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격변의 시작(4)
콰아앙!
쇠붙이가 부딪힌 소리라기보다는 폭탄이 터진 것만 같았다.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건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화아아아아!
미칠 듯 타오르는 화염이 두 개의 창 사이에서 솟구쳐 흩날렸다.
화염은 끈적하게 늘어져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타오르는 국제공항의 불길.
그보다 더 뜨거운 화염이 주변을 잠식했다.
“크오오오!”
국제공항을 무리 없이 부쉈던 드레이크들.
화염의 속성을 지녀 화염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그 녀석들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면 속임수라 소리칠 정도의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콰아앙!
다시금 두 개의 창이 맞부딪혔다.
이준경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검은 로브의 남자의 힘은 예상한 것보다도 더 강했다.
모든 힘을 폭발시키며 쥐어 짜내고 있는 지금도 밀린다.
애초부터 그를 이길 생각 따위 없었다.
‘이 자가….’
우트가르드의 흑막이며, 세트의 배후로 의심되는 그 남자라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그 정체를 파악해야 했기에 부딪힌 것뿐이었다.
이준경은 모든 힘을 내뿜어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저, 검은 로브를 걷어내는 것.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
단지 그뿐이었음에도.
서걱!
쉽지 않았다.
이준경의 팔뚝에 남자의 창이 스쳐 지나갔고.
핏물이 옷을 적셨다.
울컥.
무스펠의 창이 조금 더 가시를 쏟아냈다.
어느새 무스펠의 창에서 뻗어 나온 가시가 이준경의 팔을 먹어치우듯 휘감고 있었다.
가시는 어느새 화염에 둘러싸여 있었다.
“크윽.”
검은 로브의 남자가 쏘아내는 창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무스펠의 창은.
[무스펠의 창이 마성을 드러냅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먹어 치우려 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스킬이 없는 건가.’
검은 로브의 남자가 그저 완력만으로 자신을 상대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마력의 유동이나 스킬, 마나의 사용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완력만으로 자신을 상대한다.
그렇기에.
‘경악스럽다.’
가진바 힘이 모든 것을 폭발시킨 자신을 압도할 정도라니.
불의 군주의 힘으로 일으킨 화염을 꺼트릴 힘이라니.
경악스럽다.
콰아앙!
이준경의 창과 검은 로브의 남자의 창이 다시금 붙어 폭발했다.
이대로는 끝이 나질 않았다.
검은 로브의 남자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이준경은 검은 남자의 로브를 벗길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마성이 침식합니다.]
이준경은 일부러 무스펠의 창에 몸을 내어주었다.
꿈틀거리는 힘이 느껴졌다.
울컥거리는 마나가 무스펠의 창에서 역류했다.
팔에만 집중되었던 그것이.
“크으윽….”
이준경의 심장 어림으로 꿈틀대며 들어왔다.
[마성이 광기를 자극합니다.]
피처럼 붉어졌던 이준경의 눈이 더욱 붉은 눈을 토해냈다.
콰아앙!
이준경이 창으로 검은 로브의 남자를 쳐내고 뒤로 물러섰다.
지친 듯 헐떡이는 이준경.
무스펠의 창에서 뿜어나온 가시가 이준경의 상체를 휘감고 있었다.
“아직은….”
속마음인지, 육성을 내뱉은 것인지 분간조차 못 하는 이준경.
그가 피처럼 붉은 눈으로 검은 로브의 남자를 쳐다봤다.
“괜찮아….”
그와 동시에.
[용혈석이 미약한 드래곤 하트와 공명합니다.]
폭발적인 힘이 느껴졌다.
이준경, 그가 서 있는 땅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
용암이 들끓는다.
검은 로브의 남자와 부딪히고 있는 이준경.
전과 달리, 검은 로브의 남자의 옷은 찢기고 헤져 있었다.
그럼에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문제는.
“흐으….”
이준경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카앙! 콰앙! 카앙! 콰앙!
쇳소리가 울리면 폭발이 일었다.
이준경은 그저 미친 듯 손을 내뻗으며 창을 뻗어내고 있었다.
기술이나, 상대방의 로브를 걷어내겠다는 목적 따위는 잃었다.
온몸에 가시가 박힌 이준경은 그저 미친 듯 창을 휘두르고 찔러내기만 했다.
파아아아앙!
공간을 찢어발기며 화염을 터트렸고, 그것은 창에 가속을 더했다.
검은 로브의 남자가 창을 휘둘러냈다.
콰앙!
다시 한번 폭발이 일었다.
연속된 폭발 속, 이준경의 몸에 더욱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까드득.
듣기 싫은 괴기한 소리.
검은 로브의 남자를 찔러내는 이준경의 몸에.
까드득.
비늘이 돋고 있었다.
가시가 됐던 그것은 파충류의 것처럼 변해가며 이준경의 몸을 덮었다.
상체의 반을 덮은 그것이 목을 타고 올라갔다.
그와 함께.
콰아아아아아아앙!
이준경의 기세가 더욱 맹렬해졌다.
그나마 쏘아내던 것 같은 창이.
비늘과 함께 뒤덮여, 팔과 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흐으….”
이준경은 괴기한 소리와 함께.
파앙!
하늘로 뛰어, 검은 로브의 남자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크윽!”
처음으로 검은 로브의 남자가 신음을 내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팔이 되어버린 창을 찔러낸 이준경.
그것을 막아낸 검은 로브의 남자.
이준경은 중력을 무시하듯 공중에 멈춰 계속해서 검은 로브의 남자를 누르고 있었다.
이준경의 공격을 튕겨내기만 했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반응.
“흐으….”
이준경은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한 발로 검은 로브의 남자의 얼굴을 박찼다.
휘릭!
피해내려던 검은 로브의 남자.
그러나 이준경의 발끝이 검은 로브의 남자의 옷을 걷어냈다.
“흐으….”
떨어진 둘.
지친 기색으로 숨을 몰아쉬는 이준경.
그를 바라보는 검은 로브의 남자가.
스윽.
벗겨졌던 로브를 다시금 썼다.
순간이었지만 벗겨진 로브.
그렇기에 드러난 얼굴.
하지만 이준경은 검은 로브의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넌….”
이준경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마성에 침식당해 온 힘을 폭주한 이준경.
힘에 먹힌 듯, 모습조차 변해가던 그가 인간의 말을 했다.
눈동자에 가득한 광기도, 온몸의 변화도 그대로.
그러나.
“대체…!”
이준경은 분명 감정을 가지고 놀라고 있었다.
검은 로브의 남자의 로브가 흩날렸다.
씌워져 다시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이준경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안 되겠군.”
처음이었다.
검은 로브의 남자가 입을 연 것이.
그리고.
콰직!
검은 로브의 남자의 손에서 벗어난 창.
그것이.
“…….”
이준경의 오른쪽 어깨에 틀어박혀 있었다.
순식간, 눈으로 보지 못한 속도.
이준경의 감각을 뚫고 지나온 그 공격이 이준경의 어깨에 틀어박혀.
울컥.
피를 쏟아내게 했다.
“크윽….”
그저 창이 꼽혔을 뿐이었다.
광기와 용혈에 침식당한 이준경이라면, 저절로 창을 뽑아내 치료할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깨에 박힌 창은 달랐다.
무언가, 밀어내고 있다.
“크으으윽!”
이준경의 신음이 더욱 강렬해졌다.
“지금껏….”
털썩.
한쪽 무릎을 꿇은 이준경이 검은 로브의 남자를 노려보며 어깨에 박힌 창을 잡으며 말했다.
“모두를 농락한….”
“아니다.”
검은 로브의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새로운 미래를 보았을 뿐이지.”
“…….”
어느새 이준경의 앞으로 완전히 다가온 검은 남자.
남자는.
콰직.
“크으윽!”
이준경의 어깨에 박혀있는 창을 다시 한번 비틀고선, 그것을 뽑아냈다.
구멍이 난 상처.
비늘이 움직여 상처를 메꾸려 했지만, 무언가 그것을 막고 있었다.
그 사이.
휘이익.
무언가 날갯짓하며 이곳으로 왔다.
검은 남자의 어깨에 앉은 그것은.
“휘긴. 돌아가자꾸나.”
오딘의 권속.
까마귀 휘긴이었다.
***
초조한 눈빛으로 불타는 국제공항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여성구와의 만남으로 생존자들을 이끌어 국제공항을 빠져나온 정인창 일행이었다.
그들은.
쿠구구구궁!
무너지고 있는 국제공항을 보았다.
저 안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흐흐흑….”
일반인들조차 느끼고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력한 마력.
‘이준경 씨.’
‘이준경.’
이준경이 저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정인창과 여성구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준경의 이름을 부르며.
‘서두르세요.’
‘서둘러 나와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쪽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심상치 않았다.
또한, 정인창이 보았던 검은 로브의 남자.
그가 가진 힘은 경악을 넘어서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이준경이 검은 로브의 남자와 맞붙지 않았으면 했건만, 이준경은 거절했다.
“…….”
막강한 검은 로브의 남자, 이준경이 그와 맞붙기로 한 까닭은.
이준경 또한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믿었다.
‘언제나 그는….’
돌아오니까.
이준경이 막무가내인 것처럼 보여도, 그는 계산적인 남자였다.
언제나 승률을 따져보고 생존을 점한다.
최소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이 있을 때만 싸움에 임한다.
그렇기에 굳게 믿는 정인창이었지만.
“고옹즈….”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쿠구구구궁!
불길이 치솟고, 열기가 이쪽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못이라도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생존자들 또한.
“…….”
입을 다물고 이준경을 기다렸다.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국제공항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두 남자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들.
콰아아아아아앙!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굉음이 흘러나왔다.
국제공항이.
“완전히… 무너졌어….”
한국의 자랑이었던 인천 국제공항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매캐한 연기와 먼지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안쪽에서 건물의 붕괴로 죽어가는 드레이크들이 비명을 내질렀고.
“뒤로 오세요!”
백호단이 생존자들을 뒤로 물렸다.
이곳은 위험하다.
그러니, 그가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정인창이 잠시 시선을 뒤쪽으로 던졌다.
생존자들의 뒤편.
“…….”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
그 사이로.
저벅.
누군가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정인창과 여성구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검은… 남자….”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그가.
“이준경 씨!”
이준경을 안아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