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격변의 조짐(4)
S급 게이트의 붕괴.
그것은 전에 있었던 C급 게이트의 붕괴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구구구궁!
건물이 진동했다.
영웅들이 있는 곳이기에 결계로 보호받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충격.
강력한 마력의 유동.
영웅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은 이집트.
그들이 지켜야 할 그들의 국가도 아니었고, S급 게이트의 붕괴는 그들 또한 쉽사리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눈치 싸움이 잠시 진행될 때.
“먼저 자리를 뜨겠소.”
호루스.
그가 움직였다.
이곳은 호루스의 영역.
나일이 주둔하는 이집트, 그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
호루스가 일어섰음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는 영웅들.
다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스윽.
이준경과 여성구였다.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영웅들이 당황했다.
구구구궁!
건물이 울리는 진동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자리에 모인 까닭은 이준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준경이 자리를 뜨려는 지금 어찌해야 할까.
잠시간의 고민이 있었지만.
“이미 저는 줄 수 있는 만큼의 정보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준경의 이어진 말에 의해 고민은 금세 가셨다.
“또한 저는 타국으로 소속을 이전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명쾌한 해답을 전해주는 이준경.
“여러분의 나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호루스가 이준경과 신호를 주고받은 뒤 방문을 빠져나갔다.
이준경 또한 그의 등 뒤를 쫓아 나가며 말을 끝마쳤다.
“여러분의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끼익.
닫혀가는 문.
“아니. 이미 벌어지고 있을 수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리는 이준경의 목소리에.
스윽.
가장 빨리 몸을 일으킨 것은.
“실례하겠소.”
야신이었다.
그는 구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
콰아아앙!
야신의 앞으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운석이 아닌 건물의 파편.
파열하듯 폭발한 그것이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꺄아아악!”
아직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스릉.
야신이 검을 들었다.
“본국이 아닌 곳에서 검을 든 것은 처음인가….”
그의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그가 원정을 떠난 적이 없는 헌터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일본 내에서 가지는 위치는 특별했고, 그렇기에 일본과 그의 조직 다카마가하라는 그의 원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일본의 게이트에서만 강해졌던 그.
그러나 그의 실력만큼은 세계에서도 수위권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스릉.
검이 울리며 맑은 소리를 내었다.
다시금 그의 검이 검집에 들어섰을 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떨어지던 건물의 파편들, 그것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트롤들….”
S급 게이트가 붕괴했기에, 대단한 몬스터라도 튀어나온 줄 알았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트롤이 건물을 부수며 무자비하게 파편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일반적인 트롤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달랐다.
훨씬 더 커다란 몸집.
조금 더 깨끗한 모습.
마치.
‘거인 같군.’
야신이 무사 특유의 걸음으로 빠르게 앞서나갔다.
카이로는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고, 헌터들은 몬스터를 상대했다.
하지만 많은 헌터는 몬스터를 막아내지 못하고 후퇴하거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죽어갔다.
야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본국은….’
일본은 일반인들을 멸시한다.
힘을 가진 헌터들은 숭상받아야 마땅한 이들이었고.
일반인들은 그들을 지켜주는 헌터라는 진화한 종족에게 복종해야만 했다.
그것이 현 일본의 모습이었다.
헌터들은 일반인들이 위험하다 해도, 그들 스스로 안전을 위해 몸을 빼내는 것이 일본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
야신은 헌터들의 모습을 눈여겨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스릉.
맑은 검명이 울릴 때.
건물의 파편이 사라지거나.
“크어?”
트롤인지 거인인지 모를 몬스터가 쓰러져갔다.
몇몇 헌터들은 그것이 야신의 솜씨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감사합니다.”
영어로써 감사를 표했다.
야신은 그런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빠르게 전진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숙소, 그곳에 그녀를 찾아 구해야 했다.
일본의 영웅들이 그녀를 지키고 있을 테지만, S급 게이트의 붕괴 속에서도 안전할지는 모르는 이유였다.
그녀는 야신에게 필요한 자였고.
꼭 지켜야만 하는 자였다.
‘그녀가….’
지키는 어떠한 것 때문에.
그녀를 구해내야만 했다.
빠르게 달려나가던 야신의 눈에 멀찌감치.
화르르륵!
타오르는 불꽃이 보였다.
혼란 속에서 자연스레 피어오른 불꽃이 아니었다.
누군가 마력을 이용해 피운 불꽃이자, 불꽃에 담긴 마력이 익숙했다.
피어오르는 불꽃 사이로.
“언더독….”
그의 모습이 보였다.
창을 찔러 내 일격에 거인을 죽이는 남자.
야신의 마음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후우….’
야신이 모두의 앞에서 그의 영입을 제안하고.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단순히 그가 가진 정보가 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당신의 임무에 도움을 줄 것이에요.’
자신에게는 운명, 임무, 소명 같은 것이 있었다.
여인과도 관계된 그것은, 여인은 이준경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쿵. 쿵.
지금 뛰는 심장처럼 그를 보며 이상하게도 심장이 뛰었다.
마치, 그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미국과 같이 급하지도 않은 상황에 그를 영입하려 했다.
야신이 불꽃에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마침 그곳은.
여인이 있는 곳이었다.
***
쒜에엑!
이준경은 미친 듯 움직였다.
호흡을 고르지도, 힘을 분배하지도 않았다.
그저 직선으로 달리며 눈에 보이는 트롤들을 모조리 처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트롤들은 이상했다.
‘우트가르드의 거인들과는 달라.’
확실히 중국에서 보았던 서리 거인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무언가 그 거인들과는 비슷했다.
트롤과 닮았으며, 거인과도 비슷한.
이것들이 S급 게이트의 붕괴와 함께 튀어나온 것들이었다.
그렇다 한들 이준경은 망설임이 없었다.
쒜에엑!
그의 창이 궤적을 그리면 어느새 트롤인지 거인인지 모를 몬스터가 쓰러졌고.
화염이 불타올랐다.
“이쪽으로!”
여성구는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시민들을 구출하는 데 힘썼다.
숙소를 나오면서 호루스와 이야기해 안전한 곳으로 시민들을 옮기는 것.
그것이 비프로스트의 주인인 여성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일이었다.
쒜에엑!
여성구가 시민을 구하고, 이준경은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빠르게 몬스터는 쓰러졌고, 비명은 잦아들고 있었다.
[아누비스의 영혼을 흡수 중입니다.]
용혈석의 영향일까.
아니면, 죽음을 다뤘던 아누비스의 성질 때문일까.
영혼을 담는 해골이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마다 빠르게 아누비스의 영혼을 흡수해나가고 있었다.
이준경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개의치 않고 재빨리 움직였다.
촤아악!
이준경의 등 뒤로 화염의 날개가 치솟았다.
아직 <사막의 태양>이 자신을 후원하고 있었다.
거대한 힘.
한정된 시간 동안 다룰 수 있는 이 힘을 이용할 것이었다.
고르다를 비롯한 수많은 증폭기와 함께.
쒜에에엑!
다시금 카이로의 상공에 불사조가 나타났다.
이준경.
그의 모습은 한 마리의 불사조와 같았으며, 카이로의 도망치는 시민들에게는.
“수호신….”
그들의 수호신인 라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어서!”
여성구의 재촉에 도망치는 시민들이었지만, 그들은 손을 모아 이준경을 향해 잠시 기도했다.
그 뒤로도.
촤아아악!
한 마리의 불사조가 보였다.
호루스.
그 또한 아직 성치 않은 몸이었건만 몸을 사리지 않고 카이로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상공에서 이준경이 소리쳤다.
일대의 시민들이 대부분 대피했지만, 한 호텔에서만큼은 아직 대피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느껴지는 헌터들의 기운.
그리고.
‘불길한 하나의 기운.’
무언가 찝찝함과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운이 저 먼 호텔에 있었다.
그곳은 헌터들의 영향인지 아직 멀쩡했지만, 곧 붕괴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화염의 날개가 빠르게 움직여 이준경을 그곳으로 인도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야신.’
야신의 기운.
그의 기운을 느꼈다.
참 이상했던 자였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가치가 있다고 한들, 파격적인 대우로 영입 제안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의 실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자신은 대단한 능력자가 맞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파격적인 대우로 끌어들일 만한 위치까지는 아니었다.
그자와 프리 메이슨의 영웅 때문에, 각국의 영웅들은 괜스레 자신을 영입하려 노력했다.
모두 그자.
‘야신.’
그 이상한 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이준경은 호텔에 도착했다.
“…….”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들끓었다.
아직은 멀쩡한 호텔의 등 뒤로.
“아직 게이트가….”
붕괴의 여파가 보였다.
일렁이는 파란색 장막과도 같은 그것.
아직.
‘넘어오지 못한 것이 있다.’
게이트의 붕괴 속에서도 그 거대한 힘 때문에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한 한 존재.
짐작은 갔다.
보스.
S급 게이트의 보스가 이곳에 강림하려 하고 있었다.
촤악! 촤악!
이준경이 화염의 날개를 펄럭이며 상공에서 무스펠의 창을 장전했다.
아직 녀석은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녀석이 넘어온다면 피해를 가늠하기 힘들어지기에, 넘어오기 전 처리할 생각이었다.
후우웅.
괴기한 공명과 함께 모여드는 화염이 무스펠의 창에 맺혔다.
이준경이 쏘아낸 그것이 거대한 열기를 뿜어내며 푸른색의 장막과 부딪혔다.
하지만 그 순간.
‘늦었다.’
쿠웅!
땅과 공기가 진동했다.
이준경이 쏘아낸 화염은 녀석이 넘어오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콰아아앙!
넘어온 녀석의 커다란 몸에 한 방 먹이는 것은 성공했다.
지금껏 보았던 어떤 몬스터보다도 거대한 녀석.
거인, 아니 그것을 넘어선 듯 보이는 보스가 온몸이 불타며 이준경을 내려다보았다.
압도적인 크기였다.
빌딩, 그보다도 큰 크기의 녀석의 달과 같은 눈동자가 이준경을 직시했다.
우우우웅!
녀석의 손바닥이 공기를 밀어내며 이준경을 향해 떨어졌다.
이준경이 재빨리 움직여 손바닥을 피해내고,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중독될 것 같은데.’
<사막의 태양>의 힘으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지금.
이 굉장한 속도감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빠르게 치솟아 올라가는 이준경.
무스펠의 창은 이미 화염을 보이는 대로 집어삼키고 모습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불사조에게 거대한 거검이 들려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콰직.
나타난 S급 게이트의 보스.
거인의 턱부터 꽂혀 들어갔다.
구우웅!
거인이 쓰러진다.
이준경은 창에 불어넣은 화염을 일으켜, 녀석이 넘어지기 전 녀석의 시신을 불태우려 했지만.
녀석은 화염에 대한 내성이라도 있는 듯 쉽사리 불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스릉.
맑은 검명이 울렸다.
쓰러지는 거인이.
조각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