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얼음의 땅(6)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준경이 그를 바라봤다.
‘기척을 못 느꼈다.’
이준경은 당황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건만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마나 스트림은 활성화되어 있을 텐데.’
마나 스트림을 배우고서 상시 마나 스트림을 활용하는 이준경.
그런 그에게 기척을 들키지 않고 접근할만한 이는.
“아스가르드에서 왔습니다.”
몇 되지 않았다.
자신을 아스가르드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자.
“와….”
옆을 바라보니 정인창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서 기척을 숨기고, 자신의 별명을 부른 이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잘 생겼다….”
“네?”
정인창의 무의미한 말에 잠시 당황한 그.
그는 곧 인상을 펴며 말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분은 정인창 씨라고 하셨던가요?”
“아….”
자신을 알아봐 준 것에 대한 감동이라도 느끼는지 정인창은 더욱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영웅의 힘을 얻으셨군요.”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정인창이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영웅의 힘을 얻었다는 것을 안다.
또한.
‘느꼈겠지.’
정인창도 느꼈을 것이다.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고으응즈….”
정인창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공주가 경계하듯 소리 내었다.
“반갑습니다.”
짜증 나는 이 상황을 무마한 것은 이준경이었다.
그가 눈앞의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잘생겨, 빛이 나는 것만 같은 남자.
“언더독,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아,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는 곧 이준경의 손을 맞잡고선.
“오형석.”
이름을 밝혔다.
“발두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제가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스가르드에 요청하신 지원 때문입니다.”
“아.”
이준경이 작게 탄식하며 생각했다.
‘설마.’
발두르, 이 자를 지원으로 보낸 것인가.
그렇다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발두르는 아스가르드 내부에서도 촉망받는 인재로 이준경 또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훗날 에덴이 창설될 때에도 에덴의 십이인 중 한 명은 못 되었지만, 그 못지않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영웅이자 헌터.
그리고 그는 일반인들을 차별하지 않는 자로도 유명했다.
그렇기에 헌터고 일반인이고 할 것 없이 그의 선한 인품을 칭송했으나.
“어디 불편하신 거라도…?”
이준경은 이 자가 불편하기만 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저 단면뿐이었으니까.
“아닙니다. 혹시 지원이라는 것이 오형석 님께서 함께 중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이준경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분명 중국행에 큰 도움이 될 자였지만.
‘헌터 지원은 바라지 않는다.’
이준경이 원하는 것은 물품이었지, 헌터가 아니었다.
감시의 눈은 필요 없었고, 감시가 아니더라도.
발두르의 존재는 결코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닙니다.”
다행이었다.
“드려야 하는 물건이 꽤나 귀중한 것이기에 제가 직접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는 햇살과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휴가거든요. 귀국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아스가르드의 일이 바쁘다 보니.”
“아, 예.”
이준경은 심드렁하니 그에게 대답했지만.
쿵. 쿵.
거세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 예민한 발두르를 속이기 위해 최대한 박동을 조절하느라 애썼고.
“일단 움직이실까요?”
그는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지금 물건을 주시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준경이 그를 향해 떠보듯 말했다.
그가 준다는 물건이 무엇인지 짐작하기에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었지만.
자신이 그것의 존재를 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조금 특별한 물건이라. 아, 그리고 정인창 씨께서는 먼저 가시면 됩니다.”
“네?”
“아스가르드의 외인에게까지 개방된 물건은 아니어서요. 지금 이렇게 당신에게….”
움찔.
갑작스러운 소름에 정인창이 몸을 떨었다.
“아스가르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약간의 살기.
그것에도 영웅의 힘을 가지게 된 정인창이 몸을 떨었다.
정인창은 곧.
“알겠습니다.”
눈치를 챈 것인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직 멀었구나.’
정인창은 확실히 느꼈다.
기운만으로 몸을 떨게 하는 힘을.
영웅의 힘을 얻고 잠시나마 헤라클레스를 생각했었지만, 아직까지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듯.
이 눈앞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헤라클레스보다 더 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이준경에게 아스가르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었지만.
이들에 관해 조금씩이나마 알게 될 때마다 진심으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대체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된다는 거지….’
이와 같은 존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쳤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기계처럼 똑같은 질문을 하는 발두르에.
“아닙니다.”
정인창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저희도 가실까요?”
발두르는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준경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또다시.
“아스가르드입니다.”
아스가르드였다.
***
“왔냐.”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이준경을 반기는 그들.
여성구와 정인창이었다.
둘은.
‘좀 친해졌나 보네.’
이준경 때문에 이따금 보는 일이 있었고.
꽤나 서로 친해진 듯 편안해 보였다.
“아스가르드에 다녀왔냐?”
“네.”
“물건은 잘 받았고?”
“……설마 형이 제가 받을 지원을 부탁한 거예요?”
이준경은 발두르와 함께 아스가르드에 갔고, 그곳에서 아스가르드의 지원을 받았다.
딱 예상한 물건.
그리고 필요한 물건이었다.
“아니. 나는 그냥 헌터 지원을 보내지 말라고만 했다.”
“그 말을 들어줘요?”
“아니. 그럴 리가 있냐.”
오딘이 수상쩍은 여성구의 부탁을 들어줄 리 없다.
“사실 그거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
의문스러운 얼굴의 이준경.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구가 웃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웃음에 정인창도, 이준경도 당황했다.
“네가 모르는 것도 있어? 신기해서 웃어봤다.”
“저도… 모르는 거 많습니다.”
“없는 줄 알았는데요?”
정인창도 대화에 끼었으나.
“공즈으으으.”
배고프다는 공주에게 음식 대접하러 갔고, 이준경과 여성구만이 남았다.
아직 준비가 한창이었으므로 시간은 조금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네가 말했잖아. 격변이 있을 거라고.”
“설마… 그걸 아스가르드에 말한 거예요?”
괜한 정보 누설은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여성구에게 누차 부탁했건만.
‘역시….’
비밀을 공유했던 것은 실수인 걸까.
‘아니야… 이 정도는 괜찮아.’
여러 가지 번민이 이준경의 뇌리에 가득 찼을 때.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다시금 심드렁한 여성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네가 말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거 같다.”
“설마… 벌써요?”
“그래. 뭐 네가 아는 것과 전부 똑같을 수는 없는 거겠지. 지방 쪽에서 몇 개가 발견된 모양이야. 오딘도 그걸 심각하게 여겼고, 원정을 떠난 영웅들을 소집하는 중이다.”
여성구의 말을 들은 이준경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래서 발두르가….’
고급 인력인 그가 겨우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었다.
단순히 새롭게 멤버가 된 자신을 보러 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저 부름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잠시 시간이 남았기에 온 것 같았다.
“발두르는 만났냐?”
“…….”
이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좀 쎄하던데요?”
“그거는 네가 아는 ‘정보’냐, ‘짐작’이냐.”
여성구의 의미심장한 말에.
“둘 다요.”
이준경은 웃으며 답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니 다행이구나.”
여성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집중하며 듬성듬성 이준경의 말에 대꾸했다.
“그래서 ‘그 물건’을 준 이유가 뭔데요?”
아직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이준경이 그를 재촉했고.
“네 중국행을 도와줄 헌터 인력도 없고, 그렇다고 개나 소나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면 아이템인데….”
그의 눈이 이준경이 등에 걸어놓은 무스펠의 창을 훑었다.
“네 무기는 어떤 대장장이가 만든 건지, 아니면 후원인지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좋은 물건을 당장 내어줄 수는 없고.”
그가 집중하던 것을 마쳤는지 이준경을 보며 말했다.
“아스가르드의 첫 지원인 만큼 생색은 내야겠으니. 그 물건밖에 없지. 효능은 들어서 알고 있지?”
“그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역시. 너도 그걸 바랐구나.”
“네.”
여성구가 웃었다.
“위급할 때 사용해라.”
아스가르드가 자신에게 준 지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여성구.
이준경은 등을 돌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건 저한테 쓸 게 아니에요.”
“뭐?”
당혹스러운 목소리에, 등 돌린 채 살짝 웃음 지은 이준경이 말했다.
“이둔의 사과는 다른 사람한테 쓸 겁니다.”
***
중국으로 향하겠다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징조가 벌써 나타나다니.’
무언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그 변화를 알아내기에 가장 좋은 것은 그 변화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을 가보는 것이 좋았다.
‘긴장되는데.’
징조가 빨리 나타났다는 것은, 중국이 지금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위험도는 더욱 상승한 것이고.
이준경은 자연스레 긴장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제는 유명인이 되어가고 있는 이준경.
그를 향해 수많은 사람이 인사했다.
이준경은 일일이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악수를 나눴다.
이들 모두, 영웅의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스노우 오크다!”
“젠장… 벌써 세 시간째야….”
전선.
이들은 전선을 지키는 헌터들이었다.
멸망한 북한의 수도인 평양, 이곳에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왕국이 되어버린 중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
이따금 그들은 경계를 넘어 전선으로 다가왔고, 그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것이 전선의 헌터들이었다.
화륵.
“이 정도면 정리가 될 겁니다.”
어느새 나타난 불의 장벽.
그것에 달려들던 스노우 오크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준경이 그들을 도운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전선을 지키는 헌터들은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대개.
‘뒷배도, 가능성도 없는 버려진 헌터들.’
후원자도 변변찮고, 그런 그들을 키워줄 길드도 없었으며, 돈은 급하기에.
그들이 겨우 돌 수 있는 게이트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전선으로 향하는 이들.
그렇기에 이곳의 사망률은 게이트 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전선에 처박히고 싶어 하는 영웅들은 없었으니까.
“진짜… 저 너머로 향하시는 겁니까?”
어떤 이가 물었고, 이준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질렸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이준경은 계속해서 전선으로 향했다.
정인창과 여성구도 함께.
“여기다.”
마침내, 그들은 푸른색의 장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을 만날 수 있었다.
벽을 마주한 그들.
“심각하군.”
여성구는 이것을 실제로 보이는 것은 처음인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프로스트로도 이동할 수 없기에 나도 궁금하긴 했는데….”
공간을 넘나드는 비프로스트로도 중국 내부로 진입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바쁜 와중에도 이곳까지 함께한 것이었다.
“이게 뭔가요…?”
정인창 또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믿기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답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게이트입니다.”
이준경뿐이었다.
“중국은 그 거대한 땅덩어리 전체가 게이트화 되어버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