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다들 결심이 섰구나."
우르갈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부하 산적들이 저러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녀석들은 비밀 산채에 피 냄새를 풍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행여나 흡혈귀들이 비밀 산채를 찾아올까 봐, 자신들 때문에 피해가 생길까 봐.
"크흑, 꼭 살아남으십쇼!"
"나중에 뵙겠습니다, 채주!"
산적들치고는 배려심이 넘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칸은 볼을 긁적이고서 말했다.
"신파극은 나중에 너희끼리 따로 해. 그리고 굳이 떨어져 나갈 필요도 없어."
우르갈이 고개를 돌려 칸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피어나 있었다.
"혀, 형님께서 저희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칸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나절 만에 호저채를 박살 낸 흡혈귀들을 눈 깜짝할 새에 도륙 낸 오크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장님과 다를 게 없다.
산적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칸을 돌아봤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칸은 미간을 구겼다.
그리고 우르갈의 입에서 나온 호칭도 지적했다.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형니이이임-!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 말을 듣기는 하는 거야? 우르갈은 곧바로 대가리를 땅에 처박았다.
높이 쌓인 흰 눈 때문에 어깨와 몸통이 푹 잠길 지경.
칸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간 우르갈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던 그때, 우르갈 뒤편의 다른 오크들도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형님의 형님이시니 저희에게도 형님이십니다!"
"큰 형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은인 어른!"
푸욱, 푹-!
눈밭에 나무를 심는 것처럼 머리를 꼬라박는 오크들. 참 기이한 광경이다.
몸이 좋지 않은 놈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은혜 같은 게 아니야. 난 그저 너희를 미끼로 쓰고 싶을 뿐이다."
칸은 냉정하게 말을 뱉었다. 오크 흡혈귀가 피 냄새를 맡고 찾아온다고 했고, 지금 산적들은 피투성이였으니까.
지금 당장 만년 설산에서 이렇게 많은 미끼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살려 주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 또한 저희에게는 은혜일뿐입니다, 형님!"
우르갈은 고개를 바짝 들고서 대꾸했다. 그 모습에 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밀 산채인지 뭔지로 빨리 안내나 하시지?"
"알겠습니다!"
쓸데없는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산적 떼가 합류한 칸 일행은 빠르게 비밀 산채를 향해 이동했다.
거리 자체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주변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았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눈보라, 쌓여있는 눈밭, 어둠이 찾아온 하늘. 그 모든 것이 일행을 굼뜨게 했다.
'나도 슬슬 힘들군.'
칸은 슬쩍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일행들도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특히나 포르모스가 문제였다.
"으드드드····."
입술을 달싹이며 몸을 덜덜 떠는 모습. 그게 안쓰러웠는지 조랑말 마빈이 근처에서 후욱-! 불을 뿜었다.
"마, 마빈. 고마워."
"히히잉!"
다만, 마빈이 입으로 뿜어낸 열기는 단순히 포르모스의 체온을 녹이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근처에서 걸음을 옮기던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부상에 신음하던 산적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마빈을 돌아봤다.
어쨌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꽤 거대한 크기의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에는 목책이 세워져 있었다.
"형님, 여기가 저희의 비밀 산채입니다."
앞장서서 걷던 우르갈이 오두막을 가리켰다. 그는 몇 번이고 와봤다는 듯 자연스레 목책을 치웠다.
최근까지 관리하기라도 했는지 목책 자체는 멀쩡했다. 칸은 속으로 작은 감상을 뱉고서 걸음을 옮겼다.
"식사부터 다시 준비할까요?"
올가니가 옆으로 따라붙으며 질문을 던졌다. 원래 식사를 만들던 차에 흡혈귀의 습격을 받았었다.
지금 그녀의 말안장에는 냄비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까 볶다가 만 채소와 육포가 그대로 존재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전부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그 냄비를 일별하고서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일단은 배부터 채우자. 간만에 몸을 거세게 움직였더니 허기가 금방 찾아왔다.
날씨도 날씨인지라, 뜨거운 국물이 땡겼다. 어떤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꼬르르륵·····.
민망하기 짝이 없는 뱃고동 소리. 그 소리의 출처는 채주 우르갈이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올가니. 넉넉하게 끓이시오."
칸은 적당한 곳에 궁둥이를 붙이며 그렇게 말했다. 근처의 기둥들 사이에 천막이 걸려 있어 눈을 맞지 않는 위치였다.
"몇 인분 정도로 할까요?"
"글쎄····."
칸의 눈동자가 산적들 쪽으로 옮겨갔다. 서른 명? 대충 그 정도 숫자는 되는 것 같다.
"서른 명. 아니, 서른다섯 명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끓이면 되겠군."
"어어···· 그렇게 많이 끓이면 식량 비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만?"
"그냥 하시오."
식량이 떨어지게 되면 부족한 부분은 사냥으로 채우면 된다.
겨울 사냥이 쉬운 편은 아니다만, 그래도 칸 일행 정도면 금방 사냥감을 찾을 수 있더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하지만 저희 비밀 산채에도 비축해 놓은 식량이 따로 있습니다! 재료를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어째선지 아까부터 바짝 군기가 잡혀 있는 우르갈. 칸은 거슬린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쑤셨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휘둘러 허공에 물줄기를 소환했다. 물[水] 마법의 기본 술식이 발동된 것이다.
쪼로록-
냄비에 물을 채워 넣기 위한 마법.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물줄기는 얼어붙었다.
'역시 쉽지 않아.'
워낙 온도가 낮은 탓이다. 대충 손을 털어낸 칸은 마법을 해제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곧 찾아올 맛있는 저녁 시간을.
***
하룻밤이 지났다. 간밤에 3개의 흡혈귀 무리가 비밀 산채를 찾아왔었다.
부상을 입은 다수의 오크. 그 효과는 아주 확실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흡혈귀 오크가 부나방처럼 날아든다.
덕분에 비밀 산채 근처에 시체가 계속 늘어났다. 몸이 멀쩡한 산적들은 그 시체들을 목책 옆에 쌓았다.
"약간 오른쪽! 딱 두어 걸음만 옆으로 가봐!"
"이렇게? 이거 맞아?"
"오, 그래. 딱 좋아."
흡혈귀 오크의 시체는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사후 경직 따위가 아니라, 설산의 추위 때문에 얼어붙은 것이다.
이렇게 얼어붙은 시체는 아주 좋은 엄폐물이 된다. 목책이 무너진 곳을 보수하기에 딱 좋았다.
강도만 놓고 봐도 어지간한 벽돌보다 단단했다.
그 생김새 때문에 한 번씩 소름이 돋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훌륭한 재료였다.
물론, 그 섬뜩한 외관마저도 눈이 계속 쌓이면서 금방 감춰졌다. 눈이 굳으면 그냥 하얀 벽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 위에다 더 쌓아. 응, 그래 그렇게."
"쓰벌거, 엄청 무겁네."
어쨌거나 시체로 쌓은 벽 덕분에 비밀 산채 주변은 마치 성처럼 변했다.
그만큼 덤벼든 오크 흡혈귀의 숫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피 냄새를 향한 놈들의 욕구는 확실했다. 하지만 이미 죽어서 몸이 식어버리면 효과가 반감되는 듯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생겨난 시체들은 이제 벽으로 다시 탄생하게 됐다. 아주 훌륭한 엄폐물이다.
끄아아아아아──!
절절한 비명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시체로 벽을 쌓던 산적들은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돌렸다.
비밀 산채의 안쪽. 지금 저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단 산적들이 알 길은 없었다.
그저 이따금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몸을 떨어댈 뿐이다. 하지만 저 비명이 누구의 것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놈이네."
"응, 맞아. 순혈종인지 뭔지 하는 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코토타랬나?"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사실 단순히 얼핏 들어본 수준이 아니라, 이 근방에서는 꽤 유명했다.
최근 1, 2년 사이에 급격히 명성을 높였던 어떤 부족의 대전사였나? 아무튼 그럴 것이다.
별명은 쌍검 기마의 코토타.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언젠가 독립하여 따로 부족을 세울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그놈이 흡혈귀였을 줄이야."
"허참, 진짜 꿈에도 몰랐다."
"갑자기 실력이 늘어난 것도 전부 흡혈귀랑 붙어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
흐히이이이이익──!
"·····."
"···그냥 일이나 하자."
"그래."
잠시간 작업을 멈췄던 산적 둘은 다시 열심히 시체를 옮겼다. 오크 흡혈귀의 시체는 하나같이 몰골이 살벌했다.
심장부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고, 머리통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난 모습.
혹시나 다시 깨어날까 싶어 해놓은 조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산채 쪽에서 다리 들려오는 비명. 바깥의 산적들은 괜스레 치솟는 호기심을 애써 잠재웠다.
원래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다. 저런 건 그냥 모르는 게 약이다.
한편, 비밀 산채 안에서는 비밀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크 흡혈귀, 그것도 순혈종의 생명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
"으흑, 개새끼! 뼈째로 씹어 먹을 연놈들!"
의자에 묶인 코토타가 몸을 뒤틀었다. 특이하게도 이놈은 몸 자체를 혈액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원래 그동안 만났던 순혈종들은 위험에 처할 때면 몸을 혈액으로 변환해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코토타는 그런 시도조차 없다. 열심히 발악하는 코토타를 바라보며 칸이 말했다.
"너는 혈액화가 불가능한가 보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순혈종과는 반응 자체가 너무 달랐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토타의 반응. 싸움 실력은 둘째 치고, 이놈은 심리적인 부분에서 취약한 듯했다.
"····퉤! 좆이나 까 잡숴."
태연한 척 침을 뱉었지만, 목소리의 끝이 살짝 떨려왔다. 그 미세한 음파의 갈라짐을 칸은 놓치지 않았다.
파동에 극도로 예민한 칸이다. 계속 발전하다 보니 상대의 목소리 떨림이 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잡아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이게 절대적인 거짓말 탐지기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 동요를 판단하는, 그런 수준의 기능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림자 술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꼭 다급해지면 그걸로 공간 이동을 펼치더만."
오쉬하르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했는지 얼굴 근육이 꿈틀거린다.
"오크가 흡혈귀가 되면····· 미친놈처럼 변해서 고통을 잊는 것. 그리고 다른 통상적인 능력들은 열화판을 물려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어."
분명 코토타는 핏물을 조종했고, 제 송곳니를 길쭉하게 빼내어 쌍검처럼 사용했다.
그건 각각 혈액화와 골화의 특징이다. 일반적인 순혈종 흡혈귀가 지니는 특징들.
하지만 이 녀석은 오크 흡혈귀 특유의 이상한 특성 또한 지니고 있었다.
'광폭화.'
이상한 붉은색 기운을 몸에 둘러 전투에 활용하는, 그리고 고통을 잊고 오직 살육에만 집중하는 능력.
다른 오크 흡혈귀들은 광폭화를 사용하면 이성을 잃는 듯했지만, 이놈은 달랐다. 정신을 똑바로 유지하더라.
본인이 순혈종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제 놈의 입으로 지껄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광폭화를 제외한 특성들은·····.'
어딘가 좀 모자랐다. 다른 순혈종 흡혈귀가 지닌 특성의 열화판. 딱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칠 뿐이다.
적어도 칸이 체감하기로는 그랬다.
"대답은 안 할 거냐?"
"좆이나 처먹으라고 했잖아!"
칸의 물음에 코토타가 거칠게 반응했다.
콰광-!
다시 한 번 침을 뱉으며 의자 팔걸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쇠가 구겨질 지경.
칸은 차갑게 다음 말을 뱉었다.
"굳이 벌주를 원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군."
이건 또 원래 알던 흡혈귀들과 비슷했다. 뭔 일이 있어도 심문에 협조하지 않는 독기. 코토타에게서는 그게 보였다.
파지지지직──!
"끄르릅, 끄으으으····!"
칸은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유도전류를 시전해 몸을 지졌다. 당연하게도 강도는 적당히 조절했다.
"크핫!"
역시나 몸이 걸쭉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저 일반적인 생명체처럼 혈액이 흐르는 핏줄을 따라서 전류 자국이 생겨날 뿐이다.
그러다가 유도전류의 시전을 멈추면 꿈틀거리며 금세 회복을 시작한다.
팔뚝 위로 생겨난 전류 자국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혈액화와는 별개로 다른 재생력을 타고난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보였다. 원래 칸이 알고 있던 바에 따르면, 혈액화와 재생력은 서로 정비례 관계였는데·····.
순혈종으로 각성한 오크는 뭔가 좀 다른가 보다. 아니지, 이건 그냥 오크 흡혈귀들의 공통적인 사안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껏 만난 오크 흡혈귀들은 광폭화와 재생력. 이 두 가지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대충 파악은 끝.'
붉은색 기운의 정체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만, 칸은 앞으로도 광폭화라고 부를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다음부터는 칸의 소관이 아니다.
"벌써 끝났어, 주인? 이제 내 마음대로 한다?"
근처에 서 있던 로젤린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칸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서 뒤로 물러났다.
"무, 무슨 짓을 할 셈이냐!"
코토타가 몸을 움찔 떨며 발악했다. 저 계집, 인간으로 보이는 계집에게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전해졌다.
그저 도시락으로 쓸 용도로 끌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이윽고 로젤린의 손끝에 물방울이 맺혔다.
"저리 꺼져, 쌍년아!"
"후후후. 그래, 그렇게 계속 발악해."
"이익! 개 같은 년!"
손끝에 맺힌 물방울의 색깔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녹색. 아주 진한 녹색으로 변했다.
칸은 미약하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살짝 더 거리를 벌리며 코를 막았다.
그 와중에도 로젤린의 손끝은 계속 움직였다.
"자, 한 번 보자고. 오크 흡혈귀 중에서도 순혈종으로 꼽히는 놈의 몸에·····"
"흐으으으읍!"
"···내 독이 주입되면 어떻게 되는지."
치이익-!
작은 소음이 시작이었다. 또옥 떨어진 녹색 물방울은 순식간에 살갗을 녹였다. 그리고 혈관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신기하게도 물방울이 주입된 곳은 빠르게 아물었지만, 코토타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부웩! 푸륵, 우르브으읍····!"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떨기 시작하는 코토타. 입가에는 거품이 줄줄 흘러나왔다. 효과가 상당히 극적이다.
"흐음."
그 앞에서 로젤린은 콧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짝다리를 짚은 채 코토타를 관찰하는 모습.
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모습이 꼭 전생의 어느 영화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다고.
"효과는 어떻소?"
짧은 감상을 접으며 칸이 물었다. 지금 주입한 독은 지금껏 로젤린이 전력으로 개발해온 녀석이다.
이름은 <마나독(毒)>. 말 그대로 마나와 독을 섞어낸 것으로,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독액을 부려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나가 섞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독이 아니다. 일종의 마법인 것이다.
"지금 계속 훑어보고 있어. 정말 신기해. 마나독이 지나갈 때마다 붕괴와 재생이 실시간으로 반복되는 느낌이야."
코토타의 재생력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로젤린의 눈빛이 실험 욕구로 번들거렸다.
그러던 그때.
"형님!"
여전히 칸을 형님이라고 칭하는 우르갈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으그르르르·····!"
다급히 들어온 우르갈은 의자에 묶인 코토타를 보고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몰골이 너무 끔찍했다.
하지만 이내 금방 시선을 돌렸다. 우르갈의 상태 따위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솔직히 뒤지든 말든 별 상관도 없다. 저놈에게 호저채가 전멸될 수도 있었으니까.
"용건이 뭐지?"
칸의 물음에 우르갈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그러고는 용건을 밝혔다.
"봉화입니다! 만년 설산의 으뜸 봉우리에서 적색 연기가 피어났습니다!"
뭔가 심각한 것처럼 말하는 우르갈. 하지만 칸은 그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봉화가 피어났으니까 뭔가 일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당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애초에 이 설산에 봉화가 있다는 것조차 지금 처음 알았다. 그런 칸의 반응 때문에 우르갈은 잠시간 당황했다.
'으뜸봉의 봉화 소식을 듣고서도 저리 태연한 얼굴이라니.‘
대체 저 남자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오크라면 으뜸봉의 봉화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다.
그 의미를 알고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참 대단한 남자였다.
그러던 그때, 우르갈이 기대하는 반응은 영 동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으뜸봉의 봉화가 피어올랐다고?"
바깥에서 검을 휘두르다 돌아온 오쉬하르. 그의 얼굴은 꽤나 심각해 보였다.
"그게 정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