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99)
"인천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항구에서 섬으로 들어간다고 했지?"
"응. 신입생 하나가 별장이 있다고 장소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거든."
"별장? 집이 잘사나 보네?"
"아빠가 화신전자 사장이래."
"그… 그래? 재벌집 도련님이 헌터도 하고, 신기하네."
"재벌 같은 거 아니어도 난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
"나도."
"녀석들. 둘 다 용돈 필요해?"
"괜찮아. 섬에 가면 돈 쓸 데도 없을 텐데."
"그래도 시장 같은 거 보려면 어느 정도…."
"학생회 멤버십 트레이닝이라서 학교에서 다 지원되니까 괜찮아."
"응? 다 왔네. 저기 애들 모여 있는 거 보니까 저긴가 보다."
"아빠, 트렁크 좀."
"응."
언니와 함께 차에서 내려 가방을 챙겼다.
"둘 다 조심히 다녀와."
"네. 다녀올게요."
"태워다 주셔서 고마워요."
"당연한 일인데.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그리고 여기."
5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건네신다.
"진짜 괜찮은데."
"MT 끝나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라도 먹어. 올 때 교통비도 하고."
기어이 주셔서 받고 애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진수 안녕."
"은수, 은서, 왔어? 인원 파악은 내가 미리 해 뒀어. 민희는 2학년 애들 데리고 장 보러 갔고."
"어, 그래? 우리가 좀 늦었나. 둘 다 일찍 와서 고생했네."
"진수, 애들은 다 왔어?"
"2학년들은 다 왔고 1학년은 2명이 아직 안 왔어."
"1학년 누구?"
"지성이랑 찬성이. 지성이는 거의 다 왔다고 도현이한테 연락 왔다고 했고. 찬성이는 연락이 안 되네. 애들 말로는 학교에 있을 거라는데."
"찬성이는 감기 걸려서 못 온다고 아침에 연락 왔어."
"여름인데 감기라고? 귀찮아져서 꾀부리는 거 아니야? 선배들이 다 왔는데 1학년이 빠져 가지고."
"이진수, 너 사정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해?"
"왜… 왜 그래? 아파도 전화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거잖아."
"약 먹고 자고 있어서 못 받을 수도 있잖아. 아까 통화하니까 진짜 아픈 목소리였는데."
"그… 그런가?"
"서은서, 그래도 좋게 말하면 되지.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야?"
안 그래도 선생님이랑 같이 못 가게 돼서 짜증이 났는데 진수가 선생님을 모함하니 나도 모르게 격하게 반응을 하고 말았다.
"미안."
"아니야. 은서 네 말이 틀린 것도 없는데…. 그것보다 역시 우리 회장님밖에 없네요. 소신 이진수, 회장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나 말고 민희한테 충성해."
"그건 이미 하고 있습니다요. 어? 저거 지성이 아니야? 와, 역시 재벌은 다르네."
진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검은 차에서 이지성이 내리는 게 보인다.
"응? 뭐가?"
"쟤가 타고 온 차 국내에 다섯 대도 없는 차거든. 방탄 기능도 있고 깡통 옵션도 10억이 넘는다던데."
"그래 봤자 쟤 건 아니잖아."
"뭐, 그건 그렇지."
"선배님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가와서 꾸벅 인사를 한다.
"딱 맞게 왔는데?"
"우리가 오히려 고맙지. 네가 별장 제공해 준 덕에 예산 많이 아낄 수 있었는데."
"맞아. 지성이 네 덕에 식단이 좀 더 풍성해질 예정이야. 숙박비 아꼈다고 민희가 한우도 산다고 했거든."
"오, 좋네요."
언니도, 진수도 이지성에게 호의적인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게, 망나니라는 소문과 달리 사고도 치지 않고 이번에 별장을 제공한 것 외에는 집이 잘산다고 으스대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상당히 싹싹한 편이라 두 사람 말고도 다들 좋게 본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정이 안 간다.
약간 가식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뭐, 입학식 때 뜬금없이 고백을 해서 안 좋은 선입견이 생긴 걸지도….
"저기, 진수 선배님, 다른 사람들은요? 배 12시에 타야 하는데."
"장 보러 갔으니 곧 돌아올 거야. 숯이랑 그릴은 있다고 했지?"
"네. 저기, 그런데…."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비서님이 별장에 준비를 이것저것 해 두셨다고 하셔서요.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아마 가면 물이랑 음식 같은 것도 좀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일찍 말했으면 적당히 사라고 했을 텐데."
"저도 다 와서 비서님에게 들은 거라….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우리야 고맙지."
"맞아. 준비가 되어 있어도 애들이 다들 잘 먹어서 남진 않을걸? 넘치는 게 부족한 것보단 낫지."
"역시 우리 회장님."
잡담을 나누며 기다리다 보니 장을 보러 갔던 애들이 돌아왔다.
짐을 나눠서 들고 항구 근처에 도착했다.
"매표소는 은서랑 내가 다녀올게."
"어? 저기… 선배, 표 살 필요 없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매표소에서 파는 표로 탈 수 있는 배는 하루에 딱 한 번뿐인데 그건 아침 8시 반 배거든요."
"뭐야? 아까 12시에 배 탄다고 하지 않았어?"
"비서님이 따로 배 준비해 두셨다고 했거든요. 바로 가서 타면 될 거예요."
"그래?"
이지성을 따라 애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향했는데 녀석은 조그마한 낚시배들 사이에 돋보이는 커다란 요트 앞에 멈춰 섰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깔끔한 하얀 제복을 차려입은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신다.
"안녕하세요."
"와, 이거 배 엄청 좋아 보이는데?"
"엄청 비쌀 듯."
"가격은 저도 몰라요. 아버지가 예전에 취미로 구매하신 거라."
다들 호들갑을 떨고 난리도 아니다.
솔직히 나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돈 자랑하는 것 같아서 역시 별로다.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섬에 도착했다.
허름한 집 몇 채가 보여 설마 저게 별장인가 싶었지만, 배가 조금 더 가서 멈춰 서자 해안가에 멋들어지게 지어진 별장이 보인다.
"와, 진짜 쩐다."
"바로 앞이 바다잖아."
"대박."
다들 탄성을 지르며 배에서 내려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 관리를 하시는 분들이라며 직원분이 다섯 정도 마중을 나오셔서 짐을 옮기는 걸 도와주셨다.
별장 시설은 정말 좋았다.
전기는 물론 온수도 잘 나오고 방도 엄청 많고 침대에 바비큐장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은서야, 지하엔 노래방 기계도 있고 볼링장이랑 당구장도 있다고 하던데. 시설 대박이지 않아?"
웬만한 펜션을 가도 이런 시설은 없을 텐데.
진짜 부자들은 다른 세상을 사는구나.
"그러네."
"아까 들었는데 아예 이 섬 전체가 화신그룹 거래."
"알았으니까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 내려가서 점심 준비해야지."
"알았어. 잠깐만."
애들과 함께 주방에 내려왔는데 관리인 아주머니가 우리가 가져온 짐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저희가 해도 되는데…."
"다 했는데, 재료를 많이 샀네?"
"식당이 없어서 1박 2일 동안 전부 직접 해 먹어야 하니까요."
"우리도 어제 따로 비서님께 연락받고 장을 봐뒀거든."
냉장고만 3개인데 열어 보니 각종 육류와 해산물에, 야채와 과일에, 고추장 간장 같은 기본적인 소스부터 각종 샐러드드레싱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거의 마트를 옮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여기 있는 재료들 모두 여러분을 위해서 구매한 거니까 마음껏 쓰렴."
"아, 감사합니다."
점심으로 파스타와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관리인 아주머니께서도 옆에서 도와주셨다.
예전에 호텔에서 일하셨다고 해서 이것저것 조언을 해 주셨는데 평소에 만든 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었다.
애들도 다들 좋아했고.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바다에 나왔다.
솔직히 별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걱정돼 방에 남아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언니가 멤버십 트레이닝인 만큼 개인행동 하지 말고 다 같이 하자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해변에 나와 다 같이 몸을 풀고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해변에 있는 선베드에 앉았다.
"은서 넌 안 들어가?"
"언니, 난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까 다녀오지. 얼른 갔다 와."
"응."
핑계를 대고 별장에 가면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아직도 주무시는 건가?
일단 사진이라도 보내 드리려고 배 타고 오면서 찍었던 바다 사진이랑 별장들, 점심때 먹은 파스타들 사진을 보냈다.
셀카를 보내면 좀 기운이 나시지 않을까 싶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사진 찍으시게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뒤를 돌아보니 이지성이다.
* * *
장삼봉은 절대영역만 익히면 사부의 꿀밤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절대영역의 수련 방법이란 게 참 난해하기 짝이 없다.
"그럼 수련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절대영역은 무형검처럼 세상에 내 의지를 실현시키는 게 아닌, 세상과 그 자체가 되는 것.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네."
말과 동시에 장삼봉이 스르르 연기처럼 모습을 감췄다.
그러고는 전음으로 일단 세상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자며 자신을 찾아보라고 했다.
바로 내공을 흩뿌리며 수색을 시작했지만 정말 놀랍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어디에서도 장삼봉의 기운은 찾을 수 없었다.
"여기네."
뒤를 돌아보니 씨익 웃고 있는데 인기척은커녕 아무런 느낌조차 없었다.
이후 다시 모습을 숨기며 이번에는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 다시 잘 찾아보라며 사라졌다.
그게 무려 일곱 시간 전의 일이다.
해가 중천을 지나 져 버리고 어둠이 깔렸지만 여전히 감을 못 잡겠다.
혹시 다른 데 가 버린 거 아닐까 싶을 정도지만 모습을 감추고 한 시간 정도 뒤에 내공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느껴 보라는 전음이 들렸다.
하아, 이젠 나도 내공으로는 못 찾는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다짜고짜 세상을 느끼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어?
순간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떴지만, 장삼봉이 아닌 루시엘이다.
"계속 혼자서 뭐 해? 저녁 먹으러 안 가?"
"수련 중이야."
"혼자 무슨 수련을 하는데? 사부 친구라는 노인네도 없잖아."
"여기 근방에 있어. 모습을 감춰서 안 보이는 거야."
"근처에 있다고? 투명 마법을 써도 기척 정도는 잡아낼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느껴져."
"투명 마법 같은 방식이 아니야."
"몰라. 너 점심도 안 먹었잖아. 가서 먹고 해."
먼저 가서 먹으라고 했지만 루시엘은 내가 안 가면 같이 안 간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장 진인님, 이만 나오시죠. 저녁 먹고 이어서 하시게요."
대답이 없다.
"우리끼리 간다? 얼른 나와. 밥 먹고 하게."
루시엘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장삼봉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루시엘과 함께 캠핑카에 돌아왔는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사부가 미리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건가?
평소엔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양반이 웬일이지 생각했는데 캠핑카 뒤쪽에서 사부와 장 진인이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있다.
"왔냐?"
"이제 오나?"
이제 오나라니, 도대체 뭐지?
"왜 여기 계십니까?"
"꺼억. 밥때 돼서 왔지."
아, 우리 이야기를 듣고 먼저 온 건가?
그럼 말이라도 하고… 아니, 뭔가 이상하다.
모닥불 구석에 수십 개의 찌그러진 맥주캔들과 녹색 소주병, 거의 열 병은 될 법한 녹색 막걸리 페트병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저걸 다 마셨다고?
같이 마신 거라면 이해가 가지만 우리 사부는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사부는 막걸리가 아니라 캔맥주를 마시고 있고.
"소주나 맥주보다는 막걸리가 최고군. 유량, 이거 더 없나?"
"신혁아, 이 녀석은 나랑 다르게 막걸리가 입에 맞는 모양이구나. 막걸리랑 고기도 좀 더 있으면 꺼내 주고 냉장고에 가서 캔맥주 좀 더 가져… 왜 그러냐?"
"사부, 장 진인께서 이곳에 언제 오셨습니까?"
"아까 2시쯤? 수련은 어땠냐?"
두 시면 나한테 내공에 의지하지 말고 세상을 느끼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던 바로 그 시각이다.
"크으, 이거 참 요물이군."
자기를 찾아보라고 해 놓곤, 여기 와서 대낮부터 사부랑 술 파티를 벌여?
벌게진 얼굴로 연신 막걸리를 들이켜는 장삼봉을 보니 주먹이 운다.
하아, 이걸 진짜 확 쥐어팰 수도 없고….
"아,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부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부려 먹은 데다 제자가 헛고생하는데 헛고생시킨 작자랑 대낮부터 술 파티라니. 무엇보다 엄연히 장삼봉은 사부의 친구.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연대책임이라는 개념을 사부에게 제대로 알려 드려야 할 것 같다.
바로 캠핑카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 보니 대낮부터 파티를 벌여서인지 냉장고가 거의 비어 있다.
바로 아공간 마법을 사용해 얼마 남아 있지 않던 냉동식품들과 술과 음료. 과자와 라면 전부 회수했다.
이어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포탈 입구로 이동해서 포탈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