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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256화 (256/275)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56)

헛된 노력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예전에도 지금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니까.

"잘 지냈나?"

역시 뒤를 돌아보니 내 키의 절반이나 될 법한 꼬마 아이가 서 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다.

"원시천존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하자 원시천존은 손사래를 친다.

"초면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격식 차릴 것 없네."

"무슨 일로 이렇게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역시 마왕이 강림하는 건가?

세상이 멈추기 전에 루시엘이 '뉴욕 쪽에서 엄청난….'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했으니까.

"마왕 때문에 오신 겁니까?"

"마왕이라, 자네가 말하는 마왕은 며칠 사이 이 세계를 침범한 마(魔)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긍정을 할 줄 알았는데 천존은 웃음기를 거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지?

"그럼 무슨 일로…."

"내가 지난번에 자네에게 보여 줬던 미래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그럼 내가 보여 줬던 미래가 확정된 게 아니라고 했던 것도 기억하겠군."

나는 당시에 천존에게 미래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3년간 엄청나게 노력을 했고.

왜 계속 당연한 걸 물어보는 거지?

이해가 안 된다.

"그렇습니다."

"미래가 바뀌었네."

미래가 바뀌었다고?

"그럼 그때 보여 주셨던 그 하얀 연기… 아니, 마신은 저희 세계에 등장하지 않는 겁니까?"

"그래. 이제 곧 등장할 마의 우두머리도 지금 자네의 실력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걸세."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동안 노력했던 것들의 보상을 받은 건가?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처럼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3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걱정하던 건 마신이었지 솔직히 마왕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포탈 해방 사태가 벌어지고 등장했던 마족들은 하나같이 원작에 나오던 녀석들뿐이었으니까.

특별히 이상한 녀석도 없었고 원작과 비교해도 더 강해졌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러니 마왕도 원작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었다.

아예 경시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시 천존이 큰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닐세."

"네?"

잠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마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이야기일 텐데 원시천존이 겨우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찾아오는 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아까 처음에 인사를 건넬 때 이후로 천존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자네는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 했어. 그 과정에서 선령이 많이 움직이고 힘도 많이 썼지."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안 될 거라 생각했나? 자네는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네."

*    *    *

"복귀했습니다. A 구역부터 상황 보고 바랍니다."

길드원들과 작전 도중에 루시엘 언니가 일본 규슈에서 마족을 발견했다고 해서 처리하고 오느라 한 시간 가까이 자리를 비웠다.

―여기는 A 구역. 몬스터 소탕 완료하고 사체 처리 중입니다.

"수고했어요. B 구역 상황은 어떤가요?"

―B 구역은 전투 중 트롤 2마리가 이탈하긴 했지만 어린 녀석들이고 추격조를 편성해 추적 중입니다.

"지원이 필요한가요?"

―아닙니다. 곧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저희 쪽으로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어요. 끝까지 방심하지 마시고 경계 잘 보고 움직이세요."

―네!

다행히 상황은 괜찮은 것 같아 무전기를 내려놓고 한숨 돌리려던 찰나, 품속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꺼내 보니 우리 자기다.

"자기?"

―응, 나야. 세진이 너 지금 어디야?

"남양주 쪽인데,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루시엘이 마족은 더 안 보인다고 해서. 너 도와주러 가려고 했지.

"아, 전 괜찮은데. 남양주도 다 정리됐어요."

―그래? 다행이네. 그럼 오늘은 야간 작전 없나?

"네. 다른 조에서 트롤 2마리를 놓쳐 추적 중이라고 해요. 그것만 정리되면 바로 복귀할 거예요."

―알겠어.

오늘따라 우리 자기 목소리가 유독 힘이 없는 것 같다.

하긴 아무리 우리 자기라도 벌써 6일째 전 세계를 누비며 마족만 상대하고 있는데,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지.

모처럼 일찍 끝났으니까 가서 보양식이라도 만들어야겠다.

주변 몬스터 사체를 정리하다 보니 C 구역을 맡았던 길드원들이 도주했던 트롤을 잡았다고 알려 와 작전을 종료했다.

고생한 길드원들을 위해 순간이동 마법으로 길드까지 이동시켜 주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니 익숙한 신발 두 켤레가 보인다.

자기야 일찍 끝났다고 듣긴 했는데, 은서도 일찍 온 건가?

같은 길드지만 은서는 오늘 평택 쪽으로 갔다.

모처럼 다 모였으니 같이 요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신발을 벗는데, 안쪽에서 우리 자기가 마중을 나왔다.

"정말 일찍 끝났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자기? 요리해?"

분홍색 바탕에 갈색 곰돌이가 그려진 앞치마를 하고 있다.

요리는 주로 나와 은서가 하는데, 물론 선생님도 가끔 간식 같은 걸 만들어 주긴 하지만 이렇게 앞치마를 한 적은 처음이라 조금 놀랐다.

"왜? 이상해? 이상하면 치과…."

"거기까지! 그런 개그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이상한 게 아니라 너무 귀엽고 좋은데요?"

빈말이 아니라 너무 귀여워서 피곤이 싹 날아가는 느낌이다.

"모처럼 일찍 끝나서 간만에 실력 발휘 좀 제대로 해 보려고 입었지."

"뭐 하시는데요?"

"이따 직접 봐. 은서도 일찍 와서 씻고 있으니까 세진이 너도 씻고 나와."

"금방 옷만 갈아입고 저도 도와줄게요."

평소 마법보다 직접 샤워하는 걸 선호하지만 우리 자기의 귀여운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다.

"됐어. 거의 다 했어."

방에 와서 간단하게 마법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주방으로 가는데 대욕실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은서가 보인다.

"어? 언니 왔어요?"

"평택은 어때? 남양주는 오늘 끝났어."

"평택도 내일이면 얼추 정리가 다 될 것 같아요."

"고생이 많아. 많이 피곤하지? 드라이기 줘. 언니가 말려 줄게."

"괜찮은데."

말은 괜찮다면서 냉큼 드라이어를 넘긴다.

은서의 머리를 말려주고 같이 주방에 오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왔어?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저도 도와 드릴게요."

"저도요."

"오늘은 내가 대접해 주고 싶으니까 두 마나님은 자리에 앉아 계시죠."

능청을 떨며 음식을 내어 오는데 스테이크와 파스타, 싱싱해 보이는 샐러드에 피자도 있다.

전부 나와 은서가 좋아하는 것들뿐이다.

몬스터 해방 사건 뒤로는 거의 전투식량 같은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서 그런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우와,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러게. 우리 자기가 요리를 다 하고."

"날은 무슨. 장모님들이 계셨으면 평소엔 손 하나 까딱 안 한다고 오해하셨겠네. 내가 평소에도 자주 하잖아."

해방 사건이 벌어지고 집으로 모셔 왔던 부모님은 이틀 전에 서울의 몬스터 소탕이 완료돼 본가로 돌아가셨다.

"으음, 자주는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그… 그런가? 식기 전에 얼른 먹자."

"먹기 전에, 앞치마 한 모습 너무 귀여운데 사진 찍어도 돼요?"

"어, 저도요. 저희만 볼게요."

안 그래도 나도 말하려고 했는데 은서가 선수를 쳤다.

"사진? 그래. 얼마든지 찍어."

우리 자기 성격상 거절할 거라 생각해서 애교라도 부릴까 고민했는데.

흐음, 어째 오늘따라 우리 자기가 이상하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수상했지만 일단 은서와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밥을 먹었다.

"어때? 오랜만에 한 거라 실력이 녹슨 것 같아 조금 걱정되는데."

"식당 차리셔도 되겠는데요? 너무 맛있어요. 역시 고기가 최고예요."

"많이 먹어. 세진이 넌?"

"다 너무 맛있는데 저는 파스타가 제일 좋아요. 예전에 우리 자기랑 강원도에서 먹었던 그 맛 그대로네요."

"강원도? 아 WHCU 준비할 때 말하는 거지?"

"네. 그때랑 완전 똑같아요."

"그래? 그건 같은 회사 소스를 써서 그런 거겠지. 역시 대기업의 맛."

"대기업의 맛보다는 우리 자기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 많이 먹어."

뭐지? 진짜 이상하다.

평소라면 이런 낯간지러운 멘트를 하면 선생님은 엄청 쑥스러워하시는데… 오늘은 너무 담담하다.

식사를 마치고 은서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서 나는 후식으로 먹을 과일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과일을 다 깎아 갈 때쯤 은서도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 두 사람에게 할 말이 있어."

"역시 무슨 잘못 한 거죠?"

은서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게 아니라 루시엘에 관한 이야기야."

"루시엘 언니요?"

"응. 루시엘은 당분간 이쪽에 나오지 않을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루시엘 언니가 안 나온다니… 혹시 싸우셨어요?"

"싸운 건 아니고 조금 사정이 있어. 루시엘의 세계에 가면 만날 수 있으니까 영영 헤어지는 건 아니야."

"아니, 무슨 사정인데요?"

마법 연구 때문에 그러시나?

"그게,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서… 어차피 관련 있는 이야기니까 일단 다른 이야기 먼저 해도 될까?"

"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지난번에 내가 이야기했었던 마왕은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죠. 그 마왕이라는 놈만 해치우면 이번 사태도 끝난다고 했잖아요."

"맞아. 마왕은 이틀 뒤 강림할 거야."

"이… 이틀 뒤요?"

"원래 좀 더 기간이 있을 거라고…."

"루시엘이 그렇게 측정했어. 위치는 뉴욕 쪽이 유력한데 바뀔 수도 있고.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자리에 루시엘은 갈 수 없어."

"어째서요? 루시엘 언니가 저번에 마왕에게 당해서 많이 고생했다고 이번에 갚아 주겠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들었는데…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 자기만 있어도…."

"아니.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나도 그때 자리에 없을 수도 있어."

우리 자기가 없을 거라고?

*    *    *

허무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노력에 항상 보상이 뒤따르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단순히 미래만 보여 줬던 저번과 달리 원시천존은 꽤나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여 줬다.

기존에 강림하려던 마신인지 외신인지 하는 놈이 이쪽 세상에 강림하려던 이유는 루시엘의 힘을 탐해서였다.

루시엘이 각성한 포탈은 원래 마족이 존재하던 포탈이었으니까.

그곳에서 각성을 했기 때문에 마신이 루시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강림을 하려 했다고.

하지만 그 마신이란 놈은 소멸을 당했다고 한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물으니 이곳에 강림하려던 마신을 소멸시킨 건 지난 3년간 루시엘이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며 힘을 쓴 덕에 루시엘의 존재를 알아챈 또 다른 마신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마신인지 외신인지 하는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몰랐고… 아니, 처음부터 원인이라도 제대로 알려 줬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지금 바로 갈 텐가?"

"바로 가야 하는 겁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여유가 많지 않아. 조금이라도 늦어서 놈이 이곳에 더 가까이 오게 되면 이곳이 충격에 휘말릴 가능성이 더 커지겠지."

"…충격이 미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최대한 늦게 간다고 가정했을 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늦어도 이틀 안에는 출발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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