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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9화 (9/275)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9)

어디서 볼 수 있냐는 말에 진수가 자기 휴대폰을 몇 번 누르더니 내게 건넸다.

다행히 동영상이 올라온 건 아니고 글이었다.

교무실에서 처음부터 지켜본 선생이 쓴 건지 정 선생이 결투를 신청하는 것부터 상세하게 쓰여 있었는데 다행히 나에게 별 악감정이 있는 사람이 쓴 건 아닌지 있었던 사실 그대로 써 놨다.

"이거 아무나 가입만 하면 다 볼 수 있는 거니?"

"그게, 사실 우리 학교 교원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 제1 헌터 학교 교원들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너는 어떻게 볼 수 있는 거야?"

"아, 그게… 저희 형이 중등부 선생님이라서…."

형 아이디로 로그인 한 모양이다.

혹시 얼굴 팔렸을까 봐 걱정했는데… 아니지, 생각해 보니 어차피 망신을 당한 건 정 선생이니 나는 상관없다.

[익명: 원래 실기 선생들이 일반과목 선생들 헌터 아니라고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에는 강 선생이 비 헌터 학교 출신이라고 많이 무시했음. 꼴 좋다. 눈치 보여서 응원은 못 했지만, 솔직히 속 시원했음.]

[익명: 저는 정 선생이 결투 신청할 때 교무실에 있었는데, 애초에 결투도 정 선생 여친이 먼저 강 선생에 대해서 헛소문 퍼트리고 욕하다 교감에게 붙들려 가서 털리니까 빡 돌아서 완전 억지 부리고 신청한 거임.]

[익명: 자업자득이네. 이제 정 선생은 학교 어떻게 다닌 데요?ㅋㅋ]

[익명: 솔직히 저도 실기 과목 담당하고 있는데 다른 실기 선생들처럼 대놓고 차별하진 않았지만, 비 헌터 학교 출신들은 좀 실력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결투를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익명: 뭐 이상한 수 쓴 거 아님? 정 선생은 화랑 길드에서도 창 잘 쓰기로 유명했고 다음 분기에는 A 랭크 심사도 본다고 들었는데, 혹시 강 선생 A 랭크임?]

[익명: 위에 선생님은 딱 봐도 실기 선생이네. 현실 부정 그만하세요. 교감 선생님이 심판을 봤는데 무슨 수를 씀?]

[익명: 체이스 길드에 지인 있어서 물어봤는데 강 선생 B 랭크 된 지 이제 1년밖에 안 됨.]

[익명: 나는 이번에 강 선생 다시 봄. 평소에 말도 잘 없고 조용해서 존재감이 없었는데 이번 일을 보니까 완전히 상남자던데.]

[익명: 맞음. 싸우는 거 보니까 처음에는 강 선생이 피하고 막기만 해서 밀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전혀 힘든 기색도 아니고 완전히 봐주던 거였음. 강 선생이 나쁜 마음 먹었으면 정 선생 어디 한 군데 부러트리거나 잘라 버릴 수도 있었을 건데 상처 하나 없이 제압했고. 게다가 마지막에 아무 요구도 안 했음. 나 같으면 더 망신 줬을 텐데.]

[익명: 솔직히 그건 인정. 내가 강 선생이었으면 정 선생 원산폭격이라도 시켰을 듯.]

"혹시 사실하고 달라요?"

"아니 특별히 다른 건 없네. 그냥 밑에 댓글 있길래 좀 봤어."

교원 게시판이니 댓글 단 사람들은 전부 선생이라는 건데 다행히 평이 그리 나쁘지 않다.

오전에 선생님들이 먼저 인사하고 그랬던 것도 이 글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이제 됐으니까 가서 구보라도 뛰고 있으렴."

"에이, 다른 애들도 없는데 무슨 구보예요. 그보다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샘이 완전히 개발라… 아니, 이기셨다면서요. 정말 역사 선생님 때문에 싸우신 거예요?"

"어허, 애들은 몰라도 되니까 가서 수업 준비나 해."

"아잉, 선생님, 그러지 말고요. 일부러 이야기 듣고 싶어서 일찍 올라온 건데."

"그런 애교는 진수에게나 해 주렴."

"아니, 샘! 저도 민희 애교는 좀…. 그보다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지금 애들 사이에서 완전히 난리라니까요."

아침에 식당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학생들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이거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다.

이놈의 학교는 무슨 비밀이 없다.

내 입으로 내 자랑하는 것 같아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두 녀석이 끈질기게 귀찮게 한 탓에 대충 이야기를 해 줬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학교 측에서도 따로 입단속을 하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    *    *

"크으, 역시 술은 죽엽청이지. 거기다 마파두부라니, 내가 사천 출신인 걸 어찌 알고."

무협 소설을 보면 죽엽청은 어느 객잔에서나 파는 싸구려 술로 묘사되는데, 초유량 반응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하긴 살 때부터 가격이 싸구려는 절대 아니었다.

거기다 원래는 술만 사려다가 낮에 들렸던 중국 식당 음식이 꽤 괜찮아서 마파두부도 한 그릇 포장해 왔더니 아주 좋아 죽으려 한다.

"처음에 왔을 땐 왜 이리 늦게 왔냐며 갈구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크흠, 아니… 그거야, 보통 네 놈이 오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안 오니 걱정이 돼서 그런 거지."

"걱정이요? 아주 사람 하나 잡을 분위기던데… 조금 더 걱정했다가는 전 맞아 죽었겠습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참, 그보다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보거라. 싸웠는데 너무 쉬웠다고?"

"네. 속도도 아주 느려 터지고 공격도 너무 정직해서 시시했습니다. 사부가 봤던 무인들 기준으로 보면 저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저 좀 괜찮은 편입니까?"

"형편없지. 이제 겨우 일류를 벗어나 절정에 갈까 말까 하는 수준이잖냐. 강호에는 너 같은 놈들은 널리고 널렸다."

칭찬을 기대했는데 너무 냉정하다.

"그래요? 그럼 밖에서도 더 수련에 몰두해야겠으니 다음부터 술과 음식은 못 구해 오겠네요."

"아… 아니, 이 제자 놈아!"

"놈이요?"

"아니, 그럼 제자님이라고 부르리?"

"참깨라면이 이번 주에 단종 된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차피 이 시대에 무공 쓰는 놈은 너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일류건 이류건 삼류건 그냥 네가 최고지."

"이미 배 떠나갔습니다."

"치사한 자식. 다른 건 몰라도 라면 가지곤 그러는 거 아니다."

고개를 홱 돌려 버리는 걸 보니 진짜로 삐지기 전에 그만해야겠다.

"농담이었어요. 그래도 이번에 싸운 상대가 나름 주변에서는 저보다 높이 평가받던 자였거든요."

"그래 봤자 그놈은 무공을 익힌 게 아니지 않느냐? 네가 헌터는 몬스터라는 것들과 싸우는 자들이라고 했지?"

"네."

"반면 무공을 익힌 무인은 몬스터가 아닌 같은 무인과 싸우지. 무공은 몬스터가 아닌 인간과 싸우면서 발전해 왔으니 당연히 네 녀석이 이겨야지."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네요."

확실히 헌터들이 가끔 대련이나 명예 결투 같은 걸 하지만 범죄자들과 싸울 때를 빼곤 목숨까지 걸고 싸우진 않으니까.

한국 10강이나 세계 10성 같은, 세간에서 강한 헌터라고 분류해 놓은 것도 헌터끼리 싸워서 결정한 게 아니라 그들의 헌터 랭크, 토벌한 몬스터 수준으로 정한 거다.

"그리고 전에 한 번 말했던 것 같은데, 정제되지 않은 기와 정제된 기는 같은 양이라도 낼 수 있는 힘이 다르다. 네놈은 이미 모든 기를 정제했으니 네가 턱없이 부족하지 않다면야 이기는 게 당연하지."

오, 그냥 칭찬하기 싫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꽤 논리적인 분석이다.

근래 들어 밥만 축내는 노인네 같은 모습만 보여 줘서 살짝 무시했는데 역시 고수는 고수인가 보다.

"그런데 아까 저보고 일류라고 하셨죠? 저 검기 쓸 줄 아는데, 검기 쓰면 절정 고수 아닙니까?"

"꼴랑 20분 쓰는 게 쓰는 거냐? 적어도 세 시진은 유지할 수 있어야지."

"세 시진이요? 그게 가능합니까?"

세 시진이면 6시간이다.

"지금 네가 만든 검기는 수준도 안 되는데 억지로 만든 거라 그렇지. 진짜 절정 고수가 되면 세 시진이 아니라 그 곱절도 거뜬할 거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이야.

이거 진짜 영약이라도 사 먹어야 하나.

"영약 사 먹으면 좀 도움이 됩니까?"

"먹으면 당연히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영약이 괜히 영약이겠느냐. 영약도 다 인연이 닿아야 얻는 법이다."

영약이라.

만년화리 내단이나 천년설삼 같은 거야 당연히 못 구하겠지만 이 세상에도 산삼은 있다.

가격이 비싸서 문제지.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산삼을 알아보니 산삼도 종류가 천종 산삼, 지종 산삼, 인종 산삼 등으로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그중에 영약이라고 할 만한 것은 천종 산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산삼 중에서도 50년 이상 사람 손이 닿지 않고 자연적으로 자란 산삼을 말한다.

100년이 안 됐어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고 100년이 넘으면 1억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은 집이 재벌이라 아주 밥처럼 처먹던데.

나도 수중에 3억이 있긴 하지만 100년 넘은 거 세 뿌리 사면 끝나 버린다.

애초에 돈이 있어도 100년이 넘는 건 물량도 없다고 하니 사려고 마음먹어도 구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헛생각 그만하고 그럴 시간에 가서 내공 수련이나 더 하는 게 나을 거다."

한마디로 영약 살 돈이 없으면 수련으로 때우라는 소리다.

"네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입에 빨간 마파두부 소스를 잔뜩 묻히고 말하는 사부와 입씨름 하는 것보다 수련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좀 떨어져 누웠다.

처음에는 무협 소설에서 봤던 것처럼 가부좌를 틀고 했었지만, 절세고수인 사부 말로는 내공심법을 연마할 때는 무조건 편안한 게 최고라는 걸 들은 후로는 바로 자세를 바꿨다.

개폼 잡느냐며 엄청나게 비웃었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다시 생각하니 짜증이 확 나지만 내공심법 수련 중에 헛생각은 금물이다.

집중하자, 집중.

*    *    *

명예 결투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투명 인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속한 고등부에선 내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헌터인 실기 선생들은 여전하지만, 전처럼 대놓고 무시하는 이야기를 하진 않는 것 같다.

일반과목 선생님들은 완전히 관심 폭발이라 술 약속과 밥 약속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대부분 남자 선생님들인 건 약간 슬프지만 그래도 뭐, 자기 동생이나 조카나 심지어 이제 막 스무 살 된 딸을 소개해 주겠다는 분도 계셨다.

원래부터 친했던 옆자리 박 선생님까지 자기 아는 동생 한번 만나 볼 생각 없냐는 식으로 말을 할 정도니까.

다음 주 화요일에는 신입 교사 모임에 초대도 받았는데 지난번처럼 헌터인 실기 선생들의 모임이 아니라 일반과목 선생님들 모임이다.

가정 과목을 담당하는 민승아 선생님이 직접 내게 제안을 주셨다.

원작에서도 예쁘다고 몇 차례 언급되긴 했는데 진짜 웬만한 연예인 뺨칠 정도로 예쁘다.

김칫국을 마시는 걸지도 모르지만 드디어 내게도 봄날이 오는 게 아닐까 싶다.

남자는 나를 포함해 셋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선생님이라니 기대가 된다.

"강 선생, 오늘 한잔 어때? 와이프 친정 간다고 했거든."

"서류 작업 할 것도 많고 좀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오늘은 봐주세요."

박 선생님이 아쉬운 표정을 하고 떠나는데 다들 퇴근하는 분위기라 나도 적당히 눈치를 보다 퇴근했다.

박 선생님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서류 업무 같은 건 없다.

요새 너무 시달리다 보니 하루 정도는 쉬어 줘야 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

운기 조식 한 번 하면 숙취는 금방 해소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요새 수련도 제대로 못 했고.

뭐, 퇴근이라고 해 봤자 교무실을 빠져나와 학교 내에 있는 기숙사에 가는 것뿐이지만.

약간 답답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긴 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일단 비용은 국가에서 전액 지원해서 나가는 돈이 없다.

거기다 중등부 학생은 4인 1실, 고등부 학생은 2인 1실이지만 교사들은 무조건 1인 1실에 방 크기도 꽤 크다.

학교 밖에서 살던 오피스텔보다 좁긴 하지만 전생의 내가 저쪽 세계에서 살았던 원룸보단 크고 침대를 비롯한 가구나 가전제품도 전부 최신식이다.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이 안 좋은 환경인 군대에서도 2년을 꽉 채워 만기 전역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지.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기숙사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가 되는 동안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다시 기숙사를 나왔다.

오랜만에 트레이닝 센터에 들려 음료라도 하나 사 가려고 1층에 있는 매점에 들렀다.

교직원 기숙사에 있는 매점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딱히 교직원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닌데 학생들 기숙사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온 음료를 하나 사서 마시며 트레이닝 센터에 도착했다.

어?

트레이닝 센터는 교직원이 사용하는 곳과 학생들이 사용하는 곳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동안 종종 왔지만 다른 선생들은 아예 이용을 안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매번 독차지하다시피 했는데 카드를 찍고 들어와 보니 오늘은 선객이 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교직원 전용 훈련장에 들어온 걸 보면 선생님일 텐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한 달간 지내면서 선생님들 얼굴은 대충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중등부 선생님인가?

인사를 할까 하다 역시 어색해서 그냥 지나가려는데 여자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강신혁 선생님이시죠? 고등부에서 검술 과목을 가르치고 계시는."

"아, 네, 맞습니다. 혹시 저를 아시나요?"

"훈련장에는 따로 CCTV 없으니 편하게 해도 돼요. 신혁 선배."

신혁 선배? 나를 아는 사람인가?

원래 알던 사람은 마주치면 대부분 기억이 나는데… 어째 이 여자는 기억이 안 난다.

CCTV가 없다는 건 또 무슨 뜻이지?

"모습이 너무 바뀌어서 못 알아보는 거예요? 그런 거면 섭섭한데. 저 서라잖아요."

다행히 이름을 듣자마자 기억이 떠오르는데… 뭐야, 잠깐만. 이거…?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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