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호루스(3)
“네 형제를 만들어줄까 하거든.”
그렇게 말한 이준경의 시선이 아누비스에서.
손목의 팔찌, 영혼을 담는 해골로 향했다.
그다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피라미드의 꽉 막힌 천장이었다.
[<종말의 하늘>이 당신의 역경을 딛는 모습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말만 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주면 좋겠거늘.
저 녀석은 대단한 짠돌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주었던 것들이 워낙 대단하고, 또 위급할 때는 도움이 되기에 더 이상 이준경은 불평하지 않았다.
[<종말의 하늘>이 아쉬워합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반응에 이준경이 입가를 말아 올렸다.
악평을 듣는 것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특이한 취향을 지닌 듯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막의 태양>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호루스를 깨웠을 때부터 들려오던 목소리.
‘<종말의 하늘>이 싫어하지 않아?’
지금껏 자신을 주시하던 후원자에게 눈초리를 흘기던 <종말의 하늘>.
녀석이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백마 탄 왕자>나, 원화의 후원자같이 이준경의 동료들의 후원자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던 녀석이.
‘뭐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후우….”
이준경은 또 다른 의문을 만들기보다는 앞서 나열된 문제에 시선을 돌렸다.
아누비스.
그와 팔찌를 번갈아 보던 이준경이 현무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 더 나쁜 놈인지 알아야겠어.”
이준경의 말에 현무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사아아.
모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호루스가 멈춰선 곳으로 향해 들려오는 발소리들.
수십의 헌터들.
그리고.
‘세트.’
그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여긴 뭡니까…?”
이준경이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은 후 이네브를 향해 물었다.
호루스를 따라온 이곳은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마력이 가득하다.
[마나 스트림이 급격히 활성화됩니다.]
마나 스트림조차 반응하는 이곳.
벽에는 수십 개의 벽화가 새겨져 있었고 알 수 없는 모습을 한 신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맨 앞.
[<사막의 태양>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준경이 듣는 목소리처럼.
사막 위에 태양이 떠올라 있는 느낌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라의 신전입니다.”
이네브가 이준경을 향해 말했다.
“나일의 왕이 될 자, 라의 영광이 있으리. 라께서 선택하신 자.”
이네브는 신성한 주문을 읊듯 그렇게 말했다.
“나일을 지배하리라.”
“나일을 지배하리라.”
목소리는 두 개.
하나는 이네브.
또 다른 하나는.
“세트.”
양손이 피로 물들어 있는 남자가 추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세트와 호루스.
삼촌과 조카.
그러나, 아버지를 죽인 삼촌이었고.
걸림돌이 되는 조카였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꼴이 엉망이구나.”
세트는 그렇게 말했다.
세트는 손의 피를 닦고선 움직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자칼들이 그의 등 뒤로 섰다.
세트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삼촌께서도… 꼴이 엉망이십니다.”
호루스 또한 분노를 잠재우며 그렇게 말했다.
이준경의 일행은 솔직한 심정으로 놀랐다.
세트가 지금 닦는 저 피가 누구의 피인지.
세트가 바로 몇 분 전에 무엇을 하고 왔는지.
호루스가 왜 지금 이 모양이 되었는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가장 분노해야 할 호루스가.
덜덜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까지 참아내고 있었다.
“저런 게 왕이라는 겁니까?”
정인창이 호루스를 대신해 분노하듯 입가를 떨며 말했다.
아버지를 죽였다.
그것을 참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그렇네요. 저런 게 왕의 풍모라는 것이겠네요.”
이준경이 말했다.
왕.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해도 그 호칭만이 의미를 가질 뿐인 것이었지만.
이집트에.
나일에서의 왕은 다른 의미인 듯했다.
분노를 삭히고 인내해야 하는 것.
둘은 무언가를 기다리듯 서로를 노려보았다.
“헌터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준경이 말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
나일의 헌터들, 그곳이 이 라의 신전이라는 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체 뭘하고….”
“나름대로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정인창의 말에 원화가 답했지만.
“아닐 겁니다.”
이준경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시리스를 지키고, 호루스를 지켜야 하는 나일의 영웅들.
그들은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 나일에 숨어든 타 조직의 스파이들을 처리했을 겁니다.”
“네?”
“나일은 지금 위급합니다. 세트의 반란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고, 모두 그것을 나름대로 준비했겠죠.”
이준경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일의 위기를 타 조직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세트는 반란을 일으킨 거지, 나일을 파괴하려는 게 아닙니다.”
“……….”
“하지만 타 조직이 나일의 속 사정을 알게 되면, 나일은….”
더 이상 그 이름을 존속시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움직여 미리 짚어둔 스파이를 처치하고 내부의 사정이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늦춘 것이었다.
그래 봐야.
‘소용없는 짓이지만.’
아스가르드.
그곳에서 온 자신이 떡하니 있지 않은가.
또한.
‘발두르의 기운이 사라졌다.’
발두르.
도망친 것은 아닐 테지만, 그의 기운이 사라졌다.
어딘가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세트가 버젓이 멀쩡한 것을 보니.
“…….”
예상보다도 세트가 강력한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전 느낀 그 기운은 흉흉함을 넘어서 공포스러울 정도였으니까.
“통찰력도 있구나.”
세트가 호루스 너머, 이준경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여유.
“내 조카를 살려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지.”
“…….”
“해내리라 생각은 했건만, 진짜로 해낼 줄이야.”
세트의 말을 들은 이준경이 얼굴을 굳혔다.
세트의 말이 내포하는 뜻은 간단했다.
‘세트가 아니다.’
자신이 호루스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세트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 있는 그분이라는 자가 자신이 호루스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 것이었고.
‘그자가 내게 관심을 두고 있다.’
그것은 그분이라는 그 작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셈이었다.
“확실히 통찰력이 있어.”
세트는 이준경의 표정을 읽은 듯 그렇게 말했다.
“일부러… 호루스를 살리게 했단 말입니까?”
이준경이 다가오는 헌터들의 기척을 느끼며 말했다.
그에게 들려온 세트의 대답은.
“그래.”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다시금 호루스를 바라보는 세트의 눈.
“진정한 파라오는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법이다.”
그가 선언하듯 말했고.
어느새.
“…….”
“…….”
헌터들이 도착했다.
나일의 헌터들.
세트는 그저 오시리스를 죽이고, 호루스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왕위에 대한 도전.
왕좌를 노리는 이의 각오 같은 것이 있었다.
“토트. 세크메트.”
세트가 원을 만들고 있는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침음하며 세트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세트가 뿜어내는 거대한 힘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너희들의 선택은 무엇이냐.”
그의 말에.
토트라는 남자는 한 발자국 물러섰고, 세크메트라는 자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
호루스와 이시스의 눈이 토트라는 자와 그의 세력을 보았다.
“좋구나.”
세트가 말했고.
마침내.
“마지막 전투다. 자칼들아.”
전투가 시작된다.
세트의 등 뒤로 지쳐있던 자칼들이 안색을 바꾸고 무기를 들었다.
호루스 또한 이것을 기다린 듯 기운을 뿜어냈다.
“왕위를 빼앗을 시간이다.”
“후! 후! 후!”
검들이 소리를 낼 시간이 왔다.
***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
그가 텅 비어버린 아스가르드의 회의장에 앉아 있었다.
회의가 끝난 지 몇 시간.
그러나 오딘은 회의장을 떠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침잠한 눈으로 고뇌를 거듭할 뿐이었다.
‘나일.’
자신이 한 선택을 돌이켜본다.
아스가르드의 회의는 특별했다.
모든 이의 의견을 듣지만, 선택은 오딘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아스가르드 소속 영웅과 헌터들은 오딘을 아스가르드의 지배자.
혹은 왕이라 불렀다.
‘대체….’
이번에 주최된 회의의 주제는 나일에 대한 침공.
특수 게이트로 정신이 없었지만, 이준경이라는 존재로 인해 앞으로의 방향을 정했고.
실제로 한국의 상황은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을 돌렸다.
마침 기회가 생긴 나일.
집어 먹기에 딱 좋은 먹이였다.
반란으로 세가 줄어든 나일은 충분히 아스가르드가 먹이로 삼을만했다.
또한 아스가르드와 오딘의 성격상, 나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셈이었다.
이미 결과가 거의 정해졌던 회의.
그러나.
‘아스가르드는 나일에서 손을 뗀다.’
오딘은 아까 전, 그가 내뱉었던 말을 생각해냈다.
아스가르드는 더 이상 나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세트의 그 힘은….’
발두르가 보여주었던 그의 힘.
권역을 부수고, 검붉은 마력을 줄기차게 뿜어내던 세트.
오딘은 그에게서.
“공포라….”
잊었던 감정을 느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 하나의 감정을 더 느꼈다.
‘희열.’
거대한 힘.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을 본 것에 대한 희열.
그의 탐구심과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그것을 보고 꿈틀댔다.
오딘은 세계 최정상의 헌터이자 영웅이었다.
그러나.
‘후원이 끊긴 지는 오래되었다.’
그가 협회장이라는 자리와 아스가르드라는 지배자로 군림하며 사냥에 나서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어느샌가.
후원자들의 후원이 끊겼다.
그것은 자신의 힘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강해질 길이 요원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탐구했고, 더욱 파고들었다.
그런데.
“가능성을 찾았다.”
어느새 오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세트의 그 힘은 위험하다.
아스가르드가 나일에 관여하면 그 힘의 대상은 아스가르드가 될 것이고, 그 힘은 아스가르드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능성이었다.
‘후원자.’
후원자를 죽이겠다는 그의 목표.
이준경이라는 새로운 희망과 또 다른 희망을 찾았다.
아스가르드는.
아니 오딘은.
‘나일에서는 손을 떼지만, 세트는 그렇지 않지.’
나일의 반란이 끝나고, 나일이 안정권에 돌입하면 자신은 개입할 것이다.
세트의 힘은 강력했지만, 아직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오딘은 호루스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세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트가 보여준 힘이었고, 자신이 찾은 가능성이었다.
“좋군.”
오딘이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 일어섰다.
혼란이 남았지만, 기분 좋은 혼돈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가능성.
미지.
탐구.
오딘을 이끄는 원천들이 다시금 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
오딘이 놀란 눈으로 회의장의 문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누구냐.”
누군가 서 있었다.
자신의 권역.
그러나 허락받지 않은, 존재를 알 수 없는 자가 난입해있었다.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있지 않은 일이었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딘은 또다시 희열을 느꼈다.
미지.
상식을 깨버리고 나타난 저 남자는 탐구의 대상이었다.
오딘의 물음에 남자는 뒤늦게 답했다.
“너에게 힘을 주마.”
그의 검은 로브가 마력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