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85화 (85/275)

085. 화타(3)

다시금 화타와 맞잡은 손.

이준경은 약간의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보았지만.

“흠흠.”

노인은 눈빛이 부담스럽다는 듯,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혹시 몸이 안 좋으면 찾아오게. 다시 한번 봐볼 테니.”

화타는 그렇게 말했지만.

“…….”

이준경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또다시.’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마나 스트림을 이용해 마력의 흐름을 역류해 놓았다.

마력에 민감하다면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는데.

화타라 불리는 노인은 그것 또한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방금의 악수를 통해 이준경은 노인의 몸에 마력을 흘렸다.

혹시 그가 힘을 숨기고 있을까 한 행동이었지만.

‘젠장.’

자신이 찾던 화타는 제대로 된 자가 아니었다.

마력으로 파악을 시도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이준경이 그의 마력을 보아도 수준은 그저 그런 헌터 수준이었다.

‘정보가….’

잘못된 것일까.

그럴 수는 있었다.

마왕의 책이든, 역사로 인한 정보든 틀렸을 수는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당황하던 이준경에게.

“응?”

특이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차 거주민들과 인사하며 악수를 나눈 이준경.

그리고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거주민들 대부분에게 똑같은 마력의 흔적이 있어.’

자신과 악수를 나눈 대부분의 거주민들에게서 같은 마력의 흔적이 느껴졌다.

강렬하게 남아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준경이 마력을 느꼈다는 것은.

‘찾았다.’

이 자다.

지금 이 마력의 흔적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 찾던 자일 것이다.

화타는 있었다.

그저 자신이 찾은 자가 진짜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준경이 인사했고.

***

“그러니까… 거인들이 몇 명이나 되냐는 거지?”

아직 전사로서의 임무에 관한 연락은 받지 못했기에.

다음날부터 이준경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했다.

“네.”

“글쎄… 한 천명쯤 되려나?”

“에이 무슨 천명이야! 만 명은 넘겠지!”

“그래?”

“그치! 저것들이 큰 데다가 똑같이 생겨서 그렇지. 꽤 많다고!”

거인들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

역사에서 오는 이질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천 명이든, 만 명이든.

‘확실히 적다.’

이준경은 다시금 물었다.

“그렇다면… 나르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정확히 뭡니까?”

변절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또 모종의 이유로 망가진 거인들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나르?”

이준경의 질문을 받은 주민은 화들짝 놀라더니 주변을 살피고선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댔다.

“조용하게. 거인들은 나르라는 소리만 들으면 미쳐 날뛴다니까…!”

“그니까….”

“그게 말이지.”

다행히 이곳에 살아남은 주민들은 오랫동안 우트가르드에 있었고.

꽤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우트가르드에는 거인이 꽤 많았어. 지금보다 두 배? 세 배는 많았던 거 같아.”

이야기를 듣던 이준경의 눈이 빛났다.

“그럼 그 거인들은….”

“뭘 어째 그 뭐냐…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나르들의 수장이 따로 있어. 그자가 거인들을 데려갔고 그게 나르들이야.”

“그럼 나머지는…?”

“죽었지.”

주민들은 저들끼리 서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거인들끼리 싸움에서도 죽었고….”

“그래. 처음에 무슨 전염병이 돌았다고 했나?”

“맞아. 맞아.”

전염병은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거인들이 우리 땅에 적응 못 하고, 무슨 병에 걸려서 죽어 나가고 남은 건 이게 우트가르드에 있는 것들이 전부라고 알고 있네.”

“아이고. 말세야. 우리 땅이었는데….”

“그래도 목숨 건진 게 어디야. 나머지는….”

주민들은 이야기하다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다가.

“밖은 좀 어떤가?”

오히려 주민들이 이준경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작 이준경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밖에서 온 사람이 없었습니까?”

이준경의 질문에.

그들은.

“있긴 있었지.”

“……!”

쿵. 쿵. 쿵.

이준경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자신이 오기 전, 다른 방문자가 있었다.

‘중국에….’

대체 누가 왔다는 것일까.

배후 조직들은 영웅의 희생을 염려하여 중국 파견을 금했고.

몇몇 목숨 아까운지 모르는 자들이 중국으로 향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이 혹한과 절망의 대지에서 살아남을 자는 몇 되지 않았다.

‘혹시….’

이준경이 이렇게 놀라며 가슴 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마왕.’

그는 역사에서 중국을 방문해 거인들의 도시에 온 적이 있었다.

지금껏 모호한 마왕의 행방.

자신이 과거로 옴으로써 그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이준경에게 큰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있긴 있었는데 그냥 갔어.”

“네?”

“우리도 직접 본 건 아니야. 거인들이 그러더라고, 우리랑 비슷한 침입자를 발견했는데. 뭐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그냥 갔대.”

“…….”

주민 중에 방문자를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건.

‘거인들에게 물어봐야겠군.’

이준경은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밖의 사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일도 중요했다.

***

“후우….”

이준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 거주 지역에 들어간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단서 또한 많이 얻었다.

거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화타.’

화타에 대한 단서도.

하지만 단서를 쥐고 있는 남자가 벌써 며칠째 거주 지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자네들이랑 비슷할걸세. 그 뭐냐, 거인들의 전염병을 막아준 게 그분이시거든. 그래서인지 자주 불려 다니시고 돌아오는 날이 많지 않으시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왕성에 있을걸.

그런 후회 또한 들었지만.

‘고급 정보들이 많아.’

우트가르드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서 얻은 정보들이 꽤나 많았고 질 또한 좋았다.

거인들.

나르들.

우트가르드와 서리 거인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제는.

“크하하하! 이게 누구신가.”

거인에게 정보를 얻을 차례였다.

샤치.

그가 오랜만에 만난 이준경을 향해 껄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덩치가 워낙 거대한지라 흔들리는 손에 의한 바람이 태풍처럼 불었다.

“왕성 정원에 불을 질렀다며?”

샤치는 자신이 왕성 정원을 망가트린 것처럼 무척 기쁜 듯 보였다.

“그래. 일단 이야기는 차차 하자고.”

이준경이 대답이 없자, 샤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종족이 다른 데도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네. 난쟁이들이나 바니르 녀석들은 영 우리 거인을 싫어한단 말이지.”

샤치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곤.

이준경에게 손을 뻗었다.

손 위에 올라타라는 것 같았다.

“킁.”

펜리르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싶었지만, 이준경의 인도에 따라 샤치의 손바닥에 올라갔다.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더 크군.’

안 그래도 커 보이는 거인들이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그 크기가 실로 장대했다.

“오늘은 바깥에 나가야겠어.”

“바깥?”

“그래. 너희들이 온 곳.”

이준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아니!”

샤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침을 튀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침이.

“크허어엉!”

어찌나 대단한지 펜리르의 얼굴과 몸에 튀겼다.

침을 맞아 날뛰려는 펜리르를 겨우 진정시켰다.

“그 바깥이 아니라, 우트가르드 바깥말이야.”

샤치의 뒤로 많은 거인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무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르들의 습격이 빈번해지고 있어.”

싸움을 대비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디 왕성 정원을 불태운 실력을 좀 볼까?”

샤치의 말에 이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

우트가르드의 용병 전사가 되고 첫 번째 일이었다.

이준경은 샤치와 함께 움직였고, 정인창은 또 다른 거인 전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이준경은.

‘우린 나르들을 잡는다.’

샤치와 함께 습격하는 나르들을 사냥하는 일은.

정인창은.

‘뭐 이것도 나쁘지 않군요.’

주변의 몬스터를 사냥해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얼음만이 가득한 볼모지.

그들이 식량으로 삼을만한 건 몬스터밖에 없었고, 몬스터는 훌륭한 식량원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펜리르. 오늘은 날뛰어도 돼.”

이준경은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동안 잠에 빠져 있던 펜리르는 깨어난 이후 지루한 것 같았다.

말도 가르치고 여러 가지 시간을 보내던 펜리르는 예상했던 대로 정인창 과였다.

“킁.”

자신의 생각을 읽은 건지, 불쾌하게 콧바람을 부는 녀석이었지만.

녀석은 생각하고 배우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이제 곧이야.”

구구구구!

거인들이 탄 아이스 드레이크가 멈춰섰다.

마침내.

‘보인다.’

먼 곳에서 똑같이 아이스 드레이크를 탄 거인들이.

그들은 샤치 일행과는 조금 달랐다.

흰색의 짐승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샤치 일행과 달리, 저들은 검은색 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저게 나르들의 상징인가.’

색을 통해 적아를 구별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

동요하는 샤치의 얼굴도 보였다.

“크릉.”

어느새 전투태세를 마친 펜리르까지.

이준경 또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싸움을 기다렸다.

나르들과의 전투.

‘진짜 거인들이랑은 처음 싸워보는군.’

나르들 중에 추방당한 자들을 제외하고 거인과의 전투는 처음이었다.

이지를 가지고, 기술을 사용하고.

강력한 거인들과의 전투.

이준경의 몸 주변에서 증기가 피어났다.

불의 지배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

샤치가 손을 들더니 일행을 멈춰 세웠다.

“…….”

이준경은 영문을 몰랐지만.

다른 거인들의 표정은 모두 좋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애증?’

그와 비슷한 종류의 감정과 죄책감과 그리움 따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종족인 만큼, 서로가 칼을 겨눈다는 것이 슬픈 것일까.

이준경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느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구웅. 구웅.

나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이스 드레이크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들.

얼핏 보면 펜리르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화이트 팽.’

펜리르와는 격이 아예 다른 녀석들이었다.

화이트 팽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 거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샤치….”

어떤 거인이 샤치의 이름을 불렀고.

샤치는 혼자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일행이 따라나서려 했으나 손을 들어 제재했고.

곧.

“…….”

“…….”

흑과 백의 대조되는 두 거인이 얼음의 대지 위에서 만났다.

“샤치….”

검은 옷을 입은 거인이 샤치의 이름을 불렀다.

씁쓸한 목소리가 얼음의 대지를 울렸고.

“스림.”

샤치가 검은 옷을 입은 거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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