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43화 (43/275)

043. 헤라클레스(4)

카타이론 산.

그 거대하고도 넓은 산의 한 편에서 불씨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불씨는 다행히 번지지 않았고, 그 불씨가 수놓은 연기만이 하늘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뭐야?”

그 연기를 쫓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거대한 거구, 그리고 미남자.

올림포스 소속의 드미트리스와 조지였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도착한 둘.

그들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사, 살려주십쇼.”

“살려주세요!”

살려 달라 울부짖는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제압당한 채 꽁꽁 묶여 있었고.

그들의 눈은 숲에 고정되어 있었다.

“크르르….”

“크헝!”

그들의 시선을 따라 이동한 숲에 보이는 것은 붉은 눈빛들.

연기를 보고 온 것인지, 카타이론 사자들이 그득했다.

모두 숲에서 먹잇감을 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뒈질라고.”

거구의 드미트리스.

그가 뿜어내는 기운에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깨에엥!”

몇 마리의 카타이론 사자들이 드미트리스에 의해 피떡이 되고 나서야 녀석들은 도망쳤다.

A급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압도적이라는 것.

“가,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압당해 있는 헌터들은 재차 그렇게 말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쳐다본 그곳에는.

“…….”

“…….”

거구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자들의 움직임을 쫓느라 그들을 구해준 남자를 이제야 본 것이었다.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고.

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채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얘네는 뭐야?”

드미트리스는 그제야 귀를 후비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보르긴 소속이군.”

그들의 가슴팍에 수놓아져 있는 하나의 그림.

그것을 본 조지가 드미트리스를 향해 말했다.

“보르긴?”

“아프리카 일대에서 암약하는 배후 조직이다. 질이 나쁘기로 유명하지,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마약 거래는 물론, 아동 납치도 일삼는 녀석들이다.”

“아, 아프리카?”

원래 드미트리스의 임무가 아프리카에서였기에.

그는 무언가 뜨끔한 것처럼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드미트리스를 뒤로 한 채 조지가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보르긴 소속 헌터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벌벌 떨고 있었다.

“게이트 초입에서 널 습격했던 녀석들이군.”

“뭐?”

“진짜 멍청한 거냐? 너를 공격한 녀석들의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그거야….”

연기가 가득해서 제대로 구별이 안 됐다고 말하기에는 창피한 드미트리스.

결국.

“알고 있었다고….”

그는 조지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발 살려주십쇼!”

“잘못했습니다.”

그들은 울부짖었고.

쿵! 쿵!

드미트리스는 땅을 울리며 녀석들에게로 다가갔다.

“음.”

드미트리스가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 침음했다.

“나는 너희 같은 녀석들이 싫진 않아.”

대전사 전투는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장.

그것을 위해 연합하고 힘을 합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드미트리스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어떻게든 승리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

물론.

“룰을 지키지 않는 것만 빼고.”

드미트리스의 말에 헌터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도 잠시, 다시 들려오는 것은 죽음의 선고였다.

퍼억! 퍼억!

무덤덤한 얼굴로 주먹질하는 드미트리스.

“다음 생에는 룰을 지키면서 살아라.”

아무리 헌터들끼리 생사를 건 대전사 전투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룰은 있었고.

가장 취약한 게이트 초입에서의 습격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것 중 하나였다.

드미트리가 좋아하는 것은 룰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만들어진 룰을 무시한 채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승리하려고 하는 것.

억울하지 않은가.

남들은 룰을 지키는데 말이다.

[<괴수들을 짓밟는 자>가 당신의 행동을 좋아합니다.]

물론 후원자 또한 그런 자신의 행동을 좋아했고 말이다.

“올림포스의 명을 어기고 테세우스를 초주검으로 만든 네가 할 소린 아닌 거 같은데….”

“뭐?”

조지를 향해 주먹을 드는 드미트리스.

결국 조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고개를 도리질 쳤다.

어느새 살려달라는 절규도, 고통에 가득 찬 비명도.

그 어떠한 것도 안 들려왔다.

“언더독 웃기는 자식이네.”

드미트리스는 어울리지 않게 손수건을 꺼내, 피떡이 된 주먹을 슥 닦으며 말했다.

그들은 언더독의 불꽃을 보고 이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언더독은 없고, 왜인지 게이트 초입에서 자신을 습격했던 녀석들만이 있었다.

그리고.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이 녀석들이 다가 아니었다.

주변에는 자신들처럼 불꽃을 보고 온 헌터들이 숨어 있었다.

“아마 이 녀석들의 동료겠지.”

조지가 드미트리스를 향해 말했다.

그들은 아직 드미트리스가 그들의 존재를 눈치 못 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간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는 그들.

“마음에 든다니까.”

드미트리스가 한쪽 허공을 향해 전력으로 주먹질을 했다.

‘맹수의 포효.’

그가 자랑하는 스킬 중 하나이자.

파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하는 공격기였다.

허공을 격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난 충격파가 일직선 상에 있는 모든 것을 부쉈다.

나무, 아직 도망치지 않은 카타이론 사자.

“크윽….”

숨죽이던 헌터들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드미트리스는 그곳을 향해 바라보며 웃었다.

언더독.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또 시작했군.”

조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피어오른 불꽃을 꺼버렸다.

***

“녀석이군요.”

빠르게 움직이던 이준경이 급작스레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불이 꺼졌네요.”

정인창 또한 이준경이 보고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경이 아까 전 자신들을 습격했던 녀석들을 제압해둔 채 피어 올린 작은 불씨가 꺼졌다.

더 이상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고.

싸아아.

몸을 진동시키는 막대한 마력이 숲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이 정도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녀석뿐이었다.

“미끼는 잘 물었나 보네요.”

이준경은 일부러 자신들을 습격한 헌터들을 살려 두었다.

미끼로써 사용하기 위해.

드미트리스 하나만을 낚기 위한 미끼는 아니었다.

콰앙!

아직도 들려오는 폭음처럼.

연기를 보고 달려들 다른 헌터들을 위한 미끼이기도 했다.

‘무리가 더 있다고 했지.’

자신을 습격한 헌터들은 말했다.

자신들을 쫓고 있는 헌터들이 있다고.

그렇기에 동료인 녀석들을 미끼로 드미트리스와 자신을 쫓는 헌터들.

둘 모두를 유인해 싸움 붙이려던 것.

다행히 이준경의 계획은 잘 먹혀들어 갔고.

추격은 무뎌질 것이다.

“그래도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쫓는 다른 헌터가 있을 수도 있었다.

대전사 전투의 원래 의도와 달리 커다란 메기, 헤라클레스의 존재로 많은 것이 어그러졌다.

이 게이트 안에서 시간이 지체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근데….”

앞서 나가려던 이준경의 귓가로 정인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과하신 것 아닙니까?”

정인창의 얼굴은 조금 굳어있었다.

“녀석들을 그냥 살려 보내 줬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대전사 전투에서 다른 헌터를 죽이는 것은 묵인되지만, 권장하지는 않는다.

굳이 죽일 필요 없이 살려 돌려보낸다면 게이트에서 탈출할 것이고, 그렇게 경쟁자는 처리되는 것이었다.

정인창은 느낀 것이다.

미끼로 사용한 그들이 드미트리스에 의해 죽었을 것이란 걸.

그건.

“보르긴.”

“네?”

“녀석들 조직의 이름은 보르긴입니다.”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갑작스러운 이준경의 말에 당황하는 정인창.

이준경은 메마른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프리카의 배후에 암약하는 비밀 조직입니다. 보르긴과 또 다른 하나의 조직. 그들은 마약 판매나 인신매매, 특히 아동 납치 등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축적하는 조직 중 하나죠.”

“…….”

“녀석들은 그런 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겁니다.”

단순히, 자신들을 습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황을 어렵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들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저들은 죽어 마땅하다.

‘저 녀석들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넓어질 것이니까.’

격변.

놀랍게도 격변 이후로 수많은 배후 조직들이 살아남지만, 보르긴과 또 다른 하나의 조직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했다.

그들의 마수가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니.

그들의 주 대상은.

“힘없는 자들이 스스로는 아무런 것도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저들입니다.”

일반인.

그들을 노예로, 노리개로 공급하는 것이 녀석들이었다.

“아….”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정인창.

“가죠.”

그런 정인창을 뒤로 한 채 이준경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한다.

지금까지는 드미트리스에게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미끼를 사용한 이상.

‘위치는 계속 노출된다.’

녀석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런 만큼 서둘러 보스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준경이 정인창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 게이트에 들어온 대부분은 죽어 마땅하다.’

대전사 전투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

“악취미야.”

조지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드미트리스를 향해 말했다.

“무기 좀 쓰면 안 되냐? 원래 무투가 계열도 아니면서.”

“손맛이 좋아야 사냥이 재밌는 법이야. 역시 샌님은 뭘 모르는구만.”

하지만 드미트리스는 껄껄 웃으며 피로 물든 손을 닦았다.

주변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더 이상 주변에 살아있는 존재는 없었다.

“악취미야.”

“또 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조지 때문에 드미트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싱겁긴.”

드미트리스는 눈을 감고 기운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준경의 기운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휴.”

조지는 그런 드미트리스를 뒤로 한 채 주변 일대를 바라보았다.

처참하게 죽어 있는 시체들.

헌터들과 몬스터 가릴 것 없는 자들이었다.

‘머저리 자식.’

시체들을 바라본 조지가 다시금 고개를 돌린 곳은 드미트리스였다.

조지가 드미트리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코 그가 강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녀석을 단순히 전투광, 혹은 살육에 미친 투사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녀석은 달랐다.

전투를 좋아하고 승부를 좋아하는 투사는 맞다.

하지만 녀석은 살육에 미치지는 않았다.

실제로.

‘녀석이 죽이는 건….’

대부분 악인이었다.

대전사 전투.

녀석이 테세우스라는 동료를 초주검으로 만들고, 올림포스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이곳에 참여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대전사 전투는.

‘조직의 버려진 패들이 온다.’

대부분 악인, 혹은 버려도 되는 패들이 온다.

아스가르드나 올림포스 정도의 거대 조직이 아닌 이상 말이다.

대전사 전투에 참여하는 이들은 조직에서도 껄끄럽기에 이곳에 보내 처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암묵적인 룰이기에 드미트리스는 언제나 대전사 전투에 참여하고자 했지만, 너무나 압도적인 그의 실력으로 인해 항상 올림포스는 다른 이들을 대전사 전투에 보내왔다.

그렇기에 녀석의 손속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선인도 아니지.’

죽이는 이의 대부분이 악인이라는 것이지.

녀석은 임무를 위해서.

혹은, 전투에 과몰입하게 되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살육광이 된다.

대전사 전투에 기어코 참여하려는 이유도 악인을 벌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이곳에서만큼은 그의 넘치는 전투 본능을 억제하지 않은 채 표출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후우… 걱정되는군.”

벌써부터 언더독과의 만남이 걱정된다.

녀석이 또 후회할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던 중.

“찾았다.”

드미트리스가 눈을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