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4 오작교는 싫습니다 : 코리의 생일 =========================
흐트러진 금색 머리카락이 시야에 담겼다. 아무 말 없이 자신 가까이 끌어당겨 안은 사람은 다름이 아닌 코리였다. 나를 안은 그의 팔에는 힘이 좀 들어가 있었다.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은 그는 한참을 그렇게 말 없이 가만히 나를 안고만 있었다. 언제나 담요를 몸에 두르고 다녀서 그런지 그의 체온은 따뜻했다.
왠지 포근해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가 곧 정신을 차려 코리를 떼어내려고 할 때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로 못 깨어나는 줄 알았어."
그의 갈라진 목소리는 조금 잠겨있었다.
그렇게 한 마디 내뱉은 그는 나를 더욱 꼬옥 껴안았다.
그 답지 않은 매달리는 모습에 나는 문득 아까 꿈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실 코리의 얼굴을 보니 그의 처절했던 상황이 떠올라 갑자기 감정이 조금 격해졌다. 지금 코리는 나름 잘 지내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 꿈이 다른 세계라 할지라도 그가 그런 상황을 겪을 수도 있었을 걸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찢어진다.
꿈 속에서 보았던 코리의 자책어린 눈빛이 떠올랐다. 평소엔 무기력했던 그가 복수를 위해 눈에 피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며 하루하루를 살던 모습도 같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죽어 그들의 복수를 계획하다가 코리는 자신이 그 배후의 일부에 끼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에 자신의 잘못으로 여동생까지 떠내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교장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을 이브에게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코리의 눈동자에는 다른 남주들이 그랬듯 아무런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없는 공허한 눈으로 온 세상을 하나의 사물로서 무감각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 꿈 속의 망가져버린 코리는 이제 만날 수 없지만, 아직 그 일을 겪지 않은 실제의 코리는 계속 볼 수 있었다. 나는 꿈 속의 코리를 위로해주는 기분으로 나를 껴안은 코리를 마주 꼬옥 껴안았다.
"....?"
코리는 내가 마주 꼬옥 껴안자 살짝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왠지 불안해하는 그를 달래려 조금 토닥이자, 코리가 곧 나를 자신의 품에서 떼어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옛날에 팬서비스라고 하며 짧게 포옹한 적은 있어도 아까처럼 찌인한 포옹은 처음이었다.
아, 근데 지금 이렇게 감성에 젖어 밍기적 거릴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 날짜가 어떻게 돼?"
내가 좀 다급하게 코리에게 물어보았다.
오랫동안 꿈 속에 있다가 갑자기 나온 것이 적응이 되지 않는 건지, 세상이 일그러져 보인다. 머리가 아까부터 지끈지끈 아팠고 계속 울렁거려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려 눈을 부릅뜨고 코리를 바라보니 그도 잘 보이지 않는다. 티는 내지 않고 내 허벅지를 꼬집어 정신을 차렸다.
"23일이야. 네가 잠들고 5일 지났어."
내 일그러진 시야 속에 걱정이 가득한 코리의 얼굴이 보인다.
5일 동안 잠들었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네가 잠든 동안 난리도 아니었어.”
괴로워보이는 듯한 코리는 내 앞에서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브는 네가 걸린 흑마법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현재 황실 쪽에 잠입했고, 스완하덴은 너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걸 보고 5일 동안 잠도 안 자고 너 옆에 붙어서 계속 힐만 끊임없이 퍼붓다가 방금 막 쓰러졌어. 하일리는 아우그란 산을 누비면서 네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찾고 있고.”
코리의 말을 들으면서 저기 바닥 쪽을 쳐다봤는데 스완하덴이 진짜로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코리가 덮어준 건지 스완의 몸 위에는 브로콜리 담요가 덮여져 있다.
스완하덴의 손목을 보니 학교에서 채운 마력 제한 팔찌가 전보다 두 배로 늘어있었다. 코리가 분명 스완하덴이 힐을 자주 썼다고 했는데 혹시 저 팔찌를 찬 채로 마법을 쓴 것일까?
마력 제한 팔찌가 채워져 있는 상태로 일정 이상의 마력을 쓰게 된다면 그 후유증이 심하다. 어떤 사람은 마치 번개에 맞아 감전된 현상을 겪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력이 역류하기 까지 했다. 내가 코리에게 저기 쓰러진 스완은 괜찮냐고 물어보니 쟨 괴물이어서 한 시간만 자면 살아난다고 했다. 스완하덴이 괴물인 건 인정했기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그나저나 아까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사이코 같던 스완하덴이 내 팔 쪽을 자른 것이 떠올랐다.
팔이 잘렸다는 걸 인지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회복되어 있었지. 스완이 준 마법 치료 반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치료된 것이 의아했는데, 밖에서 스완하덴이 끊임없이 힐을 써준 것이었다.
친해졌긴 하지만 많이 친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나를 치료해줬다고 한다. 사실 스완하덴, 진짜로 성격이 좋은 게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꿈 속의 스완하덴을 떠올리곤 그 가설을 머릿속에 지웠다. 그 꿈 속의 스완하덴 생각을 하니 문득 내 첫 입맞춤을 빼앗긴 게 떠올랐지만 재빨리 내 기억 속에서 지웠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다.
쓰러져 자고 있는 것만 같은 스완을 바라보니, 곧 코리가 곧 또 말을 이어갔다.
“...헤스티아도 찾아와서 밤낮없이 계속 울기만 했어. 헤스티아 울음소리에 시크베이는 물론, 양호실도 너무 시끄러워서 결국 선생님의 손에 끌려 나가야 했지만 말이야. 헤이즐도, 하룬도, 카림도, 모두 찾아와서 네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더라.”
그의 말에 내 머리 속에 내 이름을 부르며 꺼이꺼이 울었을 헤스티아가 떠올랐다. 너무 크게 울어서 선생님에게 질질 끌려 쫓겨 나갔을 헤스티아를 상상하니 미안하지만 조금 귀여웠고 아무튼 웃겼다. 그러나 웃을 기운이 없어 나는 가만히 마음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렇게 내가 오래 잠에 빠진 사이 벌어졌었던 일화들을 이야기 해주던 코리는 돌연 말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나는... 난. ”
자책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그 흑마법에 대해 알아봤으면...”
그가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아우그란 산에서 그 정체 모를 사람을 굳이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널 그 때 재우지 않았더라면...
코리는 이어 스스로에게 말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안에서 마력이 충돌하며 몸의 상태가 말이 아닌 것 같다. 왠지 잘 보이지 않는 시야에 나는 인상을 쓰고 그의 얼굴을 확인해보려고 했다.
잠을 자지 못한 건 코리도 마찬가지였는지 그의 눈 아래 다크서클이 전보다 더 크게 드리워져 있었다. 눈빛은 예전보다 훨씬 날이 서서 사나워보였지만 동시에 상처를 받은 것 같이 처량한 느낌이 있었다.
“널 위험에 빠뜨리게 한 걸까.”
단어 하나하나 마다 깊은 자책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인상을 쓰며 겨우겨우 말을 이어갔다.
방금 코리의 말은 나에게 묻는 말이기보단 스스로에게 말하는 말에 가까웠다.
왠지 코리가 꿈속의 그와 겹쳐 보였다.
절친인 내가 자기 때문에 위험에 빠진 것 같자, 코리는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뭐라고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위험에 빠뜨린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해?”
코리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역시 자기감정에는 솔직한 편인 코리였다.
“그러면 그렇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어. 마일리지 열심히 쌓아서 잔뜩 부려먹을 거니까.”
약간 장난스럽게 말한 말이었지만 현재 내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목소리가 늘어졌다.
코리는 그런 내 목소리와 말을 듣다가 잠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 잔뜩 부려먹어.”
약간 슬프게 웃은 코리였다.
잠시 코리와 대화하고 있다가 나는 문득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서서히 해가 지려고 하는 해가 보였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늘이 23일 이라고 한다. 23일이라면 내일이 코리의 생일이기도 했고, 꿈 속에서 그의 모든 가족이 몰살당한 날이기도 했다. 꿈 속에서 코리가 드보아스 후작부부 살인 사건을 정리해서 서류로 만들어 놓은 것을 읽었었다.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후작 부부는 외박 신청을 낸 비이디엘을 데리고 살짝 어두워졌을 때 저택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괴한을 만나게 된다.
드보아스 후작이 강한 마법사인 것만큼 괴한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한다. 다행히 난 그 후작을 죽일 그 계획에 대해 대충 알고 있지만 말이다.
해가 지고 있는 것을 보아 아직 일이 진행되고 있기 전이었다. 딱 코리 생일 전에 깨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은 건 다행은 아니었지만.
“슈슈, 어디 가는 거야?”
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자 코리가 내 손목 쪽 옷깃을 붙잡았다.
"일어나지마.“
그는 나를 잡아끌어 다시 침대 위로 앉혔다.
“너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냐.”
코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맞긴 맞았다. 이렇게 힘없이 끌려와 침대에 털썩 앉을 정도라면 나 정말 많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내 옆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을 본 나는 깜짝 놀라 살짝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크서클은 더욱 내려와 있었고 입술에는 핏기가 하나 없었지만 왠지 보습 젤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으며 얼굴 살도 쪽 빠져 굉장히 아파보였다.
얼굴이 파란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너무 핏기가 없어 송장처럼 보였다. 애들이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코리가 나를 보내주지 않으려 하자 나는 혈색이 좋아보이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마법진을 즉석으로 만들어 그렸다. 마력을 써서 온 몸 군데군데 약한 힘버프 마법을 걸었다.
나름 밖에서는 건강해보일 수 있도록 내 모습을 바꾸며 코리에게 보여주자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건강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내 알통을 보여주자 코리가 더욱 눈을 가늘게 떴다.
"....“
“뭐.”
그가 말없이 쳐다보자 나는 입을 비죽였다.
코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표정으로 쳐다보자 나는 그 틈에 재빨리 겉옷을 챙겨입었다. 헤이즐이나 헤스티아가 시크베이에 가져다준 건지, 시크베이 서랍에는 내 옷이 일부 들어있었다.
서랍에는 내 옷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번도 못 보던 고급 잠옷 세트도 가지런히 개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양말에 장갑에 못보던 물건들이 많다. 별안간 이브가 떠올랐다. 뜬금없지만 그 꿈 속의 이브, 정말로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였지.
“그렇게 쳐다봐도 어쩔 수 없어. 나 지금 진짜 빨리 가봐야 해 . 마력이 부족해서 그런데, 네 마법석 좀 뽑아내주라.”
코리가 아까부터 계속 쉬고 있으라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자 난 그에게 필요한 것을 말했다.
내가 필요한 건 다량의 마법석이었다. 현재 내 상태는 그의 말대로 당장 또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마법으로 내 파리한 안색을 가리긴 했지만 그 것과는 별개로 정말 서있는 것도 조금 힘들었다. 내 속에 있는 마력이 내 몸 속을 들쑤시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드보아스 후작부부가 습격당하는 그 자리에 코리를 대동하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가 자기 가족이 위협당하는 장면을 굳이 보지 않았으면 했다. 괴로울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대량의 마법석이 필요했다. 내 불안정한 마력을 최대한 쓰지 않고 마법을 펑펑 쓰려면 그의 마법석이 필요했다. 나는 대충 괴한들의 습격 방법에 대해 알고 있으니, 마력만 있다면 일단 혼자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솔직히 혼자는 좀 무리일 것 같다. 중간에 쓰러질 것도 고려해 가는 길에 마법사 용병을 한두 명 정도 고용해야지.
나는 외발을 서며 몇 번 깡총거리다가 양말을 겨우 신었다. 어지러워서 중심도 제대로 못 잡겠다. 워.
나가려는 나를 진심으로 말리는 코리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들으며 가방을 챙겼다.
끊임없이 말리는 코리에게 나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내 걱정은 지금 말고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해줘. 내일 모레쯤에 밥 같이 먹으면서 다 들어줄게.”
코리는 단호한 내 말에 곧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급한 일인 거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네 번 빠르게 끄덕였다.
“누워서 쉬라고 해도 뛰쳐나가겠지, 넌.”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다섯 번 빠르게 끄덕였다.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럼, 나랑 같이 가.”
코리가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에서 너무 고개를 빨리 끄덕여 살짝 어지러운 나를 바로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코리는 별안간 차분해졌다. 그는 힘이 없는 나를 살짝 지탱해주고 내 주머니에 자신의 마법석을 가득가득 넣어줬다.
“위험에 빠질 거면 나도 같이 빠질 수 있게 해줘.”
가는 길에 용병을 고용하려고 했지만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여는 코리가 너무 애절해보여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그가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해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다음화인가 다다음화에 율리넬 나올 예정입니다.
+표지를 공지에 올려달라는 말이 여러 번 있었는데 제가 그동안 의도치 않게 씹어왔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지금 발견해서 의도치 않은 거예요. 곧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블로그를 물으시는데 블로그는 아직 안 팠습니다. 제가 꾸미는 걸 좋아하는데 꾸미는 게 귀찮아서 블로그 만드는 걸 생각만 해놓고 미뤄두고 있었네요. 대신 트위터는 어젠가 그제 팠습니다. 저를 팔로우하면 다리가 하이해집니다.(즈려밟
+벅스번2님,차가운미소님,jina201님,랴셀님 후원쿠폰에 지금 올려놓고 또 바로 글쓰러 감니다. 핳햐하하
+오작교 나무 위키 완성됐는데 진짜로 누가 만드신 건가요? 너무 정성스러워서 심장이 너무 아파요. 콧구멍도 벌렁거려요. 사랑함니다. 진짜 작가로서 너무 행복합니다.
+할 말 또 있었는데 까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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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참치(15/20) <- 이거 까먹었었슴다 제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