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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18화 (18/275)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8)

존버는 승리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다음 주에는 못 온다고?"

"일이 길어지면 그다음 주도 못 올지도 모릅니다."

사실 일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다.

물론 주식으로 돈을 다 날려 알거지가 된 건 아니다.

한 번 크게 떨어진 이후부터 조금씩 오르거나 떨어지길 반복하고 있다.

수업에 집중도 안 되고 매일매일 피가 말라 가는 기분이라 신용카드 단기 대출까지 받아서 전부 주식에 넣었다.

이런 사정을 사부에게 설명하긴 너무 복잡하니 어쩔 수 없다.

"사정이 있다고 하니 할 수 없지만… 제자야, 그러면 오늘은 더 많이 챙겨 왔어야지. 거기다 참깨라면이 아니라 다른 라면을 사 오고 평소보다도 라면이 적은 것 같은데?"

"사… 사실은 이 참깨라면을 만드는 곳에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해도 몇천 원 아끼자고 일부러 싼 라면을 산 건 아니다.

하필 마침 들렀던 가게에 참깨라면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다른 가게는 너무 멀어 있는 라면 중에 대충 비슷한 걸 찾다가 아무거나 산 건데 돈이 없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제일 싼 걸 골랐다.

"뭐?"

"최대한 구해 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라면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다쳐 당분간 생산이 어렵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말없이 초유량이 날 쳐다보는데 혹시 들킨 건가?

"…그런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고생이 많았겠구나. 수고했다."

"아… 아닙니다."

휴, 미리 생각해 둔 핑계가 통해서 다행이다.

"너도 하나 먹을 거냐?"

"아, 저는 괜찮습니다."

"진짜 안 먹을 거지? 나중에 한 젓가락 달라고 하면 죽는다."

내가 안 먹겠다는 말에 신이 나서 물을 끓이는 사부를 보고 있으니 미안함이 너무 밀려온다.

멀고 귀찮더라도 다른 가게 가서 라면이라도 참깨라면으로 사다 줄걸….

진짜 주식만 팔면 정말 잘해 드려야겠다.

라면과 과자는 물론이고 중국 술이랑 중국 요리도 많이 사 오고.

그래, 동영상도 더 오래 그리고 고화질로 볼 수 있게 노트북도 비싼 거로 바꿔 드려야지.

"제자!"

"저는 정말 괜찮… 어? 사부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방금 사부가 나를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제자라고 불렀다.

"나가 알맞게 말하고 있습니까?"

완전 이상하고 발음도 조금 이상하지만 그래도 틀림없는 한국어다.

"따로 가르쳐 드린 적도 없는데 한글은 도대체 어떻게 익히신 겁니까?"

"네가 지난번에 심심하면 보라고 가져다준 책 중 하나를 보고 익혔다."

"네? 제가 사다 드린 책이요?"

사부가 노트북 배터리가 너무 빨리 없어진다며 노트북을 하나 더 사달라고 투덜대서 배터리 없으면 책이라도 읽으라고 이곳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중국어로 된 책을 몇 권 사 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전부 소설책이었다.

교양서적 같은 걸 사다 줬다가 재미없다고 안 읽으면 아까우니까.

하지만 애초에 헛수고였다.

사부는 날 때부터 글에 흥미가 없었다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까

중국 소설에서 한글에 관한 내용이 있을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떤 책을 보고 익힌 건가 싶어 책을 한번 보여 달라고 했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동굴 안쪽으로 들어간 사부가 얇은 책 다섯 권을 가지고 왔는데 전부 유아용 한글 교재였다.

이런 책은 산 적이 없는데 뭐지 싶어 곰곰이 기억을 되새겨 보니… 아, 혹시 그건가?

당시 사부에게 줄 책을 샀던 서점에선 책을 두 권 이상 사면 뽑기권을 줬는데 5등에 당첨됐다.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딱 봐도 책 같아서 그냥 별생각 없이 같이 가져오고는 깜빡 잊고 있었다.

그게 이거였구나.

"따로 포장되어 있길래 난 또 먹을 건가 했는데 이 책이더라고."

"글에 흥미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심심하니까 봤는데 이 책은 다른 책처럼 두껍고 글자만 잔뜩 있지도 않고 그림이 많아서 괜찮았다. 그림도 누가 그렸는지 참 잘 그렸던데. 그리고 노트북 밑에도 이 언어로 되어 있으니 배우면 쓸모 있겠다 싶어서 좀 익혔지."

노트북 밑? 아, 자판을 말하는 것 같다.

책 한 권으로 한글을 배우다니 무림 고수는 머리도 좋은 건가?

평소 사부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 사부가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책만 보고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이 대단하신 거다.

"다음에 올 땐 한글로 된 동영상도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너무 빠르게 말하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데."

"느리게 재생하는 기능 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보시다 보면 금방 실력이 느실 겁니다. 비슷한 책도 좀 준비해 드릴까요?"

"이 책들처럼 글보단 그림이 많으면 괜찮을 것 같다."

됐다고 할 줄 알았는데 배우려는 모습을 보니 좀 도와주고 싶다.

지금 있는 책이 4~5세용이라고 쓰여 있었으니 6~7세용으로 찾아서 사다 주면 되려나?

"그런데 여기 이 글자가 내가 지금 말하는 제조와 같은 의미냐?"

라면 봉지 뒤에 쓰여 있는 ‘제조원’을 가리키기에 만든 곳을 말하는 의미라고 대답했다.

"그럼 뒤에 있는 건 지명이겠구나."

"네. 맞습니다."

이런 질문도 하고 정말 한글에 흥미가 꽤 생긴 모양이다.

잠깐, 그런데 표정이 왜 저러지?

다시 동굴로 들어가더니 갑자기 라면 봉지를 잔뜩 들고 왔다.

"제자야, 그렇다면 여기 이것들을 보면 이 참깨라면과 네가 지난주에 사 온 참깨라면 그리고 그 이전에 사 온 참깨라면은 만드는 곳이 전부 다르다는 이야기겠구나?"

"네? 그… 그렇지요. 모두 불이 났습니다."

"여기 적힌 대로라면 참깨라면 만드는 곳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이곳 모두가 불이 났느냐?"

와, 이 노인네 진짜 천잰가?

어떻게 그걸 그렇게….

"그, 그렇습니다. 다 가까운 곳입니다."

속으론 찔렸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

목소리에 의심이 잔뜩 서려 있다.

"사부님, 설마 이 제자 말을 못 믿으시는 겁니까? 너무하십니다."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만하면 넘어가겠지 싶어 조금 고개를 들어 확인했는데 어째 사부 표정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그럼 네가 오늘 사 온 라면에 적힌 제조원이랑 여기 참깨라면에 적힌 제조원이 왜 똑같은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아. 저것도 같은 회사 라면이었지.

"저기… 사부, 그게…."

"듣기 싫다. 제자란 놈이 사부에게 거짓말이나 하고. 아이고, 서러워서 살겠나. 늙으면 죽어야지."

아주 단단히 삐진 것 같은데… 미안합니다. 사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존버’는 언젠간 승리하는 법이니까요.

*    *    *

"강 선생, 오늘 퇴근하면 저녁에 한잔 어때? 나 마누라 오늘 친정 간다고 했거든."

"제가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아요."

"일 많아? 내일 대선이라 쉬니까 딱 좋은데…. 알았어. 그럼 다음에 먹자고."

그래. 내일은 대선이다.

지난 3주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주식의 폭등이다.

일주일 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던 김준석 아들의 비리가 터지며 김준석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반대급부로 김철환은 단숨에 지지율 1위를 찍었고 관련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강 선생, 지난번에 나한테 친구가 샀다고 물어봤던 주식 있잖아. 어떻게 했대? 설마 팔았대?"

지난번 민 선생이 제안한 모임에서 친해진 구 선생이다.

"아, 그게… 연락이 안 되는데, 아마 팔지 않았을까요?"

"혹시 그때 내가 더 떨어질 것 같다고 했던 말 전한 건 아니지? 그랬으면 너무 미안한데."

"아니요. 원래 주식은 남에게 조언하거나 추천해 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고 해서 말 안 했어요. 지난번에 이야기했을 때 본인도 너무 떨어져서 팔까 고민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럼 팔았겠네. 어휴, 진짜 그래도 강 선생이 말은 안 전해서 다행인데… 아니지, 연락 안 된다는 거 보니 그때 팔고 후회해서 혹시 잘못된 생각 같은 거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구 선생은 꽤 심각한 표정이지만 나는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글쎄요. 안 팔고 잘돼서 연락 안 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난 안 팔았다.

두 번째는 우리 학교 위튜브 채널의 폐지다.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진행됐던 우리 학교 위튜브 채널은 결국 폐지됐다.

처음에만 반짝하고 그 이후엔 조회 수가 잘 안 나와서 그런 건 아니다.

애초에 목적도 학교 홍보와 더불어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거였으니까.

오히려 조회 수도 처음보다 2편이 훨씬 높았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거의 300만이 다 됐던 것 같다.

보안을 이유로 처음에는 넣지 않으려 했던 실기 수업을 받는 학생들 모습도 교감과 교장이 폭발적인 반응에 신이 나 위쪽과 협상이라도 한 건지 포함됐었으니까.

거기다 민 선생님을 포함해 예쁜 여선생님 3명의 합동 인터뷰까지.

구독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고 모든 게 다 잘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관심이 늘어난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늘어난 관심만큼 악의를 가진 사람들도 많아지니까.

영상 밑에 있는 ‘더 보기’란에 아직 미성년자인 학교 학생들이 나오는 만큼 이상한 내용이나 선을 넘는 댓글들은 법적 조치를 취한다고 미리 공지했지만, 세상은 넓고 또라이들은 많았다.

영상에 나오는 학생과 선생님을 보고 ‘쟤 정도면 내 신부로 합격.’ 이런 댓글들도 문제지만 이건 가벼운 수준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외모 평가를 하거나 심각한 성희롱 댓글이 많았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그런 댓글들을 보이지 않게 조치하고 고소 절차를 밟기 위해 위튜브 본사에 악플러들 정보 협조 요청을 했다.

이전 세계에서 외국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중요시 여겨 협조를 잘 안 해 줬지만, 다행히 이곳은 달랐다.

위튜브 코리아에서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 주고 악플러들을 모두 고소하겠다고 기사까지 나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든 악플러를 다 잡을 수는 없었으니까.

메일 주소를 알아내도 개인정보 하나도 없는 가계정이 대다수였다.

수많은 댓글을 하나하나 다 검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영상 링크를 가져가 학생들을 희롱하는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엔 인력도 부족했다.

끝내 인터넷 기사까지 나오며 학부모들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알려졌다.

동영상에 나온 학생들에겐 전부 동의를 받았지만, 자식들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로 학교가 마비될 정도의 소란이 있었다.

학교뿐만이 아니라 교육부와 헌터관리국에 항의와 진정서가 빗발쳤고 결국 정책은 중단됐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가장 많이 출연한 학생회장, 부회장 그리고 예쁜 외모 때문인지 민 선생님에 대한 악플들이 제일 많았다고 하던데,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민 선생님이 정말 안타깝다.

기술 선생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편집자가 됐지만, 본인도 하다 보니 재밌다며 누구보다 열의를 가지고 하시는 것 같았는데….

오다가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눴을 땐 괜찮다고 말을 하시는데 예전에 봤던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괜찮다는 말은 원래 괜찮지 않다는 말이라는.

애초에 표정만 봐도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나도 삼류 작가긴 해도 악플을 꽤 많이 받아 봤고 악플도 많이 보다 보니 나름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내성이고 나발이고 악플러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고소 절차 때문에 경찰서도 다녀오신 것 같은데… 진짜 악플러 놈들 다 잡아서 절대 합의 없이 강하게 처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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