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111화 (111/275)

111. 백호단(3)

“워메….”

“여기야?”

“와….”

이준경의 등 뒤로 사람들의 감탄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주변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준경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때?”

사람들을 등지고 서 있는 그는, 한 명의 여인과 함께 있었다.

기다란 검은 생머리.

윤기 나는 그 머리만 보아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인의 이름은 최연서.

또 다른 이름으로는 웅녀라고 불리는, 옛 천지촌의 촌장이던 자였다.

“아름답지? 백두산의 천지호만큼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

이준경의 말에도 웅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물끄러미 둘은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한강.

이준경과 웅녀, 그리고 천지촌 주민들이 현재 있는 곳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름다워.”

웅녀가 입을 열었다.

절절한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

“정말 아름다워.”

그녀는 계속해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이.

‘똬리를 틀 자리다.’

이준경이 수없이 말했었고, 수없이 바랬었던 이사.

이준경은 이곳으로 이사할 생각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혼자 괜찮은 아파트로 가 지내고 싶었지만, 갑작스레 딸린 식구들로 인해 불가능해졌고.

‘결국….’

다시 이곳이었다.

사실 북한강 쪽은 이준경에게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이제는 추억이라 말할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악몽이던 장소.

감옥과 다름없었던.

‘고향.’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이곳은 훗날 일반인들만이 살아가는 도시 중 하나였다.

아니 도시라고도 말할 수 없던 깡촌이었고.

이준경이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던 고향이기도 했다.

결국 이곳으로 다시 왔다.

이유는.

“모르겠네.”

“뭐가?”

“내가 다시 이곳에 온 이유.”

돈이라면 충분히 있었고, 원한다면 서울의 아파트 한 동을 살 만큼의 돈도 있었다.

천지촌 주민들을 어디든 정착시킬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고, 그렇다고 북한강 지역이 격변에서 안전한 곳도 아니었다.

격변 속에 안전한 곳은 없다.

단순히 격변이 다가오기 전까지 머무를 장소를 원하여 이사한 것이었지만 다시 이곳이었다.

이준경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입술을 씹었다.

그래도.

“아름다워.”

웅녀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 강도, 이 풍경도.”

담백하게 말하던 그녀가 뒤로 돌아섰다.

“가자. 집 구경 안 시켜줄 거야?”

웅녀의 말에.

“그래야지.”

이준경이 감정을 지우고선 웃었다.

***

“워메….”

“워메….”

초지일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이게 집이여 궁전이여.”

“집이지.”

“우리가 살게 될 집이라는 건가?”

평소 말수가 적었던 이들도 한마디씩 던졌다.

천지촌, 백두산 천지에 지어진 판자촌에서 살던 이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궁전과도 같았다.

“편하신 곳을 쓰시면 됩니다. 만약 사용하고 싶은 집이 겹치는 경우에는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이준경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곳은 그들의 생각처럼 집이 아니었다.

한, 고급 펜션 부지 전체를 산 것이었다.

이들을 모두 수용하고 훗날 격변이 다가오기 전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이만한 곳이 없었다.

“수영장도 있네….”

정인창.

그도 입을 벌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맙소사.”

원화 또한 마찬가지.

“집 안에 수영장이 있습니다!”

“풀 빌라를 구매한 거니깐요.”

이준경은 감흥 없다는 듯 말했지만.

“…….”

속으로는 그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그 액수가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는 건가.

생각보다 많은 액수의 돈이 한 번에 빠져나갔건만, 이준경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진짜 이게 집이야?’

구매한 거주지의 화려한 모습에, 그도 놀랐을 뿐이다.

그가 구매한 펜션 부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

‘괜찮은 매물로 알아놨다.’

이곳을 알아봐 준 것은 여성구.

게이트가 등장하면서부터 보호받기 힘든, 외진 지역의 가치는 떨어졌고.

자연스레 펜션 등으로 여행하는 여행객들의 수도 줄었다.

어디서 몬스터가, 게이트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목숨 걸고 여행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세보다 싼 가격에 구매했다고는 하지만.

‘미쳤네.’

이준경은 자신의 집을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삼층, 층고는 높디높았고 통유리로 된 창으로는 북한강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부엌과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우아했으며 자재들은 모두 최고급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정인창의 말대로.

“수영장이 있어….”

집 안에 수영장이 있었다.

통유리로 강을 보며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

“이게… 진짜 내 집이라고…?”

이준경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헤라클레스와 맞서 싸웠을 때보다, 거인들의 왕 우트가르다로키에게 맞섰을 때보다도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감격.

그리고.

‘안 돼.’

걱정이었다.

격변 속에서 이곳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잠시 머무르기로 생각하여 구매한 곳이었는데.

이 정도의 집을 파괴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을 찾아야겠어.”

의미 없는 것으로 다짐하는 이준경의 모습에.

“크릉.”

펜리르가 주변을 구경하며 콧김을 뿜었다.

아직도 녀석이 인간의 문화와 생활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본디 인간이 아닌 늑대, 아니 바니르간드이기에 그렇겠지만 펜리르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였냐면.

“펜리르 이곳이 우리 집이야. 좋지?”

그렇게 말하는 이준경에게.

“좋다.”

깔끔한 한국어로 대답한 펜리르는.

“…….”

마당에 마련되어 있는 개집에 들어가 몸을 뉘었다.

“거기… 아니야….”

이준경이 머리를 짚으며 그렇게 말했다.

***

저녁은 당연하게도.

“축제다!”

축제였다.

새롭게 터전을 잡은 그들은 신이 나 있었고, 이준경은 그들의 기분을 망칠 생각이 없었다.

원래의 용도가 펜션이었기에 바비큐장은 잘 마련되어 있었고, 천지촌의 주민들은 그곳에 모두 모였다.

거의 백 오십에 가까운 숫자였다.

이들을 먹일 고기와 음식은.

“워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아예 수레로 음식을 끌고 들어오는 정인창은 그들에게 구세주처럼 보이는 듯했다.

환호하는 주민들.

“키야!”

행복해하는 정인창과 일행들이었다.

공주와 펜리르, 산군은 셋이 나름 친해진 것인지.

“…….”

모닥불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그 괴기한 모습에 몇몇은 넋을 놓았고, 몇몇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축제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호강을 다 해보네.”

“그러게.”

사람들은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준경이 기자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국가가 존재했었을 때도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호사는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그들.

그들은 오히려 백두산 천지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부족할망정 행복했었을 것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이곳은 별천지였다.

모자라지 않은 음식과, 좋은 집.

그렇기에.

“불안하구먼.”

그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에 떠는 이들.

이준경은 지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

타닥이며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앞에 두고 이준경이 입을 열었다.

일렁이는 불꽃에 이따금 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은 저와 마력의 계약을 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준경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물이라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조용해진 주민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과 계약을 하기 전, 충분한 이야기는 해 놓았었다.

강제성이 있는 계약이고, 그것은 곧.

‘충성과 복종을 뜻한다고.’

거부감이 있을 것이 분명한 그 말을 꺼냈던 이준경.

그럼에도 그들은 계약을 택했다.

“우리는 자넬 믿네.”

늙수그레한 노인.

천지촌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노파였다.

갖은 고초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그녀는 어떤 면으로 보았을 때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애당초 죽었어야 혀.”

강력한 한 마디.

“그 날 천지가 불타오를 때 우리는 모두 죽은 것이여.”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근디 자네는 우리를 구해줬어. 또 산군님도 살려줬지 않는가.”

산군을 살린 것은 자신이 아닌, 커다란 수컷.

웅녀의 후원자였지만 이들은 그것이 이준경의 덕택이라 믿고 있었다.

“우리는 자넬 믿어. 그러니깐 아무 걱정일랑 말고. 자네가 원하는 대로 혀.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은 없어두….”

그녀가 탁한 눈동자로 천지촌의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닥.

모닥불은 끝을 모르고 타들어 갔다.

“은혜는 알어. 어차피 죽었을 목숨 자네가 살린 건께.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혀. 우리보고 살라 하면 살고. 죽으라고 하면 죽을 겨. 애시당초 계약인가 뭔가를 얘기했을 때 다들 그 정도 각오는 했잖녀?”

“맞습니다.”

“그래요.”

“아이들만이라도 살아남았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공간을 울렸다.

“……….”

이준경이 그들을 바라봤다.

어느새 노파는 제 자리에 앉아 흘흘 거리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준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노파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조금은 긴장한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을 느끼며 이준경이 말했다.

“살아내라는 겁니다.”

화르륵!

꺼져가던 모닥불이 굳세게 타올랐다.

불의 지배.

아니, 이제는 불의 군주가 되어가고 있는 이준경의 의지에 따라 불꽃이 감응한 것이었다.

“앞으로 여러분이 지내던 백두산보다도, 세상은 더욱 위험한 곳이 될 겁니다.”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말을 하는 이가 강력하다면 그 말은 더욱 강력해지기 마련이었다.

“여러분은 전사가 되어야 할 겁니다. 여러분의 곁에 있는 소중한 이를 지키고 싶으시다면….”

화륵!

불꽃이 완전히 타오르며 강을 비추었다.

그 사이로 굳건해진 사람들의 눈동자가 보였다.

“전사가 되세요. 헌터가 되세요.”

이준경이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강해지세요.”

어느새.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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