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 미워서 그랬다, 왜 (121/121)


#121. 미워서 그랬다, 왜
2023.07.27.



 
온화병원 장례식장.

다희는 텅 빈 빈소를 지키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문객 하나 없는 쓸쓸한 빈소였다.

아, 경찰이 몇 번 찾아오기는 했지. 정황상 귀녀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가 아닌 것 같다며 장례가 끝난 후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시각에 왜 거기 있었는지, 술은 몇 병이나 마셨는지, 당시 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던진 경찰은 거의 넋이 나가 있는 다희를 보곤 고개를 저으며 돌아갔다.

그 커다란 수첩엔 어떤 답이 적혔을까.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로 장례를 준비하며 다희는 세 번을 목놓아 울었다.

첫 번째는 부고 문자를 보내기 위해 귀녀의 휴대폰을 열어 보았을 때였다.

저장된 연락처가 채 열 개도 되지 않는 단출한 목록 가운데 ‘우리 아가’라고 저장된 제 번호를 보았다.

나는 엄마를 뭐라고 저장했더라? 무의식중에 확인해 보니 ‘양평’이라는 글자가 떴다.

엄마에게 나는 우리 아가였는데 엄마는 그저 내게 양평이었다.

그 간극이 가슴에 사무쳐 휴대폰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빈소에 놓을 엄마의 사진을 찾을 때는 더 괴로웠다. 아무리 뒤져봐도 사진 한 장을 찾을 수 없었다.

단 한 장도.

그나마 귀녀의 휴대전화에 딱 한 장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액자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은 듯 빛바랜 옛 사진 속에는 어린 자신을 꽉 끌어안은 그녀가 있었다. 구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다희는 그 사진을 인화해 영정사진으로 썼다.

사진 속 엄마는 젊고 생기 있었다. 반달 모양이 된 눈으로 활짝 웃고 있는 그녀는, 다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추억의 조각과 닮아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빈소를 준비하며 그렇게 두 번 오열한 다희는 맥없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부산하게 조문객이 오가는 다른 빈소와 달리 이곳은 적막하기만 했다. 햇살처럼 웃고 있는 엄마의 흐릿한 영정사진을 보며 다희가 중얼거렸다.


“엄마 참 외로웠겠다.”

생각해보니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가도 그녀는 늘 홀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볼일이 있을 때만 들르는 딸을 위해 늘 옥수수를 준비해놓으면서도 차마 먼저 오란 소리 한 번을 못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아니, 알기에 더욱 매몰차게 굴었다.

머릿속에 오색 치맛자락이 나부낀다. 허공 높이 솟아올라 쿵 곤두박질치던 그때의 모습이.

차디차게 식어가던 귀녀를 떠올리니 숨이 막혔다.


‘왜 그랬을까. 누굴 치어도 벌을 받는 건 매한가지인데.’

어렴풋이 짐작은 됐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결심이라면 귀녀는 아마도 혜주보단 자신을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직접 차도로 뛰어들었으니까.

딸의 업보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그랬던 걸까.


“바보…… 멍청이! 끝까지 짜증 나, 정말!”

목구멍에서 쌉쌀한 피 맛이 느껴졌다.

기대어 앉을 힘도 없어서 그대로 엎어져 버린 다희의 등이 쉼 없이 들썩였다.

세 번의 울음을 쏟아낸 다희는 그대로 혼절했다.

이대로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흐릿해지는 눈을 감으며 기도했다.

*

발인 전날이었다.

다희는 거의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상조업체에서 준비한 음식은 거의 줄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이렇게 조문객이 없는 장례는 처음 봤다며 주위에서 수군거릴 정도였다.

학창 시절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으로 잦은 전학을 다녔으니 올 친구가 없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가 한 명도 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비록 쫓겨나듯 회사를 나오긴 했으나 그래도 머리 맞대고 일한 시간이 얼만데. 그나마 조의금을 보내온 사람은 몇 명 있었으나 그게 다였다.

하다못해 욱 팀장이라도 올 거라 기대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아버지 쪽 친인척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부고 연락을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참담했다.


-무당 장례에 갔다가 귀신이라도 들리면 어쩌니?

 
고모는 잔인한 말로 가슴을 할퀴었고.


-장례 끝나면 집 들어가기 전에 세 군데는 들렀다 가거라. 문 앞에서 소금 뿌리는 것도 잊지 말고.

 
아버지는 더 잔인한 말로 대못을 박았다.

둘째 날 어스름한 새벽에 남루한 차림의 여자 하나가 찾아왔다.

다희는 그게 도 씨라는 걸 알았다. 도 씨는 영정 앞에서 입술을 깨문 채 한참을 고개만 떨구고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녀가 귀녀와 작당해 주원을 저주한 일로 승원과의 결혼이 물거품이 되었기에 다희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도 씨의 멱살이라도 잡고 악다구니를 퍼부었을 텐데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희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그래도 엄마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날 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다희는 인기척에 깨어났다. 사흘 내내 바닥에 등 한 번 붙여보지 못해 온몸이 뻣뻣한 채로 일어난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부릅떴다.


“네가 여길 어떻게……?”

눈앞에 서 있는 건 승원이었다.

까만 정장을 입고 까만 넥타이를 한 그가 거스러미가 일어난 입술로 짧게 답했다.


“와봐야 할 것 같아서.”

저 못지않게 수척한 얼굴이었다.

뽀얗던 피부는 어디 가고 눈 밑이 퀭하게 죽어 시커멨다. 윤기가 흐르던 입술은 메말라 푸석했고 머리는 깎지 않아 덥수룩했다.

껑충 큰 키 때문에 더욱 말라 보이는 모습으로 그가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다희는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향을 꽂는 그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은 옆모습이 가까운 듯 멀었다. 손을 뻗으면 어루만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전력을 다해 달려도 끝내 닿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영정에 두 번 절을 마치고 일어난 그가 다희를 마주 보았다. 그와 맞절을 하고 일어나는 순간 현기증이 나 비틀거리는데 승원이 팔을 잡아주었다.

다행히 볼썽사납게 넘어지는 꼴을 면한 다희가 먼저 승원의 팔을 놓았다.


“이제 괜찮아.”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 사이에 묵직한 공기가 감돈다.


“미안하다. 너무 늦게 왔지.”

“아냐. 와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와줘서 고마워. 진심이야.”

다희의 눈동자에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승원은 묵묵히 손수건을 건넸다.

아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가 이대로 돌아 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다희는 서둘러 입술을 뗐다.


“잘 지냈……”

“정말로 혜주를 치려고 한 거야?”

승원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간 차 없이 쿡 찔러 들어온 말에 다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맞아.”

“왜.”

승원은 제 물음이 의미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왜냐고 묻기엔 너무 답이 빤하네.”

“……”

“어떻게 그렇게까지 해. 그래도 한때 친구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벼랑 끝으로 밀 수가 있냐, 넌.”

“미워서 그랬다, 왜!”

다희가 핏발 선 눈으로 승원을 노려보았다.


“싫어서 그랬어. 죽이고 싶게 질투 나서 그랬어!”

“아무리 그래도!”

“같이 싸웠는데 나만 회사에서 잘렸어. 나만 버림받았다고! 네 엄마 눈빛 봤어? 혜주를 볼 땐 한없이 따뜻하더니 나에겐 냉담하기만 하더라. 거짓 임신이라는 걸 오혜주가 까발리지만 않았어도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어!”

“천다희.”

“지금도 봐. 엄마를 잃은 건 난데 왜 나를 비난해? 내가 엄마 죽이려던 거 아니잖아. 나도 피해잔데 왜 다들 나만 미워해?”

발작하듯 울음을 터트린 그녀를 승원은 착잡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넌 아직도 모르는구나.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사랑할 기회를 주지 않은 건 너야.”

“……뭐?”

“가짜로 커플링을 끼고, 보란 듯 사진을 떨어트리고, 혜주 금붕어도 죽였지.”

“그건……!”

“그렇게 애틋한 엄마를 내 앞에선 아는 아줌마라고 속이고 임신조차 거짓이었어. 대체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사랑할 수가 있어?”

다희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내 핑계 대지 마! 사랑하지 않으니까 용서가 안 되는 거잖아. 네가 나를 사랑했다면 그까짓 허물쯤 눈감아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선후 관계가 틀렸어.”

“뭐……?”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아질 수도 있었어. 시간이 충분했다면, 그래, 어쩌면 사랑까지도.”

“거짓말!”

“너를 안은 게 실수였다고 해도, 아니, 실수였기 때문에 만회하고 싶었어, 난! 등신 같은 강승원, 고지식한 놈. 너 나 알잖아. 내가 내어주려 했던 수많은 앞날 중 어느 하루쯤은 기쁠 테고 어느 하루쯤은 행복도 하겠지. 그러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다고, 그런 마음으로 끝까지 네 곁을 지키려 했어. 아직 모르겠어?”

승원은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속에 든 말을 쏟아냈다.

못 믿겠다는 듯 눈알을 굴리는 다희를 보며 깨달았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정말로 다희가 좋아지는 날이 왔더라도 그녀는 자신을 믿지 못했을 것임을.


“됐다. 어차피 쓸데도 없는 말.”

이제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쓸데도 없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나 다음 달에 미국 가.”

“!”

다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미국을 간다고? 이렇게 갑자기?


“혜주 때문이야?”

“아니. 혜주 아니고 나 때문이야.”

승원은 두 손으로 다희의 어깨를 꽉 눌러 잡았다.


“나 때문이라고, 다희야.”

 

 
설령 형의 여자가 된 혜주를 곁에서 지켜볼 수 없어 떠나는 것이래도 어디까지나 제 감정의 문제였다.

혜주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의 탓이 아니야.

그걸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그만해.”

꽉 억눌린 음성이 잇새를 비집었다.

승원은 복잡한 눈으로 다희를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잘 지내.”

“그럴 수 없을 거란 거 알잖아.”

장례가 끝나면 곧바로 경찰 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밟은 데다 만취 상태이기까지 했으니 십중팔구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겠지.


“그래도 잘 지내.”

다희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승원의 뒷모습이 흐릿해지다 결국 눈꼬리를 타고 뚝 떨어져 내렸다.

*

장례 절차를 마친 후 부고함을 열었다.

스무 개 남짓한 봉투를 하나하나 펼쳐 가방에 넣던 다희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곤 손이 굳어버렸다.

[오혜주]

하얀 봉투에 적힌 이름은 눈 씻고 다시 봐도 오혜주였다.

다희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조의금과 함께 빳빳한 A4 용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악성 리뷰에 대한 고소 취하서였다.


“오혜주 너 진짜……”

다희는 무너지듯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이걸 보낸 이유야 뻔했다.

불쌍했겠지. 널 미워하다 모든 걸 잃은 내가, 제 손으로 엄마를 죽이기까지 했으니.


“하하하핫…… 끝까지 이기적인 X. 겨우 이깟 걸로 마음 좀 편해져 보겠다고? 이깟 선심을 왜 베풀어. 누가 바랐다고!”

어차피 고소를 취하한다 해도 철창 신세를 면할 수는 없을 거다.

악성 리뷰와 별개로 데이터스 코리아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들어와 있는 상태이고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도 져야 했으니.

그러나 얄팍한 동정이 담긴 그 종이를 차마 찢어버릴 수도 없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비참했다.


“잘났다, 오혜주. 네가 이겼어. 이 나쁜 X아!”

와락. 종이를 움켜쥔 다희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텅 비어버린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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