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70)
에필로그
비가 창문을 거칠게 후려치고 있다.
꼬르륵—.
창문 바깥처럼 뱃속에선 밥을 달라 아우성이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어두운 방,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소원을 빌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루미엘이 내게 말했던 제약이라면 나는 저승에 가겠지.
그럼 또다시 염라대왕을 만나 소원을 빌 수 있지 않을까?
헛된 기대였다.
예상과 달리 나는 저승으로 가지 않았다.
이틀 전 정신을 차린 내게 가장 먼저 보인 건 낯선 천장이었다.
정리가 전혀 안 되어 있고 아주 작고 허름한 원룸.
삼류 작가 이민찬이 되었다.
혹시나 얼마 안 가 다시 죽음이 찾아와 저번처럼 저승에 가는 건 아닌가 생각을 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내가 죽었던 날짜는 이미 지나갔다는 걸.
동시에 허탈함과 무기력이 나를 찾아왔다.
강신혁으로 가지고 있던 부나 명예는 물론 무공이나 마법도 전부 사라졌지만 내가 허무에 빠진 건 그런 이유가 아니다.
이제 정말, 무슨 수를 써도 모두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니까.
물론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일이고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었지만….
현실이 되니 너무나도 가혹했다.
마음이 죽어 버린 느낌이다.
지난 이틀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씻지도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 그냥 확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봤자 저번과 같은 행운이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띵동—.
“102호 총각, 문 좀 열어 봐.”
쿵쿵!
“102호 총각!”
누군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집주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월세 내는 날이었나?
아무리 죽고 싶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정이 어려울 때 많이 봐주시기도 했는데 이런 건 도리가 아니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자 예상대로 집주인 아주머니다.
“집에 있었네.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는… 자다 일어났어?”
“아, 네.”
“안색이 안 좋은데… 혹시 어디 안 좋아?”
“아니에요. 월세 때문에 그러시죠?”
“응. 그제가 월세 내는 날인데 입금이 안 되었더라고. 어제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는데 휴대폰이 꺼져 있어서.”
어제가 아니라 그제였구나.
“제가 일을 좀 몰아서 하고 한 이틀간 잠만 자서…. 죄송합니다. 금방 보내 드릴게요.”
“혹시 사정이 안 좋으면 천천히 줘도 되긴 하는데 앞으론 미리 말을….”
“아니에요. 바로 폰 충전하면서 입금해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그래도 한 달 월세 낼 돈 정도도 없진 않겠지.
집주인 아주머니를 보내고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시키고 전원을 켰다.
방에 있던 시계도 고장이 나서 시간도 모르고 있었는데 벌써 아침 10시구나.
날이 밝아서 아침인 건 알았지만.
은행 어플을 들어가 보니 그래도 잔액이 200만 원은 된다.
여기서 이대로 죽어 버리면 그것도 좀 민폐겠지.
이번처럼 월세가 밀리면 집주인이 찾아올 테니 발견은 그리 늦게 되진 않겠지만 월세 보내고 남은 170으로 장례 비용이 되려나?
아니, 어차피 죽을 건데 무슨 이런 고민을 하는 건지.
부질없다고 생각하며 월세를 입금하고 매트리스에 누웠다.
드르륵— 드르륵—.
휴대폰이 울린다.
몇 번 울리다 마는 게 전화는 아니고 문자인데 집주인인가?
월세 받았다는 확인 문자일 것 같아 무시할까 하다 폰을 확인해 보니 집주인이 아니었다.
[작가님, 혹시 차기작 준비하시는 거 없으세요?]
예전에 두 작품을 같이 했던 매니지 담당자다.
두 작품 다 시원하게 말아먹었는데 차기작 제의라….
물론 이 회사가 딱히 의리 있어서 내게 연락을 한 건 아니다.
회사 입장에선 글은 많으면 많을수록 무조건 플러스니까.
표지 값이나 선인세도 못 뽑아내는 글도 있다고 하지만 2차 유통과 대여까지 곁들이면 대부분 회수한다.
나는 그동안 이 회사랑 일하면서 선인세를 받은 적이 없었다.
거기다 비록 내가 삼류 작가긴 해도 표지 값 정도도 못 뽑아낼 정도는 아니니까.
속이 훤히 보인다.
진짜 내게 관심이 있고 같이 하고 싶었으면 지금 연락하는 게 아니라 전작이 끝나기 전에 차기작 제의를 했겠지….
휴대폰을 던져 버리고 다시 누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죽어 버릴까 생각했던 놈이 차기작은 무슨….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결국, 다시 몸을 일으켰다.
구석에 있는 책상 위 놓인 노트북 전원을 켜고 한글 파일을 실행했다.
모든 게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내게 남은 게 한 가지 있다.
기억.
모두와 함께 보냈던 기억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딱히 누군가를 특정해 보여 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글로나마 남기고 싶어졌다.
내가 이대로 죽어 버린다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물론 내가 다녀온 세상은 다른 작가의 작품.
심지어 《헌터 학교의 망나니 열등생이 되었다》는 초대박 히트를 친 작품이니 유료화는 할 수 없다.
원작과 다르게 진행이 됐다고 하지만 세계관도 그렇고 인물 또한 같으니 100퍼센트 표절 시비에 휘말릴 테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무료일지라도,
비록 보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내 기억을, 모두를 나 혼자만 아는 이야기로 남겨 두고 싶지 않으니까.
* * *
내가 작가들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보통 웹 소설 작가들은 하루에 한 편, 손이 빠른 작가들은 두세 편을 쓰기도 한다.
나는 빠른 편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하루 한 편도 조금 버거워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이번엔 세 달 만에 270편을 써 냈다.
거의 한 달에 90편을 써 낸 셈이다.
유료화하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부담감이 덜한 것도 있었고 전부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들이라 막히는 부분이 없다.
무엇보다 간절했기 때문이다.
허무와 무기력에 빠진 내게 이 글을 쓰는 것만이 날 살아 있게 만드는 이유였으니까.
잠을 줄이고 밥도 대충 먹고 오로지 글에만 집중했다.방해라고 할 만한 건 글을 쓰다 애들이 생각나 우는 것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날이 좀 적었더라면 더 빨랐을 거다.
아직 연재는 하지 않았다.
상업적 활용을 하지 않는다면 2차 창작물은 대부분 허용해 주는 느낌이지만 원칙적으론 작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
혹시나 허락을 해 주지 않을까 두려워 글부터 먼저 완성했다.
허락해 주지 않으려다가도 이만큼이나 썼으면 정성을 보고 허락해 줄 수도 있으니까.
살짝 긴장하는 마음으로 예전에 작품을 봤던 소설 사이트에 접속했다.
작품명은 확실히 기억하지만 출판사는 모른다.
일단 출판사만 알면 아는 작가님들 중에 같은 회사인 작가님들에게 부탁하면 될 테니까.
정 없으면 구글링을 해서 메일이라도 찾아야겠지만.
바로 검색창에 ‘헌터 학교의 망나니 열등생이 되었다’를 입력하고 엔터를 쳤다.
[해당되는 작품이 없습니다. 꿀꿀이 페이지 홈에서 다른 재미있는 작품을 발견해 보세요.]
뭐지?
순간 내가 검색어를 잘못 입력했나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 이곳이다.
완결 이벤트로 메인에도 걸렸었고.
이상하다 싶어 다른 소설 사이트에 들어가 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원작은 검색되지 않는다.
심지어 포털사이트에서도.
상당히 인기 있던 작품이었다.
전에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땐 작가 인터뷰까지 나왔다.
20대 초반에 처음 쓰는 글이었다고 해서 엄청 부러워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온갖 포털 사이트를 다 돌아다니며 검색하고 헌터 학교, 망나니, 열등생 이런 키워드로 작품들을 쭉 찾아봤지만 어떤 작품도 내가 아는 원작과 같지 않았다.
조금 고민하다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뭘로 할까 한참 고민하다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로 정했다.
염라대왕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해 좌절하던 내가 새로운 삶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헌터 학교의 채용 문자였으니까.
헌터 학교라고 할까 하다 요새 아카데미가 트렌드라 아카데미로 바꾸고 어감도 선생보단 강사가 좋을 것 같아 바꿨다.
처음에는 그런 욕심이 없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10화까지 업로드를 했다.
이후로는 하루에 한 편씩 예약을 걸었다.
이미 완결까지 다 썼으니 한 번에 다 공개할까 생각도 했지만 매일매일 올라가면 1명이라도 더 봐 줄 테니까.
무엇보다 연재를 빠르게 끝내 버리면 또다시 무기력과 허무에 잠식될 것 같다.
그렇게 270편까지 예약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순식간에 졸음이 밀려온다.
완성을 시킨다고 마지막엔 거의 잠도 자지 않았으니까.
일단 좀 쉬자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 *
얼마나 잔 걸까?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휴대폰이 계속 울려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알람은 아니고 보나 마나 대박 정보가 있다느니 코인 급등한다느니 하는 스팸 같은데 진짜 거하게 욕 한 사발 퍼부어 줘야겠다.
어라?
시간은 벌써 오후 2시다.
예약을 완료한 게 자정쯤이었으니 거의 14시간을 뻗어 있었네.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시간 때문이 아니다.
계속 울리던 전화는 모르는 번호가 아니라 전에 같이 일했던 출판사 담당자 번호다.
왜 전화한 거지?
같이 일할 때도 지극히 사무적인 스타일이라 이렇게 먼저 전화하는 일은 없었는데.
인세를 잘못 입금하기라도 했나?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작가님, 굿 애프터눈입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저 방금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이 시간인지라 당연히 일어나 계실 거라고 생각해서….
“어제 좀 늦게 잤거든요.”
—그러셨구나. 톡이랑 문자도 여러 번 남겼는데 답이 없으셔서 마음이 급해 이렇게 전화를 드렸네요.
“톡이랑 문자를요?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방금 막 일어나서 확인을 못 했는데, 무슨 일인가요?”
—작가님, 어제 연재 사이트에 올리신 글 보고 연락드렸거든요. 반응이 어마어마하던데.
“네?”
전화를 던지고 바로 노트북을 켰다.
사이트에 접속해 내 글을 확인하고 정말 깜짝 놀랐다.
어제 올린 10화에 오늘 낮 12시로 예약해서 고작 11화밖에 안 된 글인데 1화 조회수가 5만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댓글은 화별로 많게는 1000개에 최신화도 300개가 넘고.
실시간 급상승 1위.
이게 도대체…. 표절 시비가 걸린 건가?
어제 그렇게 찾아봤을 때는 없었는데… 아니, 애초에 그런 시비가 걸렸으면 이렇게 회사에서 전화가 오지도 않았겠지.
—작가님? 저희가 이번에 진짜 좋은 조건으로….
“지금 확인을 해서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일단 전화를 끊고 댓글을 살피기 위해 1화를 클릭했다.
[흡입력 미쳤다. 흔하디 흔한 아카데미 물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놓을 수가 없음.]
[님들 이거 보지 마셈. 좀 쌓이고 봐야지 10편까지 보고 오늘 달랑 1편 올라와서 기다리다 숨지는 줄. 작가님 뒤지기 싫으면 연참하세요.]
[선발대입니다. 리얼 핵 꿀잼임. 그대로 쭉쭉 달리셔도 됨. 부가 정보로 작가 필명으로 검색해 보면 전작이 몇 개 나오는데 다들 성적 조졌음. 그런데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건지 완전히 달라짐. 이렇게 쓸 수 있음 진작 좀 이렇게 쓰지. 물론 나중 가면 전작들처럼 조질 수도 있으니 주의는 하셔야겠지만 지금까진 역대급 꿀잼.]
역대급 반응이다.
그동안 내가 썼던 글들은 1화에 무슨 이 작가랑 계약한 회사 직원 잘렸겠다느니 하면서 비꼬거나 노잼이라는 댓글만 있었는데.
우려했던 표절 시비도 없고.
전에 회사 팀장이 그렇게 전화를 했던 게 이해가 간다.
드르륵— 드르륵—.
휴대폰이 계속 울린다.
그새 못 참고 또 전화한 건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메신저도 난리가 났다.
아까 연락 왔던 담당자뿐만 아니라 친했던 작가님들은 축하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들 자기 회사에서 내 연락처를 물어본다며 소개해 주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미 회사에서 들었다며 구체적인 조건까지 제시하는 경우도 여럿 있는데, 하나같이 예전엔 생각도 못 했던 엄청나게 좋은 조건들뿐이다.
기분이 이상하다.
분명 많이 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뜨거운 관심 때문에 살짝 부끄러운 마음도 있다.
독자님들은 창작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는 전부 내 이야기니까.
예전이라면 순수하게 기뻐했겠지.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쓴 건 돈 때문이 아니니까.
그러니 출간 제안들은 전부 거절…할 순 없을 것 같다.
회사와 계약하지 않으면 올리지 못하는 곳들도 많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했어도 당장 다음 달 생활비는커녕 월세 내기도 벅찰 지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