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삼국지(3)
생명이 죽어가는 격전지에서.
중국의 헌터를 이끄는 것으로 추정되는 검을 든 남자.
그는 자신을 유비라 소개했다.
‘유비….’
그리고 나머지 두 영웅.
이준경은 기억 속을 뒤졌으나.
‘모르겠어.’
그들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기거나, 마왕에게 강렬한 기억을 심어주지 못하고 죽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
“주석의 직계…?”
이준경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말했다.
그리고.
“…….”
유비와 두 헌터의 침묵으로 답을 했다.
저자, 유비라 소개한 자는 멸망한 중국의 주석이었던 장타오펑의 아들이었다.
장타오펑의 아들이 멸망한 중국의 부활을 위해 헌터로 고군분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빛을 보기 전, 사망했고.
그렇기에 크게 기억이 남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를 아는 자라니… 신기하군. 그러니 이제는 말해보게. 자네가 누군지.”
유비라는 자는 두 명의 헌터와 진을 짜며 이준경에게 물었다.
“이준경.”
“한국인인가.”
이준경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가 멸망한 주석의 직계건, 중국의 재건을 위해 노력했건 알 바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적이다.’
이준경이 몸을 움직였다.
빠르게 쏘아지는 이준경이 세 명의 헌터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모이게 내버려 두면 안 돼.’
셋의 연계는 수준급.
모인다면 헤라클레스급의 강함을 보이는 그들이었다.
그들이 제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크윽!”
이준경의 창을 받아낸 언월도를 쓰는 사내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준경의 움직임은 끝이 아니었다.
뒤를 돌아 창신으로 유비의 검을 후려갈기고.
사모를 쓰는 남자를 향해 창두를 찔러 들어갔다.
채엥!
하지만 사모를 든 자가 무스펠의 창을 쳐냈다.
그럼에도.
“…….”
진은 붕괴됐다.
그들은 다시금 진을 짜려고 했지만.
화르륵!
그들의 눈앞에 피어나는 불꽃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초고열.
다룰 수 있는 마력의 한계치가 늘어난 지금 불의 지배가 뿜어내는 열기 또한 강맹해졌다.
이준경의 눈이, 불길을 뚫고 샤치에게로 향했다.
“…….”
스림과 맞붙고 있는 샤치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있었다.
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닌 혼란스러움이 분명했다.
‘이대로면….’
진다.
지휘관이 저 상태니 우트가르드 거인들이 제힘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흐아압!”
정인창과.
“고옹즈!”
“크르르르!”
공주와 펜리르가 전장의 균형을 유지해주고 있었다.
빠르게 유비 일행을 정리하려는 이준경.
지금 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문득.
“물어볼 것이 있다.”
의문이 들었다.
이준경은 두 명의 헌터를 불길로 더욱 감싸며, 유비만을 불길 속에서 풀어주었다.
“대체 왜 너희는 국민을 배신한 거지?”
이준경이 든 의문이었다.
그는 역사에서 중국의 재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그 국민들을 배신하고.
나르들의 편에 섰다.
“나는….”
유비가 입을 열었다.
이준경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직감한 것 같았다.
“배신하지 않았다.”
“……….”
“그것이 그들을 위한 길이요. 대의를 위한 길이다.”
대의?
“무슨 대의이기에….”
“중국의 재건. 우트가르드의 왕을 잡아낸다면… 스림은 약속했다. 우리의 땅을 수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트가르드의 왕과 그런 협약을 해도 되지….”
“아니!”
유비는 분노한 듯 몸을 떨었다.
“그자와는 결코 협약할 수 없네.”
유비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겨눴다.
그의 의지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자는 우리 국민들을 죽였다.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수도 없는 국민들을 몰래 학살했지. 결코 우리의 국민들은 전염병의 원인이 아니었네!”
“……!”
처음 듣는 이야기에 이준경이 눈을 치켜떴다.
“결코 그런 자와는 손을 잡을 수 없어.”
이것은 아마.
‘원화가 없던 사이 벌어진 일. 그리고 헌터들만이 아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말이 됐다.
우트가르드의 인간 생존자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것과.
헌터들의 배신까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트가르드의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나르들의 편에 선 것은 맞지 않나?”
대의, 중국의 재건을 위한다고 하지만.
우트가르드의 왕이 그러한 짓을 벌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나르들과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간 것도 아니면서.”
이준경이 눈을 치켜떴다.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대의였다.
그렇기에.
쒜에엑!
일단은 쓰러트린다.
대신.
‘죽이지는 않는다.’
그가 가진 더 많은 정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를 제압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혀-엉님!”
“형님!”
초고열의 불길.
그것을 뚫느라 온몸이 눌어붙은 것이 분명했건만, 두 헌터는 유비의 곁에 섰다.
초고열의 불길을 무작정 몸으로 뚫고 나온 것.
“대단하군.”
이준경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엄청난 고통이 분명할 것임에도 그들의 표정은 꿋꿋했다.
그들의 의지도, 그들의 힘도.
그들은 다시금 셋이 모여 더욱 강한 힘을 뿜어냈고, 절대로 뚫리지 않겠다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진심 어린 감탄.
“나는!”
유비가 검을 겨누며 자세를 취했다.
“버리지 않았다!”
이준경이 공격할 필요도 없었다.
셋이 모인 그들이 이준경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
“…….”
샤치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휘두르고 스림을 쓰러트리기 위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우트가르드의 왕.
로키라고?
스림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것이 첫 번째 든 생각이었다.
원래 서리 거인들은 수많은 부족들이 따로 존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벌어진 대전이로, 많은 부족들은 사라졌고.
남은 부족들은 우트가르드에 모였다.
대항하기 위해 만든 요새, 우트가르드.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많은 부족이 있었기에 총지휘자.
족장을 뽑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족장 후보자는 셋, 현재 우트가르드를 지배하는 우트가르다 부족의 로키.
자신과 주먹을 부딪치는 검은 서리 부족의 스림.
마지막으로 푸른 서리 부족이자, 샤치의 아버지였던 올발디였다.
‘하지만….’
로키는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로키의 지위는 압도적이었다.
우트가르드를 만든 것이 우트가르다 부족이었고,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족장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네 아버지, 올발디는….”
샤치의 주먹을 막아낸 스림이 거대한 얼굴을 샤치의 면전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로키의 야망을 알았다.”
“야망…?”
“로키는.”
스림이 말했다.
“이곳에 대 전이를 일으킬 생각이었다.”
“……!”
대 전이.
서리 거인 부족들의 땅.
요툰 헤임에서 일어난 일.
갑작스레 등장한 그것은, 많은 서리 거인들을 죽였으며.
종내에는 이 미지의 땅에 떨어트린 대재앙이었다.
“만약! 대 전이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하지만 대 전이는 아무리 로키라도 일으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땅을 요툰헤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살던 세상, 요툰헤임.
왕이 이곳을 요툰헤임으로 만들자고 했다니.
“그게 무슨…?”
“이 세계를 정화하고 거인들의 대지로 만드는 것. 온 종족을 몰살시켜 거인만이 남게 되는 것!”
샤치의 주먹이 스림의 명치에 꽂혔다.
잠시 숨이 막힌 스림.
그를 내려다보며.
“올발디는 그런 로키의 뜻에 저항하고자 했고! 그렇기에 죽었다!”
샤치는 말했다.
하지만.
“왜…! 왜 말하지 않은 것이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말해야 해야 했다.
그저 사고로 인해 죽은 아버지가, 사실은 지금 자신이 모시는 족장에 의한 죽음이라면.
“말했어야지!”
샤치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통을 느끼며.
“크아아아아!”
두 주먹을 뻗어냈다.
맹렬한 기운.
서리 거인들이 사용하는 힘.
고르다.
응축된 힘을 터트려 폭발시키는 기술.
콰! 콰! 쾅!
공간을 파열시키며 샤치의 주먹이 터져나갔다.
마침내 닿은 곳은.
“…….”
스림의 양손이었다.
샤치는 마지막 순간 고르다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할 수 없었다.
“왜 막지 않았나….”
스림이 고르다를 막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까지… 잃을 순 없다. 샤치.”
스림이 메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이 사실을 알아도 괴롭기만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샤치의 눈동자가 의문을 표했다.
“너는 충성스러운 서리 거인 전사장. 명예를 아는 네가 아버지를 죽인 자라고 한들, 족장을 배신할 수 있을까.”
스림의 목소리는 물기 젖어 있었다.
“보아라.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네 몸에는 한 줌의 투지가 남아있다. 나를 향한, 배신자를 척결해야겠다는 투지가. 그러니….”
스림의 주먹이 빛났다.
샤치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힘.
고르다.
그것이 터져 나와.
퍼어엉!
샤치의 안면에 직격했다.
나가떨어진 샤치, 숨은 쉬고 있었지만 기절한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잠자고 있어라.”
스림이 전장을 살폈다.
아슬아슬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전장.
이제 전장을 정리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전력을 유지한 채 우트가르드로 진격해야 했다.
이미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대로 우트가르드로 진격하여 로키를 죽이고, 왕이 되어 샤치의 충성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던가.
혹은.
‘죽던가.’
스림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가장 첫 번째로 그가 정리하려는 대상은 당연하게도.
“…….”
한 인간이었다.
어느새 나르의 편에 선 인간들, 헌터들을 정리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
“재밌군.”
그를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감정을.
스림은 느꼈다.
특별한 자, 특별한 인간.
저자는 지금 샤치보다도.
로키만큼이나 위협이 되는 자였다.
“후으압!”
스림이 온몸의 힘을 폭발시켰다.
고르다가 터질 듯 발끝에서부터 타올랐다.
거대한 힘.
왕을 상대하기에 아껴두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저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항복!”
이준경은 양손을 든 채 그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