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6 상단주 아들은 싫습니다. =========================
나는 안방 쪽으로 걸어가며 흥얼거렸다. 흥얼거리는 노래 제목은 '꼭 꼭 숨어라' 였다.
"어머니이??"
내가 어머니를 부르자 안방에서 후다닥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엄마~"
나는 노크를 하고 안방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지금은 아버지가 일하시러 가고 어머니만 남은 상황이었다. 눈동자를 굴리며 방 안을 보니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연하늘색 머리카락에 다홍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아무렇지 않은 척 의자에 앉아있다. 여인은 우리 어머니인 '레베카 웨스트' 였다. 태연한 척하지만 당황하고 있는 게 다 보였다. 어머니는 거꾸로 들고 있는 소설 책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호호, 슈슈. 무슨 일이니? 엄마 지금 좀 바쁜데?"
"어머니 일정 확인해 봤어요. 시간 비잖아요 지금."
내가 문을 닫고 어머니에게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내 시선을 피하셨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 앞으로 가서 앉자 어머니는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아, 맞다! 슈슈. 이 어미가 널 위해 사놓은 게 있었는데!"
어머니는 어디론가 가더니 옷장에서 내 몸에 맞을 법한 주황색 드레스를 꺼내셨다. 주황색 드레스에는 무려 보석이 박혀있었다. 나는 설마 저 드레스를 나 주려고 사신건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쨔안! 우리 딸래미랑 너무 잘 어울려서 엄마가 사뒀지!"
우리 어머니께서는 주황색의 빛나는 드레스를 내 품에 안겨줬다. 보석이 얼마나 달려있는 건지 드레스를 바라보는 내 눈이 부셨다. 나는 이 드레스 또한 영수증 내용에 있었기 때문에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옷뿐만 아니라 내 형제들 옷, 아버지 옷들도 영수증 내용에 적혀있다. 물론 어머니의 옷이 제일 많다.
나는 드레스를 받고도 아무 말도 않고 어머니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제 발이 저리신 건지 갑자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일단 날 위해 선물한 것 자체는 고맙다고 했다. 내가 감사를 말하자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지기에 나는 어머니의 앞에 영수증 더미를 꺼냈다.
영수증을 보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했다가 표정이 어두워졌다.
"호호... 내가 이렇게 많이 썼던가?"
어머니는 당황한 표정으로 영수증을 확인하셨다. 정말로 이만큼 쓴지도 모르고 돈을 사용한 것 같다. 그냥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그냥 집으신 거겠지.
"제가 아카데미로 떠나기 전까지는 양호했잖아요. 나아지고 있던 중이었잖아요. 어머니를 믿어서 저는 사생활을 존중해 드렸어요."
"슈슈..."
"저번에 어머니께서 '나는 어린 슈라이나가 걱정할 정도로 한심한 엄마가 아니야' 하며 자신만만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
"슈슈, 그건!"
어머니는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무시고 잠시 생각하시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미가 미안하구나. 슈슈 너랑 하룬이 가고 외로워서 쇼핑으로 풀었던 것 같아. 나도 내 지출이 고쳐진 줄 알았는데 정신줄을 놓으니 계속 사게 되더구나."
확실히 어머니는 내가 아카데미로 떠나기 전까지 정말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아무 소리도 못하는 것이다. 침울해진 어머니에 나는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어머니에게 쇼핑은 다이어트 중의 폭식같은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까이 가서 손을 잡았다.
"저는 딸로서 어머니의 자존심을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어찌 됐건 딸에게 잔소리를 들으면 없던 자존심도 깎이니까요. 심지어 어머니는 일단 아버지와 결혼하시기 전, 공작가의 영애셨으니까 더욱. "
"슈슈..."
"근데 어머니, 어머니의 지출이 절 너무 무섭게 만들어요."
어머니가 아무말도 없자 나는 한숨을 쉬듯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절 사랑하세요?"
"당연하지! 슈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머니, 저는 이런 보석 달린 드레스보다, 사치스러운 물건보다, 우리 가족이 한군데 모여서 소소하더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요. 비싸지 않은 물건들을 사더라도 어머니랑 팔짱을 끼며 상점가를 거닐 수 있는 게 더 좋아요."
어머니도 그러신가요. 내가 울 듯 인상을 쓰며 물어보자 어머니는 왠지 충격먹은 얼굴을 하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웨스트가는 현재 하락세에 있어요. 수익이 줄어가는데 우리 가문의 저축도 줄어가고 있죠. 돈이 없는 가문의 영애의 마지막이 어떤지는 어머니도 알고 계시잖아요. 저는 아마 돈 많은 집안에 팔려가듯 결혼하게 되겠죠. 저 뿐만 아니라 우리 삼남매 모두요."
"팔려간다니,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엄마는 슈슈를 절대로 이상한 사람한테 보내지 않는 단다. 내가 절대로 그럴 일은 만들지 않을 거란다."
어머니가 불안해 하는 나를 껴안으며 언성을 높였다. 말이라도 그런 소리를 하면 안돼!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어머니는 정말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아직 잘 몰랐다.
나는 나를 토닥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을 내 얼굴 근처로 가져다 대며 난 최대한 울먹여보도록 노력했다.
"엄마아.. 나 돼지 귀족한테 팔리듯 결혼하기 싫어어."
"!!슈슈"
"나 무서워어... 엄마 나 진짜 무서워어...불안하단 말이야..."
크윽, 수치스럽다.
나는 있는 눈물 없는 눈물 다 짜서 최대한 엄마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어머니에게는 잔소리도 이제 안 먹히고, 화를 내도 안 먹히고 남은 건 엄마로서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기 까지 싫었지만 어쩔 수없다. 이 곳의 어머니는 전생의 어머니만큼 나를 아꼈다. 나 또한 어머니를 사랑해서 웬만한 건 존중해주려 했지만 이건 아니다. 우리 집안 다 말아먹게 생겼다.
어머니는 분명히 처음 봤을 내 울음에 엄청난 표정을 지으셨다. 안절부절 못하시면서 내 눈물을 닦아주셨다. 어머니는 정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동안 샀던 걸 모두 환불하자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됐다, 이로서 지출의 반 정도는 줄어든 것이다. 영수증도 모두 있고 아직 뜯지 않은 물품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어머니는 많은 물품을 환불했지만 내 드레스만은 안된다며 고집하셨다. 나도 기껏 누군가가 날 생각해서 산 물건을 매정하게 되팔아버리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내 돈으로 샀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급한 불은 껐지만 어머니의 낭비벽이 언제 다시 터질지 몰랐기 때문에 조금 많이 불안하다. 이제 변할 거라는 어머니의 말은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어머니에게 약했다. 전생에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셔서 그런지 이 곳에서의 부모님은 너무 소중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지킬 건 지켜야지. 굳이 긍정적이게 생각하자면, 그래도 손실을 내 선 안에서 막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나중에 아버지에게도 비슷한 충격요법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 * *
루나아샤 상단과의 미팅이 오늘 오후쯤 잡혀있었다.
나는 내 모습을 성인으로 바꿔주는 마법 로브를 입고 수도 쪽 시내로 향했다. 수도의 시내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사람들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루나아샤 상단의 본부였다. 루나아샤 상단을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이 정문에 박힌 건물이 보인다. 내 지도가 잘 못되지 않았더라면 여기가 본부라는 것이 확실했다. 루나아샤 상단은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관광하러 멀리서 온다고도 한다. 그리고 현재는 특별 코스를 만들어 관광비까지 받고 있는 상단이다. 정말 돈을 놀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나는 입구 쪽 사람에게 내 가명을 말했다. 입구 쪽을 지키고 있던 고용인이 내 이름을 듣자마자 나를 뒷 건물로 데리고 갔다.
'그나저나 정말 돈냄새가 심한 곳이네'
나는 뒷 건물쪽으로 향하며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정원들이 정리가 퍽 잘되어있다. 분수대도 있었고 야외 소규모 게임장도 있다. 대충 들려오는 소문을 듣자하니, 루나아샤 상단에 입사하는 사람들은 대우가 매우 좋다고 들었다. 회사 안에 회사원들을 위한 간식과 오락은 모두 셋팅이 되어있고 출퇴근도 자유로운 아주 진보적인 회사라고 한다. 대신 실적 위주로, 일정 기간동안 큰 실적이 없으면 바로 해고라고 한다.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지만 들어가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들었다. 그나저나 정말 이런 시대에서 그렇게 사원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누군진 몰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궁금해봤자 곧 만나겠지만.
입구 쪽에 있던 고용인의 안내를 따라가보니 그는 뒷건물의 작은 방에 날 데려다줬다. 작은 방 안에는 좀 넓은 책상 한 개와 마주보는 의자 두 개가 있다. 책상 위에는 나를 위한 차와 작은 간식이 준비되어 있다.
"그럼 대리인께서 나오시기 전까지 간식이라도 먹으며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남자는 나를 방에 혼자 두고 나갔다. 먹으라고 준비되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주는 음식을 덥석 덥석 받아먹으면 안된다. 믿을 수 있는 큰 상단이긴 하나, 나는 일단 경계했다.
이 작은 방은 상당히 더웠기에 나는 머리 부분에 땀이 자꾸 찼다. 로브의 후드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웠다. 후드를 벗어도 어차피 변장한 모습이어서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2겹으로 내 정체를 숨기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심지어 변장한 내 어른 모습이라고 해도 내 변장 전 모습에서 단순한 성숙해진 모습이기 때문에 살짝 위험하다. 모습을 아예 바꾸고 싶었지만 그러면 마력 양이 딸려 오래 유지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정수리 부분이 너무 더워 오랫동안 후드를 벗을까 말까 고민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벗어 땀을 식히고 재빨리 후드를 다시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는 후드를 벗어 잠시 시원한 공기를 즐겼다. 나는 마음 속으로 급한 십 초를 세며 빨리 다시 후드를 쓸 준비를 했다. 맞은편 거울을 바라보니 주황색 머리카락의 다 자란 성숙한 아가씨가 보인다.
나는 거울 속 변장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후드를 쓰려고 했다.
쓰려고 했다.
이제 막 쓰려고 했단 말이야, 그러나.
"아, 오셨군요. 슈니발렌님?"
방안에 갑자기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방안에 들어온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너무 놀라, 쓰던 후드를 더 푹 눌러 입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미 내 얼굴이 저 사람에게 훤히 노출되었다는 걸. 노린 건가 싶어 후회했다. 아무래도 요새 평화롭다보니 내가 경계심이 줄어든 것 같다. 바보 같은.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했다. 루나아샤 상단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나는 바라보았다.
남자는 계속 웃고 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어 얕잡아볼 수도 있겠지만 은근한 위험한 냄새가 났다. 나와 같은 주황색 머리카락에 웃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은색 눈동자였다. 그는 큰 상단의 대리인 역할을 하기에 아직 조금 어려보이긴 했다. 남자보다는 소년이었다. 앳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원래 나보다는 나이가 한 두살 정도 많아보였다.
그나저나 쓸데없이 청순하게 잘생겼다. 나는 소설 속 남주들 이외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남주들 중 하나라는 것을 몰랐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니 그의 목덜미 쪽에 루나아샤를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의 작은 문신이 보였다. 그러나 문신에 옅은 마법이 느껴지는 걸 보니 문신보다는 어떤 표식 같다.
내가 그의 인사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자 주황머리 남자는 의자를 끌어 내 앞에 앉았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나도 대충 손을 내밀어줬다. 내가 여자임을 알면서도 악수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했다. 악수는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상대로 동등한 입장으로 봐준다는 의미로 하는 것이다.
주황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브네스 루나아샤입니다. 이렇게 만남에 응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나는 아, 그렇구나 하다가 그의 이름에 깜짝 놀랐다. 뭐, 잠시만. 얘가 이브네스야? 그 소설에 나오는 상단주 아들? 다른 남자들과 좀 차별 되는 잘생김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정말 소설 속 남주들 중 하나라니. 코리와 하일과 견줄 수 있는 이 다른 느낌의 잘생김이 슬슬 납득이 갔다.
그나저나 갑작스럽게 남주 후보중 하나인 이브네스라니. 나는 소설 속에서 그의 성격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 골똘히 고민하자 이브네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그 유명하신 슈니발렌님이 이렇게 예쁜 누님이라니. 놀랐습니다. 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누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이브네스가 예쁘게 약은 웃음을 지으며 부탁한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된다고 난리쳤겠지만 나는 잘생긴 얼굴들에 면역이 생겨서 타격이 크지 않다. 나는 소설 속 그의 성격을 생각하다가 결국 떠오르지 않아 그냥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누님이라니, 실제론 내가 더 어리다고.
"의뢰가 뭔가요"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브네스가 빙긋 웃었다.
"누님은 질질 끌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듭니다."
누님이라고 하지 말라고 해도 누님이라고 부르는 그였다.
이브네스는 의뢰를 바로 말해주기 보단 계약서를 꺼냈다.
============================ 작품 후기 ============================
표지 어구로 아니란 말이야! 정말 순수한 팬아트임니다!
+위헤설한님 후원쿠폰 정말로 감사합니다. 님에겐 무려 제 하트를 쏴드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