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헤라클레스(6)
카타이론 게이트의 보스.
카타이론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없는 만큼, 어떤 몬스터가 보스로 존재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자입니다. 카타이론 사자와 비슷하지만….”
먼저 진을 치고 있던 나일 소속의 헌터.
이네브라고 자신을 소개한 헌터가 미리 그들이 얻은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이네브라….’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기야 이집트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나일의 헌터 한 명까지 알고 있는 것은 어려웠다.
마왕 또한 그들과의 접점이 크지 않았으니.
이집트의 유명 헌터지만 알아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의 이명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아문.’
그의 이명은 아문.
이집트의 전사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영웅이라고 했다.
훗날에까지 기억되는 이집트의 영웅 중 하나였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강력합니다.”
“그게 다입니까?”
“직접 보시면 알 겁니다.”
그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현무.’
이준경은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현무를 호출해 정찰을 보냈다.
그리고 곧 돌아온 현무가 들려준 것은.
-거대한 사자입니다.
이네브가 했던 말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다른 특징이 없었다.
그저, 카타이론 마운틴에 등장하는 카타이론 사자가 거대화한 형상.
크기는 리버 웜 정도는 아니었지만, 5층짜리 건물과 비슷한 크기라고 했다.
거대형 몬스터.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이준경은 거검을 손보고 있는 정인창을 향해 말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녀석은 잘 오고 있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하나의 마력.
이곳의 다른 헌터들도 드미트리스의 접근을 느낀 것인지, 모두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드미트리스의 성향 상 이들이 방관자를 자처해도 공격할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드미트리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군.’
졸지에 구경꾼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광대 노릇을 하게 되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세계 데뷔전.
오늘 이 전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세상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모든 배후에 암약하는 헌터들.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
‘이름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만 이름을 얻을 수 있다.
후원자는 자신의 화신체가 명성을 떨치길 원했고, 후원자의 만족에 충족되는 명성을 쌓아야만 이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들겠지.’
이준경은 이름을 받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신.
“미리 축하드릴게요.”
“네?”
거검을 들고 이준경의 뒤를 따르는 정인창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 이름을 얻으실 겁니다.”
자신은 몰라도 그는, 확실히 이름을 얻을 것이다.
그가 원래 가졌어야 할.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을.
[<백마 탄 왕자>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대들을 주시합니다.]
[<종말의 하늘>이 요깃거리를 가지고 그대들을 주시합니다.]
후원자들도 깨달은 것이다.
이제 곧, 대전사 전투의 종막이 시작된다.
그리고 방관자를 자처했던 헌터들은 곤란할 꼴을 보게 될 것이다.
***
“어떨 거 같아?”
멀찌감치 떨어진 숲.
나일의 위대한 헌터 중 한 명이 그들에게 빌려준 특수 아이템.
오시리스의 눈으로 전장을 살펴보고 있는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이트를 떠나지는 않지만 언더독.
이준경의 전투를 구경코자 한 이들.
“음….”
이네브는 그의 동료, 같은 나일이자 같은 분파인 헬리오폴리스 소속 누메크의 질문에 침음했다.
“힘들겠지.”
언더독이 강하다는 것은 몸으로,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확실히 쌓아온 경험과 비교해 비상식적으로 강해.’
나일의 정보원 역할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중 누구보다 언더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헌터 강국인 한국에서 갑자기 떠오른 신성.
라인 강 게이트라는 특수 게이트를 클리어했고, 예정되어 있다던.
‘최영성이라고 했던가.’
북군 길드라는 강맹한 길드를 단신으로 쳐부순 슈퍼 루키였다.
또한 비밀스러운 루트를 통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아스가르드의 중추인물인 헤임달과 긴밀한 관계이며.
‘오딘의 관심도 한눈에 받고 있다고 했지.’
이준경이라는 헌터는 특별한 헌터였다.
왜 관심을 받는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함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오딘의 관심을 끌어냈을 것이다.
그가 헌터가 된 지 반년도 안 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지금 이름을 알리고 있는 헌터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와 굳이 비교 대상을 고르자면.
“배후 조직들의 수뇌 정도인가.”
“뭐, 뭐라고?”
“지금 그가 그만큼 강하다는 게 아니야. 앞으로의 잠재력이 그럴 것 같다는 소리지.”
“이네브….”
누메크는 놀란 듯 말했다.
나일에서도 이네브의 입지는 높고 단단하다.
그의 정보력과 분석력은 나일 안에서도 수위급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판단하는 언더독의 잠재력이 배후 조직들의 수뇌에 달한다니.
“그러니까 우리가 남은 거지.”
정확히 그를 파악하기 위해.
남아 있는 다른 헌터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언더독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곧 있으면 드미트리스와 오디세우스가 온다.
압도적인 영웅.
압도적인 헌터.
드미트리스와 대항을 선택한 언더독은 어떤 전투를 보여줄 것인가.
왜인지.
두근.
심장이 뛰었다.
“시작한다.”
푸른색 구슬인 오시리스의 눈이 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더독.
그가 카타이론 마운틴의 보스.
거대한 사자인 카타이론과 마주하고 있었다.
“오오!”
누메크의 탄성과 함께.
정인창이라고 불렸던 헌터가 거검을 들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
“오른쪽을 맡으세요! 제가 왼쪽을 맡겠습니다!”
카타이론 마운틴의 보스.
[카타이론과 마주했습니다.]
[카타이론의 위압에 능력치가 소폭 저하됩니다.]
[저항에 성공하셨습니다. 능력치 저하가 해지됩니다.]
[업적, 위압에 저항한 자를 달성하셨습니다.]
녀석의 이름은 카타이론이었다.
5층 건물 크기의 사자.
녀석의 이빨은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거대했고, 녀석의 앞발은 대형 자동차만큼이나 컸다.
-크아아아아아!
녀석의 포효에 산 전체가 울린다.
“명심하세요! 너무 힘 빼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준경과 정인창.
마침내 그들이 카타이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정인창은 거검을 바닥에 끌며 두 다리로 뛰기 시작했고, 이준경은 그 반대편에서.
화르륵!
마침내 제한 없이 불의 지배를 일으켰다.
한순간에 뜨거워지는 전장의 분위기.
-엄호하겠습니다.
현무는 둥실거리며 전장을 떠다니고 있었다.
녀석의 임무는 간단했다.
푸하아아앗!
“크아!”
정인창이나 이준경이 위험할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 녀석의 움직임을 잠시라도 막는 것.
그렇게.
그그그그극!
거검에 의해 강철과도 같은 카타이론의 앞 다리가 베어졌고.
푸슈우욱!
무스펠의 창이 녀석의 등허리에 박혔다.
“타올라라!”
이준경이 소리치자 등허리에 박힌 무스펠의 창이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고통에 절규하는 카타이론.
녀석이 앞발을 동시에 들며 바닥을 내리찍으려 하고 있었다.
그 엄청난 움직임에 이준경과 정인창이 녀석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녀석의 허리에 붙은 화염이 꺼진다.
스킬이 없음에도 이준경이 소리친 까닭은 간단했다.
[<종말의 하늘>이 만족하며 당신의 불에 권능을 부여합니다.]
녀석이 이딴 짓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일시적인 권능.
[일시적으로 불의 지배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녀석이 만족하고 있는 동안은 이준경의 화염이 한층 더 강해졌다.
화르륵.
아지랑이처럼 이준경의 곁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숲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적당히 힘만 빼세요!”
카타이론을 잡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카타이론을 잡는 것은 지금이 아니다.
‘녀석이 와야 한다.’
녀석.
드미트리스가 오면 진정한 레이드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페이즈 투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카타이론 사자를 더욱 분노케하여 광폭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이준경과 정인창이 노리는 것이었다.
***
-크아아아아!
카타이론 산, 아니 게이트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포효.
게이트에 입장해있는 모든 헌터는 보스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헌터들은 많지 않았고 그들 대부분은 보스전을 구경하거나,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이들뿐이었다.
대부분은.
“시작됐군.”
드미트리스.
그의 손에 또 다른 헌터가 시체가 되어 들려 있었다.
이준경이 흘려놓은 마력을 따라 이동하며 많은 헌터를 만났고, 그것은 모두 드미트리스의 사냥감이 되었다.
“고맙단 말이야.”
덕분에 드미트리스는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투지와 살육의 광기에 조금씩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자제하라고. 곧 네가 그렇게 원하던 싸움이잖아.”
“시끄러워.”
드미트리스의 말에 조지가 안색을 굳혔다.
‘광기가 시작되고 있는 건가.’
드미트리스, 올림포스가 녀석을 제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헌터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녀석은 선을 위해 살인을 하지만 녀석의 살인이 반복될수록.
‘광기가 침식한다.’
그것이 녀석이 강대한 힘을 얻은 대가.
[<괴수들을 짓밟는 자>가 그대를 더욱 응원합니다.]
녀석의 후원자가 가진 성향이었다.
‘설마….’
조지는 등줄기가 오싹하는 것을 느꼈다.
설마, 언더독은.
‘알고 있는 걸까.’
드미트리스가 가진 광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기에 이동 경로에 헌터들을 만나게 해 광기의 침식을 진행시킨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 없어.’
녀석의 광기에 대한 것은 올림포스 내부에서도 기밀 중의 기밀이다.
아스가르드의 오딘조차 모르는 비밀.
녀석이 알고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함정이었다면.
등골이 오싹했다.
“드미트리스.”
“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어?”
조지의 진심 어린 말투에, 빨갛게 충혈되던 드미트리스의 눈이 원래의 빛을 찾기 시작했다.
“걱정 말라고.”
그는 들고 있던 시체를 멀리 내버려 둔 뒤 조지를 향해 말했다.
“나도 성장했어. 더 이상 광기에 먹히지는 않는다고.”
드미트리스의 눈을 본 조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제 메인 디쉬인가?”
드미트리스의 전신에서 압도적인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드러내긴 했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은 드미트리스의 진심이.
녀석을 주변으로 거세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드미트리스.
압도적인 영웅이자, 압도적인 헌터.
올림포스를 지탱하는 하나의 영웅이자.
‘세계에 몇 안 되는 S등급 헌터.’
그것이 바로 드미트리스.
올림포스의 수뇌까지는 아니지만 언젠가 수뇌에 치고 올라가 그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싸울 용사.
“믿는다.”
조지는 그런 드미트리스를 향해 말했고.
“믿으라고.”
드미트리스는 한껏 근육을 부풀리며 준비를 했다.
종막의 전장으로 향할 준비를.
“가자.”
파앙!
드미트리스가 땅을 박차자 압축된 마력이 한데 모여 폭발적인 소리를 냈다.
카타이론과 비견될, 아니 그보다 거대한 맹수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