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황태자는 싫습니다 =========================
역사학 수업은 언제 들어도 참 지루하다. 내용 자체가 지루한 것도 있지만 선생님이 그냥
교과서를 쭈욱 읽는 수업방식으로, 수업이 지루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이번 수업만 지나면 점심먹고 바로 오후 수업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다.
고개를 돌려 옆을 확인해보니 이번엔 꼭 졸지 않겠다고 했던 헤스티아도 이미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헤스티아가 아무리 여주인공이라도 일단 역시 인간은 인간인건지 눈동자 반이 뒤집힌게 참 현실적이었다. 마음에 들어. 그래도 좀 불쌍하니 입은 닫아주자.
요즘 오전 이론 시간에 잡생각이 많아졌다. 이유를 말하자면 이제 점심 먹고 오후 검술 수업시간에 있는데 거기서 한 남학생이 내 하루에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에 잠기며 역사학 교재 빈칸들을 모두 달팽이 그림으로 채워넣기 시작했다. 내가 잡생각에 빠질 때마다 습관처럼 그려지는 귀여운 달팽이 그림은 어느새 교재를 가득 채울 정도로 꽉차있었다.
아, 참고로 공부는 잘하니 내가 수업시간에 잡생각한다고 걱정할 필욘 없다. 역사학의 기초 지식은 정말로 솔직히 말하자면 입학했을 때 어느정도 다 배우고 들어왔다. 한국 학교 다닐 때 애들이 학원 뺑뺑이 돌려 다니며 선행 학습을 죄다 해오길래 불안한 마음에 나도 선행 학습을 해왔던게 습관이 남았다. 웬만한 교과 범위는 범위는 이미 선행이 되어있어 애들이 공부할 때 나는 노는 그런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만-세.
선생님께서 책을 들고 반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제국의 가장 영향력있던 칸 제왕 부분을 읽어나갔다. 자는 애들을 하나 둘씩 딱밤을 먹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자고있던 헤스티아를 팔꿈치로 쿡쿡 쳤다.
'야, 선생님 오셔'
딱!
헤스티아는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건지 '느헥~?' 이라는 소리를 냈다가 결국 지나가던 선생님께 딱밤을 맞고 말았다.
딱!
나는 그런 헤스티아의 모습에 쿡쿡 웃다가 덩달아 딱밤을 맞고 말았다.
"선생님, 전 깨어있었습니다."
내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하며 선생님을 바라보자 선생님은 세모눈으로 쳐다보았다. 깡마른 역사학 선생님께서 지휘봉처럼 생긴 나무 막대기로 교재 한페이지에 가득 채운 내 달팽이 그림을 가리켰다.
"슈라이나 영애는 필기는 안 하고 왜 달팽이 그림만 그리고 있나."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일단 선생님께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필기는 내일까지 끝내 놓겠습니다."
역사학 데븐 선생님께서는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라, 왠지 잘 못 걸린 느낌이다. 내 감이 죽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지금 애들이 반쯤 졸고 있는 것에 대한 화풀이를 할 것 같은 느낌?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유명한 학자의 말이 있다, 슈라이나양"
나는 선생님의 말에 반성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은 말씀이나 내일도 할 수 있는 일 굳이 오늘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딱!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딱밤을 한 대 더 때리셨다. 음, 솔직히 방금 건 맞을 만 했지.
역사학 선생님께서는 뭐라고 더 잔소리를 하려다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슈라이나 영애는 성적이 어떻게 되나? 라고 물어보시기에 솔직하게 대답해드렸더니 다시 교과서를 제대로 펴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래서, 머리좋은 것들은... 쯧쯧"
우리 역사학 선생님께서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나지막이 투덜거리신다. 생각해보니 선생님께서는 5번의 재수 끝에 겨우 겨우 대학 입학에, 15년 시간에 걸려 겨우 교사 과정 졸업하셨지? 나는 괜히 짠해지는 마음에 다음엔 나라도 열심히 하는 척 해야겠다 생각해보니 이미 점심 종이 울리고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반 실신해 있던 아이들이 점심 종이 울리자마자 공간이동 마법을 쓴 것 처럼 사라져 있었다.
'욕구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다 똑같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 또한 내 신발에 부여한 속도 향상 마법의 기능을 켰다. 내가 급식실로 재빠르게 달려갈 채비를 하자 옆에서 헤스티아가 같이 가자고 하면서 밍기적거린다. 나는 여차하면 헤스티아를 안고 뛸 준비를 하면서 헤스티아의 책가방을 재빠르게 싸줬다.
그러나 급식실로 뛰어가 제일 빨리 밥을 받으려던 나에게 헤스티아 이외의 또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반 앞에 날 기다리고 있던 황태자였다. 하일은 우리반 출구 쪽에 서서 팔짱을 끼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 반을 다 나가지 못한 여학생들이 방문앞의 하일을 보며 '꺄악, 꺅!' 거리기 바빴지만 난 그저 그 모습이 가소롭기만 하다.
뛰어나가려던 나를 가로막으며 황태자는 눈썹 한쪽을 치켜 떴다. 몹시 화나보이는 얼굴이었다.
"넌 밥 먹기 전에 나 좀 보지?"
하일은 나에게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선 내 옆에 있는 헤스티아를 발견했는지 급히 말투를 정정했다. 헤스티아와 마주한 하일은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서 말은 빨리 안하고 계속 내 옆의 헤스티아를 곁눈질 하며 쑥스러워 한다. 황태자는 우물쭈물 헤스티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 헤스티아 영애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나. 이 여자와 할 이야기가 있다. "
얼굴을 붉히며 겨우 이어나간 말에는 존대 하대가 뒤죽박죽이다. 안쓰럽기만 한 황태자가
용기내어 건 말에 헤스티아는 입을 비죽인다.
"슈슈랑 둘만 할 이야기가 있는 건가요? 저는 없나요?"
그녀의 말에 황태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저 등신. 굴러들어온 기회를 자기가 날리고 있다. 헤스티아는 황태자의 말에 흥, 하고 콧방구를 뀌더니 그대로 자리를 비켜줬다.
헤스티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일은 또 용기내어 입을 열었다.
"밥, 맛있게 먹어라."
그 말을 마치고 혼자서 히죽 히죽 웃는 하일이었다. 나는 얼굴을 구겼다.
"기분 나빠..."
진심이었다.
분명히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이렇게 애를 변질시켜 놨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소설 본 편에서는 헤스티아와 황태자의 첫 만남이 아카데미 주니어 스쿨, 즉 중학교 졸업쯤이라는 것을 상기해냈다. 그러나 나라는 변수가 생겨나 좀 더 일찍 만나게 되었지. 현재 우리들 나이가 이제 막 초등학교 졸업생 정도니까, 아직 하일이 철들며 성숙해지기 전이다. 그래,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아기들이잖아. 키도 나랑 차이가 별로 크지 않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괴리감을 없앴다.
한편 하일은 넋 놓고 헤스티아를 보다가 안드로메다를 한바퀴 돌고 제정신을 되찾았다. 하일은 고개를 내 쪽으로 휙 돌리며 내 옷깃을 잡아 끌었다. 시야에 하일의 잘생겼지만 안쓰러운 얼굴이 가득찼다.
"너 이놈... 어제 대련에서 그게 뭐하는 짓이었나!"
"저런, 하일님. 졌다고 무조건 뭐하는 짓이냐뇨. 쿨하지 못한 남자는 헤스타아가 질색합니다. 어서 인정하시죠."
헤스티아가 언급되자 황태자는 화를 조금 죽였다. 낄낄거리며 빈정거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한대 맞아도 이상할 게 없어 무표정을 지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너 왜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건데"
"...착각하신 겁니다"
황태자는 내 반응에 한숨을 쉬며 내 옷깃을 놓아주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풀려나자 바로 옷을 탁탁 털었다. 괜히 황태자는 아니라고 힘은 더럽게 셌다. 하일은 잠시 인상을 쓰더니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짚었다.
"대련에서 마법이 뭐냔 말이다. 치사하게"
"애초에 이렇게 연약한 제가 아무런 준비 없이 검 하나로 상대할 거라고 생각한 황태자님이 오만한 겁니다. 검술에서 부족한 만큼 보조 능력도 있어줘야죠. 황태자면서 그 정도는 예측하셨어야 합니다. 세상은 예상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요."
할 말이 없는지 황태자는 눈을 세모나게 떴다.
"말이 많군"
하일은 그럼에도 억울한지 나를 꾸준히 노려본다. 확실히 내가 어제 좀 치사하긴 했지? 대련 시작 전에 내 장비와 표준 실력에 버프를 걸어뒀으니까. 그리고 황태자 쪽에다가 디버프에 패널티를 잔뜩 부여했으니 내가 이기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대련 시작하자마자 발을 헛딛고 목검은 금방 부서지고 음.... 내가 좀 확실히 심했나? 그래도 나중엔 오러를 막 날리는 황태자로선 그런 변수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는 강하게 키워야지.
하일은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변명하듯 중얼거린다.
"네가 마법사일 건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치사한 네 성격에 그걸 그냥 놀게 하지 않을 것에 어느정도 대비하고 있었고. 나 또한 그동안 숱한 마법 검사들을 상대해왔기에 너쯤은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헌데,"
우리 질풍노도의 하일은 분한듯 입술을 물었다.
"헌데, 그런 마법은 처음 보는 종류였다. 네 마법은 불규칙적이고 굉장히 인위적인 형태였다."
자존감이 잔뜩 깎인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하기야, 소설에서 황태자는 무쌍이었으니까. 하일의 실력 그 자체는 나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응용력에서 살짝 떨어진다. 나는 마법에서 검술까지 사용할 수 있는 폭이 넓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황태자는 아직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어리고.
괜히 마음이 약해지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순진한 어린아이를 상처입힌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막 자라나려고 준비하는 새순을 짓밟아버린 기분?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침울해 있는 황태자의 등을 두들겼다.
"황태자님의 실력은 나쁘지 않습니다. 제가 치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일을 보고 있자니 전생의 내 남동생이 생각난다. 남동생이 머리가 좋아 방심하다가 무시했던 아이에게 역전당하고 침울해 있었던 적이 있었지. 자존감이 한순간에 팍 꺾여 땅을 파다 못해 지하수까지 터뜨릴 기세여서 한 소리 해줬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왠지 우리 세유가 생각나 짠해진다.
"세상에 실력자는 많습니다만, 그 치사하다고 생각한 방법을 하나의 전략으로 인정하고 패배라 생각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맨날 무시하고 까기만 했던 내가 좋은 소리를 해주니 황태자가 고개를 든다. 너 혹시 울었니? 쳐다보는 붉은 눈망울이 살짝 묽은 것 같다.
"저는 제 실력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습니다. 대신, 여자이기 때문에 근력이나 체력, 육체적인 기술 면에서 현저히 떨어지죠."
내가 내 약점을 인정하자 황태자는 나를 의외라는 듯 쳐다본다.
"황태자님이 그런 부분에서 저를 도와주시면 저도 하일님께서 제 치사한 비술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오후 검술 시간 때 뵙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반을 나섰다. 너무 배가 고팠다. 이 하일 녀석, 말 하려면 밥 먹고 나서 하란 말이야. 나는 따뜻한 밥은 글렀다고 생각한다. 고기 종류는 이미 다 먹고 남은 게 없지 않을까.
내가 떠나려 하자 하일이 내 팔을 잡으며 또 막았다. 밥 먹으러 가는 사람을 2번 막았다. 이건 솔직히 내 기준에서 엄청난 인내였다. 사람은 참을 인 3번 이라고 하지만 3번이나 참으면 호구다. 나는 이번에 신경질을 좀 내려 했지만 하일이 내가 입을 열기 전에 급하게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식사도 늦지 않았나. 남은 음식은 맛없는 것 밖에 없을 터. 따라와라."
나는 그날 진정한 황태자 빽이 뭔지 체험했다. 내가 이때까지 먹어봤던 인생 음식의 기록을 갱신할 정도의 맛이었다
나는 따뜻한 바게트 빵 위에 버터와 잼을 바르고 그 사이에 소고기를 잔뜩 끼워 한입 물었다. 뭔 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 아무 말 없이 얌전히 먹는 황태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까의 일이 떠올랐다. 아까 헤스티아와 같이 있었을 때 황태자의 호구같은 행동 말이다.
[슈슈랑 둘만 할 이야기가 있는 건가요? 저는 없나요?]
라고 물어보는 헤스티아의 말에 황태자는 바보같이 고개를 끄덕였었지. 말을 걸어준 것만 해도 너무 좋아 감동해서 바보같은 팔불출 미소를 짓고 있었지. 심지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나랑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 그였다.
나는 인상을 쓰며 그에게 질문했다.
"하일님, 연애 경력 없죠."
아직 중학교 1학년 정도라고 하지만 보통 이곳 사람들은 아카데미 졸업 후 바로 결혼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보통이면 그 전에 사귀어보고 할 거 다해본다고 한다. 내가 질문하자 황태자는 동그란 눈으로 잠시 고민했다.
그는 잠시 우물거리며 음식을 씹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샐러드를 먹으며 나를 바라보는 순진무구한 황태자를 보며 어렸을 때 동물원에서 본 아기 사슴 같다고 생각해 버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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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섡작 ㅇ실ㅎㄱㄷ화ㄴ?
댓글 수가 갑자기 많아지며 하는 Q&A
1: 역하렘이라는데 진짜예요? 친한 남자들이 많아서 역하렘인거예요?
A:사실 막 연애 쪽에서 역하렘이라기보단 호감부분 쪽에서 역하렘 입니다. 친함과 연애사이의 역하렘이랄까요? 여주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예정이에요.
2: 슈슈는 어렸을 때 헤스티아와 거리를 두지 않았나요? 그럼 본편과도 멀어져서 연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A: 본편에서 설명했지만, 슈슈는 헤스티아를 동생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생을 자각한 시점부터 이미 헤스티아는 가족과 같이 되어버려서 슈슈 성격상 거리를 두는 게 싫었을 겁니다.
투베 기념 남주 리스트 + 초간단 프로필 :
(등장 순서)
1.황태자 하일리 오르드 이아네스 (등장) : 흑발에 붉은 눈 고양이+사슴상
2.후작 영식 (등장 예정) : 금발에 녹안, 싸대기+악당 상
3.상인 아들 (등장 예정) : 밝은 주황머리에 은안, 얍삽+비열상
4.소공자 (등장 예정) : 짙은 은발에 보석안, 순수+계략 상
슈라이나 웨스트 : 남작 영애, 주황머리 다홍눈
헤스티아 플라위드 : 백작 영애, 분홍 머리 초록눈
제가 좀 급하게 쓰다보니 어색 부분이 많습니다. 지적 너무 감사하고 피드백은 즉각 오늘 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폴더가이스트님 지금 발견했는데 후쿠 감사합니다.
+저녁쯤에 한편 더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