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207화 (207/275)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07)

양 떼 속의 드래곤

"보강은 다음 주부터 진행된다니까 참가하는 학생들 모두 준비 잘해서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네. 우리 모두 응원해 주자."

뭔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려 했는데 최서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 애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아니, 이러면 전 아닌 것 같다고 물어보기도 좀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신청이 된 거지?

"자, 그럼 이만. 다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뭐야, 민찬성. 넌 무투 대회 언제 신청… 어디 가?"

이지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지만 지금은 이 녀석 상대나 할 겨를이 없어서 바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까는 분위기가 그래서 바로는 못 물어봤어도 확인을 해야 하니까.

다행히 금방 최서라를 따라잡았다.

"선생님."

"어? 찬성이구나. 왜 무슨 일 있어?"

"저기, 전 무투 대회 보강 신청한 적 없는데 오늘 명단에 들어가 있어서요."

"어머, 그래? 선생님이 다운받은 명단에는 있는데."

말과 동시에 서류를 보여 주는데 정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김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네. 같이 교무실 가자."

"네."

최서라를 따라 교무실에 왔다.

혹시 없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김 선생은 자리에 있었다.

"저기, 김 선생님, 저희 찬성이가 보강 신청을 안 했다는데 아까 명단 다운받을 땐 이름이 있어서요."

"어? 저도 찬성이는 오늘 신청을 안 했길래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김 선생님도 모르세요?"

뭐지? 김 선생이 강제로 신청한 게 아니었나?

하긴, 김 선생님이 지난번에 권유하긴 했었지만 그때 충분히 거절 의사도 밝혔고 오늘 남지 않았는데 따로 말도 없었으니까.

김 선생이 교감 딸이라 해도 교감처럼… 잠깐, 교감?

"일단 전 아닌데… 아, 혹시 교감 선생님께서 신청하신 건 아닐까요?"

"교감 선생님이요?"

"전에 1학년 마법 반에서 잘하는 학생들 있냐고 물으셔서 찬성이 칭찬을 많이 했었거든요. 일본에서 일도 있었고 무투 대회도 권유했다고 이야기를 드렸는데, 아마 교감 선생님이 제가 빠뜨리신 줄 알고 보강 대상자에 포함시키신 게 아닐까 싶네요."

교사일 때도 이것저것 시키기 좋아하던 양반이었으니 충분히 일리 있는 추측이다.

하여간 그 양반은….

"본인 의사가 최우선이니까 찬성이 네가 생각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제외시켜 줄 수는 있어."

꼼짝없이 강제 참여인 줄 알았는데 약간 의외다.

보통 부모와 자식은 닮는다고 하지만 역시 김 선생은 합리적이다.

"선생님 생각엔 경험 삼아 나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니, 서라야. 그건 아니지.

"선생님도. 저번에 말했지만 찬성이 실력이면 대진운만 조금 따라 주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야."

김 선생 조금 전에 제외시켜 주겠다고 했으면서 왜 또 이렇게….

죄송하지만 생각 없다며 제외시켜 달라고 하려는데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대로 참가해 은서를 먼저 만나서 떨어뜨린다면 은서와 이지성이 만날 일은 없다.

은서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미래가 어그러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애들에게 이미 안 나간다고 하긴 했지만 교감이 강제로 신청했다는 핑계도 있으니까.

게다가 이 몸의 원주인에게 은혜라도 갚을 겸 본선 진출 정도만 해 둘까 한다고 해도 되고.

물론 예선에서 은서와 만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그 부분은 방법이 있다.

첫 예선이야 무조건 다른 학교 학생들과 붙게 되니 어쩔 수 없지만 내 생각대로 된다면 바로 두 번째 예선에서 은서와 맞붙게 될 수 있을 거다.

물론 작년의 우승자를 예선에서 만나 떨어뜨리면 내게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겠지.

하지만 겨우겨우 간신히 이긴 것처럼, 혹은 운이 좋아 이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이지성에게 극적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차피 이지성도 내공심법을 얻으며 어느 정도 강해진 상태일 테고 종국엔 WHCU 우승도 할 테니….

"네. 그럼 참가할게요."

"정말? 잘 생각했어."

"선생님도 응원할게."

은서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 주면 되겠지.

마침 장삼봉이 마지막 날 은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온종일 무공비급을 적어 주고 갔다.

전부 중국어였지만 사부를 시켜 번역 작업도 끝냈다.

물론 지금 당장 가르치면 이지성에게 승리 가능성이 없으니 아직 가르치지 않았지만.

무공도 알려 주고 데이트도 자주 하면서 달래 주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은서는 이지성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니 녀석에게 패배하는 것보단 내게 패배하는 게 낫겠지.

하지만 이때의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세상일이 꼭 내 뜻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    *    *

개학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수업도 끝났고 마침 저녁 메뉴도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에 스파게티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저께 은서와 은수에게도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둘 다 놀랐지만 생각해 둔 핑계를 이야기하니 납득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은서를 만날 수 있게 조작하는 것도 재차 확인하고 연습까지 마쳤다.

하지만 내 기분이 별로인 건 오늘부터 보강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보강 수업을 할 때는 매일 수업 끝나고 7시부터 2시간씩 10시간, 토요일 아침 식사 후 점심 전까지 5시간 이렇게 주 15시간 보강을 했다.

하지만 주 15시간은 최소 기준이다.

이번에 마법반 학생들의 보강을 담당한 김 선생이 지난주 금요일에 알려 준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이다.

매일 수업이 끝나고 2시간씩, 주말 이틀 모두 각각 5시간.

도합 주 20시간 보강이다.

사실 몇몇 학생들이 항의해서 줄인 게 이 정도고 원래는 토요일 10시간 일요일 5시간으로 총 25시간이었다.

교감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무지막지한 스케줄을 보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생각이 절로….

줄었다고 해도 쉬는 날이 하루도 없다.

주말 이틀은 오전 수업이 끝이라고 하지만 다른 수업 과제도 있고 수행평가도 있는데….

그나마 나야 루시엘의 세계에 가서 하면 되지만 다른 애들은 완전 죽을 맛이겠지.

세진이, 루시엘과 당장 이번 주말에도 낚시 데이트 가기로 했는데….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민찬성은 2년 만에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상태.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지.

우려먹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걸 이용해 병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면 주말 이틀 중에 하루 정도는 빠질 수 있겠지.

일단 오늘 가서 적당히 분위기를 보다 밑밥을 좀 깔아 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마법 결투장이 있는 강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강당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이 꽤 많다.

김 선생은 아직인 것 같은데 이건 좀 의외다.

대부분 여학생으로 얼핏 봐도 10명은 가볍게 넘을 것 같다.

1학년은 차민우와 이지성 나 이렇게 셋인데 2~3학년에서 이렇게 신청을 많이 했나?

"이지성, 일찍 왔네."

"너도 일찍 좀 다녀라."

"안 늦었으면 됐지. 그런데 참가자가 꽤 많네."

"우리 1학년은 셋이고 2학년이랑 3학년은 각각 1명이라고 들었다."

"그럼 저기 저 학생들은 뭔데?"

"보강 들으러 온 게 아니고 저기 저 재수 없는 놈 따라온 애들이겠지."

차민우를 가리키며 이야기하는데… 아, 이제야 이해가 됐다.

차민우는 꽤 인기 있다는 설정이 있다.

얼굴은 도현이가 2만 배 정도 더 잘생겼지만 저 자식도 주조연답게 못난 편은 아니다.

성적도 좋고 집도 잘사는 편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니까.

물론 녀석이 일레븐 길드의 마스터 차수혁의 아들이라는 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에 입는 사복이나 쓰는 물건을 보면 전부 명품에 최신형이니 다들 잘산다고 생각하겠지.

거기다 저 자식이 좀 재수 없는 스타일이긴 해도 누구처럼 개망나니 짓거리는 하지 않았으니까.

"인기 많은 거 보니까 부럽냐?"

"전혀."

"하긴, 너도 한때는 인기 좀 있었지. 그래. 부러우면 지는 거다."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엄청 부러운 모양인데 나는 정말 부럽지 않다.

교사를 할 때 내 인기에 비하면 저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니까.

그나저나 슬슬 보강 시간인데 쟤들은 안 가나?

보강 수업과 관련 없는 사람이 이렇게 몰려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같이 있는 선배들도 표정이 안 좋다.

부러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면 집중이 잘 안 되니까.

"거기, 마법반 보강 수업과 상관없는 학생들은 그만 가지."

이따 김 선생이 와서 정리할 거라 생각하고 넘기려 했는데 3학년 학생이 먼저 나섰다.

"그쪽이 뭔데요?"

"아직 수업 시작 안 했는데. 선생님도 안 왔잖아요."

어이구, 1학년 애들이 참 되바라졌네.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명상도 해야 하는데 너희가 여기서 이렇게 떠들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잖아."

맞는 말이지만 애들과 잡담하던 차민우가 인상을 확 쓰며 나선다.

"우리 애들한테 왜 그러세요? 애들 말처럼 아직 수업 시간 전이잖아요."

"수업 시간 전이라도 다들 준비하고 명상하는데 옆에서 이렇게 떠들면 집중도 안 된다고."

"그래, 선배가 좋게 말하니까 말이 말 같지가…."

옆에 있던 2학년 남학생도 가세했다.

"좋게 안 말하면 어쩔 건데요?"

역시 차민우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때마침 김 선생이 강당에 들어왔다.

"응?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선생님, 제 친구들인데 마법반 보강 수업이 궁금하다고 해서요."

"저희 구경 좀 해도 되죠?"

"구경? 뭐 딱히 볼 것도 없을 텐데. 좋아. 대신 시끄럽게 하진 마. 수업에 방해되면 쫓아낼 테니까."

"네."

김 선생이 쿨하게 승낙을 하자 선배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차민우와 1학년 애들은 기가 살았다.

"다들 왔네. 그럼 바로 시작하자. 일단 커리큘럼부터 설명할 테니 집중해."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요약하자면 평일에는 이론과 전술 교육을 진행하고 주말에는 시간이 긴 만큼 실전 대련을 진행한다.

내가 보강을 할 때는 평일과 주말 따로 차이를 두지 않고 그냥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는데.

이런 식으로 일정이 정해져 있으면 주말에 빠지기 힘들 것 같다.

"다들 이해했으면 바로 수업 시작할까?"

"그럼 오늘은 이론 수업하는 건가요?"

"아니, 오늘은 첫날이니까 모두의 실력을 테스트할 거야."

오, 그래도 이건 똑같네.

"테스트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어떻게 하긴, 당연히 실전이지. 내가 1명씩 상대할 거야."

"저기, 그럼 결투장 배리어 활성화는 누가 하나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

나야 야외이기도 했고 애들이 검기나 검강을 막 쏟아붓고 그러는 게 아니라 주변이 크게 상하진 않았지만 마법사들의 싸움은 전혀 다르니까.

배리어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갖가지 마법들로 강당이 무너진다.

애들도 활성화는 할 수 있지만 애들 수준으로 김 선생의 마법을 감당할 순 없다.

처음 만났을 때는 B 랭크였지만 올 초에 A 랭크로 승급했으니까.

사실 B 랭크 헌터의 마법도 애들 수준에서는 무리지만.

"선생님이 정제 마석을 가져왔으니까 괜찮아."

말과 동시에 김 선생이 주머니에서 보라색 마석을 꺼냈다.

정제 마석은 몬스터의 마석을 정제해 만들어 마나를 공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 크기는 얼마 안 해. 자, 그럼 3학년부터 올라와."

얼마 안 하긴.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라색이면 상당히 순도가 높으니 저 정도 크기면 A 등급 몬스터의 마석으로 10개 이상은 들어갔을 텐데.

거기다 공임이나 다른 부재료까지 생각하면 최소 억 단위다.

그냥 다른 선생에게 부탁하면 될 텐데 저 비싼 걸 돈 아깝게….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선생님에게 마법 공격을 성공하면 소원 한 가지 들어줄게."

오, 이게 웬 떡?

합법적으로 보강을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아까 차민우와 트러블이 있던 3학년부터 차례대로 테스트를 시작됐다.

김 선생이 진심을 낸다면 얼마 안 걸렸겠지만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애들 수준에 맞춰 상대를 하고 있다.

2학년은 별로였지만 맨 처음에 테스트를 봤던 3학년 저 학생은 실력이 나름 괜찮다.

대진운만 따라 주면 본선은 충분히 올라갈 것 같다.

뒤이어 1학년 중에 가장 먼저 테스트를 본 차민우도 나름 괜찮았다.

요령이 없는 몇 가지 부분만 개선하면 충분히 상위권을 노려 볼 만하다.

"다음 올라와."

"내가 먼저 할게."

마지막은 괜히 주목받을 것 같아 내가 가려 했는데 이지성이 한발 빨랐다.

뭐, 어차피 녀석은 금방 끝날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올라간 지 5분도 되지 않아 테스트가 끝났다.

마법 구현은 나름 빠르게 했지만 방향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고 10개도 안 써 놓고 그대로 쓰러졌다.

김 선생도 상당히 허무한 표정이다.

어쩔 수 없다.

이지성이 1학기 때부터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방학 때 살도 많이 빼고 지금도 아주 많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망나니로 살던 세월이 그렇게 쉽게 좁혀질 순 없으니까.

특히 지금 보강을 받는 학생들은 적어도 자기 학년에서는 최상위권 학생인 반면 이지성은 중상위권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니까.

"마지막은 찬성인가? 올라와."

"네."

기진맥진한 표정을 하고 내려오는 이지성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고 결투장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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