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79)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불편하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어서 그런가?
아니, 사실 정장보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세진이의 우승으로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 김대찬이 묵고 있던 호텔 연회장을 빌려 축하 파티를 열었다.
주최자인 김대찬의 지인들과 교감의 지인들, 세계헌터협회 관계자들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상당히 많이 왔다.
원래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하고 주최자도 꼴 보기 싫은 김대찬이라 별로 참석하고 싶진 않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세진이 축하 파티다 보니 빠질 수가 없었다.
세진이 우승 축하 파티인 만큼 당연히 주인공은 세진이고 실제로 세진이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약간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나와는 다르게.
교감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지만 나도 세진이 못지않게 시달리는 중이다.
"진짜 오러블레이드가 아니었다고요?"
"네."
같은 질문만 벌써 몇 번째 받는지 모르겠다.
나를 시달리게 만든 원흉은 세진이다.
세진이 저 녀석이 아까 인터뷰에서 내가 없으면 절대 우승을 못 했을 거라고 내게 너무 감사하다며 인터뷰의 절반 이상을 내 칭찬만 했다.
고마운 건 알겠지만 그 인터뷰 때문에 내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거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감 선생님, 저는 이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벌써?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아직 소개 못 해 준 사람 많은데. 어? 로버트, 이쪽은 우리 강 선생."
결국, 파티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시달렸다.
방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반이 넘었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강신혁으로 살면서 조금이라도 바뀐 줄 알았는데 태생적 아싸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잠깐 뒹굴거리다 다시 일어나 옷에서 휴대폰을 가져왔다.
오늘 너무 바빠서 휴대폰을 제대로 확인 못 했는데 지금 보니 전원이 나가 있다.
세진이가 우승을 했으니 한국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을 것 같아 충전기를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전화는 몇 통 안 왔는데 메신저가 999+, 거의 폭탄 수준이다.
은수와 은서, 민희와 진수처럼 세진이와 같이 보강을 받았던 녀석들부터 김 선생과 홍 선생을 비롯해 학교 선생님들까지 하나같이 축하한다며 연락을 했다.
폰도 꺼지고 정신이 없어서 미안하다 설명하며 한 명 한 명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다.
한국은 아침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1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몇 명은 빠르게 답장을 했다.
[저기, 그런데… 선생님, 혹시 이제 학교 그만두시는 거예요?]
은서 녀석이 보낸 메시지인데 갑자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왜 선생님이 그만둔다는 소리를 해? 은서는 선생님이 그만두면 좋겠어?]
[아니, 어제 뉴스 기사에서 학교를 그만둘 것 같다고 해서요….]
혹시 김대찬과 했던 내기가 언론에 알려졌나?
하지만 내기를 아는 건 김대찬과 나 그리고 세진이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세진이가 우승해서 내가 그만둘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뭐지?
그만둘 생각 없다고 메시지를 보내며 기사 링크를 보내 달라고 했다.
[모든 전문가의 예상을 깨 버린 역대급 반전 드라마 2021 WHCU. 우승 상금 및 당첨금도 모두 역대 최고 갱신!
현지 시각 오후 2시 13분,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11시 13분 런던에 위치한 월드 챔피언십 스타디움에서 열린 19세 이하 학생들이 참가하는 월드헌터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한 김세진 양이 영국 대표 비앙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WHCU 우승 상금은 300만 달러지만 대회를 주최하는 세계헌터연맹이 진행하는 WH토토에 자신의 우승에 자동 베팅 되어 300만 달러에 배당을 곱한 금액이 최종 상금으로 지급된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디펜딩 챔피언이자 2년 연속 우승했던 영국의 비앙카 로웰이 우승할 거라 예상했다.
실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앙카 로웰에게 베팅했고 WH토토에서 발표한 비앙카의 배당은 1.04배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WH토토 최대 한도인 1,000달러를 전부 걸어도 이득은 겨우 40달러밖에 되지 않지만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김세진 양의 배당은 20.4배다.
김세진 양을 믿고 만약 1,000달러를 베팅했다면 2만 400달러. 한화로는 약 2,400만 원이 넘는 거액의 당첨금을 수령하게 된다.
우승자인 김세진 양은 우승 상금으로 6,120만 달러. 한화로는 약 734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상금을 받게 됐다.
하지만 역대급 상금을 받은 김세진 양보다 더 많은 돈을 번 사람도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세진 양의 트레이닝을 담당했던 헌터 학교 교사 강신혁이다.
WH토토 규정상 참가하는 학생의 관계자들은 승부 조작 우려로 인해 자신과 관련이 있는 학생에게만 베팅을 할 수 있다.
단, 선수의 동의를 받았다는 확인 서류를 제출하면 다른 선수에게 베팅하는 것도 가능하고 한도 없이 베팅을 할 수 있다.
강신혁은 WHCU 참가를 위해 출국 전 취재진들과 인터뷰에서 세진 양에게 동의서를 받았으며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전부 김세진 양에게 베팅했다고 말하며 우승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해당 기사가 나간 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무투 대회 때도 저랬다며.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신뢰를 보여 주려고 말만 그렇게 했던 거지 실제로 전 재산을 베팅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전 재산을 걸었다.
WH토토 공식 사이트에서는 이번 WH토토에서 역대급 당첨금이 탄생했다고 공지했다.
당첨자는 한국인이며 당첨 금액은 8,523만 달러다.
정확한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강신혁이 유력하다.
한화로 무려 1,020억이 넘는 금액이다.
누군가는 우승자인 김세진 양의 상금도 700억인데 트레이닝을 담당한 강신혁이 1,000억이 넘는 당첨금을 받게 됐으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며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선 자신의 학생을 믿고 전부를 걸었던 강신혁은 당첨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의견도 많다.
사실 세금까지 포함해 순수익을 계산하면 진정한 승자는 우승자인 김세진 양이다.
WHCU 우승자인 김세진 양은 상금의 80%는 필요경비로 제외되고 나머지 20%인 163억 4천의 금액의 20%만 세금을 납부하면 된다.
약 33억이라 김세진 양의 실수령 금액은 700억이다.
반면 강신혁은 훨씬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한다.
WH토토를 주관하는 세계헌터연맹이 별도로 세금을 징수하지는 않지만, 당첨자들은 자신의 국가의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1,020억을 받게 되는 강신혁은 기타소득세 30%와 주민세 3%를 더해 33%의 세금을 내야 하니 실수령액은 680억 정도로 급격히 줄어든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강신혁이 이민을 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따로 법이 없어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세금이 무겁지만, 동맹인 미국과 이웃 나라인 일본만 봐도 WH토토 관련해서 법이 따로 만들어져 있어 세금이 10%대로 아주 낮다.
WH토토 당첨금 지급 기한은 1년이고 당첨자가 WH토토 사이트에 접속해 지급 신청을 해야 지급이 되기 때문에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택은 강신혁이 하겠지만 이민은 몰라도 직장은 그만둘 거라고 예상하는 대중들이 많다.
강신혁은 작년 3월부터 제1 헌터 학교 교사로 근무 중으로 A 랭크 자격 수당을 포함해 꽤 많은 월급을 받지만 당첨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일 테니까.]
하하….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욕이 나올 것만 같다.
말을 전혀 안 했는데 이민 간다느니 학교를 그만둔다느니 하며 ‘궁예질’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내가 화난 건 세금 때문이다.
실수령 680억이면 세금만 거의 340억이라는 소리다.
무슨 세금을 저렇게 많이 떼 가는 건지….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가 따로 없다.
혹시라도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급히 검색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기타소득은 전직 국세청장 경력을 가진 세무사에게 간다고 해도 깎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진짜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한국을 떠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지가 못 된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아깝고 사부도 챙겨야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선생님, 주무세요?]
세진이 녀석이다.
[잔다.]
[자는데 답장은 어떻게 하셨어요?]
[왜? 선생님 잘 거야. 넌 안 피곤해?]
[선생님 방 813호였죠? 저 지금 갈게요.]
어? 내 방에 온다고?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는데….
시간이 늦었으니 할 말 있으면 메신저로 하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이 녀석 읽지를 않는다.
준비 중인지 아니면 폰을 두고 이미 출발한 건지 모르겠지만 보이스톡까지 걸었는데도 받지도 않고.
도대체 무슨 일… 아니, 잠깐만. 혹시 이 녀석?
이런 야심한 시각에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다짜고짜 찾아온다면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고백.
당황스럽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세진이의 모습에서 낌새가 있긴 했다.
합숙 훈련 때부터 단둘이 있는 게 부담스러우면 집에 가라고 했는데도 괜찮다고 안 가기도 했고… 그때 들른 마트에서 주인아줌마가 신혼부부로 착각해 오지랖을 부렸을 때도 나만 화를 냈었으니까.
어휴, 진짜 이놈의 인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물론 세진이도 성인이니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다.
몇 주 후면 졸업식이니 학생도 아니고….
나도 세진이를 아끼고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자로서, 내 학생으로서, 내 사람으로서 그런 거지 이성으로 생각하거나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방안에 들였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추리닝을 걸치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니 마침 딱 문이 열린다.
"어? 선생님, 왜 나와 계세요?"
"이 시간에 방에서 단둘이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니잖아. 괜히 남들이 오해할 수도 있고."
"저는 상관없는데."
하하…. 착각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상처 주지 않고 잘 정리할 수 있을지 복잡하다.
"선생님은 상관있거든. 어디 보자… 지하에 바가 있네. 3시까지 한다고 하니까 여기로 갈까?"
"네."
지하 2층을 누르자 문이 닫혔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의식을 해서 그런지 살짝 어색하다.
"선생님? 안 내리세요?‘
"어… 어, 내려야지."
생각해 보니 지갑은 챙겼지만 통역 이어폰을 안 가져왔다.
영어는 젬병인데… 뭐, 그래도 주문 정도야 할 수 있겠지.
정 안 되겠으면 세진이 시켜도 그만이다.
들어가서 대충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술은 아까 파티 때 많이 마셨으니까 저는 무알콜로 할래요. 무알콜도 종류가 꽤 많네요. 음… 저는 애플 스파쿨러? 이거로 할래요. 선생님은요?"
"선생님도 너랑 같은 거로 시켜 줘. 계산은 선생님이 할게."
"네."
세진이도 이어폰을 안 가져왔지만 우등생답게 능숙하게 영어로 주문을 한다.
좋아. 제법 자연스러웠다.
투명한 색깔인데 한 입 마셔 보니 탄산이 살짝 강한 사과 주스 느낌이다.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죄송해요.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앞으로 선생님을 자주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가?
"그건 괜찮은데… 세진아, 선생님이 먼저 말하면 안 될까?"
"네. 먼저 말씀하세요."
"곧 네가 졸업을 하긴 하지만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하하…. 내가 이 대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무 돌려서 말했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건데 이해를 못 한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저 아버지 길드로 안 가려고요."
"네 마음은 알지… 어?"
"네? 선생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저 선생님한테 제일 처음으로 말하는 건데…."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세진이가 이해 못 한 게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