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157화 (157/275)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57)

그저께 방학식을 했다.

우리 반 성적은 1, 2학기 통합 1등.

1학기 1등에 학교 축제 역대 최고 매출 달성은 물론 기말고사 성적도 10개 반 중에 2등을 했으니까 당연한 결과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틀 만에 반 애들과 다시 만나 서울 근교에 있는 스키장에 왔다.

원래 은서의 대회가 끝나면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때는 상당히 바쁠 테니까.

"쌤, 이제 다들 웬만큼 타니까 상급자 코스 가면 안 돼요?"

"상급이 안 되면 중급이라도 가요. 초급은 너무 시시해요."

"그래. 다들 각자 타고 싶은 코스 가서 놀다가 5시 50분까진 리조트로 돌아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하는 학생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이다.

그렇게 재밌나?

솔직히 난 스키가 재밌는지 모르겠다.

이만 리조트로 돌아가려는데 은서가 다가왔다.

"선생님, 더 안 타실 거예요?"

"차를 오래 타서 그런가 좀 피곤해서."

"은서야, 뭐 해? 빨리 와!"

"그래. 얼른 가서 놀아. 모레부턴 아주 빡빡한 보강이 기다리고 있잖아."

"네? 아. 쉬세요. 같이 가!"

좋을 때다.

리조트에 돌아와 저녁에 바비큐 예약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불을 꺼내 깔고 누웠다.

아침부터 애들에게 시달렸더니 피곤해 누우려 하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애들인 줄 알았는데 세진이다.

"어. 그래. 경찰서는 잘 다녀왔어?"

―네. 별거 없었어요. 선생님 말대로 아파트 CCTV 확인했고 죄송하다는 말 듣고 끝났어요.

"고생했어."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스웨덴에서 막 돌아왔을 땐 대한민국이 완전히 난리가 난 상태였다.

지난번 이지성 때 그랬던 것처럼 화신그룹이 일을 키우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마 조용히 물밑에서 범인을 찾으려 했을 것 같은데 이지훈의 부하였던 민성현이라는 A 랭크 헌터가 양심 고백을 해 버렸다.

기자들을 불러 놓고 이지훈의 패악질을 낱낱이 까발렸다고 한다.

이지훈 그 자식은 새별 씨 말고도 상당히 많은 걸 그룹 멤버들과 모델, 배우들을 건드렸다.

이름 없는 무명 걸 그룹에 새별 씨가 있는 스테비아처럼 2군 그룹도 있었지만 누구나 알 만한 연예인들까지 있어 파장이 상당히 컸다.

거기다 대부분 돈으로 꼬드겼지만 넘어오지 않는 경우엔 납치까지 강행했다고 밝혔으니 아주 사회적 파장이 컸다.

민성현이 양심 고백을 한 이유는 아마 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양심 고백을 했다고 하지만 민성현이라는 녀석도 결코 착한 놈은 아니다.

이지훈 밑에서 납치도 가담했고 온갖 더러운 일을 했다고 밝혔으니까.

아마 이지훈과 이 대표, 김 실장까지 당한 걸 알고 자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일을 벌인 게 아닐까 싶다.

민성현은 양심 고백을 하고 바로 구속됐지만, 이지훈은 구속되지 않았다.

나야 당연히 구속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아 이해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들은 경찰이 재벌이라 봐준다고 시위도 하고 난리가 났다.

결국, 여론의 포화를 견디다 못한 경찰이 이지훈이 청각, 시각, 후각을 전부 상실하고 정신까지 이상해진 상태라고 진실을 밝혔다.

오해가 풀리자 대중들은 관심은 이지훈을 그런 상태로 만들어 버린 자가 누구일까 추측하는 데 집중됐다.

대중들뿐만 아니라 수사 기관도 아주 총력을 다 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양심 고백을 했던 민성현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이내 알리바이가 드러나며 혐의를 벗었다.

어제 세진이에게 경찰에서 잠깐 나와 달라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아마 민성현이 수사 기관에 이지훈이 마지막으로 노렸던 게 박새별이라는 걸 말해서 그런 것 같다.

설령 녀석이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해도 김 실장과 HS엔터의 이 대표까지 이지훈과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나 같아도 우리 쪽을 가장 먼저 의심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스웨덴에서 상을 받고 있었으니 당연히 용의선상에서 벗어났고 그래서 엉뚱하게 세진이가 범인으로 몰린 것 같다.

실제로 세진이가 벌인 일도 아니니 잘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약간 걱정됐는데 다행이다.

―다음부턴 이렇게 일 벌일 거면 미리 말이라도 좀 해 주세요.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좋은 일이 아니라서…. 앞으로는 무조건 이야기하도록 할게. 고생했어."

―말로만요? 혼자만 스키장 가시고. 재밌으세요?

"별로. 내가 뭐 놀러 온 것도 아니잖아. 애들에게 시달리고 관리하느라 죽을 맛인데."

―그래도 경찰서 가서 조사받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세진이 녀석, 말에 뼈가 있는 게 아무래도 이번 일로 많이 서운했나 보다.

그래도 예전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말은 안 했을 것 같은데….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더니 루시엘과 어울리다 보니 녀석과 점점 비슷해져 가는 느낌이다.

"지금 선생님 갈구는 거야?"

―네? 아니에요. 제가 무슨 선생님을….

"1월에 대회 끝나면 더 좋은 곳으로 같이 놀러 가자."

―정말이죠? 약속하신 거예요.

놀러 가자는 한마디에 목소리가 완전히 바뀌는 걸 보면 그래도 아직 완전히 물들진 않은 것 같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전화를 끊고 자리에 누웠다.

세진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수사 쪽은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스테비아의 앨범도 준비가 다 끝나서 곧 발매될 예정이라고 했고.

잠깐 눈을 감으니 잠이 쏟아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방에서 나와 보니 재현이를 비롯한 남자애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어? 쌤, 일어나셨습니까?"

"깜빡 잠들었네."

"저희가 온 줄도 모르고 주무시던데,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너희도 나이 먹어 봐라."

"에이, 쌤 아직 서른도 안 되셨으면서."

"맞아요. 너무 엄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이 자식들이….

"어휴,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몇 시야?"

"5시 반입니다."

"5시 반? 더 놀다 오지 왜 너희만 일찍 와서 준비하고 있어? 여학생들은 뭐 하고?"

"스키 시합해서 저희가 이겼거든요."

"응? 이겼는데 너희가 왜 준비를 해?"

"뒷정리가 더 힘들잖아요. 다 먹고 정리는 여자애들이 하기로 했죠."

"먹고 나면 움직이기도 싫고 그래야 야간 스키 한 번 더 타잖아요."

하긴 준비라고 해 봤자 어차피 바비큐라 별로 할 게 없으니까.

자식들, 머리를 잘 썼다.

나도 애들을 도와 준비를 하다 시간이 돼 저녁을 먹었다.

다들 학생이라 술은 못 먹지만 포도 주스로 건배까지 하고.

오랜만에 바비큐라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참 좋았다.

남학생들은 다 먹고 야간 스키를 타러 가고 여자애들을 도와 뒷정리를 시작했다.

아까 남학생들도 도와줬으니까.

이것저것 치울 게 꽤 많았지만 그래도 10명이 함께 하니 정리는 금세 끝났다.

"이 정도면 대강 된 것 같으니까 다들 이만 가서 더 놀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애들이 뛰어가는데 은서 녀석은 가지 않고 내게 다가온다.

"쌤."

"왜? 은서도 얼른 가서 더 놀아."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보강 시작하기 전까지는 질문 금지라고 했을 텐데. 놀러 와서 그런 거 생각하면 안 되지. 신경 쓰지 말고 가서 놀아."

"보강에 관한 질문 아니에요."

"그럼 뭔데?"

"혹시 내년에 어느 학년 맡으시기로 하셨어요?"

어느 학년 담당이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서요. 내년엔 3학년 담당하시는 거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 알려 주세요."

"3학년은 하기 싫은데 수업 시간도 많고 실습도 2학년보다 훨씬 많잖아. 1년 해 보니까 1학년이 참 좋더라고. 실습도 안 가고."

"아… 안돼요."

"안 되는 게 어딨어?"

"저 내년에도 선생님에게 배우고 싶단 말이에요. 다른 검술반 애들도 다 선생님에게 배우는 걸 원할 거예요."

하하…. 이놈의 인기.

"쌤 내년엔 3학년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민하와 반 애들이 모여 있다.

딱 보니 은서를 데리러 오다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뭐, 결정은 선생님이 하는 게 아니니까."

"에이… 쌤, 쌤이 하고 싶다고 하면 충분히 하실 수 있잖아요."

"맞아요. 우리 버리실 거예요?"

"저는 내년에도 선생님 반 하고 싶단 말이에요."

"버리긴 뭘 버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너무 냉정하신 거 아니에요?"

"쌤…."

"그만해, 이것들아. 이제 못 뜯어먹으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어차피 3학년은 이런 거 못 해. 다들 열심히 해서 좋은 길드 들어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이런 거 없어도 선생님이 좋다고요."

"맞아요."

"잘생겼잖아요."

"선생님이 최고예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살짝 쑥스러워 왜 그러냐며 가서 스키나 타라 하고 자리를 떴다.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감동했다.

애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틀 전 방학식이 끝나고 교감을 찾아가 사표를 제출했으니까.

교감은 의외로 방학이 끝날 때까지 생각해 보라며 그때도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처리해 주겠다고 반려했지만 내 생각은 확고하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김 선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김 선생은 내가 내년에 학교에 없을 거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

뭐, 내가 없으면 돌아올 것 같긴 하지만.

내년 3월, 원작의 시작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강신혁에 빙의한 2년간 내가 벌인 일은 정말 많다.

사부를 만나서 무공을 익힌 것, 검은 신전을 찾아가 루시엘을 만난 것, 세진이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 민하의 복수를 위해 안타스 코리아 회장도 만나고, 베네트 크리지아가 벌인 일로 인해 안타스 이탈리아와 트러블이 생기고,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재생 마법도 발표했고….

물론 원작과 달라지지 않게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한 것들도 있다.

주인공들이 무공을 익히러 올 때 사부는 잠깐 숨어 있으라 하면 되고 세진이에게도 무공을 익힌 걸 티 내지 말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아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진 알 수 없다.

예전에 나는 원작이 달라진다고 해도 내가 안타스도 때려잡고 마왕도 내가 잡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니 그 생각은 결코 정답이 아니었다.

안타스가 설쳐 대든 마왕이 강림하든 나 하나… 아니, 세진이까지도 충분히 건사할 수 있지만 내가 모두를 챙길 수는 없으니까.

나는 우리 반 학생들도 검술반 학생들도 정말 좋아한다.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면… 아니, 그 학생들마저도 원작에서는 이름조차 몇 번 언급되지 않는 엑스트라지만 내게는 모두 소중한 제자들이니까.

그런 제자들이 바뀌어 버린 미래에서 괜찮을까?

혹시라도 내가 바꾼 미래 때문에 녀석들이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워졌다.

물론 이제 와서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릴 순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생각과 고민 끝에 내가 바꿔 버린 흐름을 최소한이라도 되돌려 놓을 방법을 찾아냈다.

내가 찾은 방법은 단순히 학교를 그만두는 거로 끝이 아니다.

내가 벌인 일이 고작 학교만 그만둔다고 수습될 리가 없으니까.

앞으로 세 달.

그 안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강신혁을 지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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