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작교는 싫습니다-61화 (61/125)

00061 오작교는 싫습니다 : 스쿨 엔드 파티 =========================

학교가 잘 다듬은 길을 걸으며 나는 연회장쪽으로 향했다.

파티 분위기를 내려고 학교측에서는 각양각색의 빛 마법구들을 하늘에 띄워 절경을 만들었다. 헤이즐이 빌려준 반짝거리는 구두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걸을 때마다 비쳐진 내 얼굴이 구두의 굴곡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연회장에 도착하니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파티가 시작한지 한참 지나 간식이 별로 없을 것 같았지만 다행히 학교에서는 준비를 많이 해둔 것 같다. 쿠키는 기본에 마카롱같은 고급진 디저트도 있었고 간단한 카나페도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부른 오케스트라가 기똥찬 음색을 뽑아내며 연회장의 분위기를 달궜다.연회장의 한가운데에는 이미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왈츠 음악이 홀에 울려퍼지고 학생들은 서로 원하는 상대와 춤을 춘다.

나는 혹시 헤스티아가 춤을 추고 있을까 문득 춤추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뒀지만 헤스티아는 아직 춤을 추진 않은 것 같다.

몽실몽실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테라스쪽을 바라보니 하룬과 헤스티아가 사진구 같은 걸 공유하며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헤스티아에게 다가가려다가 둘의 분위기가 좋아 그냥 내버려뒀다.

원래 커플이라면 무조건 방해하고 보는게 상책이지만 둘이 잘돼서 헤스티아가 우리쪽으로 넘어오면 완전 좋다.  헤스티아가 하룬이랑 잘되면 시누이 사이가 되는 거니 그야말로 만세다.

극진하게 대접해줄 수 있으니 제발 와줬으면. 소설 속 엑스트라 남주였던 우리 오라버니를 응원했다. 다른 메인 남주들은 요새 연애보단 실력을 키우는 것 같으니 이 기회에 하룬 네가 낚아채라고! 하룬이라면 오작교 역할을 기꺼이 해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소를 애써 억누르며 간식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카롱의 영롱한 자태를 보며 군침을 삼키자니 불현듯 그 뒤의 작은 소파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하일리가 보였다. 하일리는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답게 갖춰 입고 나왔다. 검을 오래 잡은 아이다 보니 옷태가 장난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어린 느낌은 많이 사라져 있었고 많이 여물어 성숙한 분위기를 냈다. 짙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의 붉은 눈동자가 예쁘게 빛이 난다.

하일리는 음료수를 홀짝이며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언제나 활달한 하일리가 살짝 지루해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기가 없는 얼굴을 보인다.

그나저나 하일리는 보이는데 코리나 스완은 연회장에 안 보인다. 이브는 시니어니까 불참이려나?

헤스티아는 바쁘고 난 파트너가 없고 저기 무료해보이는 하일리가 있다. 하일리, 너 어쩔 수 없지만 나랑 놀아줘야겠다.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하일리에게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내 손에는 마카롱과 초콜릿이 가득이었다.

“왜 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요?”

하일리는 멀거니 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말을 걸자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슈라이나? 너 어디에..!”

하일리는 내 목소리를 알아보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그였지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있었다.

“....??”

하일리는 안 그래도 큰 붉은색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동공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말했는데,그게, 먼저 스완하덴이 너가 갔다고?”

“....네?”

“음?”

하일리는 문장 순서를 뒤죽박죽 뒤섞어서 말했다.정신차려 이놈아, 왜 말을 제대로 못 해. 입을 연 하일리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인상을 썼다.

“나 방금 말 제대로 했나?”

“아니요.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나도 안다.”

알면서 왜 물어봐.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하일리의 모습에 나는 수상함을 느꼈다. 그나저나 하일리도 혼자인 걸 보니 파트너가 없는 것 같았다. 하일리는 정말로 잘생겨서 파트너쯤이야 쉽게 얻을 것 같았는데 왜 없지? 키도 크고 성격도 괜찮고 나름 귀여운데. 헤스티아가 아니어도 하일리를 쫓는 여자아이들은 많았다.

스완이나 코리의 파트너가 문득 궁금해졌다. 코리는 사나운 분위기 때문에 선뜻 말을 거는 여자애들이 없을 것 같지만 스완은 혹시 모른다. 스완은 애가 도도한 느낌도 있고 군주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여자아이들이 여럿 파트너 해달라고 손바닥을 싹싹 빌 것 같다. 그리고 스완하덴이 한명을 선택하면 그 여자아이는 영광이라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기꺼이 그를 섬길 것 같은 이미지다. 음, 이게 무슨 이미지지.

잠시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나는 아까부터 나만 계속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하일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하일리를 쳐다보자 하일리는 놀라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일리는 자신 스스로도 왜 고개를 돌린 건지 몰라하는 눈치였다. 다시 내쪽으로 고개를 돌린 하일리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지 않고 내 이마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코리나 스완은 안 보이네요. 파티는 필수 참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 스완하덴이 네가 파티에 이미 가있다고 말해서 일찍 왔건만 네가 한참을 오지 않아 코리가 찾으러 갔다. 난 길이 꼬일까봐 남아있었고.”

뭔 소리야. 난 이제 막 연회장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내 앞에 있는 하일리의 태도가 신경쓰였다. 애가 자꾸 내 이마를 쳐다보고 있는데 살짝 맛이 간 것 같다.

“저기, 어디를 보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이마?”

“??”

혹시 나는 내 이마에 뭔가가 묻었을까 해서 이마를 문질러 보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거울도 꺼내 확인해봤는데 깨끗하기만 했다.

“왜 이마를 쳐다보는데요.”

“...어..음. 글쎄. 나도 모르겠군.”

아직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하일리는 곧 시선을 아래로 꽂았다. 자신의 구두를 바라보고 있던 그는 곧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얼굴에 물음표가 보이는 것 같다.

“잠시 가볼 데가 있으니 자리 좀 비우겠다. 잠시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있어라.”

하일리는 잠시 멀뚱멀뚱 한 곳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하는 하일리는 같은 손과 같은 발이 같이 나가고 있었다. 나는 하일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코리가 날 찾으러 갔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도로 찾으러 가야 하는 건가? 일단 연회장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아직 나를 찾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장을 나갔다. 코리를 만나면 같이 먹으려고 마카롱이랑 사탕이랑 엄청 챙겼다.

연회장 바깥에는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있었다. 이 산책로 양 옆에는 학교를 상징하는 버건디 색의 ‘아우그란’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이 꽃은 사계절 내내 피어있는 꽃이기 때문에 어느 때나 이길을 지나갈 때면 이들이 만개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 학교의 이름은 이 꽃에서 따온 것이었다.

만개한 아우그란 꽃들 위에는 올 때 보았던 각양각색의 마법구들이 둥둥 떠있었다. 언젠가 판타지 소설 삽화에서 본 엘프의 비밀의 정원같은 분위기를 자아해낸다. 버건디 색 꽃들이 마법구들의 빛 색들과 섞여 굉장히 몽환적이었다.

나는 멀거니 절경을 바라보며 걷다가 저 멀리 코리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코리는 깔끔한 휜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도 맨 것 같지만 엉성하게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묶지는 않고 그냥 산만하지만 않게 정리했다.

“슈슈~ 어디냐~ ”

코리는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 돌맹이를 툭툭 차며 걷고 있었다.

“우리 슈슈 보신 분~”

불현듯 코리와의 첫만남이 기억났다. 그 때도 저렇게 나를 찾고 있지 않았나? 물론 그 때는 키가 훨씬 작았고 더 귀여웠던 것 같지만. 목소리도 훨씬 더 갈라졌던 것 같다. 지금은 변성기가 끝나 많이 정돈된 목소리고. 문득 난 추억에 잠겼다.

코리는 추운 건지 귀랑 눈 밑이랑 전체적으로 붉었다. 감기에 걸린 건지 간간이 훌쩍거리는 소리를 낸다. 코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공간 마법을 이용해 동아리용 딸기 담요를 꺼냈다.

그는 그걸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선 파이어 마법으로 작게 불을 피웠다. 푸른 불이 나오자 그걸 부양 마법으로 허공에 둥둥 뜨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 전래동화에서 보던 도깨비의 불빛같은 모양이었다.

코리는 조금 따뜻해졌는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쉰 코리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온다.

고개를 뒤로 젖힌 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어디갔냐고오.”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걷는 코리는 후 하며 입바람을 불고 자신의 시야를 채우는 밤하늘과 하얀색 입김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연회장에 도착했나?”

코리는 중얼거렸다.

코리는 하늘을 보며 걷고 있었기에 내가 바로 앞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찾는 슈슈 여기 있는데.”

내 목소리를 듣자 코리는 위로 젖힌 고개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코리는 잠시 앞을 쳐다보다가 시야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살짝 내려 나를 쳐다보았다.

“워.”

코리는 곧바로 후진하고 등을 돌렸다.

나에게 등을 돌린 코리는 잠시 눈을 비비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코리는 나를 힐끔 쳐다보곤 다시 내게서 시선을 거뒀다.

“....??”

고개를 숙이고 뒷목을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긴 코리가 보인다. 피부가 하얀 편인 코리는 차가운 바람에 맞아 손끝이 붉었다. 고개를 숙이며 드러난 목덜미도 희었지만 붉었고 드러난 귀도 붉은 것 같다.

“코리야, 뭐하니.”

“...”

코리는 붉어진 자신의 귀를 잠시 만지작 거렸다. 그는 내 말에 한참 답하지 않더니 곧 한숨을 쉬고 등을 돌렸다.

코리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또 등을 돌렸다.

“...찾았다.”

코리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를 찾았다며 안도한 코리는 등을 돌린 채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너 찾았는데..." 하며 또 중얼거리며 살짝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잠시 내게 등을 보여주다가 뒷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기껏 정리한 머리가 다시 산발이 되었다.

하일리도 그렇고 코리도 그렇고 상태가 이상하다.

나는 코리가 이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코리의 옆에 둥둥 떠있는 도깨비 불이 아까보다 더 크기가 커지며 잘 타오르는 것 같다.

“...말이 안 나오네. 뭐지.”

일해라 내 입. 코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한참을 나를 똑바로 보지 않고 힐끔힐끔 쳐다본다. 혹시 내가 꾸민 게 어색해서 그러나 싶어 조금 민망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사실 너무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서 아까부터 어색하고 신경쓰였었다. 화장도 무거운 것 같고 속된 말로 너무 갑자기 꾸며서 나대는 게 아닌가 싶다. 집에서 파티가 있을 때에는 무거운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얼굴결만 정리해줬는데 헤이즐 언니가 화장까지 해주니 굉장히 좋았지만 동시에 빨리 화장을 지우고 싶었다.

"하일리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나 꾸민 거 이상해? 역시 좀 아니지?"

얘네 상태가 평소랑 다른 이유는 아마 평소와 다른 내 모습 때문인 것 같다. 하일리만 이상하면 그냥 하일리가 요즘 힘들구나 하겠지만 둘이 동시에 내 얼굴보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거면 이건 반박할 수 없이 내 탓이었다.

아 그냥 교복 입고 파티에 나올 걸 그랬나? 역시 꾸미는 건 평소에 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다. 사이즈가 맞지 않은 바지를 입은 것 같이 굉장히 갑갑한 기분이다. 헤이즐의 화장이 아니라 나 스스로 꾸미고 나왔어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화장을 지우고 싶었다.

코리는 내 말에 불현듯 깜짝 놀라더니 등을 돌리고 나를 쳐다봤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 나에게 시선을 계속 두려고 노력했다. 하일리처럼 내 이마를 바라보지 않고 인상을 쓰면서 까지 내 눈을 본다.

인상을 쓰자 안 그래도 살벌한 얼굴이 조금 무섭게 변했다. 코리는 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네가 최고 예뻐서 그래.”

그런 표정에 그런 말이라니 전혀 안 어울린다고 코리.

"와, 쳐다보기도 부끄럽다." 하며 작게 중얼거리는 코리는 바로 나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나는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마 쳐다보기 부끄럽다는 말이 부정적인 뜻은 아니겠지? 긍정적인 뜻이면 너무 오바하는 것 같은데. 코리가 하룬이 아닌 이상 오바할리는 없고. 그러면 부정적인 뜻이냐.

너 나 지금 부끄럽냐?

코리는 생각에 잠긴 내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진짜로 예뻐서 한 소리니까 그대로 받아들여."

"너 은근히 립서비스가 좋구나?"

"...한결같네 넌."

코리는 인상을 풀고 피식 웃었다. 드러난 내 어깨에 자신이 두르고 있던 담요를 덮어줬다.

자신의 말을 왜곡하지 말라는 코리의 말에 나는 순순히 납득하기로 했다. 하기야 날 여러모로 아끼는 코리가 나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할리 없었다. 내가 느껴질 정도로 소중히 대해준다. 나의 팬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냥 나를 돌봐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니 그냥 남을 잘 돌보는 것 같기도 하고.

코리가 1학년에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아마 코리의 이런 성격의 이유가 그 아이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코리 여동생 진짜 귀엽게 생겼던데. 나를 보면 꼬박 꼬박 인사도 엄청 잘한다. 귀여워 미친다. 카림이랑 둘이 라이벌 구도 같은데 진짜 볼 때마다 귀여워 미치는 것 같다. 소설에는 이런 설정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전생을 자각하고 사건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없던 설정이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이런 설정 완전 좋다.

코리와 나는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문득 내 헛소문을 퍼트린 스완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그 스완은 어디갔어?”

“걘 편안히 죽었으니까 걱정 마.”

“...?”

“지금 널 보니까 왜 상황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알 것 같네.”

코리는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스완하덴 죽은 거 구경 갈래?”

나는 코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산책로가 예뻐서 좀 걷고 싶었기도 하고 스완하덴이 죽었다는 표현이 웃기기도 했다. 저번에 호수 앞 잔디밭에서 자고 있던 것처럼 파티를 빠지고 어디서 또 널브러져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코리는 여자 기숙사 근처 학교 연못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연못 쪽으로 가는 길이 거칠어서 코리가 손을 내밀었다. 구두를 신은 내가 돌이 많은 길을 넘어지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잡아준다고 한다. 나는 코리의 손을 흔쾌히 붙잡았다. 잡은 손에는 살짝 아프지 않을 정도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코리의 사납지만 단정한 이목구비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문득 그가 파트너도 없이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날 찾아다닌 걸 보니 코리도 파트너가 없던 것 같던데.

“그나저나 너 인기도 많으면서 왜 파트너가 없냐.”

반딧불이 같이 생긴 예쁜 색을 내며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너랑 파트너 하려고 했거든?”

“...아, 그래?”

“근데 하일리도 너랑 파트너 할 생각이었던 거야.”

코리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놀랄 말들을 한다.

“거기에 얹어 스완도 찾아와서 네 파트너가 되겠다고 하고.”

하일리랑 코리는 나랑 엄청 친하니 그렇다고 쳐도, 뒤이은 '스완' 이라는 단어에 나는 조금 더 놀랐다.

스완하덴이 나랑 파트너?  걔랑은 별로 안 친하다. 그러니까 자기 말로는 친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친해지고 있는 중이긴 한데, 뭐랄까... 딱히 파트너를 선뜻 신청할 만큼 친한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여하튼 스완하덴이 나에게 파트너를 신청하려고 했던 건 정말 의외다. 스완도 주변에 여자가 그렇게 없나?

“그래서 결국 너 파트너가 없으면 다 같이 너 데리러 가려고 했거든? 근데 오늘 여러모로 꼬이네.”

“아, 그럼 그때 반 앞에 모여있던 건...”

아무래도 그들은 나 때문에 반 앞에 쭈그려 앉아있던 것이다. 꽃들도 원래 나한테 주려고 했던 건가. 근데 스완하덴이 진짜 나한테 파트너 신청하려고 했다고? 그 거대한 꽃다발을 나한테 주려고 했단 말이지? 설마 이브한테 했던 것처럼 파트너 신청을 빌미로 날 후려치려고 했던 건가. 흐음.

와, 어쨌건 슈슈 여러모로 형편 좋아졌네? 전생부터 난 남자애들한텐 매번 무시만 당했는데 말이지.

“나 뭔데 이렇게 인기 많아?”

“다 네가 잘나서지.”

코리와 손을 잡고 걷다가 나는 문득 그의 말에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코리도 그렇고 하일리도 그렇고 내가 개입해버리는 바람에 연애쪽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헤스티아를 쫓아야 정상이거늘, 지금은 각자 재능 키우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너네 진짜로 성공해버린다고. 성공하면 음, 괜찮네. 해피엔딩이지만 조금 양심에 찔린다. 내 솔로 월드에 이방인까지 끌어들인 기분이다.

“너네들 진짜 분발해. 다음번엔 제대로 된 파트너를 찾아. 원래 파트너는 친구보다는 좋아하는 애랑 해야지 파티가 재미있어지는 거야."

물론 친구같은 애랑 해도 문제는 없지만 아카데미 생활에서 딱 2번 밖에 없는 졸업 파티인데 나랑 하고 싶냐?

얼마나 주위에 여자애들이 없으면 나한테 오냐고. 지금 3년째 그린반에서 같은 애들이랑 수업을 들을텐데 거기서 마음에 드는 애가 한 명도 없는 거냐. 코리나 하일리가 인기만 없었더라면 내가 먼저 파트너 신청을 걸었을 것이다. 왠지 그들의 처지가 내 처지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좋아하는 애가 없을 때까지는 내가 받아줄테니까 안쓰럽게 굴지마. 앞으로 이런 단체 활동 같은 게 있으면 도와줄게.”

코리는 내 말에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연못쪽에 가까워질수록 길이 다듬어져 있어서 나는 코리의 손을 놓았다. 코리는 내가 손을 놓자 자유로워진 자신의 손을 잠시 쳐다보았다.

연못으로 가니 웬 사람 한 명이 연못에 둥둥 떠있었다.

“...스완?”

그 사람은 스완하덴이었다.

스완하덴은 달빛을 받으며 연못에 빠져있었다. 뜬금없지만 달빛을 받은 스완하덴은 정말로 예뻤다. 차가운 물 때문에 안색이 살짝 파리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의 외모는 죽지 않았다. 확실히 남주들 중에서 예쁜 건 스완이 제일 예쁘다. 혼자서 외모로 세계를 정복해도 나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완의 빛나는 얼굴에 살짝 감탄했다.

스완은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큰 보름달을 바라보며 물 위에 둥둥 떠있던 스완은 내 목소리를 듣더니 표정을 굳히며 몸을 살포시 뒤집었다. 조용한 몸짓이었다. 저렇게 몸을 뒤집어 물에 둥둥 뜨고 있으니까 진짜 죽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날이 추워 연못 표면이 살짝 얼어있는데 스완하덴은 안추운건가. 자연 치유력이 추위까지 포용하는 것이라던지. 잠시만. 자연 치유력이 백마법이랑 관계가 있나? 나는 나도 모르게 알고 있는 지식에 인상을 썼다.

“괜찮아?”

“...”

나는 분명 엄청 차가울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스완하덴에게 말을 걸었다. 블란치 공작가는 여러모로 베일에 쌓인 가문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이렇게 연미복을 입고 차가운 물에 잠수하는 취미가 있는 건가.

괜찮냐고 묻자 스완하덴은 물속에서 대답한 건지 얼굴 쪽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나를 뒤쫓아온 코리가 내 옆에 다가와 같이 쭈그려 앉았다. 코리는 나뭇가지를 가져와 죽은 것 같은 스완하덴을 쿡쿡 찔렀다. 스완하덴은 팔을 뻗어서 자신을 찌르는 나뭇가지를 부수고 힘없이 팔을 내려놓았다.

스완은 시체같은 모습으로 물에 둥둥 떠있다가 돌연히 자신의 연미복 속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스완은 말없이 나에게 물에 젖은 장미꽃을 내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의 축 늘어진 꽃을 받아줬다.

"힘내, 스완. 불쌍하니까 용서해줄게. 널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코리가 옆에서 스완에게 말을 걸자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화이팅."

스완은 말이 없었다. 나는 저러다가 정말 죽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코리에게 쟤 괜찮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저었다. 물에 빠진 거 건져야 하지 않겠냐는 내 질문에 코리는 그러면 두 번 죽이는 거라고 한다. 뭔소린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스완한테 인사도 했으니까 돌아가자, 슈슈."

"근데 스완은 안 추운 건가? 블란치 가문은 추위 잘 안 타나?"

코리는 내가 스완을 걱정하자 아공간 주머니에서 흰색 배경 당근 담요 한 개를 꺼낸다.

그는 물에 엎드려서 둥둥 떠있는 스완하덴 위에 담요를 덮어줬다.

"이제 가자. 쟨 행복할 거야."

그렇게 말한 코리는 들꽃을 하나 따서 그 담요 위에 올려놓았다.

============================ 작품 후기 ============================

스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게 왜 이렇게 웃기죠.

스완은 슈슈를 혼자서 데리러 갔다가 슈슈의 모습에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그 주위에 있는 연못에 빠졌습ㅂ니다. 근데 열 식힐겸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일단 빨리 올려놓고 여러분들이랑 같이 읽으며 퇴고할게요.

+gawon님,mschjl님,BLC발렌시아님,양고기치킨님,기막힌인연님 후쿠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제 자본주의 드럼연주가 먹힌 것 같네요. 오늘은 뭐할까요. 음. 곱등이는 여러분의 후원에 비보이 댄스를 추며 리듬을 타고 있습니다.

+군입대(?는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이소.

+종이책 출간은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가능할 것 같지만 끝내 제가 계약을 안한다면 개인지는 너무 노가다여서 안할 것 같네요.... 근데 계약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끔 옛날 댓글들을 보면 설정을 지적하는 댓글도 달려있던데 제가 그걸 설명하기도 전에

여러분들이 제 글을 파악하고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기분이 듭니다. 이건 사랑인가요. <반짝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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