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51)
"그래. 이 대표, 내가 지난번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누구 부탁인데, 당연히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스테비아 매니저에게 모기업 사정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앞으로 앨범 제작을 비롯해 추가 활동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전달하게 했습니다."
"겨우 그거 가지고 되겠어?"
"겨우 그거라니. 도련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신 것 같은데 업계에선 그걸 수납이라고 부릅니다. 계약 기간이 한참 남은 연예인에겐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죠."
"오, 그래. 좋아. 본인도 그걸 아나?"
"제 밑에 김 실장이 따로 입단속을 시키긴 했는데…."
"뭐? 본인들이 모르면 의미 없는 거 아니야?"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죠. 그렇게 전하고 얼마 안 돼서 스테비아 멤버들이 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걔네 매니저가 데뷔 때부터 같이해서 상당히 각별하니 말을 했겠죠."
"머리를 잘 썼군. 그럼 언제쯤 연락하면 될까? 바로 하면 되나?"
"으음, 아마 지금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 봤자 도와주는 곳은 없을 텐데?"
"그렇죠. 저도 주변에 전부 언질을 해 뒀습니다. 처지 파악을 할 수 있게 한 일주일 있다가 연락하시면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어느 정도 애를 태워야지. 고생했어."
"별것도 아닌데요. 저기… 도련님, 그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저희 새로 런칭하는 아이들…."
"아아, 걱정하지 마. 내가 아버지에게 말해서 아주 팍팍 밀어주라고 할 테니까."
완전히 아랫사람 대하듯 어깨를 툭툭 치곤 가 버린다.
하아…. 아직 서른은커녕 이제 스물인가 스물하나밖에 안 된 녀석이.
짜증 나지만 절대 티를 내선 안 된다.
한 달 전에 놈이 찾아와서 스테비아의 새별이에게 스폰서 제안을 하다 까였다고 했을 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스폰서 제안을 했던 연예인의 소속사 대표를 찾아오는 또라이가 이 세상에 있을 리 없으니까.
바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놈이 바꿔 주는 전화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놈은 로열패밀리.
우리 HS엔터테인먼트의 모기업인 화신그룹 회장의 손자였으니까.
그 빌어먹을 자식은 내게 대놓고 박새별을 요구했다.
연예기획사 대표로서 받아들이기 상당히 힘든 요구지만 애초에 착하게만 살았다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다.
어떻게 올라온 자린데, 아예 엔터 사업을 접어 버릴 수도 있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었다.
* * *
집에 돌아와 씻고 자기 전에 휴대폰을 꺼내 보니 새별 언니에게 톡이 와 있었다.
[세진아, 톡 확인하면 연락 좀 줄 수 있어?]
전화를 걸까 하다 시간도 늦고 연락이 온 지 많이 지나서 지금 봤다고 톡을 보냈다.
역시 너무 늦었는지 답장이 안 와 그냥 자려고 누웠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네, 언니."
―늦은 시간에 미안. 많이 바빴나 보네.
"아, 네. 목소리가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술 조금 마셨어.
"언니? 걸 그룹이 무슨 술이에요?"
―걸 그룹은 술 먹으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야, 아이돌도 사람이야.
"곧 있으면 앨범 준비 들어간다면서요."
―그거 때문에 마신 거야. 엎어졌거든.
지난번엔 엄청 신나서 이야기했는데….
많이 실망했는지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진다.
"언니, 집이에요? 저 갈까요?"
―됐어. 시간도 늦었는데 오긴 어딜 와.
"차 타고 가면 금방인데요. 딱 보니 저 보고 싶어서 톡 했던 것 같은데, 아니에요?"
―옛날엔 눈치 없었는데 많이 늘었네. 그래도 괜찮아? 너 내일 일은….
"저 내일 쉬거든요. 금방 갈게요. 오랜만에 같이 자요."
새별 언니는 단순히 친한 옆집 언니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혹독하게 나를 몰아붙이실 때 찾아와 간식도 주고 이야기도 해 주며 놀아 줬다.
훈련 할당을 못 채워 쫓겨났을 땐 집에 들여보내 재워 주기도 했고.
물론 새벽에 아빠가 찾아와 난리를 피워 다시 돌아가야 하긴 했지만….
그 이후론 나를 더 많이 챙겨 줬다.
헌터 학교로 입학하고 언니는 가수 데뷔로 바빠지며 자주 보진 못 했지만. 연락도 꾸준히 하고.
내겐 친언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
처음에는 매니저도 모자라서 이젠 멤버들까지 이용해서 나를 꼬드기려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언니는 말하지 말랬는데 사정을 들으니 너무 안타까워서…."
"원래 그 바닥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좋기만 한 건 아니지…."
물론 나는 전생에서 연예계와는 1도 관련 없는 삶을 살았지만, 전생에서 작가로 처음 썼던 글의 소재가 연예계였다.
차기작도 연예인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어쨌든 연예계물이었고.
물론 내가 자료 조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아예 기본적인 조사도 안 하고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
인터넷 그리고 지인들을 통해 조금만 알아봐도 연예계 쪽의 어둠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물론 다 맞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어느 정도 과장이 섞였을 수도 있지만, 가끔 뉴스로 나오는 것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라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마약, 사기, 스폰, 음반 사재기, 스캔들 등등….
곡을 주지 않으려던 것도 아예 그쪽과는 연관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진이가 이렇게 부탁을 하는데 차만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스폰을 제안했던 놈이 화신그룹 사람이라기에 혹시 이지성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녀석은 여전히 루시엘의 저주로 인해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상황일 테니까.
애초에 이지성은 이제 겨우 열여섯이고 원작에서 녀석이 했던 망나니 짓거리 중에 이런 쪽은 없었다.
짚이는 녀석이 아예 없진 않다.
이지성의 친형은 아니다.
친형은 욕심이 꽤 많은 인물이긴 하지만 후계 자리를 노리고 있어 겉으로는 꽤 엘리트니까.
아마 이지성의 사촌 형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스무 살 땐가 겁도 없이 주인공의 여자를 건드리려다가 개박살이 나는 사촌 형이 있다.
어릴 때부터 주인공이랑 같이 패악질을 저질렀던 망나니인데 원작에서 비중이 크진 않아 이름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어…."
바로 대답이 안 나오는 걸 보니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 안 해 본 모양이다.
"소속사 대표를 찾아가서 그러지 말라고…."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하려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내가 딱히 그 바닥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니까.
원흉은 스폰을 제안한 그놈인데….
저번에 이지성을 처리했던 것처럼 밤에 몰래 찾아가서 처리해야 하나?
하지만 루시엘도 당장 포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뭐, 혼자 처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지만 저번처럼 안타스로 위장하기엔 명분이 없다.
스폰서 제안을 거절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다고 폭로를 해도 언론은 우리 편이 아닐 테고.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그 매니저란 녀석은 자기 애들이 이런 상황인데 왜 자꾸 내게 곡을 달라고 하는 거지?
일단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포탈을 나와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닌데.
하여간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그 말이 딱이다.
세진이를 통해 연락을 부탁했다.
"병원이요?"
설마 안 좋은 선택이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고 매니저가 멤버 하나랑 스케줄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멤버는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매니저가 상당히 많이 다쳤다나.
"저기…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언니가 지금 정신없는 것 같은데, 다음에 보자고 할까요?"
"아, 그래. 뭐, 지금 만나 봐야 제대로 이야기도 못 할 것 같은데, 다음에 네가 약속 잡고 알려 줘."
"네."
이게 맞는 건데 어째 뭔가 찝찝하다.
* * *
세진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새별이 너 어디 갔다 와?"
김 실장이다.
"잠깐 전… 아니, 화장실이요."
"의사가 미희는 퇴원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다들 이만 돌아가. 병식아, 네가 애들 숙소에 데려다줘라."
"아, 네."
"아니에요. 저희 기다릴게요."
"맞아요. 아직 성철 오빠 수술도 안 끝났는데."
"괜히 너희들 여기 있으면 말 나오잖아. 사고 기사 나서 좋은 게 뭐 있어?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얼른 들어가."
"하지만…."
"성철이가 평소에 얼마나 오냐오냐했길래 말을 이렇게 안 들어?"
"…."
"너희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성철이에게 도움 되는 거 아니잖아? 병식아, 뭐 하냐?"
"앗, 넵. 가시죠."
매니저 오빠가 걱정됐지만 김 실장의 압박에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새별 언니, 성철 오빠 잘못되는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괜찮겠죠?"
"괜찮을 거야. 강한 사람이잖아."
애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아 다독여서 방에 들여보냈다.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왔는데 품속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혹시 세진이가 다시 연락했나 싶었지만 SNS 메시지다.
[굿 나잇. 매니저 많이 다쳤다며?ㅎㅎ]
말투를 보니 지난번에 스폰 제안을 했던 놈인 것 같아서 답장을 보내지 않고 차단을 하려는데… 잠깐, 이 자식이 어떻게 사고가 난 걸 알고 있는 거지?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했지만 사고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설마 그쪽이 한 짓이야?]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당신이 한 짓 맞잖아! 지금 기사 한 줄 안 났는데.]
[오, 예리한데? 원래 매니저가 아니라 멤버 하나 보내려고 했는데 일이 좀 꼬였네.]
[야, 이 미친놈아.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진짜 몰라? 그러게 누가 주제도 모르고 튕기래? 계속 그렇게 뻗대 봐. 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테니까.]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자식 완전히 사이코패스다.
[야, 이 사이코패스 새끼야. 너 신고할 거야!]
[신고? ㅋㅋㅋ 해 봐. 잡을 수 있나?]
똑똑―.
"언니 뭐 해? 나 화장실…."
"아… 잠깐만, 금방 나갈게."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안 보네? 이런 식으로 무시하면 앞으론 더 재미없을 텐데? 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다음에 또 연락할게.]
[꺼져. 쓰레기 새끼야! 네가 원하는 대로 절대 안 할 테니까.]
―탈퇴한 이용자입니다. 메시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언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도 오빠 걱정해서 그러지? 내일 아침 되면 애들이랑 다시 가 보자."
"그래…."
오빠에게도 애들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모두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띠링―.
휴대폰 알림 소리에 반사적으로 확인했는데 다행히 이번엔 세진이다.
[언니, 그럼 내일 저녁에 봐.]
세진이가 도와준다고 해서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괜히 세진이까지 휘말리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