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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으로 살다-60화 (60/216)

60화

익숙지 않은 객사에서 칸은 눈을 떴다. 미리 떠 놓은 세숫물로 얼굴을 씻고서 어깨를 휘휘 저었다. 오늘은 어째선지 몸이 살짝 찌뿌둥했다.

"잠을 이상하게 잤나?"

지난 열흘. 칸은 숨어있는 열등종을 사냥하기 위해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첫날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놈들은 아주 작정하고서 숨어들었다. 도시의 음습한 곳들을 전부 뒤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색출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수도청 관리와 오염물 처리업자, 그 외 소수의 협력자들을 족쳐서 정보를 뽑아낸 덕분에 색출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놈들은···· 아주 술술 정보를 불었다. 반항적인 기질이 다분했던 녀석도 헤르메이의 심문실을 방문하고 나면, 아주 순종적인 양으로 변모했다.

'····내장압착 외에도 뭔가 더 있을 거야.'

더 궁금해하지는 말자. 헤르메이의 고문법은 굳이 자세하게 알고 싶지 않았다. 내장압착 하나만 알고 있어도 충분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칸은 소르덴이 머무는 객사를 방문했다. 소르덴은 엊그제 의식을 찾았다.

"왔냐?"

다시 깨어난 소르덴은 어째선지 얼굴이 밝았다. 죽을 위기를 겪으며 뭔가 깨달은 게 있는 걸까? 아직 그 속내를 알기는 힘들지만, 최근에 보여줬던 모습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랐다.

"몸은 좀 어때?"

"크큭, 아직 여기저기 쑤신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네 덕분에 뒤질 목숨을 부지했잖아."

"새끼, 알면 열심히 살아라. 헛짓거리 그만하고."

칸의 일침에 소르덴은 살짝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 난 말이야, 진짜 미친 듯이 강해지고 싶어."

정신을 차린 뒤로 계속 생각해 왔던 소르덴이다.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무얼 하면 강해질 수 있을까. 거듭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몸이 회복되는 대로 체스카를 떠나는 것.

"그래서 떠날 거야. 지금처럼 체스카에 머물기만 해서는 발전할 수 없을 것 같거든."

"어디로 떠날 건데?"

"지금껏 모아둔 돈을 전부 싸 들고서 이데리코 반도로 가보려고."

이데리코 반도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존재한다. 그 도시국가들은 '이데리코 동맹'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있지만, 그 결속력은 아주 느슨한 수준이다.

외부에서 직접적인 위협이 들어오거나, 한목소리로 주장할 것이 생기거나. 무언가 큰일이 있지 않으면 이데리코 동맹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서로 경쟁하기 바쁜 이데리코 동맹의 구성원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데리코 동맹은 꽤 긴 세월 동안 유지되고 있다.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거력(巨力). 그 거력의 근원은 이데리코 반도의 정중앙에 자리한 '붉은 산맥'이다.

"···붉은 산맥을 등반하려고?"

"엉, 되든 안 되든 있는 힘껏 꼬라박을 생각이야."

붉은 산맥에는 온갖 몬스터가 넘쳐난다. 그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 바로 이데리코 동맹. 지금은 범국가적인 동맹이 됐지만, 그 시작은 분명 몬스터 방지를 위한 모임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넘쳐나는 몬스터들 덕분에 붉은 산맥 근처에는 여러 강자(強者)들이 터를 잡고 있다.

이름을 날리는 용병, 명성을 떨치고 싶은 명문가의 차남, 몬스터 토벌을 위해 파견된 도시국가의 장군, 개인의 단련을 목적으로 삼은 수련자, 그 외 등등.

강자의 종류는 다양했고, 그렇게 모여든 강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데리코 반도의 경쟁력을 높여 줬다. 돈만 있다면 실력 좋은 군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두각을 보이면 그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여러 도시국가에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경쟁이 격화될 수록 고용 조건 또한 좋아진다. 그만큼 탐나는 인재라는 뜻이니까.

"붉은 산맥에서 구르다 보면 실력이 좀 늘겠지 뭐. 운 좋으면 거기서 좋은 스승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냐?"

"···말년에 할 일없는 작자들이나 제자를 들이겠지."

종종 그런 풍문이 돌기는 했다. 붉은 산맥의 어떤 수련자가 말년이 될 때까지 자신의 수발을 들어준 일꾼에게 기술을 전수했다는, 그런 식의 말 같지도 않은 풍문들.

아예 어느 집단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그런 식으로 오러 기술을 전수받는 건 진짜 요원한 일이다.

"그런가? 아, 몰라~ 어차피 인생은 운빨이라고. 안 되면 독학으로 익혀야지 뭐."

"독학은 쉬운 줄 아냐?"

"걍 대충 넘어가, 크큭."

소르덴의 장단에 맞춰 적당히 웃음을 흘리던 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르덴이 기운을 차린 것을 봐서 그런지 마음이 놓인다.

"광장으로 가는 거지?"

"그래야지. 오늘부터 공론회가 시작될 테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만····."

상처 회복을 위해 줄곧 누워있는 소르덴이지만, 지난 며칠 사이에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간 소문은 그의 귀에도 들어왔다.

객사를 대신 청소해 주는 사용인들의 수다는 상당히 시끄러웠으니까.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 수밖에 없었다.

"힘내라, 칸."

소르덴은 떠나가는 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젠가는 칸과 동등한 입장에서 의뢰를 받아볼 것이다.

***

자유도시 체스카의 중앙 광장.

지금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시에서 축제를 벌이거나, 어떤 범죄자의 형을 집행할 때면 집합하게 되는 장소. 하지만 오늘은 그 목적이 약간 달랐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순혈종이고 나발이고 간에 빨리 끌고 오기나 해라!"

"흐하하, 간만에 볼거리가 생겨서 좋구만! 나는 흡혈귀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야!"

"혹시 그 흡혈귀 놈을 불러다가 매질도 하려나?"

"당연히 하겠지!"

오늘 광장에서 벌어질 행사는 흡혈귀 공론회. 시민들은 이 행사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른다.

여기서 사형수의 목을 자르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지를 것이고, 발가벗겨 놓고 채찍질이나 태형을 집행한다 해도 기뻐할 것이다. 굳이 흡혈귀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구경거리. 광장에서의 행사는 보통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장사치들은 한몫 제대로 잡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 것이고, 거지들은 구걸을 위해 도로 위에 자리를 잡겠지. 시민들은 그저 웃으며 떠들 것이다. 복잡한 의미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로 사람이 모였으니 홍보 효과 하나는 아주 끝내주겠어.'

광장에 마련된 단상 위에서 칸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공론회의 내용을 여러 곳으로 퍼나를 것이다.

문득 제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도시에서 습격이 벌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

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색 사람쥐, 트로치의 입에서 나온 열등종 흡혈귀의 숫자는 스물한 명. 개중에 확실하게 척살한 숫자만 열다섯이다.

이제 남은 열등종의 숫자는 모두 여섯. 그 전력으로 광장에 난입하는 것은 그냥 자살 행위에 불과했다.

추가로 잠입한 녀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헤르메이의 주도하에 도시 입구에서부터 아주 빡빡한 검문이 진행됐으니까.

'성가(聖歌)를 부르며 한은으로 된 삼지목 목걸이를 들이미는 모습은 진짜 광신도 같았지.'

지난 열흘 동안 외부에서 체스카로 진입하려던 사람은 저 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몇십 명씩 묶어서 진행됐기에 의외로 검문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사람쥐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걔네는 숫자가 백 단위로 모였을 때나 유의미한 위협이 된다고 한다. 트로치 같이 몇몇 특별한 개체만이 강력한 전투력을 뽐낼 뿐이다.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중앙 광장에서 습격이 벌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칸, 아무리 상황이 낙관적이어도 방심은 금물인 거 알지? 눈 똑바로 뜨고 주시해야 해."

"너야말로 방심하지 마, 제이나."

"엣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방심을 모르는 여자라고 할 수 있지."

제이나는 가슴을 활짝 편 채 양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본 칸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단상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시민의 통제를 맡고 있는 것은 체스카 경비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대의 모든 인원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휴가를 나갔다가 강제로 복귀하게 된 경비병만 불쌍하게 됐다.

"아, 물러서세요! 이 선은 넘으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아니,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조금만 봐줘. 여기서는 단상이 잘 안 보여서 그래."

"어허이! 안 됩니다! 빨리 뒤로 가세요!"

어떤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는 경비병. 칸은 그쪽을 일별하고서 광장과 연결된 4개의 도로를 바라봤다.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뚫려있는 도로. 저 중에 시청과 연결된 곳은 북쪽에 위치한 도로였다. 죠반니는 저쪽 길을 통해 광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각각의 도로에는 거대한 삼지목이 세워져 있었다. 일명 '악을 주시하는 나무'. 줄여서 '주시목'이라고 불리는 도구.

잘 모르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성신교의 상징물로 여길 테지만, 저건 일종의 탐지기였다.

'흡혈귀가 삼지목 근처를 지나가면 사용자에게 신호를 전달한다고 했지.'

이단 심문소의 비전 중 하나라고 하는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구한 역사의 성신교는 무수히 많은 비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단상 위에 있던 어떤 관료가 확성기를 입으로 가져간 것은 그때였다.

"여러분! 드디어 순혈종 흡혈귀 죠반니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아아아-!"

시청에서 나온 죠반니가 광장으로 끌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삼지목에 팔다리가 묶인 채 마차에 매달려 있는 죠반니. 그 모습은 꼭 선인장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죠반니는 시민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거대한 환호성. 시민들의 호응은 정말 대단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들끼리 떠들기 바빳던 사람들이 일제히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죠반니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 위로 어떤 액체가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카악, 퉤-!"

걸쭉한 가래침. 그 끈적한 촉감을 느끼며 죠반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래침의 주인은 평범한 인상의 인간 남성이었다.

"흐하핫! 맞았다! 내가 뱉은 침이 저 새끼 면상에 올라갔어!"

남자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죠반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도 세운 것처럼 여기저기 떠들기 바빴다.

"····개새끼."

죠반니가 작게 욕설을 읊조렸다. 하지만 가래침은 약과에 불과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맹이가 죠반니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종종 썩은 채소가 날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

만약 마차 위에 매달려 있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도로 위로 올라와 죠반니의 뺨을 후리고 옷을 찢었을 것이다. 광장으로 끌려온 죄인의 신세는 대부분 그러했다.

"으하하하! 저 새끼 얼굴 구기는 것 좀 봐!"

"헹, 남들 피나 빨아먹는 새끼가 뭐 잘났다고 그딴 표정을 짓는 거냐!"

"누구 돌멩이 없어? 있으면 좀 줘 봐! 나도 한 번 던져 보게!"

"저쪽에서 팔더라. 2쿠퍼에 3개."

도로에서의 조리돌림은 이단 심문소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막으려면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막지 않았다.

죠반니의 자존심을 깎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흡혈귀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이단 심문소는 오히려 조리돌림을 장려했다. 시민들 사이에 섞여있는 바람잡이들이 그 증거였다.

그러던 그때, 성죠반니의 눈에 어떤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성난 군중 속에서 홀로 담담히 서있는 노인. 익숙한 얼굴이다.

"····노야. 노야가 왔어."

그 노인을 바라보며 죠반니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정말 다행이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건물.

창가에 마련된 귀빈석에서 누군가 말문을 열었다.

"웃고 있군요."

흰 머리칼을 지닌 남자. 그는 뱀처럼 얇은 눈을 하고서 광장을 주시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광장에 들어서고 있는 죠반니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마치 제 놈이 고고한 귀족이라도 되는 양 웃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밤의 귀족이라고 칭하더니, 진짜로 귀족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봅니다. 아니면 실성하기라도 한 걸까요? 그도 아니면····."

어딘가에 믿을 구석이라도 마련해 놓았는지도 모르지. 흰 머리칼의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살벌한 미소를 꽃피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확신하고 있었다. 오늘 이 광장에서 습격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죠반니의 입가에 맺힌 재수 없는 미소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저깟 미소,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한 존재였다.

"체리예니."

"말씀하시죠, 소장님."

"단상에 있는 심문관들에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일러 주세요."

이단 심문소의 소장, 그레고르 라젠발은 비서 체리예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어떤 징조라도 느끼셨습니까?"

"그런 건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그냥 마음이 불안해서 그래요. 으음, 아! 윗대가리의 변덕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군요."

"···그런 천박한 단어는 자제해 주시길. 여기는 공적인 자리입니다."

"하하하, 그럼 상관의 변덕으로 합시다."

비서 체리예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단상으로 향하는 길에 주머니에서 4개의 구슬을 꺼내 들었다.

각각의 구슬은 광장 입구에 세워둔 주시목과 연결돼 있다. 만약 흡혈귀가 탐지된다면 구슬이 밝게 빛날 것이다.

"····아직은 잠잠해."

그리고 앞으로도 잠잠해야만 한다. 이 구슬이 빛을 발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체리예니는 구슬을 다시 품 속에 갈무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 카르멘 시장은 귀빈석에 앉아 다른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족장 살해자의 포섭을 계속 시도하실 겁니까?"

어떤 의원의 말에 카르멘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사람을 구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인성에 모난 부분도 없고, 실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지. 게다가 요즘 보니 이단 심문소와의 관계 또한 나빠 보이지 않더군."

"실력과 인성, 그리고 인맥까지 갖춘 사람이군요."

"그런 셈이지. 우리 사람으로 만들면 더없이 좋고, 안 되더라도 이용해 먹기에 딱 좋은 사람이야."

의원이 말끝을 흐린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보우덴 백작의 기사 서임 제안까지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로 판명된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일은 없다. 비슷한 일이 어디선가 일어난 적이 있기에, 그런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왔을 것이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그리고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가 족장 살해자에게 더 큰 걸 약속하면 되지 않겠나."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 도시가 백작령의 기사 서임보다 더 많은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기껏해야 경비대장직을 맡기는 정도겠지. 돈을 좀 많이 얹어주거나, 의원직을 제안할 수도 있을 거고.'

사실 경비대장과 기사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도시의회의 의원직 정도는 얹어 줘야 그나마 균형이 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의원은 생각을 마치며 말문을 열었다.

"페노키 공이 족장 살해자를 먼저 포섭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카르멘 시장은 조용히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귀빈석의 끝자락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 그는 제 측근과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페노키 공. 저 작자는 할리만 남작가의 차남으로, 호시탐탐 체스카의 시장직을 노리고 있는 놈팽이다. 카르멘 시장의 가장 거대한 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쎄, 쉽지는 않을 게야. 족장 살해자는 생각보다 줏대가 강하거든. 자네 말마따나 백작의 제안까지 거부한 인물이지. 겨우 페노키 공의 제안에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아."

보우덴 백작의 제안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끈질긴 구애를 철벽처럼 차단한 사람이 바로 칸이다.

그런 남자가 페노키 공에게 넘어갈 리가 없다. 페노키 공은 가문의 이름을 앞세워 입지를 넓혀가는 반푼이. 애초에 칸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던 그때, 광장에서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때려라! 빨리 때려!"

"그냥 발가벗겨서 채찍을 내려쳐!"

"태형도 준비해! 볼기짝 정도는 때려줘야 볼맛이 난다고!"

광장을 통과한 죠반니가 단상 위로 끌려온 것이다. 죠반니는 시민들이 잘 보이는 위치에 세워졌다.

"대화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아, 예····. 알겠습니다."

카르멘 시장은 입술을 꾹 닫으며 손으로 광장을 가리켰다.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공론회나 즐기라는 손짓이다.

순혈종이고 나발이고 간에 흡혈귀가 매를 맞는 모습은 꽤나 진귀한 광경이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그런 구경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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