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작교는 싫습니다-53화 (53/125)

00053 소꿉친구는 싫습니다 =========================

나는 헤스티아의 이 펜과 공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왜 까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어렸을 때 헤스티아의 열정이 담긴 공부 공책을 보고 뿌듯한 마음에 하루종일 행복했었던 것 같다.

공책의 틈 사이에 낀 이 만년필을 살 때가 얼핏 기억이 난다. 직접 상점을 찾아가서 헤스티아의 이름을 새겨달라고 부탁했었지. 돈을 모아서 필기감이 좋은 만년필로 샀던 것 같다.

흠집이 많이 난 헤스티아의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면서 공책을 바라보았다.

예쁜 글씨로 제국의 미래와 자신의 생각 같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있었다. 너무 자세히 읽으면 실례일 것 같아 대충 눈으로 훑어보니 주로 제국 내에서의 여성의 입지를 단단히 하여 하나의 인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 판도의 분석과 어떻게 개선해야 자신의 뜻을 이룰지에 대한 설명도 적혀 있었다.

살짝만 읽으려고 했는데 헤스티아의 글 쓰는 실력이 대단하다보니 계속 읽게 되었다. 대체로 분석과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이었지만 흡입력이 대단했다. 설명도 엄청 잘해놨고 관련 기사의 내용들도 포함시켜 자신의 생각을 강화했다. 헤스티아가 반대하는 파들에 대한 조금의 옹호와 개연성 있는 반박이 포함되어 더더욱 설득력있는 글이 되었다.

내가 엄청 어렸을 때 이 비슷한 공책을 봤었을 땐 솔직히 정말 형편없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연하다. 어렸을 때였으니까.

그러나 헤스티아는 계속 혼자서 매일 지금까지 이렇게 혼자 글을 쓰면서라도 자신의 울분과 생각을 풀고 있었다. 매일 뭔가를 한다는 것의 힘은 대단한 것인지, 현재 헤스티아는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집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있게 풀어내 흥미를 이끌고 그걸 남에게 설득시키는 능력이 아주 대단했다.

나는 그동안 혼자 글을 쓰며 꿈을 키웠을 헤스티아가 안타깝고 대견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혼자서 이렇게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로 내가 아쉽다고 생각한 건, 헤스티아가 키운 이 대단한 능력은 이 공책 안에서만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글들이 남들에게 많이 노출이 된다면 남에게 분명 많은 동기 부여와 계몽을 일으킬 것이었다. 신문에 작게라도 헤스티아의 글들이 나게 된다면 정말 좋을텐데.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것이 분명했다.

나는 헤스티아의 글들을 계속 읽으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헤스티아가 왜 머리가 빈건데. 헤스티아는 절대로 남의 손아귀에서 놀아줄 인재가 아니었다.오히려 반대면 모를까.

내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헤스티아는 불리한 상황에도 자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정말 멋진 애였다. 재능이 있으니 이제 기회만 온다면 헤스티아는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 그런 예감이 온다.

헤스티아가 잘 자란 것을 보니 머리카락이 뜯긴 내 설움이 좀 가시는 것 같다. 솔직히 뜯긴 것보다 내가 뜯겨준 것이지만 아직까지도 두피가 욱씬거리니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쾅!!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헤스티아의 방에 누군가 들어었다.

“미친년들!! 슈슈를 욕한 것도 모자라 머리카락을 뽑아!?”

누군가 했더니 헤스티아였다. 헤스티아의 손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색깔별로 쥐어져있었다.

그러나 헤스티아의 상태도 장난 아니었다. 긴 생머리의 머리카락이 내 것처럼 산발이 되었고 여기저기 손톱 생채기가 나있었다. 밥먹으러 간 줄 알았는데 누군가와 담판 짓고온 그녀다.

나는 헤스티아의 성난 목소리와 모습을 보고 잠시 그녀가 맞나 의심했다.

내가 있는 책상 자리는 침대에 가려진 구석자리여서 헤스티아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헤스티아는 내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채 방문을 쾅쾅 걷어차기 시작했다. 욕도 막 내뱉는다.

“한명 한명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서 산에 쳐넣어 도를 닦게 해야하는데 그런 애새끼들은!! ”

나는 믿을 수없어 눈을 비비고 다시 헤스티아를 바라보았다.

헤스티아에게서 스완하덴의 향기가 났다. 스완하덴이지만 좀 더 흥분한 버젼이랄까.

“아, 확 열이 오르네? 또 그 짜증나는 스완하덴을 불러야 하나? 말해버려? 확 이브네스한테도 꼰질러? 페어 맺어? 동맹 맺어? 으아아악!! 짜증나!!”

헤스티아는 바닥에 떨어진 쿠션을 발로 차다가 주먹으로 치다가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면서 쿠션을 방 이곳 저곳 내동댕이 친다. 쿠션에 누구를 대입하는 건지 계속 쌍욕을 내뱉으며 주먹을 날렸다.

헤스티아의 주먹은 그렇게 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빛만은 사람 한명 죽일 것 같았다.

“헤스티아, 뭐해?”

나는 나갈 타이밍을 못잡고 있다가 그냥 당당해지기로 했다. 계속 숨어있기 뭐해서 입을 열었다. 숨어있다가 헤스티아에게 들키면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내가 입을 열고 헤스티아를 바라보자, 헤스티아는 급하게 내 쪽을 쳐다보았다.

헤스티아는 분노의 주먹질을 하다가 나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헤스티아의 동공이 엄청 흔들리고 있었다.

“아, 어? 어. 음? 슈슈...? 언제부터... 아니, 그게.”

헤스티아는 당황했다.

“아, ㄱ, 그게 쿠션에 진드기가 있는 것 같아서 털고 있었지!”

“헤스티아, 괜찮아. 욕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헤스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헤스티아는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허둥지둥 약상자를 꺼내와서 내 두피 부분에 연고를 발라줬다. 나는 내 비어버린 두피가 왠지 슬펐다.

“슈슈... 많이 아팠지... 괜찮아?”

“방금 막 터진 일인데 네가 알고 있다니. 소문 한번 진짜 빠르네. 나보단 상대 애들을 걱정해야 하지 않아? 울컥해서 묵사발 내버렸는데.”

“힝... 그래도 슈슈의 몸에 상처가 난거잖아.”

그 딴 애들 내가 알게 뭐야. 헤스티아는 뒤이어 중얼거렸다.

헤스티아는 상황이 어떻고 간에 무조건 내 편이었다. 헤스티아는 나라면 무조건 믿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믿음을 보였다. 절대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일이 없었다.

“그, 슈슈. 방금 내 모습은 잊어줘...”

“왜? 화끈하고 좋던데.”

“아,아, 아니야아... 방금은 슈슈가 다쳤다길래 나도 모르게... 아깐 내가 아니었어어..”

헤스티아는 방금 욕하면서 들어온 모습을 들켰다는 게 수치스러웠던 것 같다. 괜찮다. 여러모로 새로운 모습이었으니까.

“아, 아깐 그게 네가 아니야?”

“으..으응.”

“그럼 네가 생각하는 진짜 너는 뭔데?”

“...그”

글쎄.

헤스티아는 이것 저것 물어보는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연고를 바르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나는 윽, 하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따갑다고! 아프다고!

나중에 도서관에 들어가서 발모에 관한 마법이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좀 잘건데, 너도 잘래?”

나는 자연스럽게 헤스티아의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점호 시간 전까지 잠시 잘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러모로 심란하고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럴 때는 코리처럼 잠을 자며 잊는 것이다.

내가 침대에 눕자 헤스티아도 졸래 졸래 따라와서 내 옆에 누웠다.

심란해보이는건 헤스티아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자려고 하다가 헤스티아가 날 너무 쳐다보고 있어서 잠에 빠질 수가 없었다.

문득 이렇게 누워있으니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헤스티아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졸래 졸래 잘 따랐다. 그녀는 나를 언니, 엄마 보듯 바라본다.

나는 손을 뻗어 헤스티아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헤스티아, 나는 솔직히 널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응”

“넌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가족같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자, 헤스티아는 숙쓰러워했다. 헤스티아는 곰곰히 생각하며 눈을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슈슈는 멋있고,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완벽하고... 여러모로 부럽고.”

헤스티아는 웬일로 솔직했다. 맨날 내가 하는 일마다 옳지 않다며 까내리기 바빴는데, 요새 바뀌어가는 것 같더니 말도 달라진다.

날 너무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헤스티아는 날 거의 우상 섬기듯 바라본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헤스티아.”

진심이었다.

헤스티아는 나라는 사람에게 숨고 있었다. 나를 통해 헤스티아는 보상받지 못한 자신의 노력을 위로 받았고 자신을 드러내게 될 때 날아오게 되는 화살들을 내 등 뒤에 숨어 피하고 싶어했다. 연기까지 하며 말이다. 그러면서 남몰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만큼 헤스티아는 나를 믿고 의지하며 기대고 있었다. 내가 다 막아줄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나도 어리고, 감정적이고, 때로는 한심하고 바보같은 선택을 하기도 해. 그래서 나는 솔직히 무서워.”

...아니야. 너는 안 그래. 헤스티아는 내 시선을 피하며 부정했다.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는 헤스티아였다.

“네가 날 의지하고 있는 만큼 나도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

“근데 난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헤스티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였다.

아까 여자애들이 헤스티아를 욕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남들의 눈에는 헤스티아 계속 연기하는 이상 그녀가 여우고, 머리가 빈 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아이들의 말하는 싸가지는 확실히 쳐맞을 법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그 일에 있어서 책임을 느꼈다. 헤스티아가 나에게 계속 의지하며 조신한 척 하려는 이유가 내가 너무 헤스티아를 부둥 부둥 감싸줬기 때문이었다.

난 헤스티아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헤스티아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있잖아 헤스티아. 나는 네가 이루고 싶어하는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없어. 너랑 나랑은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게 다르거든. 사실 다 달라.”

그저 내 의식주만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인 나와 다르게 헤스티아는 제국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했다. 아까 공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리고 그 것은 단순히 어린애의 막연한 목표가 아니었다. 헤스티아가 이렇게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 노력과 실천이 헤스티아가 모르는 자신의 그릇이었다. 나는 그 그릇을 절대로 채워줄 수 없었다. 헤스티아는 그 목표를 자신이 이루고 싶어하는 동시에 용기가 없어 실천은 못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내가 이뤄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똑같이 공부하고 자라난다고 해도 서로 만족의 의미도 다르고 바라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헤스티아가 나에게만 맞춰 산다면 절대로 자신의 만족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너한테 네가 생각하는 '진짜 너'가 뭐냐고 물어봤었지?”

졸음따윈 이제 날아갔다. 나는 헤스티아의 혼란스러워하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나도 사실 그걸 못찾고 있어. 살다보면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은 계속 바뀌어. 추구하는 바도 바뀌고. 그래서 계속 스스로 찾아나가야 될 수밖에 없는거야. ”

참고로 아직까진 내 목표는 공무원이다. 황실 소속 제 1 기사단의 마법 검사. 일정한 고액의 수입이 들어오고 아주 좋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간단하고 저렴하다. 헤스티아와 다르게 말이다.

“나한테 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너와 달리 굉장히 나만을 위해 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네 바람을 이뤄줄 능력이 없거든. 정말로 늦어버려서 후회하기 전에 너 스스로 찾아나가봐.”

이쯤 되면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열심히 헤스티아에게 자립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헤스티아는 내 등을 쫓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치졸한 나와 다르게 헤스티아는 꿈도 크다.

“내가 언제나 응원한다고 했지?”

나는 가만히 멍때리며 생각에 잠긴 헤스티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누웠던 상체를 일으켰다.

난 책상 위에 손을 뻗어 내가 옛날에 헤스티아에게 준 펜을 잡았다.

난 그 펜을 누워있는 헤스티아의 손에 쥐어줬다.

“자, 이거. 다시 선물하는 거야.”

말하다보니 슬슬 점호 시간에 다다랐기에 난 침대에서 일어섰다. 헤이즐이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가려고 하니까 헤스티아가 펜을 꼬옥 쥐고 나에게 달려와 그대로 껴안았다.

헤스티아는 인상을 쓰며 눈을 감고 울고 있었다.

“슈슈... 난 너를 벗어나기가 너무 무서워. 너처럼 당당해지는 게 무섭단 말이야... 그냥 나 이대로 살면 안되는 거야?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어리광만 부리면 안돼? ”

눈물을 방울 방울 흘리는 헤스티아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줬다.

“나한테 물어봤자 난 해줄 말이 없어. 네 선택이니까.”

울고 있는 헤스티아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온다. 헤스티아의 집안 사정은 헤스티아가 말해주기 싫어해서 잘 모른다. 그냥 헤스티아의 아버지가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인 것을 알곤 있다.

난 헤스티아의 상황을 모르기에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난 헤스티아가 용기를 내서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했다.

“헤스티아, 나도 여러모로 부족해서 옆에서 지지해주고 의지할 수있는 사람이 필요해. 난 그게 네가 됐으면 좋겠어.”

헤스티아는 훌쩍거리며 잠시 바닥을 바라보았다. “의지가 돼? 내가?” 하며 중얼거리는 헤스티아였다.

헤스티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왠지 헤스티아의 눈빛이 아까보다 좀 더 강하게 변한 것 같다.

*  *  *

그 다음날 나는 인기스타가 되어있었다.

인기 스타보다는 화제의 중심이 되어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화제의 중심.

물건을 차며 그들을 위협하지 않고 조용히 대화와 욕으로 풀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울컥해버려서 걔네들을 너무 신나게 패버렸다. 슈라이나, 조용히 산다면서 아주 매를 번다.

이제 별명중에 쌈닭도 생기지 않았을까 조심히 추측해본다. 아아아 내 인생.

그 때 하필 머리카락이 사물함에 걸려가지고. 솔직히 헤스티아가 예쁜 이상 질투하는 여자애들이 있다면 뒷담화도 당연히 있다. 화를 내는 건 당연하지만 아직 검술 초보인 약자를 상대로 주먹 다짐은 조금 아니었던 것 같다. 근데 나도 이사벨한테 몇 대 맞았다고.

이렇게 나도 혈기를 못감추는 걸 보면 청춘이려나. 아 뭐래. 나도 중이병인가.

난 아무도 없을 교실을 기대하며 아침 일찍 옐로우 반 교실로 향했다.

그러나 내 예상을 깨고 옐로우 반에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헤스티아와 그리고 어제 나와 한판 했던 검술부 여자애들이었다.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었다. 헤스티아가 무려 그 여자애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 아이들의 사과를 받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성격이 더러운 이사벨에게서도 말이다.

왠진 모르겠지만 검술부 여자애들의 머리에는 나처럼 땜빵이 하나씩 나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는 않지만 잘 풀린 것 같다. 서로 미워하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갑자기 내 땜빵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몰래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검술부 여자애들 중에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애들 중 한명이 이리 오라고 하길래 나는 발걸음을 옮겨 그 쪽 무리에게 다가갔다.

헤스티아 빼고 나 포함 모든 검술부 여자아이들의 머리에는 땜빵이 있어서 솔직히 조금 웃겼다. 모여있으니 더욱 웃긴 것 같다. 이로써 2학년의 모든 검술부 여학생들은 땜빵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통일감 있고 좋았다.

난 어제 이사벨이 나서는 걸 막은 검술부 여자애에게 물어봤다.

“너네 머리 왜 그러냐. 난 너네 머리카락은 지켜준 것 같은데.”

내 말에 그 여자아이는 조용히 헤스티아를 쳐다보았다. 내가 헤스티아를 쳐다보니 헤스티아는 평소와 같은 백치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헤스티아는 나를 바라보다가 옆에 앉아있는 이사벨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사벨이 헤스티아를 노려보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어제는 너네가 너무 부러워서 그런 거니까!! 너네는 우리 학년에서 제일 잘나가잖아!!”

이사벨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했다.

“슈라이나 네 욕을 한 건 미안해. 넌 네 욕은 신경도 안쓰는 것 같지만 말이야. 다 잘하는 네가 질투나고 그 옆에 예쁜 헤스티아도 짜증나고. 하일리님같은 분들이 널 아끼는 것도 엄청 부러웠고.”

이사벨이 아닌 아이들도 인상을 쓰며 나에게 사과했다.

근데 왜 내가 사과받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내 욕은 얼마 나오지도 않았고 최대 피해자는 헤스티아였는데 말이다. 내가 오기 전에 알아서 서로 푼건가 싶다.

솔직히 아직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사벨은 나에게 사과를 하더니 헤스티아를 홱 쳐다보았다.

“이익, 근데 헤스티아 네가 머리가 빈 건 사실이야! 너 진짜 짜증난다고!”

헤스티아는 내 눈치를 보며 웃는 채로 이사벨의 등을 세게 한번 쳤다.

쫘악, 하며 등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사벨은 따끔거리는 등을 만지며 헤스티아를 노려보았다. 이사벨은 헤스티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사실, 어제 슈라이나 너랑 그렇게 싸우고 마음이 편하진 않았어. 여기 여자애들 대부분 너를 동경해서 검술부에 지원했거든. 네가 너무 잘나다 보니까 나중엔 동경이 질투로 바뀌었지만 말이야.”

분명 헤스티아의 일로 싸운 것 같지만 걔네들은 자신들이 나를 욕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난 그 일을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헤스티아가 잠잠히 이사벨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의 멱살 쪽을 잡았다.

“야, 네가 슈슈를 아무리 동경해도 슈슈는 내꺼야.”

헤스티아는 표정을 구기며 이사벨의 말에 성질을 냈다. 나 저런 헤스티아는 정말 처음 본다.

이사벨은 헤스티아의 태세전환에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떨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 이중인격자야!! 너네 우정에 내가 진짜 치가 떨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헤스티아가 잘 마무리한 것 같다.

같은 검술부 여자애들은 나를 돌아가면서 한번씩 껴안더니 내 욕하고 때려서 미안하다고 한마디씩 남겼다.나도 일단 분위기를 타 나 또한 때려서 미안하다고 했다.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 최대 피해자인 줄 알았던 헤스티아는 여자애들을 부리고 있었고 뭣 때문에 싸운 건지 망각한 것 같은 검술부 여자애들은 나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좋게 받아들여야 되는 거 맞지? 헤스티아는 걔네들이 자신을 욕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고, 그걸 모두 다 잘 푼 것 같았다.

“나 발모 마법 아는데, 땜빵에서 벗어날 사람~”

어쨌건 난 일이 잘 마무리 된 기념으로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내 말에 검술부 여자애들이 나를 섬기기 시작했다.

나는 야심차게 마법진을 그리고 땜빵에 있는 부분에 마법을 부여했다.

그러나 내가 마법진을 그리는 도중 잠시 딴 생각을 해버리는 바람에 마법진에 오류가 나버리고 말았다.

여자애들과 나는 땜빵이 있는 부분에 브로콜리가 자라고 말았다.

나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쫓아오는 검술부 여자애들에게서 도망쳤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예약 작품입니다.

<연재 공지>

1일~2일정도 못올 것 같습니다. 내일이랑 내일 모레 시험을 보러 좀 멀리 떠나서...이번 편이 마지막 예약 작품이고... (먼산)

하,하루는 봐주세염.... 삉<방구

+왜 작품 예약은 있는데 댓글 1빠 예약은 없습니까. ㅂㄷㅂㄷ 누가 될지는 몰라도 오늘 일빠는 그날 하루종일 쾌변하기 바래요.

+헤스티아는 사실 자신 욕이랑 슈슈 욕이랑 다 듣고 있었습니다.

+헤스티아 편은 한편 남았고 그 뒤엔 외전이 남았고 그 다음엔 마지막 챕터입니다.

+"오작교는 싫습니다" 챕터에 들어가면 슈슈는 시니어가 되고, 남주들이 자신의 마음을 슬슬 깨닫고 선덕 선덕하기 시작합니다. 이 챕터에 들어가면 소개글에 나오는 내용이 나옵니다.

골뱅이 질문들은 잘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답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싸라함다 독자님들. 발가락 쫘압 쭈압.(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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