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오작교는 싫습니다 : 꿈 =========================
"코리 오빠. 다, 다음주 화요일에 널널하지?"
비이디엘이 굉장히 쑥스러워 하며 말을 더듬었다. 코리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으면서 그녀는 시선을 코리의 반대 쪽에 뒀다.
비이디엘이 찾아와 말을 걸자 코리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어? 어, 응. 난 언제나 널널해."
어색한 미소를 지은 코리는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비이디엘은 코리의 말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일순 짓다가 곧 평소와 같은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코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조용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다음 주 화요일 날 뭐 하는 거야?"
그가 물어보자 비이디엘은 많이 당황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아, 아니이? 전혀 아닌데에? 아무 것도 안 하는데 그냥 물어본 거야! 누가 뭐 한데? 누가 뭘 해? 어머니 아버지도 그 때도 다 바쁘셔서 아무 것도 안 하는데? "
"그래?"
"그렇다니까! "
그녀는 괜히 코리에게 화를 버럭 냈다. 얼굴이 토마토 같이 새빨개져 있었다.
비이디엘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자신의 교복 치마만 만지다가 코리에게 무언가를 이어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을 닫은 비이디엘은 몸을 홱 돌려 곧 달리기 시작했다. 코리에게서 멀어지며 그녀는 "아무튼 그 때 약속 있으면 다 취소해!" 하고 소리쳤다.
코리는 뒤를 돌고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비이디엘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코리는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에이, 설마."
그는 고개를 젓다가 또 다시 인상을 쓰더니 곰곰이 생각하곤 입을 열었다.
"그 땐 내 생일인데, 진짜 챙겨주려는 건가?"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코리는 곧 미소를 지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침침하며 날카로운 분위기가 순간 부드럽게 풀렸다.
나는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현실에 있을 코리가 떠올랐다. 순간이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코리 특유의 다정한 느낌이 이 곳의 그에게서도 느껴졌다.
그가 미소를 짓는 걸 보니 나도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꿈 속에서 코리를 계속 바라보며 어느정도 그의 현재 상황이 파악이 됐다.
어렸을 땐 화목했던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부모님께서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코리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한 것 같다. 현실에서도 그를 챙기는 사람이 나나 하일리 빼곤 없는 걸 보아 이 상황은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상황인 것 같다.
게다가 어리광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비이디엘의 성격을 보아 코리에게 돌아가야 할 작은 관심을 모두 빼앗았을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후작과 후작부인이 요새 어떤 일로 바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더욱 그를 신경 써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확실한 게 아니라 전부 내 추측일 뿐이다. 전후생 모두 동생을 가져본 나로서 그냥 코리의 상황이 얼핏 그려졌다.
그나저나 이 곳의 코리는 그럼 매번 혼자 생일 보낸 건가? 이 곳 코리는 생일을 딱히 챙겨줄 친구도 없어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코리의 저 반응을 보아 지금까지 생일을 혼자 보내왔던 것 같다.
문득 현실에 있는 코리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 쪽 코리도 곧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비이디엘이 코리의 생일 전에 깜짝 생일 파티 해준다며 나를 찾아왔었고.
잠시만, 뭔가 촉이 왔다.
꿈을 꾸면 언제나 보이는 게 코리이고, 4명의 남주들 중 아직 크게 변하지 않은 애도 코리이다.
코리 중심으로 꿈이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와중 여기서의 날짜 또한 코리의 생일 비슷한 시기다.
쪽지에서 말하는 '그' 는 코리였다. 난 거의 확신한다.
꿈 속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과 비슷하게 맞물리는 걸 보아 내가 이 꿈에서 코리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보고 현실로 돌아가 그 일을 예방하는 건가 또 추측해본다.
아닐 수도 있지만 현재 마땅히 떠오르는 가설이 그 것밖에 없다.
처음에는 스완하덴과 코리, 이렇게 2명을 두고 의심했었지만 스완하덴이 '그' 라면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뭘 도와야 할 지 감이 안 잡히고 그냥 대화도 통할 것 같지 않다.
나는 별안간 나에게 쪽지를 남긴 그 인물이 떠올랐다.
구하라는 단어에 처음에 나는 조금 반항적인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 주변인들이 위험에 빠지면 당연히 도울 것이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그건 내 주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구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다. 조금 더 책임이 실린 말이었다. 나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난 구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그'가 코리와 연관된 것 같아 열심히 움직이곤 있지만 처음에는 솔직히 누군가 구해야하는 책임을 져야 해서 싫었다.
난 누구를 구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행동을 하면 결과가 따르고 그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언제나 그 자신이다.
난 성녀나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짜고짜 구하라는 말이 거슬렸다. 그런 그릇도 되지 않고 말이다. 남을 구하는 건 그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누가 나에게 이런 일을 맡겼는지는 몰라도 정말 한숨이 나온다. 마력량은 계속 딸려서 마법석에 의존하고 있고 내 검 실력은 계속 성장하는 하일리와 다르게 이제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서로 응용해 사용하는 것은 좀 잘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아무튼 실력과 별개로 나에겐 누군가를 구하는 소리는 부담이 되기도 하면서 조금은 무서운 말이었다.
일단 상황이 상황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곤 있지만 만약 '그'가 코리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와 주변을 살피기도 힘이 드는데, 생판 남을 구하는 데에 신경을 쓰는 거라면 난 거절할 것이다. 야박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하튼 결론은, 난 '그'를 코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앞으로 꿈 속의 그를 조금 더 유심히 살펴야겠다는 것이다.
코리는 아까부터 비이디엘이 떠난 자리를 멀거니,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렇게 서있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 발걸음을 돌렸다.
왠지 즐거워 보이는 코리였다.
코리는 와인색 아우그란 꽃이 즐비되어 있는 길을 걸으며 남자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생각에 잠겨 하늘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은 코리의 발걸음 소리는 다른 때보다 덜 무겁게 들리는 것 같았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별안간 코리의 연락구에 빛이 나며 살짝 울렸다.
코리는 자신에게 온 연락을 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아까까지 기분이 괜찮아보였지만 갑자기 그의 기분이 저조되었다.
[왜.]
연락을 건 것은 다름이 아닌 이브였다.
[아아, 코리님. 일은 잘하시고 계시는지요?]
[어. 거의 다 끝났어.]
[목소리가 좋아보여서 더 부탁하긴 뭐하지만 하실 일이 조금 더 있습니다. ]
[그래. 네가 일을 정리해서 보내면 마저 해놓고 있을게.]
그렇게 말한 코리는 바로 연락을 먼저 끊었다. 아까 일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상냥하게 이브에게 말했다. 코리는 연락구를 집어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 * *
이상하게도 스완하덴이 내 마법진을 한 번 부순 그날 이후로 현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보통 현실에서 일어날 때가 되면 나도 자연스럽게 여기서 벗어났다. 게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알아서 이 곳에서의 의식이 옅어지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졸음이 문득 쏟아져서 자고 일어나도 그대로 이 꿈 속 세상이었다. 깨어나길 아무리 기다려도 이 꿈 속 세상 속이었다.
아무래도 마법진을 그렸을 때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마법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릴 때 너무 급하게 그렸던터라 오류가 없었더라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했지만 일단 나는 계속 있어보기로 했다. 코리에게 붙어 그의 변화를 유심히 살폈다. 스토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지만 그래도 이 곳은 꿈 속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꿈 속의 시간은 금방 흘러 코리의 생일이 된 날이었다.
저번에 비이디엘이 그를 찾아간 이후로 그는 겉으로 봤을 때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무기력했고 자는 것을 좋아했고 침울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예전보단 조금 더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다.
[일이 잘 풀렸다고 들었는데, 예전보단 조금 더 여유로워지신 걸까?]
생일 날에도 일에 치여 힘들어보이는 코리는 펜을 돌리며 불현듯 중얼거렸다.
[다들 바쁘면 굳이 안 챙겨줘도 되는데.]
턱을 괴며 펜을 돌리고 있는 코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멍 때리다가 곧 한숨을 쉬며 팔에 얼굴을 묻어 책상 위로 엎어졌다. 빙글빙글 돌리던 펜은 책상 위로 성의 없이 떨어뜨렸다.
[기대하면 안 되는데...]
아주 조금이지만 들뜬 코리였다.
나는 힘을 조금 되찾고 다시 예전처럼 위 쪽 공간에 둥둥 떠서 그를 지켜보았다. 축 늘어져 기운이 없던 옛날과 다르게 확실히 오늘은 좀 밝았다. 조금이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오늘의 그는 덜 침울했다. 코리는 간간이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현실에선 익숙한 광경이지만 이 곳에서 보니 조금 놀라웠다.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에게 별안간 어떤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에게 벌레벌떡 뛰어온 사람은 코리를 보자마자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곧 숨을 빨리 고르고 곧 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코..코리님.. 드릴 말이 있습니다.]
코리에게 달려와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여는 그 사람이었다.
그 날의 코리는 꽤나 부드러웠기에 코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고 조금은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리가 무슨 일이야? 라고 묻기도 전에 그 사람은 본론을 꺼냈다.
[어젯밤에 후작님과 후작부인님께서 습격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 사람이 코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코리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처음에는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소리야. 나 지금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잠시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연 코리는 점차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입꼬리 끝을 끌어올리며 불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코리님의 생일 선물을 사려 시내 쪽으로 내려가시던 두 분과 비이디엘님은 이동하던 중에 괴한들에게 습격 당했습니다. 후작님은 비이디엘님과 후작부인을 지키다가 사망하셨고 후작 부인은 비이디엘님과 피신하던 도중 사망하셨습니다.]
[...]
코리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눈동자만 크게 뜨고 소식을 전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신에서 발견한 물건들입니다.]
그 사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코리에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주었다. 선물 포장지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코리가 선물을 받아 그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쓸었을 때 피는 이미 말라 있었다.
[여기, 편지도 있습니다. 코리님의 이름이 적혀진 것을 보아 이건...]
[그만해!!]
코리는 편지를 건네는 그 사람의 손을 쳐냈다. 편지에 적힌 코리의 이름 위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적셔진 편지를 코리는 받지도, 읽지도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코리의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 하라고...]
겨우겨우 내뱉은 코리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제발... 그만 말해....]
그의 녹색 눈동자가 눈물 때문에 흐리게 보였다.
[왜. 아니, 왜. 웃기지 말라고.]
아직도 상황을 못 받아들이겠다는 듯 그는 멍 때린 그 상태로 눈물만 흘렸다. 그는 계속 거짓말이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비이디엘님은 아카데미로 바로 돌아오셨습니다. 시크베이에 계시니 꼭 한 번 방문해주세요.]
그 사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갔다.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코리는 잠시 헛웃음을 한 번 짓다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살짝 짚었다.
멍한 눈으로 계속 눈물만 흘리는 코리는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 같았다.
[나 때문에....]
코리는 시크베이에 있을 비이디엘을 확인하러 가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잠시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
코리는 점차점차 변해갔다.
잠도 자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고 눈에 불을 키며 한 곳에만 집착했다. 그 것은 바로 복수였다.
코리는 자신의 부모를 모두 죽인 사람의 배후를 알아내는 것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내가 그의 몸 상태를 걱정해서 주변에 음식이나 음료를 가져다 놓아도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배고프면 집어서 먹을 줄 알았는데 건넨 음식은 음식물 쓰레기로 변하고 있었다.
코리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스스로 죽이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심각한 자기 혐오에 빠졌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났지만 이젠 반대로 너무 불타올랐다. 산만한 책상 위에 보이는 건 그에게 벌어진 그 사건에 관한 서류들 뿐이었다.
분노, 절망 등의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 코리의 눈빛에는 오직 한 곳에만 초점을 놓고 있었다. 그는 배후를 알아내는 와중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
바다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코리의 시야가 좁아졌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현재 그의 주변을 살피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가장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은 비이디엘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 한참 어린 비이디엘은 자신의 눈 앞에서 부모님이 죽는 것을 목격했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다리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게다가 자존감이 높은 비이디엘로써 다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평범한 남들과 비교해서 훨씬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목발을 짚게 된다면 교육이 덜 된 짓궂은 어린 아이들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함부로 할 가능성이 컸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었고.
비이디엘에게 유일한 보호자는 코리인데 그는 현재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코리가 훗날 정신을 차리고 비이디엘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매우 후회할 거라는 걸 확신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비이디엘과 더불어 그는 더욱 망가질 것이었다.
나는 코리의 상황에서 내 상황을 비춰보았다. 그에게서 나와 여러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었고 동시에 가정의 맏이로서 혼자 감당해야하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겪은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곤 하지만 내 부모님의 죽음에는 타인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단순한 사고였고 코리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분노할 대상이 분명히 존재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코리에게도 동생이 있었다. 나는 딱히 누구를 원망할 필요가 없어 바로 내 동생들에게 시선을 둘 수 있었더라면 코리에게는 그럴 마음의 여유도, 상황의 여유도 없었다.
그는 주변을 살필 새가 없었다. 코리에게 동생에 대한 것을 용기있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의 주변엔 이제 정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몇 번이나 후회하기 전에 동생을 챙기라고 메세지를 남겼지만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의 세심하던 성격을 보아 나중에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나중에 더 큰 자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코리가 복수에 미쳐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물었다. 오랜 친구가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괴롭다.
며칠 째 등교도 하지 않고 방 안에만 처박혀 그는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초조해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며칠을 사건을 조사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낸 코리는 곧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공허해 보이는 건 오래였지만 이제는 초점까지 잃어버렸다.
불신이 담긴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코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내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가 그는 손에 닿는 금색 머리카락을 웅켜잡았다. 그는 잠시 좌절하는 듯 하더니 곧 눈에 살기를 가득 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당탕탕!
코리는 책상 위에 놓인 그동안 봤던 모두 서류들과 조사한 자료들을 바닥으로 쏟고 그걸 방 안에서 태웠다. 잉크를 던졌고 그동안 붙들고 있던 책들도 던졌다.
코리는 방안에 있는 모든 거울들을 부쉈다. 작은 파편이 되어 자신을 비추는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잘게 잘게 부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운 코리는 방 밖을 뛰쳐나가 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그가 피우는 난동에 잠시 당황하다가 그가 방 밖을 나가자 허둥지둥 그를 쫓았다.
[이브네스!]
코리가 찾은 건 다름이 아닌 이브네스였다.
이브는 코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빙글빙글 재수없는 미소를 지었다.
[넌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코리는 분노와 살기가 담긴 눈으로 이브의 멱살을 잡았다. 이브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코리에게 순순히 끌려와줬다.
[알면서도 나한테 교장의 일을 도우라고 했었던 거야?]
그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티를 냈지만 코리의 감정이 너무 격해 그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코리의 말에 이브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빠졌다.
[아아, 그러고보니 최근에 드보아스 후작님이 돌아가셨군요? 그 배후가.... 흐음.]
그는 말을 하다가 다시 시선을 코리에게로 맞췄다. 이브는 그 특유의 위험하면서도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교장의 계획에 동참한 코리님이네요.]
이브는 일그러진 코리를 보며 그렇게 잔인하게 웃었다. 그 배후에서 자신을 쏙 빼놓고 말한 이브였다. 현재 자책하기에 바쁜 코리는 그 것의 위화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코리님, 가족을 간접적으로 죽인 꼴이네요? 저런.]
저 개새끼가? 나는 이브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욕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하는 상황이었다. 이브 방금 저게 뭐라고....
이브는 일부러 코리가 자기 가족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한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 놓고 즐거워하는 이브를 보며 나는 저게 사람인가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 것도 코리 생일 당일에 저지른 것이었다.
이브의 말에 코리는 모든 마력을 한순간에 방출했다. 이브의 멱살을 잡은 코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의 손 옆에는 전기같이 생긴 날카로운 창들이 위협적으로 이브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날카로운 창들은 코리, 그 자신의 목에도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많은 양의 마력을 방출하는 바람에 코리의 귀 그리고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크윽. 절, 죽이신다고 해도.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답니다. 하하. 물론 코리님이 죽으셔도 달라지는 건 없고요.]
이브는 목숨이 위협받는 와중에도 능청스러웠다. 두 명 모두 목에 벌써 작은 구멍이 몇 개 생겼지만 이브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후작 부부는 그렇다쳐도 지금 코리님은 자기 때문에 곧 한 명 더 저 세상에 보내게 생겼는데요?]
[...]
[아, 이미 늦었으려나. 주니어 건물에 방금 갖다 왔는데 애들이 무리 지어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흥미 있어서 가봤는데 왠지 코리님도 관심 있을 것 같네요. ]
[!!...비이디엘]
코리는 그제야 자신의 동생이 떠오른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그동안 비이디엘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무서워했었다.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추측했다. 몇 번이고 코리는 그녀를 찾아가려고는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이 곳의 코리는 지금까지 비이디엘을 챙기기는커녕,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브가 그에게 떡밥을 던져줬을 때, 코리는 살기를 거두고 곧 불안함을 표정에 띄웠다. 설마, 하고 중얼거린 코리는 이브와 자신에게 향하게 했던 마법을 거뒀다.
그는 당장 주니어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이브의 말대로 주니어 건물 바로 밖에 아이들이 무리지어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소란보다는 몰려서 무언가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코리가 그 무리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들이 별안간 숙연해졌다. 코리는 열심히 뛰다가 한 곳을 바라보더니 곧 걸음을 천천히 했다.
멍한 표정으로 어떠한 물체에 가까이 다가간 코리는 곧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코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닥에 누워 있는 비이디엘이었다. 그녀가 쓰던 목발은 산산히 부서져서 그녀 옆에 흩어져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비이디엘은 뼈가 부서져 있었다. 관절도 꺾여 팔다리는 옳은 곳으로 접혀져 있지 않았다. 방금 막 죽었는지 피는 아직 따뜻해보였고 눈은 감은 비이디엘의 얼굴에는 아직 핏기가 남아있었다.
비이디엘의 시신에는 다리 한 쪽이 없었다. 최근에 그 사고 때문에 사라진 것이었다.
코리는 자신의 생일 이후로 본 적이 없는 자신의 동생의 모습이 낯설었던 건지 계속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뚜벅뚜벅 그녀에게로 다가가다가 곧 털썩 그 자리에 앉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작은 아기 다루듯 껴안은 코리였다. 비이디엘의 관절이 반대로 꺾여 있어서 그는 그걸 조심스럽게, 최대한 아프지 않게 원래 방향으로 돌려놔 줬다.
부단히도 비이디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따뜻한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코리는 자신의 이마를 비이디엘의 것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미안해... 이제야....미안해....]
그는 이미 죽어 숨이 떠난 비이디엘을 껴안은 채 계속 사과했다. 주변을 둘러싸던 아이들은 하나 둘씩 떠나 이브가 코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즈음 모두 사라져 있었다.
코리는 하염없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 차갑게 식은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는 아직도 흘러나오는 그녀의 피를 손으로 꾸욱꾸욱 막아보지만 그럴 수록 몸에 남아있는 피는 더욱 쏟아져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비이디엘을 안고 시간을 보낸 코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코리는 차갑게 식은 시체의 이마에 작게 뽀뽀했다.
그는 허공에 마법진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의 시전자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는 금기의 마법중 하나였다. 멍한 표정으로 그 무시무시한 마법진을 그리던 코리의 눈동자는 이미 죽어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코리가 마법으로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자 그걸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이브가 마법진을 그리던 그의 손을 막았다.
[놔.]
코리는 힘 없이 말했다.
[내가 살아있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이대로 고통스럽게 죽게 해줘. 코리의 볼 위로 눈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공허한 눈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진행하고 있던 계획 마저 도우셔야죠.]
이브에게 현재 코리의 상태는 제 안중에도 없었다. 이브는 당장 부서질 것 같은 코리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정말 미쳤구나.]
코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계획이 내 가족을 모두 죽음까지 이끈 원인인데 나보고 그 걸 또 도우라고?]
[네. 오히려 지금 상태에서 코리님께 이 계획이 정말 끌릴 거라 생각하는 데요.]
이브네스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후작 부부께선 옛 황실 전용 마법사였던 카라딜님과 오랜 친구였죠. 후작과 후작 부인께서 아우그란 산과 이 아카데미를 들쑤시고 다닌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는 걸 코리님은 알지 않습니까?]
여전히 웃으면서 말하는 이브였다. 그는 코리에게 질문하다가 곧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아. 제가 실수했네요. 모르시겠군요. 그러니 코리님께서 절 순순히 도왔던 거겠죠. 그래도 후작부부가 어느 정도 황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던 건 알고 계셨을 겁니다.]
[...]
[처음엔 그들은 이 계획을 지지했습니다. 비록 중간에 마음을 바꾸시긴 했지만.]
코리는 답이 없었지만 이브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브는 자신의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리 곁으로 다가가 그가 안고 있는 비이디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브의 새하얀 손수건에는 비이디엘의 피가 묻었다.
이브는 자신의 손수건에 묻은 그녀의 피를 더럽다는 듯 보며 살짝 인상을 썼지만 그 걸 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브는 코리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어차피 이미 저지른 일, 돌이킬 수는 없고 그 계획에 죽은 가족의 염원이 일부 담겨 있다면 당연히 이뤄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덤으로, 비이디엘님이 다리를 잃었을 때 그녀를 심적,외적으로 괴롭힌 아이들을 제가 알고 있는데 계획에 동참하시면 같이 복수가 가능할 겁니다. 이브는 작은 목소리로 뒤이어 코리를 설득시켰다.
[교장이 꾸미고 있는 정확한 계획이 뭐였더라...]
코리는 비이디엘을 껴안은 채 공허한 눈으로 이브에게 물어보았다.
코리가 물어보자 이브는 코리만 들을 수 있게 작게 그 계획을 속삭였다. 때문에 나에게까지 그 계획의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괜찮지 않습니까?]
이브가 웃으며 말하자 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멋지네. 그거 괜찮아.]
더 이상 속죄할 수도 없으니 모두 망가뜨리는 거야. 그렇게 또 작게 중얼거린 코리는 계속 투명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코리는 비이디엘을 조심스럽게 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코리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코리의 모습을 쭈욱 그저 바라보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냥 그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충격적이었고 보고 있는 내가 다 숨이 가팔라졌다.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할 일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빨리 현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를 구하라는 말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꿈 속에 시간을 보낸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흘렀을까. 혹시 벌써 코리의 생일을 넘기지 않았나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초조함과 함께 가만히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 작품 후기 ============================
30 키바니까 삼 연참인걸로 :)
(13/20)
꿈 에피소드의 끝입니다. 다음화는 다른 에피소드입니다.
+오작교 나무위키 생겼는데 만들어주신 분의 정성에 곱등이가 더듬이 탁! 치며 갑니다.
+팬아트 팬픽 감사인사 못했었는데 지금 해서 정말로 죄송함니다. 모두들 사랑합니다.
+은SoRa,jina201님 후쿠 정말로 감사힙니다. 희희희
분명히 새벽, 아침 연재였었는데 어제 밤에 쓰던 상태로 아침 12시까지 자버려서 지금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