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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으로 살다-200화 (200/216)

◈ 200화

그림자는 순식간에 오드발을 집어삼켰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꼭 잡아먹힌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오드발이 그림자를 제 수족처럼 다루는 것을 목격해온 칸이다. 아마도 어떤 수작을 꾸미고 있는 것이리라.

'선수필승!'

물로, 오드발의 수작을 기다려줄 생각은 없다. 칸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준비를 끝내기 전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칸의 예상보다 오드발은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췄다.

애초에 전투가 멈췄던 적이 없다. 그림자를 전신에 두른 채 그는 칸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 칸 쪽에 뒀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잠시 후 오드발의 모든 것이 어두운 그림자로 물들었다.

<그림자 오러공(攻), 깊은 밤의 늑대들>.

겉으로 보이는 신체뿐만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전부 그림자에 잠식됐다.

그림자가 곧 오드발이요, 오드발이 곧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꾸루륵-!

사방에 맺힌 모든 그림자가 오드발의 통제하에 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드발이 이 밤하늘의 지배자다.

꾸루르르으으윽──!

어느 거대한 짐승의 뱃속에서 날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위장이 배고프다고 발악하는 신호.

"아우우우우우───!"

동시에 기다란 늑대 울음이 밤하늘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그건 오드발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갑자기 늑대 울음이라니. 처음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 칸은 오드발과 거리를 벌린 채 상황을 살폈다.

이윽고 칸 주변으로 꾸물꾸물 어떤 물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늑대.'

그 형상은 오드발의 목을 뚫고 튀어나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늑대 울음이 괜히 나왔던 게 아니다.

"대초원의 오크들은 하늘신을 믿지. 그리고 그 하늘신은 꼭 늑대를 닮았다고 옛 가죽에 적힌 역사들이 지껄인다네."

어느새 오드발 또한 모습이 늑대로 뒤바뀌었다. 그의 몸에 그림자가 들러붙어 겉껍질이 늑대처럼 바뀐 것이다.

"낮에는 청명한 푸른색 늑대, 밤에는 어두운 검은색 늑대.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하늘신께서는 하나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시지."

늑대가 아가리를 벌려 사람 말을 토하는 광경은 아주 생경했다.

수인족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저건 아예 근본적으로 달랐다.

수인족이라고 하여 머리와 몸통, 그 외의 신체적 특징이 짐승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오직 귀와 꼬리만이 일반적인 인간과 다른 점이다. 예민한 후각, 시각, 청각, 근력 등은 외관적인 차이점이 아니고.

그리고 수인족은 사족보행도 하지 않는다. 반면 오드발은 4개의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다.

"지금의 나는···· 그래, 죽음이군. 밤하늘의 하늘신이다. 그 경이로운 존재를 떠올리며 이 기술을 창안했지."

어쨌거나 지금 오드발은 늑대가 됐다. 그림자로 이루어져 아주 시꺼먼 색깔의 늑대.

그 덩치도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마치 작달막한 산을 보는 듯했다.

"어떤가, 체스카의 칸. 지금 이 상태의 나를 네가 이길 수 있을까? 참고로 나는 이 모습으로 대초원을 횡보하던 대지용마저 참살했다."

대지용이라·····. 이건 또 의외이면서 흥미로운 얘기였다.

용이라면 칸도 상대한 전적이 있으니까. 다만, 칸이 상대했던 것은 일반적인 대지용이 아니라 빙룡이었다.

종류를 불문하고 용이라는 생명체 자체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빙룡이 훨씬 더 희귀하고 강력했다.

'그런 걸 다 떠나서 결국 나는 용사냥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굳이 조건을 세세하게 따져보면 그랬다.

오드발이 칸의 전적을 알고서 대지용 얘기를 따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드발은 실실 웃고 있었다. 거대한 늑대 대가리를 하고서 저렇게 웃으니 참 비열하게 보였다.

그 왜, 옛날에 전생의 동화책에서 보았던 삽화에 등장하는 늑대를 보는 듯했다. 제목이 빨간 망토였었나?

아무튼 오드발의 얼굴 표정만 놓고 생각해 보면 다 알고서 대지용 얘기를 꺼낸 것 같았다.

대륙 북단에서 일어난 일이 이곳 대초원까지 전해졌을 리는 없겠지만, 대족장 오드발이 흡혈귀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게헤니아를 통해 여러 가지 들은 게 있을 테니까.'

실력으로 보나 공식적인 직위로 보나 오드발은 흡혈귀 사회 내에서 무시 받을 위치가 아니다.

분명 칸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잘됐군."

칸이 웃음을 흘렸다. 상대가 쉬우면 일이 수월하게 풀려서 좋고, 강하면 강한 놈과 싸워서 좋다.

게다가 직접 제 입으로 대지용을 잡았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서 놈을 쓰러트리면 칸은 과거를 뛰어넘는 셈이다.

용사냥에 실패했던 과거로부터 한 발짝 앞으로. 용의 속성 차이는 일단은 대충 넘어가자.

"뭐가 잘됐다는 거지?"

"그냥 혼잣말이니 무시하시오.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대화하는 와중에 오드발의 근처에는 여러 마리의 늑대가 생겨났다. 당연히 그림자로 구성돼 있다.

눈앞의 그림자 늑대 군단을 바라보다가 칸은 조용히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격돌이 시작됐다.

거대 늑대로 변모한 오드발은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 칸을 삼키려 들었고, 칸은 온몸으로 파동을 방출했다.

파동의 윤곽은 확실했다. 일전에 배웠던 보호용 물[水] 마법까지 함께 운용한 덕택이다.

밤하늘에 떠오른 그 모습은 꼭 달을 보는 듯했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보름달을 늑대가 탐하고 있다.

촤아악-!

오드발의 송곳니가 동그란 모양의 파동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깨달았다.

'쉽지 않겠어.'

송곳니가 깊게 박히지 않는다. 그 내부에 뼈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엄청난 저항감이 구체 내부에서 휘몰아쳤다.

오죽했으면 송곳니가 시릴 지경이다. 아니, 단순히 시린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그 끝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콰─직-!

하지만 오드발은 억지로 턱주가리에 힘을 줬다. 짧고 굵게, 대지용의 뼈마저 씹어 먹었던 치악력이 존재감을 발했다.

피가 튀었다. 조각난 송곳니 사이를 파동과 뒤섞인 물줄기가 파고들었다.

징징 울리는 통증. 그 근원은 분명 송곳니의 뿌리에 박힌 신경삭이었다. 오드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은 뒤로 이동해서·····.'

부러진 송곳니를 다시 복구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 이건 그림자로 빚어낸 육신이다.

지금과 같이 깊은 밤에는 주변에 그림자가 넘쳐난다. 송곳니를 날카롭게 빚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 칸이 반격에 나섰다. 뒤로 물러나려는 낌새를 곧바로 눈치챈 것이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이 멍청한 늑대야. 우선 칸의 양손이 앞으로 쭈욱 뻗어나갔다.

오른손에 줄기줄기 맺힌 것은 번개. 예전 같았으면 반대편 손에도 똑같이 번개가 맺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슈르르륵─!

왼손에 맺힌 것은 물줄기. 아직은 적은 양의 마나였지만, 어쨌거나 확실하게 주인의 뜻에 따라 태동하고 있다.

먼저 물로 적신다. 그리고 그 위를 번개로 후려치는 것이 지금 칸이 떠올린 새로운 전투법이다.

츄와아악-!

오드발의 코 위로 물이 끼얹어졌다. 칸이 마법을 부리는 것을 알지 못했던 오드발은 콧잔등을 꿈틀거릴 뿐이다.

처음에는 그저 살짝 차갑고 마는 정도였다.

하지만 칸의 오른손이 콧잔등 위로 떨어지자마자 오드발은 송곳니를 거둬야만 했다.

"크허어엉-!"

선명한 푸른색 전류가 밤하늘을 밝혔다. 잘 퍼져나가는 것 같던 번개는 물에 젖지 않은 부분에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오드발의 몸이 잠깐 동안 경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칸.

파즈아아아아악──!!

여러 줄기의 번개가 한층 강렬하게 피어났다. 그리고 언제 전개했는지 모를 물줄기가 오드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게 네, 네놈이 자랑하는 번개구나!"

오드발은 으르렁거리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번개의 여파를 떨쳐낸 상태였다.

'뭔 짓을 한 거지?'

칸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그런 의문을 품었다. 어쨌거나 새롭게 고안한 방식은 아주 잘 통했다.

원래 새로운 수단이 생기면 이용해 먹는 게 인지상정. 칸은 물과 번개의 상호 작용을 예전부터 확실하게 이용해 왔다.

흡혈귀 놈들이 혈액화를 사용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주먹에 번개를 둘렀던 게 가장 간단한 예시다.

이번에는 혈액화를 각성하지 않은 오드발을 위해 새로운 방식을 적용한 것뿐이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런데······.

"재밌어! 짜릿해!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더, 더어어-! 더 나를 즐겁게 만들어라! 체스카의 칸!"

이 전투법이 오드발의 요상한 취향에 불을 붙인 듯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의 오드발은 침을 뚝뚝 흘렸다.

"취향이 특이하군."

"개소리 집어쳐! 빨리 다시 덤비기나 해라!"

"그렇지 않아도 지금····."

"네가 안 오겠다면 이쪽에서 가주마!"

미친 놈.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할 것 아닌가. 일순 오드발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칸은 사방에서 뿜어지는 살기를 느꼈다. 그 출처는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붉은 별들.

저것들은 전부 다 늑대의 형상을 가진 그림자들이 내뿜는 눈빛이다. 이윽고 놈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피휴웅-!

칸은 뭐가 눈앞으로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 2초 후에 그의 가슴이 쩌억 벌어졌다.

"·····."

가슴에서 피가 튀기는 했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아직 갑주가 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번 허용하면 금방 넝마 짝으로 변하고 말 터. 집중하자, 아직 이쪽을 응시하는 늑대가 무수히 많았다.

칸은 반사적으로 머리 위를 향해 파동장을 방출했다.

토오옹─!

"깨개앵-!"

청명한 소리가 공기를 가르자마자 뒤이어 개 따위의 비명 비스무리한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일단은 한 마리. 이번에는 기습을 허용하지 않고 확실하게 격추했다.

하지만 그림자 늑대의 숫자는 아직 넘치도록 많았다. 또한 어딘가로 사라진 오드발도 주의해야만 한다.

"컹, 컹! 크르와악-!"

"아우우우우-!"

그러던 그때, 몇 마리의 그림자 늑대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쳐낼 수 있는 놈은 모두 쳐냈다.

하지만 딱 한 마리가 악착같이 달려들어 아가리를 팔뚝에 박았다. 칸은 송곳니가 깊숙이 파고들기 전에 팔을 털었다.

콰드득-!

팔뚝을 보호하던 갑주가 그대로 뜯겨 나갔다. 그림자 늑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빠르게 반응한 덕분에 살갗이 상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그림자 늑대들은 칸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불길한 느낌의 별무리가 춤을 추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붉은 눈깔들은 전부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칸에게는 실제로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덤벼, 하루살이 같은 것들."

칸은 눈을 감고 허공의 진동을 감지하는 것에 몰두했다. 시각을 차단한 채 모든 역량을 육감에 쏟아부었다.

투웅-!

한 마리.

투두웅-!

또 한 마리. 그리고 그 다음은·····.

투두두두두두둥───!

여러 마리를 동시에 두들겨 팼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칸은 아예 거대한 <태극 파동>을 전개해 일정한 영역을 구축했고, 그 안쪽을 파고드는 놈들을 일일이 휩쓸었다.

"깨애앵-!"

흐름을 뚫고 덤벼드는 것들은 시원하게 골통을 박살냈다. 하지만 늑대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 그림자 속에서 다시 태어나더라. 결국에는 누가 먼저 지치느냐의 싸움.

그러던 그때, 거대한 늑대가 칸의 <태극 파동> 전체를 깨물었다.

콰우욱──!

"이런 씹·····!"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 칸은 한쪽 팔이 뜯겨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애초에 <태극 파동>을 전개할 때 사용하는 파동은 신체의 연장선이니까. 팔뚝과 다를 게 없다.

결국에는 태극을 이루는 좌우 기둥 중 하나가 사라진 상황. <태극 파동>의 흐름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야.'

<태극 파동>이 파훼된 적은 있다. 상황에 따라서 여의치 않다고 생각되면 칸은 망설임 없이 전개를 멈췄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기술 자체가 박살 난 적은 없었다. 자의가 아닌 강제로 <태극 파동>이 사라진 것이다.

"흐흐, 이것도 무적은 아니로군. 그래도 용을 상대할 적에는 꽤나 유용하겠어."

좋다고 지껄이는 오드발. 칸은 얼굴을 팍 구겼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칸의 왼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그걸 턱짓으로 지적하며 오드발이 말을 이었다.

"이제 그쪽 팔은 못 쓰는 건가? 이러면 내가 이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좋을 대로 지껄이시오."

결국에는 이번에도 무리를 해야만 할 듯했다.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세상에는 강자가 너무나도 많다. 오드발은 뒤를 생각하며 싸워도 될 상대가 아니었다.

<칸식(式) 파동술. 전신 파동>.

마음을 먹는 것과 동시에 칸은 혈관을 흐르는 피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투두둥, 투두둥, 투두두두우우웅───!!

어느새 폭주 기관차처럼 변모한 심장. 욱씬욱씬 통증이 느껴지고, 갑주 위로 심장이 뛰는 게 보일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전개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해진 느낌. 역시 이 기술도 쓰면 쓸수록 성능이 올라간다.

하지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원래 좋은 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나 명검 취급을 받는 법이다.

'통제하기 힘들겠어.'

고삐가 풀린 심장은 한계 이상으로 맥동하고 있다. 몸 안에 파동이 가득 들어찼고, 당장 쏟아내지 않으면 터질 듯했다.

역시 <전신 파동>은 양날의 검이다. 맛보기로 약하게 전개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는 승리할 수 없을 터.

'생각은 그만.'

일단은 지르고 보자. 이미 이렇게 됐는데 뭘 어쩌겠는가.

칸은 생각을 마치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오드발은 두 눈을 치켜뜨며 감탄을 뱉었다. 아니, 뱉으려 했다.

"허어, 이 무슨 속도란·····!"

꾸우우웅──!

다시 한 번 콧잔등 위에 처박힌 주먹 때문에 그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콧잔등 위에 처박힌 주먹 때문에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팔자 좋게 감탄이나 뱉고 있던 탓에 혀를 강제로 깨물게 됐다. 만약 재빨리 혓바닥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잘려 나갔으리라.

실제로도 끄트머리가 약간 잘린 듯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입 안에 그림자를 모아 빠르게 지혈했다.

'살짝 위험했군.'

오드발은 속으로 숨을 삼키며 두 눈에 힘을 줬다. 뒤이어 비슷한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콰앙-! 콰과광─!! 터어어어어어엉───!!!

두 사람이 충돌할 때마다 밤하늘에 물결 같은 충격파가 번졌다. 이따금씩 번개가 튀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의 시선이 동쪽으로 돌아갔다.

"빛이다! 어둠이 물러간다!"

"다들 힘내라고! 살아서 부족으로 돌아가야 할 거 아냐!"

"염병할! 좆같은 흡혈귀 새끼들아! 날도 밝았는데 좀 꺼져라! 쌍놈의 새끼들!"

달이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사방을 물들였던 어둠이 천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분명 오드발에게까지 닿았다. 그림자의 총량이 더없이 부족해진 탓이다.

"흐으, 후우읍···! 끄흐윽!"

오드발은 호흡을 몰아쉬었다. 죽을 것 같다. 그래, 정말 즐거워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다.

턱 끝까지 몰려온 이것은 부족한 숨인가, 아니면 파괴된 내장을 타고 올라온 핏물인가. 아마 둘 다겠지.

"후욱, 흐으읍·····! 쓰벌, 자네 말이야. 평소에 끈질기다는 말 많이 듣지 않나?"

숨을 크게 들이켜고서 오드발이 칸에게 말을 건넸다. 어느새 그는 평범한 오크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렇게 된 지는 한참 됐다. 도중에 힘이 달려서 도저히 거대 늑대의 형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대답. 대, 대답 좀 해 보시지?"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직 침묵만이 오드발의 물음에 화답할 뿐이다.

당연하게도 칸의 상태도 아주 심각했다. 대답을 건네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지랄, 마.

대신에 칸은 전음을 사용했다. 지금은 육성을 뱉는 것보다 이게 더 편했다.

"흐흐, 이 재주도 정말 신기해.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재주라니. 언제고 한 번 배워보고 싶구만."

─안, 가르쳐, 줘.

"그건 나도 알고 있다네."

밤새 진행된 전투에서 저 전음이라는 기술 때문에 꽤나 고생했던 오드발이다.

집중이 약간만 흐트러져도 생사가 오가는 상황. 그 와중에 머릿속에서 징징 울리는 목소리는 달갑지 않았다.

덕분에 공격을 허용했던 적도 대여섯 번 있었지. 정말이지 짜증나는 기술이다.

"그냥 배워보고 싶다고, 끄릅·····. 말했을 뿐이야."

누군가는 오드발의 상태가 더 좋다고 판단할 것이다. 지금 이렇게 멀쩡히 말문을 열고 있으니까.

하지만 오드발은 알고 있다. 이게 마지막 불꽃이다. 몸속에 남은 심장이 쥐어 짜낸 자투리 여력.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손대서는 안 될 우물의 밑바닥을 파낸 격이다. 마른 걸레를 쥐어 짜냈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정말 즐거웠어."

오드발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바닥에 고인 핏물이 허벅지 위로 튀어 올랐다.

전부 오드발의 혈액이다.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오드발이 손을 뻗어 권했다.

"앉게나. 이제 차분하게 대화나 좀 나누도록 하지."

"·····."

그 권유에도 불구하고 칸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무릎 관절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거대 늑대 형상의 오드발이 휘두른 무식한 앞발 때문에 이렇게 됐다.

제대로 방어했음에도 그 충격을 무릎이 고스란히 받았다.

강제로 무릎을 굽히려 했다가는 완전히 망가질 듯했다. 하지만 오드발의 눈에는 그 모습이 꼭 승자의 권리처럼 보였다.

그래, 이겼으면 누려야지. 이쪽을 내려다보는 칸의 눈빛은 아주 오만했다. 두 눈에 힘을 빡 준 것이 아주 매섭다.

실제로는 정줄을 놓기 싫어서 눈매에 힘을 준 것에 불과했지만····· 뭐, 오드발의 감상은 대충 그러했다. 원래 착각은 자유다.

"그래, 누리고 싶다면 누려. 승자는 모든 것을 갖는 법이지."

그렇게 말한 오드발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청명한 하늘. 이 푸른 하늘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로군."

흡혈귀가 된 이래로 이랬던 적은 없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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