 달 사이에 몇 건이나 있을 리가 없잖아…….!”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니 삼백 개가 넘는 최신 리뷰 중 정작 벌레가 나왔다는 얘긴 서너 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에 대한 동조 혹은 조롱식 댓글이었는데 그 중 몇몇은 아예 [벌레 국밥]이라는 타이틀로 조리돌림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이 사실을 아는 걸까?’

낯빛이 창백해진 혜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누나?”

밥 먹다가 갑자기 입술을 파르르 떠는 혜주를 보고 필립이 눈치 없이 물었다.

주원은 뭔가 달라진 혜주의 기색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힐끗 시선을 돌려 혜주의 휴대폰을 바라본 그의 눈매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가타부타 설명하는 대신 혜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보자.”

아버님 가게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내가 데려다줄게.”

내 여자 저녁도 못 먹게 한 인간이 누군지 면상이라도 확인해야지.

*

천안에 도착했을 땐 밤 아홉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가게로 가니 수철이 빈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어서오……! 혜주냐?”

딸랑거리는 문소리에 벌떡 일어난 수철이 혜주를 보고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금세 반가운 표정을 짓는 수철을 보니 혜주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냥 왔어. 가게에 손님이 없네?”

“허허, 마감 시간이라 그렇지. 어서 오거라.”

가게는 오늘 하루 치 매상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적적했다.

평소 같으면 마감 시간이어도 북적북적했을 가게가 텅 비어 있는 모습에 혜주는 가슴이 아팠다.

냅킨이며 수저통이며 아침에 장사 준비를 딱 마쳤을 때의 상태처럼 넉넉했다.


“그런데 자네는?”

혜주의 눈치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은 수철이 주원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주원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덧붙였다.


“……아버님.”

수철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아버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가 언제부터 예비 사위가 됐어?”

그는 병원에서 주원을 처음 마주쳤을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딸내미 애인인가 해서 유심히 보았는데 직장 동료라며 쌩하니 가버렸지.

그래놓고 며칠 후엔 집으로 생일 케이크를 보내왔더랬다. 무려 예비 사위라며!


“일전엔 죄송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습니다.”

“어쩔 수 있나. 사람이 소심하면 그럴 수도 있지.”

“…….”

“됐네. 생일날 보내 준 케이크랑 양주 잘 받았으니 이것으로 퉁 치도록 하지.”

그날의 만행이 소심함에서 비롯된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수철을 보고 주원은 붕어처럼 입술을 벙긋거렸다.

저는 소심하지 않습니다, 장인어른.

2만 명 앞에서 연설할 때도 청심환 하나 안 먹은 사람이라고요, 제가.

그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미는데 입 밖으로 뱉었다간 그날의 만행을 설명해야 하니 도리가 없었다.

……나 진짜 억울해.


“그래. 혜주와 같은 회사 다닌다고? 나이로 미뤄보면 대리쯤 되었나?”

수철이 주원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은근슬쩍 호구조사를 시도했다.

딸내미가 처음으로 집에 데려온 남자이니 아무래도 이것저것 확인하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아저씨도 참! 왜 이렇게 배포가 작아요. 좀 더 쓰세요.”

언제 차에 탔는지도 모르게 방울처럼 따라온 필립이 그새 끼어들었다. 그 하찮은 존재감에 수철이 반응했다.


“과장?”

휙. 필립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럼……. 차장?”

휙.


“설마 부장? 에이, 아무리 봐줘도 그 나이론 안 보이는데.”

필립은 마치 주원이 자신의 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슴을 탕탕 치며 외쳤다.


“아저씨, 이 형님 누나 회사 대표예요! 형님 집도 짱 커요! 한 백 평 되는 거 같아요!”

“에이, 설마.”

“진짜라니까요! 우리 형님 완전 능력남이에요! 차도 월화수목금토일 다른 거 타고 다닌다니까요? 보니까 샴푸도 아무거나 안 쓰던데. 하나에 십만 원 하는 탈모 샴푸 본 적 있어요? 우리 형님은 그걸 퐁퐁 쓰듯이 쓴다고요.”

수철은 못 믿겠다는 눈초리로 주원을 쳐다보았다.

우리 혜주가 예쁘고 착하기는 해도 그렇게 잘난 놈을 물어올 만큼 능력이 있진 않은데.


‘정체가 뭐냐, 넌.’

그의 수상쩍은 눈빛을 알아챈 주원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혜주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강주원입니다.”

어깨를 쫙 펴고 명함을 건네는 그의 표정이 자신만만했다.


 


‘사실 첫만남부터 명함을 드릴 생각은 없었지만.’

나 잘난 거야 어차피 자연스레 알게 될 건데 굳이 설레발을 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알아서 레드카펫을 쫙 깔아주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었지만.


“진짜 대표네?”

수철이 명함을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명함과 주원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대단한 직급에 놀라 ‘어이쿠, 대표님이 이 누추한 곳에 웬일…….’이라고 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내 딸이 얼마나 잘났는데.

어릴 적부터 속 한 번 안 썩이고 착하게 자란 내 딸이다. 어디 내놔도 아까운 내 딸.

수철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며 주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혜주 아비 되는 사람일세. 반갑구만.”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술은 좀 하나?”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얼씨구, 감사히 받긴 뭘 받아?

혜주가 주원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술은 무슨 술이에요. 지금 한가하게 술잔이나 기울일 때예요?”

찰지게 울리는 구타 소리에 놀란 수철이 휘둥그레 혜주를 바라보았다.

혜주는 주원에게 짜져 있으라는 눈짓을 한 후 수철에게 물었다.


“아빠, 최근에 인터넷에 올라온 가게 리뷰 보셨어요?”

“아, 어, 그거……? 보긴 봤지.”

“누가 봐도 악의적인 테러잖아요. 짐작 가는 사람은 있어요?”

수철은 그제야 혜주가 왜 천안까지 한달음에 내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주원에 대한 호기심은 접어둔 채 그가 혜주를 응시했다.


“나한테 고의적으로 해를 끼칠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냐. 여기서 삼십 년 넘게 장사하는 동안 덕은 못 쌓았어도 남에게 원망 살 일은 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신고는 했지. 그런데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없네.”

수철은 근심으로 얼룩진 혜주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단골들이 근근이 찾아줘서 괜찮다.”

혜주는 텅 빈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파리가 미끄러질 듯 깨끗하게 닦인 테이블을 보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빠 바보.’

너무 속이 상했다.

누군지 찾아내서 면상에 국밥을 확 부어버리고 싶을 만큼.

*

수철이 장사를 마감하는 사이 혜주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쭈야국밥집 리뷰 테러 사건으로 전화했는데요.”

-아아, 쭈야국밥집이요? 잘 알죠. 그러고 보니 안 간 지 꽤 됐네. 오 사장님 잘 계시죠?

“잘 계시겠어요?”

-어……. 음, 아무튼 그 사건은 조사 중이거든요. 뭔가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리뷰 작성자 신상도 못 알아낸 거예요?”

-예, 예.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혜주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뭔가 나오길 기다리려면 해가 바뀌어도 모자랄 것임을.

이유야 뻔했다.

하루에도 강력 사건이 몇 건이나 일어나는 세상에 국밥집 리뷰 테러 사건은 참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문제일 것이다.

해결해봐야 매스컴 한 번 타지 못할 테니 중요 순위에서 밀리는 거고, 가뜩이나 바쁜 경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해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후, 진짜 아무 소득이 없네.”

혜주는 전화를 끊고서 악의 가득한 리뷰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사실 리뷰를 딱 본 순간 짚이는 사람이 있었다.

[같이 먹은 동생은 트라우마로 당분간 국밥은 쳐다보지도 못할 거 같데요ㅠㅠ]

[가게에 전화해서 얘기했더니 자긴 세스* 쓴다면서 절대 조리 중에 들어갔을 리가 없데요.]

‘대’와 ‘데’를 습관적으로 틀리는 사람.

다른 맞춤법은 다 제대로 쓰면서 그거 하나만큼은 곧 죽어도 못 고치는 딱 한 사람.


‘천다희, 또 너니?’

혜주는 어금니를 으스러져라 악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리뷰를 보는 순간 다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이번에도 천다희라면.


‘나로 모자라 아빠까지 건드린 거라면 어떻게 조져놔야 하지?’

퇴사는 진즉 시켰고 어항도 부었고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도 줬다. 여기서 뭘 더 해야 속이 후련할까.


‘진짜 머리채라도 잡아야 하나.’

어떻게 잡아야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플지 궁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주원이 다가왔다.


“우리 쭈야 왜 이렇게 볼이 툭 튀어나왔을까?”

얼씨구. 얼굴이 조금 붉어진 걸 보니 술을 제법 마신 모양이다.

별것도 아닌 일로 죽상할 거 없다며, 멀리서 온 손님을 이대로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수철이 채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우리 쭈야가 뭐예요. 아빠가 그랬구나?”

“아버님이 좋은 거 많이 알려주셨지.”

“그거 나 어릴 때 아빠가 부르던 애칭이에요. 지금은 다 커서 징그럽다고 그렇게 안 부르거든요.”

“왜. 우리 쭈야 귀엽구만.”

우리 쭈야. 주원이 혜주의 볼을 쭈욱 당기며 쓰담쓰담했다.


“경찰에 전화는 해봤어?”

“네. 해보긴 했는데 별로 소득이 없네요. 아무래도 경미한 사건이라 생각하는지 조사가 안 되고 있는 거 같아요.”

근심 어린 혜주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주원이 뺨을 놓고 일어났다.


“잠시만.”

한 십 분이나 지났을까.

어떻게 해야 범인을 밝힐 수 있을까 골몰하던 혜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이었다.


“네? 범인의 윤곽이 나왔다고요?”

혜주가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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