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68)
헌터 학교의 망나니 열등생이 되었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요."
"또 존댓말을…. 도련님 정말 괜찮으신가요?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셔야…."
"됐어. 갈 테니까 이만 가."
차에서 내리는데 다시 기겁을 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혼자 문을 열고 내려서 놀란 것 같다.
"저기… 도련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즐거운 학교생활 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적게 잡아도 30대 중반은 될 것 같은 아저씨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데 상당히 부담스럽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분명 일주일 뒤에 입대라 친구랑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들어와 퍼질러 잤는데 눈을 떠 보니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차 안이었다.
이건 또 무슨 개꿀잼몰카인가 싶었지만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몰카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유튜브 채널… 아니, 방송국에서 하는 몰카라고 해도 사람 얼굴을 동의도 안 받고 성형을 시킬 리는 없을 테니까.
백미러에 비친, 처음 보는 교복을 입은 뚱뚱하고 욕심 많게 생긴 고등학생.
그게 나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생각하다 교복에 달린 명찰에 적힌 이름을 발견했다.
[이지성]
같은 이름을 가진 연예인도 있을 만큼 비교적 흔한 이름이지만 이씨 성 때문에 단번에 깨달았다.
이지성은 최근에 봤던 《헌터 학교의 검술천재》라는 소설의 악역이다.
필력은 괜찮긴 했지만 주인공이 너무 올드했다.
전형적인 착한 용사, 요즘 말로는 그냥 호구 천사 타입이라 주변에 자꾸 퍼주고 도와주다 사건에 휘말리는 등 고구마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불만을 좀 썼는데… 설마 그래서 빙의했다고?
소설을 자주 즐겨 보며 게임이나 소설에 빙의하는 주인공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내가 그런 상황이 될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고 이지성이라니….
이지성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화신그룹의 3세다.
재벌 3세, 거기다 어중간한 것도 아니고 국내 제일이면 좋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인공이 전형적인 착한 용사 타입인 것처럼 이 이지성이란 놈은 전형적인 재벌 3세니까.
사람들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말보다 항상 주먹이 먼저 나가고 갑질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망나니 중의 상 망나니다.
원작 소설이 현대 배경이긴 했지만 장르가 판타지라 그런 건지 아니면 작가가 재벌에 대해 제대로 몰라서 그런 건지 개인적으론 이상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뉴스에 가끔 재벌들의 갑질이나 망나니 행위를 뉴스나 인터넷 기사로 종종 접하긴 했지만 그건 일부고 대개 여유 있는 사람일수록 자식 교육도 더 잘 시키는 법이니까.
거기다 어중간한 재벌도 아니고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정도 되는 부자라면 지켜보는 눈도 많아 자식 교육을 더 철저히 시켰을 텐데 이 이지성이란 놈은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쓰레기다.
세상 무서운 거 없이 날뛰다가 주인공에게 징벌당하는 전형적인 망나니 악역.
그게 바로 이지성이다.
주인공이 김도현과는 고1 때 같은 반이 아니라 크게 엮이진 않지만 같은 반이 되는 2학년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다 참교육을 당하고 결국 퇴학까지 당한다.
이때는 집안에서 아예 손절까지 당하진 않지만, 지원은 대부분 끊긴다.
후반부에 퇴학당한 일로 앙심을 품고 있다 졸업한 주인공에게 복수하려고 음모를 꾸미게 된다.
하지만 결국 소설답게 주인공에게 다시 참교육을 당하고 끝내 집안에서도 아예 손절 당하게 되며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소설을 보면 보통 주인공에 빙의를 하던데, 빙의를 해도 하필 이딴 쓰레기 같은 자식이 되다니….
내가 그리 착하게 살진 않았다고 하지만 특별히 나쁘게 살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원래의 나는 돈은 별로없지만 얼굴도 나름 괜찮았고 몸도 고등학교 때부터 헬스를 꾸준히 다녀 다들 부러워 할 만큼 좋았는데 이 자식은….
못생긴 얼굴도, 고도비만까지는 아니지만 토실토실 살이 잔뜩 오른 몸뚱어리도 전부 마음에 안 든다.
정말 거지 같다.
아니지. 아까 운전기사가 아버지 전화라며 바꿔 줬는데 전화속 너머의 아버지란 남자가 고등부에 가서는 사고 치면 쫓아낼 테니 제발 얌전하게 살라는 말을 했다.
오늘이 고등부 입학식일 테니 어차피 고1 때야 주인공과는 다른 반이니까 지금이라도 내가 바꾼다면 괜찮지 않을… 젠장!
불가능하다.
생각을 해 보니 이지성은 김도현과 이미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상당한 업보 스택을 적립한 상태다.
차츰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는데, 하아…. 이거 소설에서 읽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다른 애들 괴롭히다가 주인공이 말리니까 주인공에게 시비 걸다가 맞아서 코가 부러졌다.
그 뒤로 서로의 모친이 학교로 불려 왔다.
살짝 엄한 느낌인 이지성의 부친과 달리 모친은 이지성을 끔찍이 아낀다.
이지성의 모친은 길길이 날뛰었고 주인공 어머니를 무릎꿇고 싹싹 빌게 만들었다.
이 역시 전형적인 재벌가 사모님 느낌이다.
이지성 이 녀석은 깝치다 맞았으면 좀 조용히 살 것이지 오히려 그 후로 더 주인공을 괴롭힌다.
반 애들을 정치해서 집단 따돌림에 패드립까지 했었네….
내가 김도현이었어도 절대 용서 안 할 것 같은데….
진짜 더럽게도 꼬였다고 생각하며 교문을 통과했다.
"거기 학생! 학생!"
입구에 있던 교사가 누굴 부르는데, 설마 난가?
"저요?"
"고등부 교복을 입었는데 왜 중등부 쪽… 지, 지성이구나."
"왜요?"
"고, 고등부는 저쪽으로 가서 강당으로 가야지."
"아… 네. 감사합니다."
"가, 감사? 그, 그래."
무슨 감사하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무슨 충격 발언이라도 들은 것처럼 당황한 표정이다.
중학교 때부터 유명한 망나니라는 설정이긴 하지만 이 자식 도대체 얼마나 쓰레기였던 건지….
아까 그 선생도 그렇고 주변을 보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하면서 등교하는데, 이 자식에게는 가까이 다가오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날 힐끔거리며 수근대는 게 기분이 상당히 별로다.
내가 이걸 풀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엄두가 안 나지만 이지성이 되어 버린 이상 별수 없다.
발악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지.
일단 입학식이 우선이라 비슷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따라 이동했다.
강당에 들어서니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반별로 줄을 서는 것 같은데 난 몇 반이지?
생각을 하려고 하면 아까처럼 기억이 떠오를 줄 알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도대체 뭐지?
어쩔 수 없이 주변에 물어봐야겠다.
누구에게 물어볼까 고민하다 입구 쪽에서 학생회라고 적힌 노란 완장을 달고 안내를 하는 여학생 둘을 발견했다.
둘 다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둘 중에 어깨까지 오는 중단발에 피부도 하얗고 웃을 때 눈이 반달로 휘어지는 여학생이 더 내 스타일이다.
물론 미성년자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조금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나도 똑같은 고등학생이니까.
오히려 명찰 색깔이 다른 걸 보니 저 여자가 나보다 연상인 것 같다.
"저기요."
"응? 우리 부른 거야?"
"신입생이네. 무슨 문제 있어?"
둘 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데… 진짜 단발 여자 너무 내 스타일이다.
"네. 제가 몇 반인지 잊어버렸는데 혹시 어디 벽에 붙어 있나요?"
"따로 어디 공지는 안하는 거로 아는데. 우리 헌터 학교는 중등부에서 고등부로 전원 진학이라 중3 종업식 때 알려 주거든. 민희야, 잠깐 혼자 안내하고 있을 수 있지? 내가 신입생 데리고 1학년 선생님에게 데려다주고 올게."
"그래. 서은서, 빨리 와."
"알았어. 신입생, 나 따라와."
이름이 은서였구나.
얼굴처럼 예쁜 이름이다.
소설에서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엑스트라인가?
"선배님이시죠? 혹시 몇 학년이세요?"
"어? 난 3학년. 저기 저 선생님이 1학년 교무부장 쌤이거든? 가서 물어보면 될 거야."
3학년이면 열아홉인가?
딱 좋네.
내가 지금 열일곱이긴 하지만 원래는 스물하나였다.
솔직히 내 또래인 열일곱 얼라들보다야 그나마 한두 살이라도 더 많은 게 낫지.
"감사합니다. 저는 이지성이라고 합니다.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관심 있으면 바로 대시한다.
이게 내 스타일이다.
옛말에도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하기도 했고.
"어… 어?"
볼이 금세 새빨게지는 게 쑥스러움이 많은 스타일이다.
혹시 연애는 처음인가?
살짝 모범생 느낌도 있고 승산이 꽤 있어 보인다.
"지금 제 외모가 별로이긴 하지만 곧 바뀔 거예요. 무엇보다 저는 선배님이 되게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런 타입은 솔직한 고백에 약하지.
재벌 3세라고 어필할까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어린애들에겐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반감만 살 수도 있고.
잠깐, 혹시 이 선배도 내 악명 아는 거 아닌가?
2년 차이니 같이 중학교 다니던 시절도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이 망나니가 중1 때는 비교적 얌전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아… 저기…."
다행히 모르는 눈치다.
"천천히 알아 가도 좋은데. 번호 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미안. 넌 내 스타일 아니야."
그래, 예의상 한 번쯤은 튕겨야지.
"살도 금방 뺄 거고 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관심 없다니까? 얼른 가서 반 물어보고 줄이나 서."
차갑게 말하고 확 가 버린다. 생각보다 단호하네.
거절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외모가 문젠가?
어쩌면 내가 잘못 파악한 걸 수도 있지만 살짝 짜증이 났다.
오기가 생긴다.
내가 비록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조연은 충분히 될 텐데 저 여자는 소설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는 엑스트라니까.
나중에 눈물 펑펑 흘리며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다.
비록 주인공도 아니고 비루한 악역이고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딴 건 상관없다.
내겐 원작의 지식이 있으니까.
* * *
입학식이 끝나고 반에 와서 다시 출석 체크를 하는데 내 이름을 부르니 웬지 분위기가 싸해진다.
학생들 모두 표정이 안 좋은데 아무래도 같은 학년이다 보니 다들 내 악명을 잘 아는 눈치다.
애들 중 몇명은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는지 얼굴을 보니 이름도 떠오르고 내가 저질렀던 패악질도 생각이 났다.
심지어 담임선생조차 나를 보는 표정이 상당히 안 좋다.
그도 그럴 게 내 담임은 작년에도 내 담임을 했었으니까.
올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왔다는데 나 같은 문제아를 또 맡게 됐으니 얼마나 짜증이 날까.
내가 선생이었어도 솔직히 짜증이 날 것 같긴 하지만 억울하다.
내가 저지른 패악질도 아닌데….
진짜 막막하지만 그래도 답이 없는 건 아니다.
애들이야 아직 어리니까 잘해 주고 멋진 모습 보여 주면 바뀔 테고, 저기 선생은 치워 버리면 그만이니까.
최서라.
우리 반 담임인 저 여자는 안타스의 조직원이다.
나를 바라보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면 올 한 해는 상당히 고달플 것 같다.
솔직히 지금 당장 치워 버리는 게 편하겠지만, 증거가 없다.
원작대로라면 올해 축제 때 습격 사건이 벌어질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일단 이 개 같은 망나니 이미지부터 바꿔야 할 텐데….
초반에 무슨 사건이 있었지?
아니지. 혹시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 일단 기억나는 대로 모든 걸 쭉 적어야겠다고 생각해 노트와 필기구를 꺼내려 가방을 열었는데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지만 고등학생 가방에 아무것도 없다니… 기가 막힌다.
어쩔 수 없이 옆에 앉은 애에게 빌려야겠다.
다행히 기억에 따르면 이 자식은 중3 때 같은 반이었다.
"야."
"왜… 왜, 지성아?"
맨입으로 빌리긴 그래서 몸을 뒤지다 지갑이 있어 꺼내 보니 5만 원권으로 빽빽하다.
재벌이라 그런지 돈은 많아서 좋네.
"여기."
"빠, 빵 사 오라고? 저기… 지성아, 아직 선생님 말씀도 안 끝났고 이 시간이면 매점 문도 안 열었을 텐데…."
"무슨 매점? 빵 말고 노트 하나랑 필기할 것좀 빌리자."
"그… 그냥 줄게. 그런데 이 돈은 왜?"
"내가 거지냐? 그냥 받기는 미안하잖아."
"미… 미안?"
"거기, 왜 이리 시끄러워! 이지성 너 입학식부터 짝 괴롭히는 거야?"
"아닌데요."
참… 짜증이다.
어쨌든 노트와 펜이 생겨 기억나는 대로 적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기억이 잘 난다.
빙의하면서 머리가 좋아졌나?
이지성이 마법사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필기를 하는데, 교실 앞쪽 문이 열렸다.
우락부락한 떡대. 한눈에 봐도 웬만한 사람 3배쯤 되어 보이는 거구다.
김만동?
제1 헌터 학교 교감 김만동.
국내에 딱 10명밖에 없는 S 랭크 헌터인데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는 평범하게 생긴 남학생이 서 있다.
"교감 선생님? 무슨 일이신가요?"
"이 학생이 내가 저번에 이야기했던 학생입니다."
"아, 그 오래 누워 있었다가 지난 달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는…."
"맞아요. 아침에도 병원에 들러서 검사하고 오느라 이제 도착해서 데려왔습니다. 잘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민찬성 아니야?"
"찬성이 맞는 것 같은데?"
민찬성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하아, 진짜 돌아 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