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병으로 살다-26화 (26/216)

◈ 26화

본대에서 출발한 기마대.

그 선두에 선 것은 성기사들이다. 개개인의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집단 성가를 제창하지는 않았다. 오크 족장과 그 친위대는 만만치 않은 상대니까.

그럼에도 그들의 돌격은 여전히 살벌했다. 성기사는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기마보다 강력한 무장을 지녔다. 특히나 드워프제 마갑으로 무장한 성기사의 말은 그 자체가 고기 분쇄기나 다름없다.

"돌격, 돌격! 계속해서 돌격해!"

성 도르멘 수도회의 도이스는 메이스를 꾹 꼬나쥔 채 말을 달렸다.

'여기서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부귀와 영화. 성 도르멘 수도회의 단장으로서 그는 많은 것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껏 누려온 것보다, 앞으로 누려야 할 게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도이스였다.

'···빌어먹을 파탈라 왕국 놈들.'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놈들에게서 돈을 왕창 뜯어낼 것이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할 일이다. 성 도르멘 수도회는 이번 전투를 통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니까.

살아남는다 해도 조직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상황. 얼핏 봐도 타격은 심대했다. 고로, 파탈라 왕국에게 최대한 많은 배상금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도이스는 정말 영혼까지 털어먹을 자신이 있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말이다.

"뚫어라! 족장까지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외치며 도이스는 메이스를 휘둘렀다. 퍼억! 오크 한 놈이 머리가 뭉게지며 나가 떨어졌다. 그런 식으로 여러 명을 으깨면서 전진하던 그때.

무언가 나타났다.

그건 오크였다. 말도 안 되는 체구의 오크. 녀석은 말 위에서 도약하며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게 뭔···!"

퍼어어엉!

도이스의 애마가 죽었다. 머리가 터지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명을 다했다. 머리에 씌웠던 화려한 마갑은 고철덩이로 전락했다.

도이스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안장에서 몸을 띄웠다. 오러를 순환시켜 충격을 완화함과 동시에, 차분히 몸을 굴려 자세를 회복했다.

"단장! 괜찮으십니까?"

부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도이스는 전장을 살폈다. 전장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속도전을 노렸던 아군의 기마는 기세를 다했고, 지금은 포위되어 발이 묶였다.

그렇게 난전이 시작됐다. 말과 사람, 그리고 오크. 온갖 것이 뒤섞여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불리한 쪽은 누가 봐도 성 도르멘 수도회. 주변을 둘러싼 오크 무리는 끝이 없었다.

"···저놈이군."

도이스의 눈에 거대한 오크가 들어왔다. 방금 전에 자신의 애마를 무식하게 처죽인 놈. 아주 미친 듯이 날뛰며 아군을 학살하고 있다.

화려한 가죽 망토. 팔뚝에 걸린 장신구. 그리고 녀석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깃발까지.

아마 저놈이 울라막 부족의 족장일 것이다. 굳이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음에도 총대장이 전면에 나서다니. 과연 오크다운 사고방식이다.

"아아아아악!"

성기사 한 명이 오크 족장에게 붙잡혀 찢어졌다. 정말 압도적인 힘이다. 양산형이기는 하지만, 저래 보여도 드워프제 전신갑주이거늘.

과연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았다. 오크 족장이라고 해서 전부 저 정도로 강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저놈은 특별해 보였다.

"단장! 어떻게든 활로를 열겠습니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 훗날을·····!"

"멍청하기는! 훗날따위는 없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도이스는 메이스를 꼬나쥐고서 오크 족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끝을 본다."

도이스의 메이스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주 선명한 빛깔. 주변의 성기사 중 이보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사람은 없었다.

또 한 명의 인간을 찢어발기던 울라막 부족의 족장, 케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흐, 네가 이놈들의 대장인 모양이구나."

일반적인 오크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덩치, 맹수처럼 부리부리한 눈빛, 그리고 거칠게 땋아내린 수염 한 줄기.

평범한 사람이 눈앞에서 케토르를 마주한다면 그대로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찌릿한 살기가 물씬 풍겨왔다.

케토르는 가시가 삐죽삐죽 박힌 권갑을 털어냈다.

"영 약한 놈들 뿐이라 실망하던 참인데, 때마침 잘 나타났다."

"····내 너를 죽이고 광명을 찾을 것이다."

툭, 투둑. 케토르의 권갑에서 피와 살점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도이스는 미간을 구겼다. 동료 성기사의 살점 또한 저 속에 섞여 있겠지.

"개같은 놈···. 네 목은 그냥 태우지 않을 게야. 박제해서 두고두고 조롱거리로 삼아주마."

도이스의 으르렁거림에 케토르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나는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내가 이겨도 네 목을 박제하지는 않겠다."

박제 같은 걸 왜 한다는 말인가? 그냥 터트려 버리면 끝인데. 애초에 목이나 자르는 건 케토르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런 아기자기한 소꿉놀이는 사양이다.

후우우웅!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온몸에서 하얀 빛을 뿜어내며 도이스가 달려들었고, 힘이 가득 실린 메이스가 케토르의 머리를 노렸다.

"느리구나."

하지만 메이스는 손쉽게 막혔다. 마중나온 케토르의 권갑에서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메이스의 위력 자체가 약하지는 않았다.

권갑의 표면에 붙어있던 가시 몇 개가 박살나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주먹도 살짝 아렸다.

"좋아. 그래도 허투로 대장 직을 딴 건 아닌 모양이군."

한바탕 놀아볼 맛이 있을 것 같다.

온통 잔챙이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준척급이 하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케토르는 도이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 그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그는 전투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화르륵! 순간 메이스에서 튀어나온 불길이 케토르의 팔뚝을 훔치고 지나갔다. 그 정체는 성화(聖火). 두터운 녹색 피부 위로 물집이 생겨났다.

'그냥 따끔한 수준이야.'

성화를 조심하라 했던 율리아의 당부가 아주 잠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말벌한테 쏘인 것보다 약간 더 아픈 느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한순간에 찾아온 전투의 열락이 그의 머리를 정복했다. 케토르는 오직 전투에 집중할 뿐이다.

***

파동 오러를 처음 접하고서 칸은 깨달았다. 파동 오러는 무기를 통해 시전하는 것보다, 직접 손을 맞대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파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체내의 오러에서 쇠붙이로 바뀌는 순간,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기술에 파동 오러를 접목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업었다.

'나중이라면 가능할까?'

그건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파동 연공을 주먹이나 면장에 실어내는 것이 훨씬 쉽고 강력했다.

-나도 그래요. 그래서 고민 중이죠. 무투술 쪽을 더 갈고 닦아야 할지, 아니면 계속 검에 접목해 볼지.

모르텐식 파동연공의 원주인이라 할 수 있는 제이나조차 저렇게 말할 정도였다. 과거 모르텐 가문이 성세를 유지하고 있을 적에도, 무투술로 유명했다고 하더라.

"죽어어어어엇!"

짧게 스쳐간 상념에서 벗어나며 칸은 살벌한 날붙이를 피했다.

이름 모를 오크가 사용하는 톱날검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죽으로 이루어진 갑주가 살짝 뜯어지기는 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후웅! 이번에는 옆구리를 노리고 창이 날아왔다. 오른손에 쥔 검으로 그 창날을 쳐내며, 칸은 앞으로 전진했다.

"쥐새끼!"

톱날검을 든 오크 놈이 뭐라고 지껄였지만 칸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머리 위로 떨어지는 톱날검을 회피할 뿐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어 주먹을 꽂아넣었다.

"꺼흑····!"

퍼어어억!

톱날검 오크는 눈을 부릅떴다. 녀석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피가 뿜어졌다. 숨이 턱 막혀오는 것과 동시에 전신에서 힘이 빠진다.

가슴을 감싸고 있는 두터운 가죽갑주. 언제나 든든하기만 했던 그 갑주가 이번에는 주인의 기대를 배신했다.

"끄르르르륵···!"

칸의 주먹과 맞닿은 곳은 멀쩡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가죽갑주의 뒷부분이 풍선처럼 뻐엉 터져 나갔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하칸!"

근처에 있던 다른 오크가 얼빠진 소리를 지껄였고, 칸은 곧바로 움직여 녀석의 가슴에 있는 힘껏 주먹을 꽂았다.

투우우웅! 일점을 향해 방출된 파동 오러가 다시 한 번 주먹을 타고 방출됐다.

갑주, 겉가죽, 가슴 근육, 그리고 심장. 다시 한 번 오크의 내부를 유리한 파동 오러는 등쪽으로 터져 나오며 흩어졌다.

"끄르릅, 여, 염병할!"

"····."

이번에는 상대의 심장을 터트리는 것에 실패했다. 살짝 타점이 흔들렸다. 때릴 때마다 심장을 터트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녀석의 내부에 타격을 줬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어디서 이딴 얕은 수작을···!"

서걱. 칸은 깔끔하게 검을 휘둘러 눈앞의 오크를 마무리했다. 녀석은 창을 들어 반격하려 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어느새 마흔 명.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숫자가 칸의 손에 절명했다. 칸은 살짝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며 오크들을 노려봤다.

"후읍, 후우···."

"·····."

"···흐읍, 후우."

난전 중에 홀로 고립된 인간. 원래라면 잡아먹기 딱 좋은 사냥감이다. 하지만 칸은 여태껏 버텨냈다. 아니, 버텨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압도했다.

"·······."

이쯤 되자 오크들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놈들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칸을 둘러쌌다. 명예를 중시하는 오크들도 목숨은 소중했다.

"코코."

호흡을 정리한 칸은 조용히 코코를 불렀다. 이름 모를 오크 기마와 충돌하면서 나가떨어졌던 코코. 아직 덜 자랐기 때문인지 버티는 힘이 약했다.

하지만 드라고 자체가 워낙 강골인지라, 맷집 하나만큼은 벌써부터 무시할 수 없었다.

칸은 주변의 오크들을 경계하며 코코의 등에 올라탔다. 높아진 시야 덕분에 전장이 눈에 잘 들어왔다.

'족장의 직속 부대라도 되는 건가? 쉽지 않아. 매번 파동 오러를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상대하고 있는 오크들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정예로웠고, 걸치고 있는 무장도 하나로 통일돼 있었다.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영감.'

칸은 톨칸을 비롯한 강철 용병단을 찾으러 애썼다. 하지만 드워프는 키가 작기 때문일까?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잡아끈 놈은 따로 있었다. 거대한 체구의 오크. 멀리서도 확실하게 보인다.

게다가 녀석의 주변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띈다. 성화를 피어낸 성기사들이 거대 오크를 상대하고 있었다.

저쪽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저건 그냥 괴물이잖아.'

화려한 갑주의 도이스. 그는 팔 한쪽이 뜯겨진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키기 위해 여러 명의 성기사가 거대 오크와 싸우고 있는 광경.

마치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는 것처럼, 다른 오크들은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있었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 공간을 마련할 뿐이다.

'저렇게 많은 성기사와 대적하면 오우거조차 30분을 버틸 수 있을까 싶은데···.'

저 오크는 그걸 거뜬히 해내고 있다. 물론, 녀석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피부 곳곳이 뻘겋게 달아올랐고, 메이스에 얻어맞기라도 했는지 허리춤이 한 웅큼 뜯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깨에 검까지 두어 개 꽂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은 쪽은 누가 봐도 거대 오크 쪽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승리를 직감하기라도 한 걸까? 환희가 가득 들어찬 포효가 거대 오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고막이 멍할 정도로 시끄러운 포효였다.

후웅! 아주 잠깐 칸의 미간을 찌푸려진 것을 놓치지 않고, 오크 한 놈이 창을 내질렀다. 나름 날카로운 공격이다.

"커헉!"

칸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틀어 창을 피하고는 녀석의 면상에 검을 꽂았다.

그러던 그때.

꽈아아아아앙!

굉음이 들려왔다. 그 방향은 거대 오크와 성기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 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주변의 오크들도 뭔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고, 영감."

어디서도 보이지 않던 톨칸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전쟁 망치 한 자루를 꼬나쥐고서 거대 오크와 대면한 톨칸. 그런 그의 뒤로는 소수의 드워프들이 잔뜩 따라붙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이놈들과 씨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했다. 칸은 강하게 고삐를 잡아채며 코코의 배를 박찼다.

***

멧돼지에서 도약하며 그대로 찍어내린 망치질. 기회를 살피다 내지른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치명상을 가하지는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속으로 혀를 차며 톨칸은 바닥에 착지했다.

"이번에는 난쟁이인가? 그러고 보니, 일전에 까불던 놈이 하나 있었다고 들었지. 그 녀석도 너만큼 늙은 놈이었어."

피를 뒤집어쓴 케토르는 톨칸을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토르아둠."

"뭐?"

"늙은 놈이 아니라 토르아둠이다."

피식 웃음을 흘린 케토르는 손을 뻗어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았다. 피가 흘러나왔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전투의 흥분은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난 또 뭐라고. 약한 놈의 이름따위는 기억하지 않는다."

"·····."

까드득. 톨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살심이 점점 덩치를 불려갔다. 이 분노는 오늘 이 자리에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눈앞의 오크 족장을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최초의 일격으로 대충 견적이 나왔다. 만약 몸이 젊었을 적의, 전성기의 기량이라면 가능했을까?

'그딴 거 알게 뭐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결국 톨칸은 선을 넘기로 했다. 그의 팔뚝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화, 황금색!"

"결국 사용하시려는 건가!"

뒤편에 자리잡은 테르포차가 경악을 토했다. 다른 드워프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 톨칸의 몸에서 발현되고 있는 오러 기술은 '황금문(黃金門). 저건 대륙 북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황금망치 용병단의 간부진에게만 전수되는 오러 기술이다.

일종의 신체 강화용 오러 기술. 순환로를 따라 오러를 자극함으로써 신체의 잠력을 끌어내는 것이 황금문의 효과였다.

물론, 강제로 잠력을 끌어내는 만큼 그 부작용 또한 상당했다. 때문에 고령의 간부들은 극히 제한적인 활용만 허락된다.

만약 황금문을 전혀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나이를 먹게 되면, 그 간부는 황금망치 용병단에서 은퇴 수순을 밟는다.

지금은 죽어버린 토르아둠은 은퇴를 권고받아 강철 용병단을 창설했고, 같은 이유로 은퇴한 톨칸은 개인 용병으로 활동해왔다.

'···결국 모든 걸 거셨군요.'

테르포차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도끼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황금망치 용병단에서 은퇴한 고령의 드워프가 황금문을 다시 운용한다는 것. 그건 목숨을 버렸다는 뜻이다.

슈우우웅!

순식간에 사라진 톨칸이 케토르의 앞에 나타났다. 공격에 가세하려던 성기사들은 그 움직임을 놓치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터어어어어엉!

그 움직임에 반응한 것은 오직 케토르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표정이 살짝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망치를 막아낸 케토르의 권갑이 뒤로 크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뒤이어 벌어진 여러 번의 공방에서도 케토르는 연신 뒤쪽으로 걸음을 물렸다. 한 번씩 공격을 허용하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반격이 없지는 않았다. 어깨를 타격당한 직후, 케토르는 전쟁 망치를 붙잡아 톨칸을 멀찍이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거리를 벌려 호흡을 정리했다.

"그래, 네가 진짜였구나! 늙은 드워프! 성기사고 나발이고 간에 네가 진짜 전사였어!"

황금색으로 번들거리는 톨칸의 눈동자. 왠지 모르게 귀기마저 느껴지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케토르는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이윽고·····.

꽈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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