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현무(3)
까드드득!
특이한 광경이었다.
돈을 내고도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
그것이 이준경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까드드득!
괴기한 소리를 내는 것들.
움직일 때마다 뼈가 갈리는 소리를 내는 스켈레톤들.
그것들이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같은 언데드를 처단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의 모습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흰색의 뼈를 가진 스켈레톤들이.
까드드득!
검푸른 빛을 띠는 뼈를 가진 스켈레톤들에게 사냥당하고 있었다.
같은 듯 다른 그들은.
능력조차도 달랐다.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강력했다.
하지만.
까득.
무너져 내리는 한 구의 푸른빛 스켈레톤.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군.’
확실히 흰색의 스켈레톤들보다 푸른빛 스켈레톤이 훨씬 정예화되어있으며 모든 면에서 뛰어났지만, 수적 열세가 심했다.
백구가 훨씬 넘어 보이는 흰색의 스켈레톤들.
그러나 푸른빛의 스켈레톤은 단 일곱 구뿐이었다.
아니 하나가 당했으니.
‘이제 여섯 구인가.’
여섯 구가 되어버린 푸른 빛 스켈레톤들은 한 구만이 희생되었음에도 밀리기 시작했다.
스켈레톤들의 뼈가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싸움이 끝나가는 듯 보였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흰색의 스켈레톤들에게 지휘관이 없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푸른색의 스켈레톤들에게는 지휘관이 있었다.
지금껏 6구의 푸른 스켈레톤들의 보호를 받던 한 구의 스켈레톤.
오직 녀석만이 한쪽 눈에서 검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무.’
녀석이 움직였다.
녀석은 다른 푸른 스켈레톤들과는 달랐다.
조잡한 검과 방패를 드는 대신, 아무런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녀석의 양손에는 푸른 빛이 방울져 있었다.
그리고.
푸하아아앗!
어둡기만 한 묘지에 빛이 들었다.
푸르고 검은 심연의 파도들.
그것들은 곧.
까드드드득!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흰색의 스켈레톤들을 쓸어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 살아남은 것들이 있었고, 푸른 빛의 스켈레톤들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지만.
짝짝짝.
이준경은 박수를 쳤다.
곧.
와르르.
스켈레톤들이 무너져 내리고, 단 한 구의 스켈레톤.
아니 현무만이 남아 있었다.
-어떠십니까?
얼굴만 둥둥 떠다닐 때는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해골이지만 몸을 가지게 되니 그 태도나 움직임이 무척 고풍스러웠다.
이준경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만족해.”
현무의 성장.
그리고 새롭게 얻게 된 능력.
모두.
“진심으로 만족해.”
이준경이 활짝 웃었고, 현무의 검푸른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
이준경이 손목에 걸려 있는 팔찌를 바라보았다.
두 구의 해골로 장식한 괴기스러운 팔찌.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수십억을 호가하는 보물처럼 느껴졌다.
‘만족 못 했었는데….’
이준경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원자가 주는 권속이란 것은 대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종말의 하늘>이 준 권속인 영혼을 담는 해골은 처음부터 난해했고, 그 끝에 개화한 현무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
후에 성장을 기대하며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 시작부터 강대하기 짝이 없는 다른 권속들과 현무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물을 다룬다는 것, 꽤 준수한 사냥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고서는 이렇다 할 특징이 전혀 없던 현무.
그런 현무가 첫 번째 성장을 끝내고 완전히 다르게 변모했다.
이준경의 마음에 쏙 들어앉을 정도로.
‘원래는 권능이었는데.’
현무가 일으켜 세운 해골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능력은 마왕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마왕의 언데드는 군단이었으며, 권속의 힘이 아닌 마왕의 힘 그 자체로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과 헌터들은 그를 마왕이라 불렀다.
하지만 마왕과 달리 자신은 직접 언데드 군단을 만들 방법은 없었고.
언젠가 <종말의 하늘>이 자신에게 그러한 권능을 선사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던 중이다.
‘현무, 동시에 유지 가능한 스켈레톤 숫자는 어떻게 돼?’
-보신 바와 같이 일곱 구가 최대입니다.
현무가 스켈레톤을 만들 능력을 가졌으나, 군단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다행이라면, 또 마왕의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스켈레톤들은 제 경험치와 능력을 이어받습니다.
군단으로서 움직이는 언데드가 아니라, 소수 정예라고 해야 하나.
‘알겠어.’
이준경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영혼을 담는 해골이 비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영혼을 담는 해골은 남아 있었다.
현무가 탄생하고 다시금 만들어진 영혼을 담는 해골.
이것이 몇 개까지 만들어질지는 모르는 노릇이었지만.
‘두 개만으로도 굉장한 파티원들을 얻게 되는 셈이야.’
소수 정예 파티.
그것도 결코 뒤통수를 치지 않을 권속으로 이루어진 파티.
가장 이상적이며.
원하던 것이었다.
“현무.”
이준경이 소리 내어 현무를 불렀다.
두둥실 떠오르는 현무의 눈을 똑바로 본 이준경이.
“앞으로 사냥 열심히 해야 할 거야.”
기대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
아스가르드에 가입하고, 성장한 현무의 능력을 확인했으며, 현재의 몸 상태를 파악했다.
‘이제 남은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스펠의 창.’
이제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인 무기.
무스펠의 창을 박재현에게 보여줘야 했으며.
‘검은 구슬의 정체도 확인해야 해.’
몸에 틀어박혀 빠질 생각하지 않는 검은 구슬의 정체도 확인해야 했다.
검은 구슬은 특이하고, 이상했으며, 괴기스러웠다.
마왕의 책과 미래의 정보로 인해 꽤 식견이 넓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준경조차 정체 모를 그것.
그것의 이상한 점은.
‘사기를 집어먹었어.’
현무 때문에 들어갔던 언데드 던전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검은 구슬은 헌터가 사용할 수 없는 능력 중 하나인, 아니 소수의 헌터만이 다룰 수 있는 능력 중 하나인 사기를 집어먹었다.
정화 시키거나, 마력으로 치환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저 먹어 삼켰다.
그리고 검은 구슬이 사기를 먹음으로써 생겨난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나 스트림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해본 것이었다.
검은 구슬에는 분명 사기가 충전되었는데, 이준경은 사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검은 구슬의 정체가 무엇이든, 빨리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똑똑.
이준경이 다시금 그곳에 도착했다.
역시나 노크 소리에도 대답 없는 그.
이준경은.
끼익.
말없이 문을 밀었다.
잠겨 있지 않은 문이 열렸고.
곧.
까앙! 까앙! 까앙!
언제나 그렇듯, 단조질하고 있는 박재현이 서 있었다.
그는 고도의 집중을 한 듯, 계속해서 망치질을 하고 있었고.
이준경은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인제 보니.’
성장하고 와서 그런지 느껴지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무기의 수준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았다는 것을 느꼈으며.
박재현이 가진 마력이 상상 그 이상으로 밀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저게 대장장이들의 능력인가.’
헌터라고 아무나 대장장이가 될 수 없듯.
마력을 다루는 대장장이들에게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망치질에 따라 마력이 쇠와 불에 유입되는군.’
마나 스트림을 활성화시키자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또한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력 주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들려오는 음성에 이준경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어? 뭐야.”
그가 이준경을 보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를 향해 인사하는 이준경.
“…….”
그는 한참이나 이준경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대뜸.
“너 유명하드라?”
“…….”
“언더독이라며?”
박재현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이준경.
별명은 명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당사자에게 쑥스러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고.
이준경 또한.
‘언더독, 언더독 하니까 개 같잖아….’
실제로 개가 들어간 별명 덕분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도 이겼다며?”
“텔레비전은 보시나 봅니다.”
이준경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음. 일단 기다려봐.”
하지만 그답게 다시금 망치질을 시작했고, 그가 무기를 완성한 것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
“이게 뭐야….”
박재현은 용혈석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대체….”
이준경이 내려놓은 무스펠의 창을 이곳저곳 살펴보고 있었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준경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게 말했지만.
“무기라는 게 다 위험하지. 안 위험한 거 찾을 거면 ‘다있오’나 가라고.”
박재현의 맞는 말에 이준경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재차 언급한 이준경의 경고에도.
“으음….”
흥미로운 눈으로 무스펠의 창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았다.
“대체 창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끼눈을 치켜뜬 그.
사실대로 말하면 돌아올 그의 반응이 두려웠지만.
“뭘 좀 발랐습니다….”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만 고칠 수 있다.
무기도 인간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니까 뭘?”
의뭉스레 물어오는 그에게.
“말해드려도 잘 모르실 텐데… 붉은색으로 빛나는 광석이 하나 있습니다.”
“음… 루비 같은 거? 그런 건 아닐 테고, 또 뭐 네가 전에 가져온 용혈석? 그런 비슷한 거냐?”
“그런 특별한 물건이긴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무스펠의 창을 들며 말했다.
“그게 헤라클레스를 이긴 비밀이겠네.”
“…….”
“헤라클레스는 내가 만든 이 창에 패배한 거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박재현이.
“큭….”
소리죽여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좋아! 좋다고! 너한테 무기를 만들어준 보람이 있잖아?”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소리쳤다.
“유진이가 이걸 알면 당장이라도 돌아오고 싶어 할 텐데!”
“…….”
그리고 그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무스펠의 창을 내려놓고 이준경을 바라봤다.
“아! 너 유명하지?”
“뭐 그럴….”
“그… 협회랑도 인연이 좀 있고?”
“그런 셈이죠…?”
무스펠의 창을 바라보며 웃다가 갑작스레 이런 질문을 하다니.
오늘따라 박재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럼….”
하지만 곧 이어진 그의 질문에.
“사람 하나 찾아줄 수 있냐?”
이준경이 웃었다.
“보상은 확실히 할게. 모아둔 돈은 좀 있는데… 믿을만한 사람 찾기가 좀 힘들더라고.”
이준경은 그냥 사실을 전해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떤 보상 말입니까?”
공짜를 내버릴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돈? 아니면… 뭐 원하는 거 있어? 녀석만 찾아준다면 원하는 거 하나 정도는 들어줄게.”
“약속하신 겁니까?”
“해 주려고?”
박재현의 눈이 빛났다.
“보상만 확실히 약속해주신다면요.”
“그래! 뭐 목숨을 내놓으라거나, 이상한 부탁만 아니면 내가 다 들어줄게!”
그의 호언장담.
이준경은 잠시 어떤 보상을 바라야 할지 고민했다.
‘무구 제작?’
아니다.
그는 그가 만족할만한 물건만 있다면 자신의 무구를 만들어줄 것이다.
‘돈?’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게이트를 공략하기만 했지, 돈을 쓸 시간이라고는 한순간도 없었다.
‘복종?’
과하다.
겨우 사람을 찾는 정도로 그에게 바라기에는 괜한 관계만 틀어질 수 있었다.
고심 끝에, 한가지 원하는 보상을 찾았다.
“그럼 누굴 찾는지부터 들어볼까요?”
이준경은 악마처럼 속삭이며 생각했다.
‘한 대만 때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