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22)
헌터 학교 축제
"기말고사 성적 봤어?"
"완전히 망했지."
"내년에 잘하면 되지."
어제부로 기말고사가 끝나고 오늘 성적이 나와서 그런지 다들 평소보다 소란스럽다.
"찬성이 넌 괜찮아?"
"뭐… 괜찮아. 그래도 시험은 끝났잖아."
저번처럼 이번에도 적당히 조절할까 했지만 몇몇 과목들을 일부러 하나씩 밀려 썼다.
진짜 찬성이에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동안 나 때문에 피해를 본 학생들이 있을 테니까.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기도 하고.
민찬성으로서 사는 건 올해를 끝으로 마칠 생각이다.
원래 계획은 주인공과 함께 3년간 학교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이젠 원작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적당히 방학 때 사고를 당해 다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고 하면 되겠지.
하지만 선생으로 복직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원작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전부 감당하기로 한 이상 미래에 있을 마족과의 전쟁을 대비해야 할 테니까.
어차피 내가 가르쳤던 애들도 올해가 마지막이기도 하고.
물론 내가 돌아오면 이지성이 조금 놀라긴 하겠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나락에 간 이상 조용히 졸업이나 하는 게 그 녀석으로선 최선일 테니까.
강신혁으로서 한 번 만나기는 해야겠지만 녀석을 돕거나 조력을 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주제를 모르고 또 허튼 짓거리를 하면 그땐 그냥 아예 배제시켜 버릴 생각이다.
학교를 떠난다고 해도 내 영향력이면 녀석 하나 쫓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짐을 싸는데 문이 열리며 최서라가 들어왔다.
"자, 다들 조용하고 자리 앉아."
"쌤, 우리 반 몇 등이에요?"
"이번엔 3등이야. 그래도 종합 성적을 계산하면 아직 기회는 있어. 특히 축제 때 잘하면 아주 유력해질 수도 있고."
"그럼 오늘부터 연습 다시 하는 거예요?"
"그래야지. 이제 시험도 끝났고 축제도 당장 다음 주인데."
보통 축제에선 반마다 카페나 식당, 간간이 귀신의 집 같은 것들을 하지만 이번에 우리 반은 좀 다르다.
바로 연극 공연이다.
투표로 정하긴 했지만, 솔직히 조금 불합리한 게 우리 반 학생 중 연극 동아리가 무려 4명이다.
거기다 그중에 2명이 반의 핵심 인물인 성지안과 남지현이라서 연극에 여자 표가 몰렸다.
물론 딱히 불만은 없다.
사실 원작에서도 연극을 하긴 하지만 이지성이 반에서 고립되며 조금 틀어질 줄 알았는데 이건 또 원작 그대로 진행됐다.
애초에 온종일 장사를 해야 하는 카페나 식당과 다르게 연극은 오전 오후 하루에 딱 2번씩 공연하면 끝이니까.
거기다 학교 축제는 반 학생 모두 참여하는 게 국룰이지만 모두가 연극에 배우로 서는 건 아니니까.
이젠 뭐 남들 앞에 선다고 긴장하거나 떨리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배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강제 지명 같은 걸 당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의외로 배우를 하고 싶다는 애들이 많아서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빠질 수 있었다.
전생에 작가였으니 극본 쪽을 맡고 싶었지만 의외로 그쪽은 남지현이 맡았다.
여주 자리를 두고 성지안과 경쟁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극본을 맡겠다고 해서 조금 의외였다.
원래 동아리에서도 극본 담당이라나.
겉모습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녀석의 극본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 취향에선 조금 벗어난 여성향 로맨스였지만 애들이 하는 연극에선 이런 게 잘 먹힐 테니까.
약간 아이러니한 건 로미오가 성지안인 것이다.
원작에서는 로미오가 이지성, 줄리엣은 성지안이었으니까.
이지성이야 완전히 겉돌고 있으니 당연히 배제될 거라 생각했지만 성지안이 로미오라니.
당연히 줄리엣을 할 줄 알았는데 줄리엣은 다른 여학생이 맡았다.
물론 중간에 끼어서 삼각관계를 만드는 녀석은 남학생이다.
뭐, 나중에 주인공끼리 약간 스킨십도 있고 하니 같은 여자가 더 편해서 그런 거겠지.
반 남학생들은 무척 아쉬워했지만, 나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어차피 올해만 지나면 학생 생활도 끝이니까.
종례를 마치고 연극 연습을 위해 무대가 있는 소강당으로 이동했다.
반 아이들 모두 다 같이 왔지만 이지성 그 자식은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일단 녀석도 나와 같은 소품 및 배경 담당이긴 하지만 무투 대회 출전한다는 핑계로 전부 빠지고 있다.
원래 무투 대회 나가더라도 반 행사에는 참여하는 게 국룰인데 저 자식은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미 소문이 퍼져서 애들은 오히려 녀석이 없는 걸 더 좋아하지만.
최서라도 별말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정작 보강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닐 텐데.
예선이 끝나고 바로 다음에 있던 마법 수업 시간에서 김 선생은 본선 대비 보강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연구가 바빠서라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솔직히 교감에게 이야기를 다 들은 것 같다.
마법반에서 본선에 올라간 게 이지성뿐이니 아무리 학생을 아끼는 김 선생이라도 인성이 터진 녀석을 1:1로 가르치긴 싫었겠지.
어차피 녀석은 기연을 얻고 산삼도 먹었으니 딱히 보강 같은 건 필요 없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본선 중간에 훼방을 놓아서 탈락시키고 싶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일단 녀석은 은서를 이기고 올라갔으니까.
은서를 이긴 녀석이 무투 대회 우승도 못 하면 은서의 평가도 내려갈 테니까.
은서와 재대결은 방학식 직전에나 주선할 예정이다.
겨울방학 도중에 졸업식을 하면 은서는 이제 학생이 아니니까.
원래라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아무리 장삼봉이 알려 준 비전이 있고 은서도 열심히 배우고 있긴 하지만 무당파 무공 특성상 발전이 빠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부에게 부탁해 무당파 무공을 약간 고쳐 효율을 끌어올렸다.
세진이에게 부탁해서 일주일 전에 산삼도 세 뿌리나 구해다 먹였고.
솔직히 저번 패배는 내공 차이 때문이었으니 지금 당장 붙어도 은서가 질 것 같진 않지만 단순히 이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압도적으로 이겨야지.
"거기 찬성이 왜 혼자 가만히 있어?"
"아,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 하느라."
"7반 선생님이 그러는데 교실 창문이 열려 있대. 가서 창문 좀 닫고 올래?"
최서라 저 자식, 다른 애들도 많은데 귀찮게 하필 나를….
알겠다고 대답하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갔는데, 젠장… 문이 잠겨 있다.
김 선생이 가지고 있었으면 가라고 했을 때 줬을 테니 교무실에 있으려나?
교무실로 향하는데… 어라?
교무실 옆에 있는 교감실 문이 열리더니 이지성이 굳은 표정으로 나온다.
"여기서 뭐 하냐?"
무시하고 인상을 팍 쓰고 지나간다.
교감이 불러서 갈구기라도 한 건가?
괜히 말 걸었다고 생각하며 교무실에 들러 열쇠를 가지고 나와서 교실에 가서 창문을 닫았다.
다시 교무실에 열쇠를 반납하러 가던 중 이번엔 교감실로 들어가는 최서라가 보인다.
뭐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 교감실 문 앞에 가서 내공으로 청력을 강화했다.
* * *
진짜 거지 같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하지만 망가져 버린 이미지를 되돌리는 일은 정 반대다.
솔직히 무투 대회 우승만 해도 어느 정도 세탁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무투대회가 다가오면 관심도 어느 정도 생기고.
지만 지금 상황을 봐선 그거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반 애들은 여전히 나를 개무시하고 담임인 최서라마저도 아예 내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보강을 담당했던 마법 선생조차 연구가 많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필시 내 소문을 듣고 보강을 안 하겠다고 한 걸 테고.
이래선 답이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에 망나니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었던 건 몰카범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곧 열리는 학교 축제에선 몰카범과 비교되지 않는 커다란 사건이 터진다.
국제 범죄 조직 안타스의 습격.
거기다 나를 개무시했던 우리 반 담임 최서라는 안타스의 조직원이다.
원작에서는 사건이 터지고 김도현이 나서서 압도적인 무력으로 해결하지만 이 사건을 내가 해결한다면?
몰카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건인 만큼 자연스레 이미지 세탁이 되겠지.
바로 교감을 찾아갔다.
더 큰 공을 세우려면 사건이 터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지만 습격이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나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할 순 없다.
거기다 일이 벌어지면 다른 녀석들이 활약할 수도 있으니까.
원래 주인공인 김도현 그리고 민찬성.
특히 민찬성 그 자식의 실력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아무리 내가 두 경기를 치러 내공을 많이 소모하고 기습을 했다고 해도 녀석은 내 배리어를 박살 냈다.
작년 WHCU 우승자인 서은서조차 흠집 하나 내지 못했는데.
그 자식은 도대체 뭘까?
설마 이번 수학여행 때 나처럼 기연을 얻은 건가?
그런 기미는 전혀 안 보였는데.
뭐, 아무튼 일단 이 사실을 교감에게 알려 두려 한다.
민찬성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쓰레기로 보고 있을 테니 믿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안 믿는 게 더 좋다.
그래야 내 경고를 무시했던 걸 후회하고 반성하며 내가 해결했을 때 더욱더 내 편이 되어 주겠지.
믿든 안 믿든 무조건 사건은 벌어질 테니까.
교감실에 도착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지성 학생? 무슨 일인가?"
나를 보는 교감의 시선에서 귀찮음과 불쾌함이 느껴진다.
역시 저번 일로 나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 전에 저희 화신그룹 비서실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심각한 사안이라 교감 선생님께 꼭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뭔가?"
"저희 반 담임 교사인 최서라 선생이 국제 범죄 조직인 안타스의 일원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합니다."
뭐지?
깜짝 놀라거나 혹은 무슨 개소리냐며 면박을 줄 거라 생각했는데 교감은 너무나 담담하다.
너무 놀라서 그러나?
"저기, 믿기 힘드시겠지만…."
"화신그룹 비서실이 청와대보다 정보력이 좋다고 하던데 헛소문이었나 보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말대로 최 선생이 안타스에 잠깐 몸을 담고 있긴 했지."
뭐야, 알고 있었다고?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럼 어째서…. 안타스 조직원을 알고도 숨겨 주는 자는 조직원과 똑같이…."
"처벌을 하게 되어 있지. 하지만 최 선생은 경우가 다르네."
"다르다니요?"
"그녀가 안타스의 조직원이었던 건 맞지만, 현재는 아니고 그녀는 스파이였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원작에서 헌터학교 습격 사건이 벌어지고 이것을 김도현이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최서라도 안타스의 조직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형인지 무기징역인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쫓겨나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쯧쯧, 화신그룹 비서실에서 이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나 보군."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필시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게…."
"도대체 무슨 근거로? 허튼소리 말게.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걸세."
"최 선생님이 직접 밝힌 겁니까?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이미 안타스의 정보를 이용해 공을 세웠네. 그리고 내게 이 사실을 알려 준 건 최 선생이 아니네만?"
"그럼 도대체 누가…."
"내가 왜 그걸 자네에게 설명해야 하지? 비서실에 물어보게. 애초에 지금 최 선생은 안타스의 조직원이 아니네."
…도대체 뭐지?
* * *
애들 연극 연습을 보고 있는데 품속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스팸이라 무시하려 했는데 교감 선생님에게서 온 호출 문자였다.
애들에게 연습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바로 교감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교감이 자리를 권했다.
"조금 전에 이지성 학생이 찾아왔네."
"지성이가요?"
"그래서 와서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자네가 안타스의 조직원이라고 하더군."
"아…."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이젠 안타스 조직원도 아닌데….
그렇다고 한들 과거에 내가 안타스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교감이라면 도망은 무리다.
솔직하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처벌을 받겠다고 하려는데 교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차를 권한다.
"걱정할 거 없네. 내 진작 알고 있었으니까."
"알고 계셨다고요?"
"으음, 강 선생이 자네에겐 따로 설명을 안 했나 보군. 안타스 추적을 위해 자네를 안타스에 침투시켰다고 내게 설명했네."
"아…."
"당연히 자네에게도 설명을 했을 줄 알았는데… 하여간, 그 친구가 워낙 제멋대로긴 했지. 티는 내지 말라기에 나도 딱히 말은 안 했지만 뒤늦게라도 정말 고맙네."
"네?"
"강 선생이 안타스 이탈리아의 간부를 잡았을 때 자네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네. 그 일로 안타스 조직에서도 나오게 됐다고. 지금은 괜찮은 건가? 강 선생이 자기가 알아서 처리했다고 하긴 했지만…."
"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래도 혹시 위협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이야기하게."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교감실을 나왔다.
선배가 교감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뒀을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선배는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비를 해 둔 모양이다.
바보 같은 사람.
나 말고 자기나 좀 더 챙기지.
오늘따라 선배가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