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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1화 (1/275)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

빙의

눈을 뜨자 느껴지는 안락함에 환생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원룸은 방이 좁아 매트리스를 깔고 잤지 지금 누워 있는 침대 같은 건 없었으니까.

꿈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아직 실감이 잘 나질 않는다.

정말 소설 속 세계에 온 건가?

나는 지독히 불운했다.

세차하고 나면 어김없이 예보에도 없던 비가 오고, 휴대폰을 살짝 떨어뜨렸는데 액정이 나가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그게 바로 나였다.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는지 죽는 순간까지도 운이 더럽게 없었지만, 막상 죽고 나니 처음으로 행운이 찾아왔다.

저승에서 만난 염라가 내가 7777777…번째로 심판받으러 온 영혼이라며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고 했으니까.

물론 신이 되고 싶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소원은 안 된다고 해서 고민 끝에 소설 속 세계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내 직업은 웹 소설 작가.

글을 쓰며 웹 소설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안타깝게도 내 소설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해결했다.

굳이 내 소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나는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내용을 다 기억하진 못해서 가장 최근에 읽었던 《헌터 학교의 망나니 열등생이 되었다》의 세계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내 바람이 흥미롭다며 염라대왕은 내게 추가로 가벼운 부탁 두 가지를 더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중 하나를 써서 내가 빙의할 원작 소설 속 이야기가 시작되기 2년 전 시점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원작은 주인공의 고등부 입학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망나니짓을 하는 건 중등부 2학년과 3학년이다.

그래서 초반부에 과거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꽤 고생을 많이 하니, 그 이전의 시점으로 간다면 미래의 수고가 상당 부분 줄어들 테니까.

그렇다고 너무 어린 나이부터 시작하는 건 별로라 2년 전으로 부탁한 건데, 이상하다.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주인공은 헌터 학교 중등부 2학년.

헌터 학교는 전원 기숙사 제도에 2명이 한방을 쓰는데, 아무리 봐도 여긴 기숙사가 아니다.

방학이라 그런 건가?

그렇다면 주인공은 본가에 가 있을 텐데….

이것 역시 이상하다.

내가 원래 살던 원룸보단 조금 크긴 하지만 집이 재벌인 주인공이 이런 원룸에 살 리는 없을 테니까.

의아해하다 현관 옆에 있던 전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두 번 놀랐다.

너무 잘생겨서 한 번.

너무 노안이어서 한 번.

잘생긴 건 이해가 된다.

남은 한 가지 소원으로 바랐던 게 외모 업그레이드였으니까.

보통 소설 주인공들은 다들 꽃미남이지만 소설 초반부에 주인공의 외모가 별로라는 묘사가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얻게 되는 기연들의 부수적인 효과로 외모가 많이 업그레이드되긴 하지만 초반은 좀 못난이였다.

전생에도 얼굴에는 딱히 불만이 없었지만 지금 얼굴은 웬만한 꽃미남 배우 뺨을 양쪽으로 다섯 번은 칠 정도의 외모다.

하지만 절대로 15살로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 애들이 발육이 좋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10대로 볼 것 같진 않은데.

혼란스러워하다가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는 휴대폰을 발견했다.

[2023년 2월 25일 06:30]

원작은 주인공이 고등부에 입학하는 2025년에 시작되니까 시기는 대충 맞다.

지문 인식으로 잠금이 걸려 있었지만 내 휴대폰인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잠금이 풀렸다.

가장 먼저 전화번호부를 뒤져 보는데 가족이 없다.

아무리 망나니라지만 부모 전화번호도 없진 않을 텐데, 뭐지?

방구석에 틀어박혀 글만 쓰던 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휴대폰에 등록된 연락처도 길드와 후배 서라, 이렇게 2개뿐인데, 후배야 같은 중학교 후배일 수도 있지만 이 길드는 무슨 길드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헌터 학교는 ‘템퍼링’을 엄격하게 금지해서 고등학교 3학년 졸업 시즌에 길드를 결정하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생각을 하는 순간, 휴대폰이 울리며 문자가 왔다.

[(Web 발신)

안녕하세요. 강신혁 님. 제1 헌터 학교 교원 채용 담당자입니다.

금번에 지원하신 제1 헌터 학교 검술 강사 채용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향후 일정에 관한 내용을 링크에 첨부해 드렸으니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강신혁이라니?

내가 기억하는 주인공 이름은 이지성이다.

조금 넓긴 해도 원룸이니 내 핸드폰일… 잠깐, 설마 나 주인공이 아니라 강신혁이란 인물에 빙의한 건가?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과 함께 수많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통은 금방 사라지고 떠오르던 기억들도 잠잠해졌지만 대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째서… 주인공이 아닌 강신혁이 된 거지?

소설 제목도 확실히 말했고 시점까지 말했는데… 설마 주인공이 되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어이가 없다.

소설 속 세계에 살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으면 당연히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지.

누군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인물로 살고 싶어서 그런 소원을 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 기억을 되새겨 보니 추가 소원까지 다 이야기했을 때 염라대왕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정말 이 두 가지면 되겠냐고 물었었다.

그게 이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고?

사기당한 기분이다.

아니지, 사기를 당한 게 맞다.

당연히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웬 이름도 몰랐던 인물이라니….

사실 조금 전 떠오른 기억 덕분에 강신혁이 어떤 인물인지 기억은 해 냈다.

주인공의 옆 반 담임으로 가르치는 과목은 검술.

원작 소설에서 비중이 상당히 적은 조연… 아니, 후반부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으니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아까 고통은 내가 강신혁이라는 걸 자각하자 그동안 강신혁이 겪었던 기억이 떠오른 것 같은데, 일반적인 생활 상식이나 신변에 관한 일들은 대충 기억나지만 그 외엔 모든 게 희미하다.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이건 아니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천국이나 보내 달라고 하는 건데….

돌아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저승에 가는 방법은 죽는 것 말곤 없다.

따지겠다고 자살을 했다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옥행이 될지도 모르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분노를 넘어서 허탈함이 든다.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애초에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 법이라더니, 생전에 지지리도 운이 없던 내게는 너무 과한 행운이었을까?

완전히 당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던져 버렸던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확인하니 등록도 안 된 번호다.

스팸 같아 무시할까 하다가 혹시 몰라 받았다.

"여보세요."

―체이스 길드 재무팀입니다. 강신혁 씨 맞으신가요?

체이스 길드라면 원작 소설에 등장하던 10대 길드인데…. 순간 강신혁이 체이스 길드 소속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저기요?

"아, 네. 맞습니다."

―퇴직금 계좌 설정을 안 하셔서 연락드렸어요. 임금을 지급하던 계좌로 지급해 드리면 될까요?

"네? 아, 네."

지난달에 길드를 그만뒀던 기억이 떠오르는 게, 어떤 상황에 놓이거나 무언가를 맞닥뜨려야만 머릿속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시스템인 것 같다.

―통화 후 바로 입금될 텐데, 혹시 금액이 잘못 들어갔거나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이쪽으로 다시 문의 주세요.

교사가 되려고 다니던 길드를 그만둔 모양인데, 지금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전화가 아니라 문자였다.

[화신 은행 입금 38,871,463원. 입금자명: 체이스 길드 퇴직급여. 잔액: 309,532,485원]

거의 4천만 원에 육박하는 퇴직금도 퇴직금이지만 통장 잔액이 사… 삼억이 넘는다고?

누군가에게는 고작 3억 일수도 있겠지만 겨우 입에 풀칠만 하던 삼류 작가로 살다 스물아홉에 화병으로 죽은 내겐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큰돈이다.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렇게 누워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어 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 보니 조건은 나쁘지 않다.

예전보다 키도 크고 얼굴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생긴 데다 나이도 스물다섯이라 4년이나 젊어졌다.

돈도 주인공처럼 재벌은 아닐지라도 늘 걱정하고 살던 통장 잔액이 무려 3억이나 있고 헌터 학교라는 번듯한 직장도 있다.

몬스터와 포탈 그리고 헌터라는 게 존재하지만, 배경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대 대한민국인 것도 메리트다.

고아라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고 헌터 랭크도 B로 꽤 준수하고.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파워인플레’가 일어나 B 랭크 헌터 정도는 그저 그런 엑스트라 취급이지만 상관없다.

아직 원작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단점도 딱히 없다.

굳이 꼽자면 절망적인 수준의 대인 관계, 즉 심각한 ‘아싸’라는 거?

대수롭지 않은 문제다.

어차피 나도 전생에 아싸였으니까.

글을 쓴다는 게 주로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사람과 교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강신혁은 나와는 다른 자발적 아싸다.

이런 훌륭한 외모와 준수한 능력을 갖췄음에도 아싸라는 건 본인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벽을 쳤다는 걸 테니까.

소설 속에서도 크게 튀지 않던 인물인 걸 생각하면 원래의 강신혁은 꽤 내성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의 나에겐 오히려 좋다.

당장 기억도 완벽하지 않은데 친한 친구나 애인이 있었다면 괜히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전생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다.

대표적으로 연애와 결혼….

주위 사람들에겐 귀찮다고, 혼자가 편하다고 말했지만, 진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가정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그때의 내가 나 하나 겨우 먹고살기도 힘든 삼류 작가였다는 거다.

인터넷에 떠돌던 말처럼 이런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이나 외모 같은 조건을 따지며 만나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비록 바랐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다르게 살 수 있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주인공보다 더 행복하게.

아싸가 아닌 ‘인싸’로서 예전에는 누리지 못한 것들을 모조리 누릴 거다.

*    *    *

어제 충격에서 벗어나고 바로 수첩을 하나 사 와 온종일 기억하고 있는 소설 내용을 옮겨 적으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게 완벽하게 기억나진 않았지만 직접 손을 움직여 적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은 내용이 떠올랐다.

"목적지입니다. 다들 내리세요."

기사님의 말에 버스에서 내렸는데 겨울바람이 온몸을 파고든다.

3월까진 얼마 안 남았지만, 아직 2월이고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꽤 쌀쌀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고.

옷을 한 번 여미고 고개를 돌리자 바로 산이 보인다.

이번 주 토요일까지는 헌터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야 하니 시간이 많진 않지만, 중간에 뭔가 할 게 없을까 생각하다 주인공이 얻게 되는 첫 번째 기연을 찾으러 이곳 설악산에 왔다.

원작이 전형적인 아카데미물 클리셰를 따라서 학교 뒷산에서 영약을 주워 먹는 식이었다면 영약이 사라져 버릴 경우 미래를 알고 있는 주인공의 의심을 살 테고 미래가 어긋날 가능성도 있으니 섣불리 건드리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 주인공이 가장 처음 얻는 기연은 영약이 아닌 내공심법이다.

내가 살아가게 될 이 소설은 ‘책빙의물’로, 기존에 존재하는 소설에 주인공이 빙의하는 방식이라 주인공이 2명이다.

소설의 원래 주인공인 김도현과 소설 속 망나니에 빙의하는 이지성.

원래는 진짜 주인공인 김도현이 1학년 2학기 때 이곳 설악산으로 수련회를 왔다가 낙오하면서 우연히 포탈을 발견한다.

포탈에는 어느 무림 고수의 유언과 내공심법 구결이 남겨져 있었는데 망나니에 빙의한 주인공 이지성이 선수를 친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수를 칠 생각이지만.

물론 주인공 보정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있고 재력을 이용해 산삼을 밥처럼 처먹는 주인공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내게는 원작이 시작할 때까지 남은 2년이란 시간이 있으니까.

수련회는 가을이니 정확히는 2년 6개월인가?

애초에 내 목표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되는 게 아니니까 주인공만큼 강해질 필요도 없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산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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