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외전 3: 이브네스 루나아샤 =========================
외전 3: 이브의 평화로운 나날
나는 학교에서 아침으로 나오는 생과일 쥬스를 챙기고 교실로 들어갔다.
언제나 새벽 쯤에 저절로 눈이 떠지기 때문에 등교도 언제나 이른 시간에 한다. 때문에 과일 쥬스를 마시며 교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나밖에 없다. 조용한 게 마음에 든다.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최근에 공부를 시작했다. 착실한 학생이 목표다. 상단 일들도 어느정도 마무리 단계고,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믿을 만한 사람을 채용했다. 적은 일만 해도 알아서 돈이 돈주머니에 쌓인다. 때문에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이 시간이었다.
이토록 할 일이 없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 공부라도 다시 해볼 생각이다. 솔직히 웬만한 필수 내용은 높은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가 통해야 하기 때문에 다 알고 있었다. 역사학이나 지리 같은 건 공부 안 해도 아는데 수학이라던지 마법 기초 지식이라던지 그런건 학습이 안되어있다.
시간도 많으니 차근차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나 이 이른 아침 시간에 바로 책을 꺼내 공부하진 않았다.
아침 일찍 교실에 혼자 있을 때면 언제나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게 있다.
기분 좋은 새 날을 시작하는 의식이다.
주머니에서 영상 기록구를 꺼냈다.
교실에 나 혼자 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영상구를 재생했다.
[모두 소리벗고 팬티 질러!!!]
영상구는 춤을 추는 슈슈를 보여주고 있었다. 슈슈는 가는 팔 다리를 휘적이며 박력있게 리듬을 탄다. 우스꽝스러운 춤이 분명했는데 슈슈는 리듬을 잘 타 이상하게도 멋있었다. 대충 추는 듯 것 같아도 힘이 넘친다. 사람들이 그런 슈슈를 보며 환호했다.
나는 턱을 괴며 과일 쥬스를 홀짝였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슈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춤을 추면서 얼굴이 새빨개져있다. 울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춘다. 바람에 날리는 깃발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다가 이상한 스텝을 밟으며 화려하게 움직였다. 그런 춤을 추는 슈슈는 당장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추고 있었다.
내 아침 일과의 시작은 이 영상을 보면서 시작된다. 정말 어렵게 구했다. 어쩌다가 슈슈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사람이 있었는데, 퍼진 원본과 사본을 모두 없애고 내 거 하나만 빼돌렸다.
그나저나, 이 때 정말 충격이었지.
춤을 추는 슈슈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그 때가 한참 상단주 일 때문에 제일 머리가 아팠을 때였다. 실실 웃는 것도 지겹고 비위 맞추는 것도 지겹고 이제 정말 모든 게 끝을 보이고 있어 정말 열심히 달렸던 때였다. 솔직히 상단을 나오는 계획이 거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들던 감정은 희망보다도 지겨움이었다. 분노와 체념과 증오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지겨움.
상단주는 파멸의 길을 걷고 있었고, 어찌 되었든 그는 나에게 질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그를 아래로 끌어내릴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상단주를 끌어내릴 계획이 성공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이상하게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유년기 때부터 상단주에게 시달린 모든 일들이 떠오르며 머리가 아파오고 숨이 턱 턱 막힌다. 정말 나오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감정과 정말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나를 옭아매었다.
그러다가 만난게 슈라이나였다.
계획 진행에 마법사가 필수였지만, 잘 알려진 고위 마법사들은 전부 상단주의 편이어서 한동안 내 계획에 보탬이 되어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상단주가 나에게 슈니발렌에 대해 캐내라고 했고 나는 슈니발렌이 우리 학교의 1학년의 어린 여자아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1학년이라는 애는 내가 이미 얼굴을 익혀둔 아이였다. 1학년에 헤스티아라고 분홍색 머리카락 여자아이가 있었다. 예쁘게 생기고 왠지 안 시끄러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분홍색 여자아이 옆에는 언제나 주황색 머리카락의 무표정한 아이가 있었는데 걔가 바로 슈니발렌이었던 것이다.
주황색 머리카락에 귀염성 하나 없는 작은 여자아이.
동태눈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징도 없어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슈라이나에 대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놀라웠다. 안 그렇게 보이는 데 일단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슈니발렌으로서도 그렇고 슈라이나로서도 그렇고 그냥 모두 엄청났다.
학교에서의 슈라이나의 기록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동아리의 프로젝트로 아우그란 산의 몬스터 서식지를 그대로 모방해 그걸 보고서로 만든다는 발상도 기가 막혔고 모든 과목 1등에 마법에 검술까지 병행한다. 일단 재능이 넘쳐흐르는 것과 머리가 좋은 것은 그렇다 치자.
슈니발렌으로서의 그녀도 놀라웠다. 상단주를 그렇게 골머리 썩게 만든 것도 대단한데 빠져나갈 구멍도 확실하게 만들었다. 일처리하는 것도 깔끔하고 완벽에 가깝게 했다. 어린 나이고 괜찮은 가문의 귀족영애면서 왜 굳이 그렇게 돈을 버는가 싶더니, 집안의 적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웨스트 가문은 슈슈 덕분에 현재까지 괜찮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인지 조숙한 아이였다.
그래서 슈라이나가 내 계획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슈라이나는 예상대로 영리했기 때문에 처음 계약을 권할 때 내가 파 놓은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그녀는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춰 현명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급기야 내 본 모습까지 드러내면서 슈라이나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슈슈는 그럼에도 처음엔 경계하는 듯 싶었지만.
하여튼간에 슈슈는 그런 아이였다 .똑똑하고, 빈틈없고, 무뚝뚝하며 완벽한 아이. 같이 일을 할 때도 언제나 원하는 것의 이상의 결과를 보여줬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슈슈의 첫인상은 귀염성 없지만 유능한 아이였다. 돈을 주면 시키는 대로 하고, 그저 편리한 아이. 편리한 일꾼. 그게 다였다. 그녀가 어리고 뭐고 간에 상관없었다. 그래서 그냥 일을 시키려고 했지 정까지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슈슈의 완벽한 이미지는 깨져 간다.
나는 슈슈와 잠복 근무를 했던 많은 날중에 하나를 떠올려 본다.
그날은 슈슈에게 시선을 끌어달라는 부탁을 하던 날이었다. 대충 슈슈가 내 주변에서 넘어지는 척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말을 걸어 시선을 돌릴 줄 알았다.
근데 누가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출 줄 알았겠어. 게다가 의외로 그 얼굴에 춤꾼이었다. 한 두번 춰본 솜씨가 아니다. 웃긴 춤이었지만 말이다.
감정이 없을 것 같던 무표정인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저런 표정도 짓나 싶어 놀라웠다. 그렇게 까지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
춤을 다 추고 슈슈의 모습이 더 가관이었다.
웃기게도 탈진해서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여러모로 웃음이 나왔다. 도와주려 했더니 거부하고 혼자서 걸으려다가 넘어져 다리를 접질리고 만다. 짜증을 내며 표정을 구기는 슈슈의 모습이 웃겼다. 슈슈는 굉장히 그 때 상황이 불쾌했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처음 있던 작은 즐거움과 자극이었다.
처음으로 그 때 유쾌함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아팠던 머리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슈슈는 내 등에 업히면서도 나랑 닿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웃겼다. 결국은 포기하고 내 어깨에 팔을 둘러 나를 껴안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등에 닿은 슈슈가 따뜻해서 왠지 계속 그녀를 업고 싶었다.
탈진한 것 같자 닭꼬치를 사주니 내 등에 다 묻히면서 먹는다. 춤에 기력을 다 쓴 슈슈가 힘들어 보여 굳이 까먹은 듯한 클린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슬슬 허점을 보이는 슈슈가 제 나이 또래 같아서 귀여웠다.
이렇게 이득이 없이 누군가를 위해 맞춰준 건 처음이었고 오히려 거기서 내 만족을 느끼기 시작했다.
슈슈는 날이 가면 갈수록 경계를 풀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성격이 드러난다. 유능하지만 여러모로 허당이고 정이 많다. 후드를 벗을 때면 어린 그녀가 나오는 데 갑자기 작아지면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작은 머리에서 머리를 굴려 여러 큰 일을 해내는 게 대단하며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뭘 챙겨주기 시작했을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건강을 챙긴다며 뭘 만들어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위해 여러 가지를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왠지 간질거려서 하지 말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미움과 불신을 받으면서 살았지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해타산적인 행동에서 벗어난 건 좀 이질감이 있었다.
슈슈는 내 반응에 입을 비죽였다. 그러고선 내가 그동안 슈슈에게 선의를 베푼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슈슈의 말에 놀랐다. 나는 내가 여태껏 비열하고 남을 짓밟는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나 또한 누구를 위해서 그저 아끼는 마음으로 뭔 가를 해줄 수 있던 것이다. 평범한 일반 사람들처럼 말이다.
슈슈 앞에서는 잠시 내 아팠던 일들을 잊게 되었다.
팔 다리가 꺾여 고통에 울부짖고, 믿었던 친구들의 목을 조르고, 배신감에 헐떡이며 매일을 치열하게 살았던 나날들.
괴로움에 미쳐가지 않으려 오직 증오와 미움에 초점을 두고 삶을 살아갔던 나날들.
슈슈를 껴안으면, 그녀는 내 등을 토닥여줬다. 작은 몸이 품에 들어오고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변해간다. 가까이 붙어있으면 작게 심장소리도 들어온다. 가만히 있으면 슈슈의 안정적인 숨소리도 들린다. 불안하고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던 순간들이 모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슈슈의 주황색은 따뜻한 색이다. 그녀를 껴안으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작은 모닥불이 타닥 타닥 타오르며 몸 전체가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올려다보는 다홍색 무신경한 눈동자도 좋았고 이제는 자주 보여주는 미소도 너무 좋았다.
상단주를 파멸로 이끌 내 계획은 반쯤 실패로 돌아갔지만 난 의외로 괜찮았다. 상단주가 슈슈를 박제시켜 관상용으로 쓴다는 말에 나는 처음으로 감정 조절하는 것에 실패했다.이런 적이 없었다.
몇년 동안, 아니 평생동안 준비해 온일을 겨우 감정조절 때문에 실패한다니. 허무감에 빠졌지만 그래도 의외로 괜찮았다. 너무도 이상했다.
내가 죽는 줄 알고 슈슈가 눈물을 보였을 때,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보고서도 '아무렴 어때'라는 미친 생각을 하고 말았다.
평생을 상단주에 목을 매고 살던 내가 그에게 쓰는 시간이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단주를 죽이고 기분도 좋지도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좀 많이 피곤했고 돌아가서 쉬고 그 다음 날에 평소와 같이 슈슈랑 있고 싶었다.
그냥 상단주에게서 벗어나 내 일상을 살고 싶었다. 슈슈랑 같이 일할 때처럼 가끔은 노닥거리고 가끔은 일하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만족하며 살고 싶었다.
상단주가 없어지고 돈 버는 것은 숨 쉬는 것 보다 쉬웠다.
번 돈으로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
슈슈도 나와 계속 어울려주면 좋겠지만, 그 애가 과연 나한테 순순히 묶여줄까. 여러 방법이 있지만 어린 슈슈는 복잡한 관계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자라난 환경이 다른데 내가 슈슈를 질리게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어떠한 형태던지 상관없다. 그냥 슈슈랑 계속 잘 지내고 싶었다.
일단 오라버니 위치가 좋은 것 같아 노리고 있는 중인데 슈슈는 역시 쉽지 않다.
처음에는 날 줄곧 잘 받아주더니, 요즘은 앙칼진 주황색 털뭉치같다.
이제는 내 유일한 낙인 그녀와의 스킨쉽도 제한 받기 시작했다. 정말 여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강적이다.
과일쥬스를 다 마시자, 슈슈의 영상은 이미 끝나있었다. 다시 한번 돌려볼까 생각하다가 누군가가 교실로 들어오는 소리에 바로 영상을 껐다.
누군가 했더니 요즘 마음에 안 드는 하룬이다.
하룬은 나를 보자마자 경계를 올리며 무서워하더니 곧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나저나, 저런 면에서 은근히 슈라이나랑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슈슈가 저러는 게 사랑스럽다면 하룬은 그냥 더러웠다.
하룬은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보다가 내 옆에 있는 영상구를 가리킨다.
"뭐, 뭐 보고 있었냐."
하룬이 말을 더듬으며 말을 건다. 말해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좀 귀여운 거"
내 말에 하룬은 할 말이 떨어졌는지 입을 닫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친구들을 많이 끌고 다니는 성격인데 왠지 오늘은 혼자 있었다.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나에게 결투 신청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다가왔다.
"야! 이브네스, 너, 너! 내가 슈슈의 오빠니까! 그러니까..."
하룬을 노려보자 하룬은 괜히 또 겁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입을 연다.
"이익! 아무튼 내가 슈슈의 오빠니까! 넘보지 말라고!"
비장하게 다가오더니 할 말은 그게 다인 것 같다. 그래 알겠어. 근데 뭐라고 했니.
귀가 간지러워 귀를 잠시 만지다가 우연히 하룬이 차고 있는 검에 시선이 갔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에 큰 보석과 쓸데없는 세공이 들어가 있었다. 분명 저 검은 거의 작은 평민 가정의 집 한 채 값이었다. 놀라서 하룬을 바라보았다. 웨스트 가문은 저 정도의 검을 살 재력은 없었다. 저 검은 어디서 난 것인가.
내가 왠지 불길했다.
하룬에게 저 쓸데없이 비싼 검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 이거? 어머니가 사줘서 그냥 쓰고 있는 건데?"
"....."
"???"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한 표정이다.
웨스트 가문의 재정관리는 거의 전부 슈슈가 하고 있었다. 저 검 때문에 생긴 적자를 슈슈가 발로 뛰어서 없앴을 것이었다. 분노가 마음 깊숙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슈슈의 오빠면서, 저렇게 아무 것도 모를 수가 있나? 가문을 이을 사람으로서 저렇게 집안 재정에 관해 무관심할 수가 있나?
확실히 하룬은 아직 그런 것들을 신경 쓰기에 조금은 어린 나이이긴 하나, 아래로 슈슈가 있으니 말이 다르다.
슈슈의 오라버니가 될 정도면 적어도 내 위에 날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럴 사람은 없으니, 결론은 오빠는 나다.
"너 나한테 정신 교육 좀 받자"
그래도 저 안일하고 나태한 정신은 고칠 필요성은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 자각 시킬 필요는 있는 것 같다. 하룬이 장남으로서 움직여야 슈슈가 편해질 것이다. 하룬이 멍청해서 슈슈가 고생한 걸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다.
뇌 속을 모두 숫자와 계산과 환율과 확률로만 가득 채워주겠어.
하룬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내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 * *
나는 학교의 기숙사도 이용해 보았다. 보통은 기숙사를 쓰기도 전에 상단으로 돌아가 쓸일이 없었지만 학교 시설을 이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종종 쓰고 있었다.
가볍게 샤워하고 나와 침대에 앉았다.
내 룸메이트는 아직 오직 않았다. 박스로 된 짐만 조금 놓여있지,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기숙사의 문쪽을 바라보았다. 기숙사의 파란 문에는 방을 쓰는 학생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브네스 루나아샤(3)]
[스완하덴 블란치(1)]
1년 뒤에 편입한다면서 짐을 벌써 가져다 놓고 기숙사 신청도 한 걸 보니 어지간히 아카데미에 오고 싶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는데 룸메이트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소년을 떠올려보았다. 백발에 가까운 은발에 푸른 계열 보석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느낌의 소년이다. 예쁘게 생겨서 성격도 예쁠 것 같으나 스완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악랄한 사람이었다. 천사라는 별명이 있었지만 반대로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소악마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완하덴 소공자랑은 오랜 인연이 있다. 상단주의 명령으로 의도적으로 접근해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소공자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가식적인 웃음을 치우지 않는다면 한대 패요?" 라며 날 협박했다. 그 말에 나는 소공자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예상했다.
그리고 뭐,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 허물이 없었다.
소공자는 나와 거래를 하려고 했다. 소공자는 가식같은 건 싫어할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진심을 보여줬다.
스완은 처음부터 내 과거사를 알고 있었다. 당시에 해독할 수 없는 계약의 독이 골치가 아팠는데 스완은 그 해독제를 자신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내가 언제나 달고 살던 상처들을 모두 치료해줄 수 있는 포션을 제안했다.
그대신 스완은 나에게 주기적으로 정보를 요구했다. 무슨 정보냐고 하면, 대충 아카데미 내에서의 정보, 귀족들의 움직임 등등 제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정보였다.
그는 공작가를 잇기 위한 순례를 떠났음으로 제국에 자주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정보를 서류로 만들어 그에게 보냈다.
통신 영상구로 이야기하기엔 우리 둘 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서 안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룸메이트가 스완이라니. 스완에게서 오는 짐 다 빼놔야겠다.
============================ 작품 후기 ============================
곱등 곱등 (실수로 한편 날려서 멘탈 나간 곱등이)
+팬아트 감사합니다람쥐.
+엄청난 양의 후쿠를 주신 우리 곱등이의 후원자 검은 고양이님, 양자 물리학님, 그리고 mschjl님 감사합니다람쥐.
+다음화부턴 1년 뒤 입니다.
열린결말과 남주가 결국 있는 거냐 없는거냐에 관한 질문이 많았는데, 제가 앞서 말한 남주는 슈슈와 가장 엮일 가능성이 높은 애를 말하는 겁니다.
Q&A하려고 했는데 질문들이 너무 여기저기 있어서 오늘 댓글창에 다시 질문해주시면 정리해서 뜰에 꼭 올리겠습니다. 찾기 쉽도록 앞에 @ 붙여주세용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