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시험(2)
“…….”
한국 협회를 책임지고 있는 협회장.
그리고, 뒤에서는 아스가르드를 지배하는 왕.
오딘.
한국을 넘어서 세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대한 남자.
그 자체로 퍼스트 헌터인, 누구보다 강한 헌터인.
장효진.
그가 침묵하고 있었다.
“…….”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준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 도발했나…?’
이준경은 사실 긴장과 긴장의 연속.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오딘은 결코 성격이 좋지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인자한 모습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누구보다 옹졸하고 누구보다 잔인한 자였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이야기와 달리, 마왕의 책에서 보았던 그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잔인하고 옹졸한 그런 왕.
북군 길드의 일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뒤틀린 성격인지는.
그런 자에게 이준경은 계속해서 도발한 것이다.
그러나 믿는 것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마왕의 책에서 보았고.
“자네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 확인했다.
[오딘의 호기심과 탐구심은 충족시킬 수 없는 지저와도 같다. 그 탐구심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으니. 그의 호기심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적과의 동침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
그가 가장 추구하는 것.
그것은.
“자네는 후긴의 존재까지도 알고 있었어. 내가 최영성에게 후긴을 주어 리버 웜을 조종한다는 사실조차도. 그리고 자네는 도발하듯 내게 말했지. ‘몬스터를 사냥해 성장했다고.’”
지식과 지혜의 탐구.
이준경은 도박을 건 것이다.
오딘은 결코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
자신이 그의 역린을 건든다 해도, 그는 아직 그에 비해 나약한 자신에게 몇 번이고 기회를 줄 것이다.
“무엇보다….”
장효진은 이제 타오르는 욕망의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는 ‘나의 눈’이 통하지 않는군. ‘나의 눈’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모를 리가.
오딘의 눈.
그것은 후원자에게서 받은 절대적인 신성함이 깃든 것이었으며.
오딘에게 있어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진실을 꿰뚫는 눈.
하지만.
[오딘은 나에게 흥미를 가졌었다.]
마왕은 자신과 같은 것을 겪었다.
[녀석의 눈이 나에게 통하지 않았음으로, 그리고 그것은.]
마왕과 자신.
오딘의 눈이 통하지 않는 그 공통점은.
[<종말의 하늘>이 후원자의 정신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종말의 하늘>이 지혜의 탐구자에게 경고합니다.]
<종말의 하늘>.
녀석이 우리의 후원자라는 점이었다.
이준경은 눈을 알고 있냐는 장효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장효진은 답 없는 이준경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가 모르는 것.
미지의 것은.
“흥미로워.”
언제나 그에게 카타르시스와 같은 희열을 준다.
이제부터 이준경은 외줄을 타야 했다.
‘내가 가진 정보를 최대한 이용해 오딘의 흥미를 끌어내고.’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는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이 순간부터 오딘과의 관계가 지속하면 할수록 이준경은 매 순간 수 싸움을 해야 할 것이었다.
이준경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자네를 아스가르드에 가입시키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군. 내 개인적인 흥미도 있지만, 자네가 가진 잠재력과 정보력은 놀라울 정도니 말이야.”
됐다.
마침내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아스가르드에만 가입한다면 계획의 상당 부분이 진척될 수 있어.’
아스가르드는 지금 시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밀 조직 중에서도 수위권의 힘을 가진 유구한 집단이었다.
퍼스트 헌터들의 모임.
물론, 아스가르드를 제외하고 여러 조직이 있었지만, 이준경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조직은 한국에 거점을 둔 아스가르드였다.
그리고 또 다른 목적.
‘언젠가….’
아스가르드 내부에서 아스가르드를 부순다.
마왕은 아스가르드의 대적자였다.
그는 아스가르드에 잠시 일원으로 있었지만, 훗날 헤임달을 포함한 몇몇과 함께 아스가르드를 탈퇴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아스가르드는 탈퇴한 마왕과 헤임달을 곱게 보지 않았고.
마왕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부쉈어야 했다.’
마왕은 아스가르드에서 나오기 전, 그들을 부숴야만 했다.
그 후, 마왕은 아스가르드를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외부인이 된 그들에게 한계는 있었고.
결국 지난하고도 긴 싸움 끝에 서로 큰 상처를 입고 아스가르드를 파괴했다.
마왕은 많은 동료와 함께 힘을 잃게 되었다.
결국 그 싸움의 상처가 훗날 마왕이 죽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나는….’
이준경의 생각은 달랐다.
‘더 빨리 아스가르드에 가입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 성장한다.’
그리고.
‘내부에서부터 부순다.’
오딘의 눈은 자신에게 먹히지 않는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다.
그 증거로.
“아스가르드의 가입을 허락하지.”
이준경의 아스가르드 가입이 허락됐다.
하지만.
“단, 조건이 있네.”
“…….”
“아스가르드는 생각보다도 비밀스러운 조직이야. 자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스가르드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고 확신할 수 있지.”
조금의 역경은 더 남았다.
“자네에게 몇 가지 가입 시험을 내리도록 하지. 나 아스가르드의 왕, 오딘이 말일세.”
그의 얼굴이 처음 보는 그것으로 변해있었다.
오만한 얼굴.
“원래는 최영성, 북군 길드의 그 머저리가 영웅이 되어 수행했어야 할 일이지만… 그것을 자네에게 맡겨보지. 자네가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하면 그때 정식으로 아스가르드의 일원이 된 것으로 인정하겠네.”
그의 안대 찬 왼쪽 눈에서 어떠한 빛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물론 이 모든 일을 발설하지 못하게 금제는 가해야겠지.”
솟구친 빛이 이준경에게로 빨려 들어왔다.
***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오딘이 금제를 거는 것까지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스가르드는 철저한 비밀 조직.
아직 그 일원도 아닌 자신이 아스가르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테니까.
바로 아스가르드에 가입하는 것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직 자신은 아스가르드의 일원과 비교해 많은 것이 부족했다.
자격을 시험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종말의 하늘>이 그대를 향해 미소짓습니다.]
오딘의 진실을 보는 눈으로도 모자라.
‘금제까지 파훼하다니.’
대화의 마지막 즈음, 오딘이 자신에게 걸었던 금제.
오딘은 금제가 파훼 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이준경에게 오딘의 금제는 걸려 있지 않았다.
<종말의 하늘>, 녀석이 후원의 형태로 나서 금제를 푼 것이었다.
‘대체….’
마왕의 책에서 보았던 <종말의 하늘>의 권능들은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또, 그가 개입하여 면역되는 것들 또한 많았기에 <종말의 하늘>은 후원자 중에서도 그 급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설마, 금제는 물론이고 정신계통 공격은 전부 다 무효가 되는 건가?’
그런 상상이 들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밸런스 붕괴.
하지만.
[<종말의 하늘>이 그대를 향해 미소 짓습니다.]
저 반응을 보니,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준경 씨?”
종말의 하늘에 대해 생각할 때.
목소리가 들렸다.
“아, 죄송합니다.”
이준경은 추태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오늘 만남은 그가 잡은 약속, 사람을 불러놓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니.
이준경은 자세를 바로 하고 그에게 말했다.
“별말은 없었습니까…?”
눈앞에 남자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다.
그분, 아니 협회장 장효진을 만났다.
특히나 그에게서 특혜를 받고 있던 북군 길드의 일원이었기에.
그와 장효진의 만남이 심히 궁금했다.
정인창.
이준경은 오늘 정인창을 만나기로 했고, 협회장과 만남이 끝나고 근처에 마련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 그저 북군 길드의 일이 안타깝다는 말씀 밖에는….”
그렇게 말하는 정인창은 입술을 깨물었다.
‘억울하겠지.’
정인창은 그분이 협회장 장효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장효진이 바로 최영성과 최용수.
북군 길드를 타락시킨 장본인.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인 셈이었다.
그런 그에게.
“단 한마디조차….”
정인창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따지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냐고 단 한마디조차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장효진은 북군 길드의 수뇌가 궤멸하여 쓸모가 없어지자.
증거를 지우기라도 하듯, 북군 길드를 사회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매장했다.
“정인창 씨.”
이준경이 그에게 말했다.
“원래 협회장은 당신 또한 마찬가지로 정리하고 싶었을 겁니다. 당신도 그의 정체를 아니까.”
“……!”
이준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듣는 이는 없었고, 마력을 감지해도 어떠한 도청도 없었다.
“하지만 왜 당신을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둔 지 아십니까? 당신에게 죄가 없어서?”
“그 사람이라면 없는 죄라도 만들어내겠죠….”
“맞습니다. 단순합니다. 당신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이준경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있건, 죽었건. 그에게는 어떠한 방해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죠. 북군 길드? 그가 북군 길드를 장애물로 생각하여 묻어버린 것 같습니까?”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이 전해진다.
“아닙니다. 그저 징벌의 형태를 보여준 것이죠. 쓸모없다면 언제고 버려질 수 있다. 바로 그가 후원하고 키우는 다른 길드와 헌터들에게.”
그의 입가에서.
주륵.
핏물이 흘러나왔다.
헌터가 되었다.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가졌고, 성장하여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저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또다시 자기 혐오에 빠지는 그.
이준경은 말했다.
“그러니 저와 손을 잡으시죠.”
“하지만….”
“믿건 안 믿건, 제 계획안에서 그는….”
협회장, 장효진은.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
“헛소리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오만이고, 자만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당신이라면. 저와 손잡아도 나쁠 것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는 이미 그들의 중추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들의 중추라면….?”
정인창의 물음과 함께.
사아아.
이준경에게서 뿜어나온 무형의 마력이 주변을 감쌌다.
혹시라도 모를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정인창 또한 마력을 느끼고선 놀란 눈을 했다.
이 술수가 얼마나 고난도의 활용인지 눈치챈 것 같았다.
“아스가르드. 저는 녀석들의 중추로 들어가 안에서부터 녀석들을 파괴할 겁니다.”
이준경의 말에.
“……….”
벙찐 얼굴을 하는 그.
이준경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했다.
“제가 제안을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번에도 거절할 시.”
주변을 감싸던 마력이 조금씩 옥죄어 오고 있었다.
정인창은 압박감을 느끼는 듯,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협회장과 달리, 저에게는 정인창 씨도 위협적이거든요.”
굳이 할 필요 없는 이야기.
그러나 이준경이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러니 자신감을 좀 가지시죠.’
당신은 훨씬 더 성장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정인창의 눈동자에 마침내.
“…….”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잠시 후.
땀방울을 소매로 닦던 그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대로면 저는 죄책감에 평생토록 잠도 이루지 못할 겁니다. 되든 안 되든 따라보겠습니다.”
마침내 그의 확답을 들었다.
그를 감싸던 마력의 압박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합니까?”
정인창은 마음을 먹은 듯 이준경에게로 물어왔다.
이준경은 그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라인 강 게이트에서 분명 정인창 씨는 후원을 받으셨을 겁니다. 어떤 후원을 받으셨는지부터 말씀해주시겠어요?”
제발.
이준경은 그가 그것을 받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그가 그것을 받은 것은 한참 뒤의 시기.
그것은 강맹하고도 유용한 것이었고, 그의 후원자는 그 정도의 개입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준경이 그럼에도 바라는 이유는.
‘역사가 바뀌었다.’
라인 강 게이트는 북군 길드의 패배로 돌아갔고, 정인창은 편을 갈아탔다.
정의.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평생을 함께했던 친우의 목조차 쳐버린 그.
그의….
‘후원자는 정의로움을 좋아한다. 그가 그 후원을 나중에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진정한 정의에 눈뜬 것이 한참 후였기 때문이야.’
이준경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
정인창은 북군 길드와 함께 계속해서 성장했고 몇 번이고 타락의 위기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후원자는 갖은 불만을 표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준경이 개입했고, 무언가 변했다.
과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무언가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용혈석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됐다.
젠장.
‘감사합니다.’
이준경은 속으로 그의 후원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부르기도 웃기는 수식언을 가진 그의 후원자.
‘백마 탄 왕자님.’
젠장.
이준경이 금세 추태를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