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172화 (172/275)

172. 집으로(9)

드래곤 하트가 마침내 진화했다.

격변의 영향 속에서, 모두가 성장했듯.

자신 또한 성장했다.

“종말의 용, 그것의 심장.”

이준경이 타오르는 불꽃을 느끼며 말했다.

이준경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는 불꽃은 전혀 뜨겁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고요하다.

-그르르.

에기르.

자신처럼 격변 속에서 무언가가 되긴 되었지만, 인간은 아닌 그것.

그것이 이준경을 경계하며 물러서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들려오는 정인창의 목소리.

“…….”

들리지 않는 여성구의 침묵.

이준경은.

저벅.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격변은 누구에게나 변화를 준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거나, 무엇이라도 얻은 자에게는 더욱 많은 것을 주었다.

이준경은 힘을 얻었다.

[<종말의 하늘>이 전장을 주시합니다.]

<종말의 하늘>이라는 든든한 뒷배 덕분에.

‘미쳤군.’

경악성을 토할 정도의 힘을 얻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검은 불꽃이 자신의 몸을 가렸지만, 이준경은 느낄 수 있었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오던 광기.

무스펠의 창에 깃든 마성.

몬스터들의 피가 섞인 마기.

용혈.

그리고.

“마나….”

자신을 이루는, 자신이 이용하던 그 모든 힘이 하나로 뒤섞여 타오르고 있었다.

마성이나 광기에 집어 삼켜지지도.

마기가 자신을 점령하지도.

용혈이 역류하지도 않았다.

모든 힘은 마나와 검은 불꽃이라는 새로운 힘 아래 새롭게 정렬했다.

거대한 힘.

구구구궁.

이준경이 발을 떼는 것만으로도 압력에 땅이 뭉개졌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힘을 느끼며 일행들이 경악했다.

“밀린 보상을 한 번에 받았군.”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말하는 이준경.

검은 불꽃 사이로 만족스러운 그의 웃음이 보이는 듯했다.

에기르가 변한 저것은 분명 위험한 것이 맞으나.

‘완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더욱 불안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완성되지는 않았건만.

‘안정되어 있다.’

그것이 무언가가 되어버린 에기르와 자신의 차이.

이준경은 주먹을 쥐었다.

사라졌던 무스펠의 창 대신 무언가가 손에 집혔다.

-그르르!

뒷걸음질 치던 에기르가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공격 자세를 취했다.

마나도 어떤 것도 아닌 기이한 힘이 그것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으윽!”

“제길!”

“고옹즈!”

그 여파에 여성구와 정인창, 공주의 자세가 무너져 내렸다.

압력.

세상이 자신들을 짓누르는 것처럼 무거운 압력이 느껴졌다.

눈을 비비며 정인창이 앞을 바라봤다.

검은 것과 황금의 무언가가 부딪히고 있었다.

그 순간.

프슥.

공기 빠지는 것과 같은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인창은 늦지 않게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에기르의 가슴에…!”

황금의 거인으로 변한 에기르.

그것의 가슴에 검은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검은 무언가는 타오르고 있었고, 그것은 곧.

콰직.

알이 깨어지듯 깨어지고 있었다.

균열하는 그것.

-그아아아아아아아!

에기르는 세상을 떨어 울릴 듯 포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기이한 힘은.

“봉인되었다…?”

가슴에 박힌 검은 것에 봉인이라도 된 듯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쩌적!

균열을 마친 검은 무언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잉.

작은 공명음과 함께 모두가 잠시 청력을 상실했다.

“어어….”

들리지 않는 귀를 쳐대며 정인창이 앞을 바라봤다.

그 순간.

쩌저저저저저적!

균열이 번지는 소리가 났다.

돌아온 청력.

그리고.

쉬이이이이이이잉!

굉음.

검은 그것은 블랙홀처럼 일그러지며 황금의 거인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영국의 수도 런던.

그곳 또한 세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격변을 겪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 찼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대신 런던을 채운 것은.

“크아아아아아!”

“케륵! 케르르륵!”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였다.

그렇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는 것.

아직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기에도, 도망쳤다고 말하기에도 모호한 시간.

분명 작게나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런던은 오직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괴기한 런던.

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런던 브릿지에서 만큼은.

“하아… 하아….”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친 숨소리.

그것을 내뿜는 것은 한 명이 아니었다.

수십여 명의 헌터들.

“제길….”

그리고 수백여 구가 넘어가는 시체들.

마지막으로.

“대단하군.”

로브를 뒤집어쓴 어떤 이가 있었다.

살아있는 수십의 헌터들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이 모든 시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그 순간.

“키에에엑!”

런던 브릿지 부근에서 배회하던 몬스터 하나가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목표는 검은 남자.

몬스터는 아예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를 향해 뛰고 있었다.

그럼에도.

“…….”

헌터들은 숨죽여 그 광경을 방관하기만 했다.

순간.

“크르릉….”

검은 로브를 입은 자에게 달려오던 몬스터가 그의 앞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선 그르렁댔다.

주인을 만난 애완동물과 같이 모습.

남자는 그런 몬스터의 머리를 쓰다듬고선.

콰직.

헌터들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순간, 몬스터의 머리를 터트렸다.

몬스터의 핏물을 뒤집어쓰고 헌터들을 바라보는 검은 남자.

“정말이지 대단하군.”

그는 감탄하듯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계를 세우고, 공간의 축을 비틀어 사람들을 대피시킨 건가? 믿을 수 없는 능력이야….”

고저 없는 목소리로 검은 로브의 남자는 누군가를 바라봤다.

지쳐 보이는 여인.

“멀린.”

영국을 지키는 원탁 의회의 수장이자, 오딘과 제우스처럼 초월적인 헌터인 멀린.

그러나 의회 내부에만 있어야 했던 그녀가 런던 다리 위에서 지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멀린…!”

아서도 함께 있었다.

이준경에게 가짜 엑스칼리버를 받아 잠시 동안 저주가 해제되었던 그들.

의회 바깥으로 나간다면 저주는 다시금 원상복구 될 터였지만….

지금은 격변이었다.

격변은 그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렇기에 런던을 공격해 쑥대밭으로 만든 저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 공간을 비틀어 사람들을 구해냈고.

밖에서도 그들의 저주를 일시적으로 해제시켰다.

“아서… 저는 괜찮아요.”

멀린이 아서를 보며 말했다.

아서 또한 지친 듯 보였다.

“하아….”

숨을 고르는 기사들.

살아있는 수십의 헌터들은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영국의 존속을 위해 의회가 발을 벗고 나섰다.

하지만 그것은 몬스터가 아닌.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뭐죠?”

단 한 명의 남자 때문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검은 로브의 남자.

그는 몬스터들을 몰아내던 영국에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고 더욱 많은 몬스터를 풀어놨다.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그.

그가 멀린의 질문에.

“흐음….”

잠시 침음하더니.

“……!”

놀란 듯 몸을 떨었다.

원탁의 기사들이 긴장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검은 남자의 힘은 경악스러운 수준이었고, 벌써 수많은 동료를 잃었다.

긴장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검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녀석이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양이군.”

지금과는 다른,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검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먼 곳을 쳐다보는 그.

기사들이 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멀린과 아서를 보며 명령을 내려달라고 하는 눈빛이었지만.

‘안 돼.’

그들은 쉽사리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강해질수록 보이는 것이 많은 것이 헌터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혀 틈이 없어.’

검은 남자는 철벽.

아니 거대한 심연과도 같았다.

끝을 모르고 느껴지는 저 기운은 자신들을 먹어치울 듯 위태롭기만 했다.

그렇기에 대치가 이어졌건만.

“흐아아압!”

무모한 기사 한 명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명령을 어기고 홀로 달려나가는 기사.

“란슬롯!”

란슬롯을 멀린이 불렀지만, 그는 이미 검은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란슬롯.

사람들의 학살을 지켜봐야만 했던 기사.

그는 무모하게 돌진했지만.

“틈을 만들겠습니다!”

그의 눈빛만은 여태껏 보지 못한 차분한 것이었다.

그의 랜스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나아갔다.

결국.

“묶여라!”

멀린 또한 그녀의 완드를 움직였다.

그것이 신호였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쉽사리 공격조차 할 수 없었던 검은 남자를 공격하라는 신호.

“원탁의 기사들이여.”

보이지 않는 일렁거림에 포박되어가는 검은 남자.

그를 향해 검을 겨눈 아서가 조용히 읊조렸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

그의 모습이 순간 성인의 것처럼 보였다.

정체조차 잘 알지 못했던 아서였지만, 기사들은 군말 없이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영국을 지켜라.”

간단한 읊조림과 함께.

“추-웅!”

기사들이 달려나갔다.

멀린의 강대한 마법으로 포박된 검은 남자.

란슬롯은 호기롭게 외쳤던 그의 다짐처럼.

“흐아아압!”

검은 남자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의 랜스가 공기와 마력을 찢고 검은 남자에게 도달했다.

휘익.

그러나 어이없게도 랜스는 휘어지듯 튕겨 나갔고.

란슬롯은 기사로서의 수치인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랜슬롯이 당황하지 않고 예비용 검을 꺼내 휘둘렀다.

쒜에엑!

언더독을 만나고서 미친 듯 훈련했던 그 성과가 지금 세상에 선보이려 하고 있었다.

서걱!

섬뜩한 절삭음.

그러나.

“란슬롯!”

쓰러진 것은 란슬롯이었다.

분명 멀린의 힘으로 포박되어 있을 검은 남자는 자유롭게 움직여 란슬롯을 베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벤 것인지 본 자는 아무도 없는 그때.

“창….”

오직 단 한 명.

아서만이 검은 남자의 무기를 봤다.

검은 창.

그리고.

“죽어라!”

“영국의 정의를 위해!”

란슬롯을 뒤이어 기사들이 그에게 도달했다.

영국을 상징하는 기사들.

세계의 수위권 헌터들이 한 남자를 동시에 공격했다.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렸으며, 공간이 찢어졌다.

일어난 먼지구름 사이로.

카앙! 카앙! 카앙!

쇳소리만이 울려 퍼지던 그때.

“비켜!”

힘을 모으고 있던 아서가 소리쳤다.

기사들이 옆으로 갈라졌고, 아서는.

“크하하하합!”

차원을 밀어내는 듯한 거대한 거력으로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차아아앙!

황금빛 거대한 달이, 세상에 나타나 검은 남자에게로 쏟아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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