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49)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 선생님이 우리 은서랑 교제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미친, 서은서 너 나한테 말도 안 했잖아."
은수 녀석은 은서의 등짝까지 때려 가며 호들갑이고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은 많이 놀라신 것 같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정식으로 교제하게 된 건 얼마 안 됐습니다."
"…전혀 생각도 못 했지만 제가 알기로 강신혁 선생님은 그 아레스 길드의 누구더라…."
"김세진 길드마스터와 교제하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것 역시 예상했던 질문이다.
딱히 세진이와 만난다고 공언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대부분 공식 행사들은 세진이와 함께였으니까.
거기다 내가 사라졌을 때 유산을 물려받은 것 역시 세진이었고.
추측들에 딱히 부정 또한 하지 않았다.
"세진이와도 교제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선생님?"
"은서 외에 세진이와도 교제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지금 뭐 하시자는 겁니까? 어떻게 그런…!"
두 분 다 놀라서 말을 제대로 말을 하시지 못한다.
따스했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냉각됐다.
"저기, 강신혁 헌터님… 너무 당황스러운데 지금 양다리를 걸치고 계시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엄마, 그렇게 말하지 마!"
"뭐야? 은서 너도 알고 있었어?"
"응. 알고 만난 거야."
"은서 너 왜 그런…."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만큼 선생님이 좋으니까. 선생님이 이렇게 하자고 한 것도 아니라고. 세진 언니랑 이야기해서 이렇게 하기로 했어."
이거 원… 내가 할 말을 은서가 다 해 버리네.
"내가 선택한 거니까 다들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축하해 주면… 오빠?"
아무리 그래도 은서에게만 맡겨 둘 수 없어 은서의 손을 잡으며 만류하려 했는데 아버님이 중간에 끼어들어 나를 막아선다.
"아… 아빠?"
"강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라는 건 압니다만 이건 아니죠. 우리 은서를 어떻게 첩실로…."
"첩실이라뇨?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럼 우리 은서가 첫 번째인 겁니까?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닙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은서와 세진이 모두 제겐 첫 번째입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진짜 실망이네요."
"그런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은서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시는 건가요?"
이젠 어머님까지…. 은수도 말은 안 하지만 나를 보는 표정이 결코 곱지 않다.
나 스스로도 내가 우유부단하다는 걸 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답은 노맨스밖에 없다는 핑계로 선택을 미뤄 왔다.
그렇지만 한번 결정을 한 이상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바로 나다.
전생에서 가족과 손절을 결심할 때도 수많은 시간을 고민에 썼지만 손절하고 죽기 전까지 10년간 나는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다.
루시엘, 은서, 세진이 이 셋이 우유부단한 나를 대신해 제안을 했고 나는 결정을 했다.
그러니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두 분이 실망하시는 거 이해합니다만 저도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누구 하나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게 더 문제 아닙니까?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미래엔…."
"미래에도 당연히 두 사람과 함께할 겁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결혼은 누구랑…."
"일부다처제가 가능한 국가의 국적을 얻어 두 사람과 동시에 할 거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 강 선생님은 능력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강 선생님이 일반인도 아니고 전 세계적 유명 인사인데 사람들이 가만있을까요?"
"모든 비난은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언론에서 문제 삼는다면 내가 두 사람에게 열렬히 구애하고 매달렸다고 말할 생각이다.
아니, 아예 그런 비난을 하는 언론은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생각도 있다.
내 행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게 강 선생님 생각대로 되겠냐고요. 거기다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건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 만약 우리 은서랑 그 세진 헌터가 같이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하실 건가요?"
"저와 함께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제 목숨을 걸고서 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테니까요."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요. 이런 것도 제대로 대답 못 하시면서…."
"그래요. 어머님 말씀처럼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둘을 다 구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바다를 증발시켜 버릴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애초에 어머님의 가정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로 두 사람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마, 말은 잘하시지만 살다 보면…!"
"어머님과 아버님이 반대하셔도 저는 절대 은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이해하시기 힘드시겠지만 두 분께 약속드리겠습니다. 제 모든 걸 걸고 은서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래. 뜸 그만 들이고 빨리 이야기해 줘."
세진이야 은서처럼 이야기를 해야 하니 궁금해하는 건 알겠는데 루시엘마저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
"…대답은 못 들었어."
부모님 두 분 다 은서랑 이야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자리를 피해 달라고 하셨다.
은서도 자기가 잘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왔다.
은서가 걱정이 돼서 허락한다고 하실 때까지 버틸까 생각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어쨌든 내가 할 이야기는 다 해서 그런지 속이 조금은 후련하다.
이제 활시위는 내 손을 떠났다.
"그게 뭐야?"
루시엘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역시 쉽지 않네요…."
세진이의 표정은 많이 어두워졌고.
"너무 걱정하지 마. 아까 이야기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절대 포기 안 할 거니까. 세진이 네 부모님이 반대하셔도 허락하실 때까지 계속 찾아뵙고 허락을 구할 거야."
"저는 아직… 좀 더 늦게 말씀드리려고요."
"그래."
세진이는 일을 하러 돌아갔고 나는 노트북을 켜는 루시엘 옆에 달라붙었다.
"왜?"
"정말 괜찮아?"
"응? 뭐가?"
"이번에 은서 부모님에게 이야기할 때 네 이야기는 안 했잖아…."
솔직히 양다리나 삼다리나 쓰레기인 건 매한가지이지만 루시엘의 정체가 정체이다 보니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가 은서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둘 더 있는데 1명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장난을 하시는 줄 아실 테니까.
그렇다고 증명을 위해서 루시엘을 그 자리로 부를 수는 없으니까.
부탁한다면 와 주기야 하겠지만 가뜩이나 심란하실 텐데 그런 문제까지 끼어 버리면….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건 내가 그래도 상관없다고 했잖아."
물론 내 독단으로 그런 건 아니고 당연히 루시엘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조금은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루시엘은 어차피 자기는 대중들 앞에 나타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은서에게 정체를 밝힌 것도 은서가 내 연인이 아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며.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루시엘은 나만 있으면 되니까 설득하는 데 더 편할 것 같다면 그렇게 하라고 쿨하게 허락했다.
"그래도…."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애들이랑도 이야기 다 했거든."
"이야기?"
"일주일은 7일인데 우린 셋이잖아? 1명당 이틀씩 나누면 하루가 남지?"
"어… 어?"
딱히 이런 식으로 요일을 나누어 만난다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이번에 내 이야기를 안 하는 대신에 나머지 하루는 내 거 하기로 했지."
"…그게 뭐야?"
"안 돼? 그럼 말고."
…쿨하게 포기하는 걸 보니 하루를 더 가지겠다는 건 그저 핑계라는 게 느껴진다.
"…고마워."
"연인 사이엔 그런 말하는 거 아니라고 하던데?"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어어?"
"사부가 보던 드라마에서 나오던데?"
싱긋 웃으며 날개로 나를 끌어당기더니 뽀뽀를 한다.
살짝 당황했지만 이번엔 내가 녀석에게 입을 맞췄다.
"그림 좋은데?"
…사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루시엘이 사라졌다.
"아니… 사부!"
"뭐, 인마. 내가 뭐 하지 말라고 잔소리한 것도 아닌데."
실실 웃으며 모닥불을 피우는데 산통을 다 깨 놓고 저러니 너무 얄밉다.
"또 라면 드시게요? 한 시간 전에 드셨다고 들었는데."
"아까 먹은 건 간식, 이번엔 야식이지. 너도 먹을 거냐?"
그게 그거 아닌가?
"저는 됐습니다. 그렇게 불쑥불쑥 나와서 놀라게 하지 마세요."
"이놈이 아주 사부를 구박하네. 내가 뭐 잘못했냐? 그림이 좋아서 좋다고 한 것뿐이거늘."
"사부가 솔로라 외로운 건 알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제자 연애 사업을 방해하시면 안 되죠."
"누… 누가 외롭다고 그래?"
"아닌 척하시긴.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고운 할머니 한 분… 악!"
언제 왔는지 다가와 꿀밤을 때린다.
하여간 장삼봉 그 양반도 영 믿을 사람이 못 된다.
절대영역을 익히면 앞으로 꿀밤을 맞을 일은 없을 거라더니.
물론 이젠 열 번 중 다섯 번 정도는 방어하고 피하기도 하지만 사부가 진심이 되면 무조건 맞는다.
꿀밤뿐만 아니라 당장 지난번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할 때도 제대로 대항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사부는 얼마나 강한 건지.
"하여간 네 녀석은 그 주둥이가 문제다."
"…괜히 찔리시니까 그러시는 거 아니고요?"
"한 대 더 맞을래? 그런 거 아니니까 여기에 물이나 채워라."
익숙하게 피운 모닥불에 냄비를 올리며 말해서 마법으로 물을 채워 드렸다.
"정말 필요 없으신 거죠?"
"필요 없다는데도…. 안 되겠다. 넌 이거 다 먹고 대련이다."
"또 대련 핑계로 구타하시려고요?"
"어허, 구타라니. 어디까지나 네 실력 향상을 위해 대련을 해 주는 것이거늘. 쯧쯧."
아주 말은 청산유수다.
그런 일방적인 구타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런 대련보다는 진짜 지도를 좀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삼봉이가 절대영역 가르치지 않았느냐?"
"그건 이미 숙달했습니다. 장 진인도 충분하다고 하셨고요."
"충분하긴. 그 자식 수준에나 그렇게 보인 거지."
"그러니까 좀 지도를 해 주시라고요."
솔직히 지금 실력으로도 마왕은 충분히 해치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천존이 경고했던 외신인가 마신인가 하는 놈을 상대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전에 말했지? 너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말라고."
물론 원시천존이 확정된 미래는 아니라고 했고 사부도 혼자서 다 짊어질 필요는 없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 천운으로 마신인가 외신인가 하는 그놈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나는 더 강해지고 발전하고 싶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죠. 무슨 뜻인지 압니다만 저는 강해지고 싶습니다."
이런 문제를 다 떠나서 나 역시 한 사람의 무인이니까.
"…넌 이미 충분히 강해. 무림 기준으로 봐도 네 나이에 너 같은 실력을 지닌 녀석은 없었다."
예전엔 나 같은 애들은 널리고 널렸다고 했으면서, 이젠 인정을 해 주는 건가?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그렇게 가르치는 게 귀찮은 건가?
"그래도… 그럼 다음 단계, 다음 경지라도 알려 주십시오. 그런 거라도 알아야 노력을 하지 않겠습니까?"
목표가 있어야 노력도 하고 발전이 있는 법이니까.
사부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우리 천선문이 무슨 계열의 문파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