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63)
같은 A 등급 몬스터일지라도 수준이 꼭 비슷하지만은 않다.
B 등급의 섀도우리퍼, A 등급의 오우거처럼 같은 등급이더라도 보통 A 등급 몬스터보다 월등히 강력한 힘을 가진 몬스터들이 존재한다.
순식간에 무투가를 삼키고 사라진 저 녀석도 그런 녀석 중 하나다.
사막의 재앙 그레이트샌드웜.
길이는 최장 20m까지 자라고 직경도 2m는 가볍게 넘는 초대형 몬스터로 모래 깊숙한 곳에서 이동하여 발견이 쉽지 않고 외피는 오우거 가죽보다 질기고 웬만한 마법은 전부 튕겨 내고 재생력 또한 트롤 못지않다.
지능 수준도 높고 전 세계 기준으로도 1년에 한두 마리 정도밖에 발견되지 않지만 나올 때마다 피해자를 무척 많이 발생시켜 재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저 녀석이 나올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는데….
"거기, 얼른 돌아와서 다시 대형을 갖춰!"
김대찬이 다급히 외치는데 이미 달려가던 헌터들은 빠르게 복귀 중이다.
다행히 두 번째 습격은 없었고 무사히 대형을 다시 갖췄지만, 김대찬의 표정은 심각하다.
"이대로 대형을 갖춰서 포탈 밖까지 신속하게 퇴각한다. 저 녀석은 지금 전력으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야!"
그레이트샌드웜을 잡기 위해선 놈이 모래를 뚫고 올라왔을 때 속박 마법으로 붙잡아 두고 상대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S 랭크 마법사나 실력 뛰어나고 합이 잘 맞는 A 랭크 마법사가 최소 다섯은 필요하다.
물론 우리 일행도 마법사가 다섯이긴 하지만 이미 전투로 마나를 상당히 소모한 상태고 시험관 3명을 제외하면 2명은 이제 막 A 랭크 시험을 보러 온 응시자니까.
아무리 김대찬이 날고 기는 S 랭크 헌터라고 해도 모래 깊숙한 곳에 있는 녀석을 꺼낼 수는 없으니 정상적인 판단이다.
"아니, 그럼 현지 씨는 어떻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미 잡아먹혔는데. 생존 가능성은 없어."
김대찬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데 이건 명백히 틀린 판단이다.
그레이트샌드웜은 이빨이 없어 사람을 통째로 삼킨 채 오직 위산으로만 소화를 시킨다.
물론 내부의 가죽 또한 외피 못지않게 강력하고 질겨서 뚫고 나오기는 어렵다.
그래도 A 랭크 헌터라면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원작에서도 주인공의 일행 중 한 명이 그레이트샌드웜에게 잡아먹혔다가 구출되는 내용이 있다.
"아니요. 아직 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 저놈을 처치하면 살릴 수 있습니다."
"신혁 씨?"
"그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미 리더가 퇴각을 지시했기에 다들 부정적인 의견과 표정이지만 정작 퇴각을 지시한 김대찬의 표정은 다르다.
"그레이트샌드웜은 이가 없습니다, 오직 위산으로만 먹이를 소화하는데 내피가 질겨서 뚫고 나올 수는 없지만 A 랭크 헌터라면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확실한 정보인가?"
"저는 헌터 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정확한 교육을 위해 각종 몬스터에 대한 논문과 자료들을 수시로 확인합니다,"
"하지만 저 녀석을 잡기 위해선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무리네. 정면으로 나와 준다면야 내가 어떻게든 해 보겠지만 상당히 영악한 놈이라고 들었는데…."
"저놈의 지능이 높은 것도 맞고 그레이트샌드웜을 잡기 위해선 S 랭크 마법사 혹은 실력 좋은 A 랭크 마법사 다섯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정석이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
"예전에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레이트샌드웜은 사막형 포탈에서 등장하지만 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로 시작되는 논문이었죠. 실제로 비가 오면 놈이 모래 위로 올라오는 것을 봤다는 내용과 놈의 육체는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사막형의 포탈에 놈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놈 때문에 포탈이 사막화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놈이 물을 좋아하는 거랑 놈을 잡는 거랑 무슨 상관인가? 논문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서 방법이나 설명하게."
"놈을 유인하기 위해 마법으로 물을 뿌리는 겁니다. 그럼 놈은 비가 오는 줄 알고 올라올 겁니다. 그때를 노려 얼리고 잡으면 됩니다."
"잠깐만요. 빙결 마법 사용할 수 있는 건 2명뿐이에요."
"물 생성은 마법사라면 다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2명은 빙결 마법을 쓰고 나머지는 물 생성 마법을 쓰면 됩니다."
"그레이트샌드웜은 마법 내성이 상당해서 고작 2명으로는 놈을 얼릴 수 없을 건데…."
"저도 압니다. 그러니 놈을 얼리는 게 아니라 놈 주변의 땅을 얼리면 되죠. 땅에는 항마력이 없으니까요."
"땅을 얼린다고?"
"부드러운 모래가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으로 변하면 놈도 쉽게 이동할 수 없을 겁니다. 물에 젖은 상태라면 얼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다들 감탄한 표정인데 사실 논문 같은 건 싹 다 거짓말이고 이건 원작에서 주인공이 사용했던 방식이다.
"물 생성이 쉬운 마법이긴 해도 이 넓은 지역 전체에 뿌릴 순 없어요."
"위치는 제가 특정할 수 있습니다."
놈이 깊은 모래 속에서 움직이긴 하지만 아까도 미세하게 알아챘으니 내공을 좀 더 끌어 쓰면 할 수 있다.
"그래? 그럼 한번 해 보지."
"그레이트샌드웜은 눈이 퇴화해서 시각이 아닌 진동을 통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물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공격할 수 있으니 땅이 완전히 얼어붙기 전까진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경고하고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모래 사이로 침투시키자 얼마 안 가 놈의 위치를 찾아냈다.
멀리 도망갔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사람 하나로는 성에 안 찼는지 그리 멀지 않은 20m 정도 앞쪽의 지하다.
"20m 전방 땅속입니다. 그쪽으로 물을 쏟아부어 주세요. 놈을 끌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 여력을 남기지 말고 다 써 주세요."
마법사 셋이 주문을 외우자 이내 20m 앞 허공에 커다란 물방울이 생겨나며 무섭게 땅으로 쏟아진다.
바닥이 모래라 금세 스며들어 사라지고 있지만 물 생성은 기초 마법 중에서도 기초 마법.
여력을 남기지 말라고 해서 그런지 물은 끊임 없이 쏟아진다.
밖에 물이 있다는 걸 밑에 있던 녀석도 알았는지 젖은 모래가 솟아오르며 그레이트샌드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순식간에 무투가를 집어삼켰을 때는 머리만 나오고 다시 모래 속으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천천히 올라와 전신이 드러났는데, 기차가 연상될 정도로 엄청난 크기다.
"저… 정말 물을 좋아하는 게 맞나 봐요."
"논문이 사실이어서 다행이네요. 지금입니다. 빙결 마법 부탁드려요. 최대한 놈이 맞지 않게 피해서요."
빙결 담당 마법사 둘은 미리 캐스팅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까처럼 서리가 생기더니 땅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다행히 놈은 물에 정신이 팔려 아직 이상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어? 뭐야?
갑자기 김대찬이 말도 없이 앞으로 쇄도한다.
완전히 얼어붙었을 때를 노릴 생각이었는데 말도 없이 왜 혼자 급발진인지….
답답함을 느끼며 나도 김대찬의 뒤를 따라 달렸다.
앞서가던 김대찬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놈이 갑자기 몸을 틀더니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한다.
쿵! 쿵!
땅은 이미 얼려진 상태지만 깊게 얼진 않았는지 단 두 번 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다행히 김대찬이 도착해 푸른 검강에 휩싸인 검으로 도주하는 녀석의 몸통을 찔렀다.
역시 검강이라 그런지 녀석의 질긴 가죽을 두부 자르듯 뚫고 들어가며 푸른 피가 튀었다.
하지만 거대한 놈에겐 그리 유효한 공격은 아니었는지 몸부림을 치더니 순식간에 꼬리로 김대찬을 후려쳤다.
쿵―!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방어 자세를 취한 것 같지만 힘을 완전히 상쇄시킬 수 없었는지 김대찬이 날아간다.
그러게 왜 혼자 나서서….
이대로 가다간 놈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내공을 끌어올려 전부 다리로 보내 겨우 놈에게 도달했다.
이미 2/3 이상 구멍으로 들어가 꼬리 쪽만 남은 걸 보고 바로 검을 날렸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꼬리까지 구멍에 들어가 버렸고 날렸던 검조차 보이지 않게 됐지만 상관없다.
이기어검은 결코 시야에 의존하는 기술이 아니니까.
신검합일(身劍合一)을 기반으로 검과 연결된 상태라서 내공과 정신력만 따라 준다면 범위는 무제한이나 다름없다.
물론 검과 거리가 늘어날수록 내공과 정신력 소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결코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연결된 검의 감각이 꼬리를 관통했다는 걸 알려 와 그대로 검을 전진시켰다.
그 짧은 순간 얼마나 도망을 갔는지 단전이 저릿해지며 금방이라도 연결이 끊길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견뎠다.
놈이 밑에서 무지하게 발광을 하는지 땅이 다 들썩이는데, 내 검은 기어이 놈의 머리까지 도달했고 심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핵을 가르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연결도 끊어졌는데 몸에 힘이 쭉 빠지며 탈력감이 몰아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보니 다행히 이 녀석이 마지막 몬스터였던 것 같은데… 어휴, 진짜 죽을 것 같다.
초절정이 되고 나서는 내공이 부족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예 바닥까지 싹싹 긁어 썼더니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할 것 같다.
"자… 자네가 해치운 건가?"
아까 날아갔던 김대찬이 돌아와 묻는데 무지하게 놀란 표정이다.
딱 보니 믿지 못하는 눈친데 ‘그럼 지가 혼자 땅에 들어가서 질식사라도 했을까요. 왜 갑자기 혼자 처나가서 일을 어렵게 만듭니까’ 하고 한마디 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말할 기운은 없어 짜내고 짜내 겨우 입을 열었다.
"다… 닥치고 땅이나 파요."
아까 검을 전진시키며 무투가의 생존을 확인했다.
몬스터가 죽었으니 스스로 올라올 가능성도 있지만 아마 버티느라 힘을 다 썼을 테니 얼른 구하지 않으면 질식사할지도 모르니까.
닥치라는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처음엔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오라고 지시하더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달려온 마법사들과 창술사와 궁수까지 모두 무기를 던지고 땅을 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호성이 들려오는 걸 보니 무투가를 구출해 낸 모양이다.
비록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사과도 받아서 잘못됐다면 무척 찝찝했을 텐데, 초면이고 오늘 보고 다시 안 볼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
"자네의 검이지? 머리 쪽에서 발견했네."
현식 씨가 피가 잔뜩 묻은 검을 내민다.
"아, 감사합니다."
"대찬 님께서도 자네가 놈을 쓰러트렸다고 하셨는데 정말 놈의 핵에서 자네의 검이 발견돼 다들 깜짝 놀랐어. 몸은 좀 어때?"
"마나를 바닥까지 긁어 썼더니 말하기도 힘드네요. 무투가는 어떤가요?"
"의식은 없지만 숨은 쉬고 있는 걸 확인했고 바로 포탈 밖으로 보내 치료하기로 했네."
"다행입니다."
"움직일 수 있나? 치료가 필요하면 사람을 붙여 먼저 나가 치료받을 수 있게 조치하겠네."
"아, 그러면 심사는 어떻게…."
"공략 초기에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을 탐지한 것부터 시작해서 저런 녀석까지 혼자 잡은 거나 다름없는데 뭘 걱정하나? 당연히 합격이겠지."
"그렇군요. 치료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정말 괜찮나? 무리하지 말게. 이런 곳에서 어떻게 쉰다고…. 쉬더라도 나가서 쉬게."
"그래도 사체 정리가 남았는데."
"그런 건 우리끼리 해도 충분하네."
"아니, 그래도…."
"어허, 딱 보니 마나 탈진 상태인 것 같은데, 그럴 때 무리하면 안 좋아. 정산도 걱정할 거 없어. 바디캠에 다 기록되고 있어서 자네 몫을 누가 떼먹는 일 같은 건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나가서 쉬어. 자네는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
재차 괜찮다고 했지만 현식 씨는 고집부리지 말라고 하더니 김대찬에게 보고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나이스!
사실 이미 내공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고 체력도 어느 정도 돌아와서 혼자 걸을 정도까진 된다.
사실대로 말했으면 나도 꼼짝없이 사체 정리에 참여했어야 했을 테니 귀찮아서 엄살을 좀 부려 본 건데… 통해서 다행이다.
* * *
은색 신분증을 반납하고 5분 정도 기다리자 직원이 번쩍번쩍한 금색 신분증을 내어 준다.
A 랭크 헌터 강신혁.
이론 시험도 없고 마나 측정과 실전뿐이라 쉽게 통과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물론 마지막에 나타났던 그레이트샌드웜만 아니었다면 생각대로 됐겠지만…. 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쨌든 아무도 죽지 않고 심사도 통과했으니 됐다.
정산도 나름 괜찮게 받았는데 그레이트샌드웜 사체는 미포함이다.
업체에서 경매로 붙여서 하루 이틀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효용성이 높은 희귀한 몬스터인 데다 기여도에 따라 분배해 준다고 했으니 기대가 된다.
모든 게 만족스럽지만 아직 한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명함을 꺼냈다.
[아레스 Guild master 김대찬
010-1234-4321]
사체 정리를 마치고 협회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릴 때, 김대찬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으니 승급 절차가 끝나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