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193화 (193/275)

193. 감정(3)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분명한 이준경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작고 평범한 목소리.

“…….”

그러나 모두가 숨죽였다.

깨어났다.

가장 기다렸던 이가, 가장 필요했던 이가 마침내 깨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이준경은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따뜻한 목소리.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믿기 힘든 부탁이 이어졌다.

누군가 헛웃음을 지었다.

비웃음은 아닌 씁쓸함에서 나오는 웃음.

하지만.

“어어…!”

곧 그것은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쿵! 쿵! 쿵!

고요해진 적막 속에서 심장 소리가 울렸다.

“저….”

믿을 수 없는 목소리는 이준경의 것뿐만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겁니까?”

김수영, 방금 심장이 멈추었던 그가 입을 열고 있었다.

원화조차 당황한 얼굴로 김수영과 이준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게… 신의는 제가 아니라 이준경 씨였나 봅니다.”

허탈하게 말하는 원화였지만, 깊은 안도를 느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이준경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아닙니다.”

그의 눈이 이동하면, 모두의 눈이 이동했다.

그들은.

“헬이 한 겁니다.”

흐릿한 형체의 헬을 바라보게 되었다.

녀석은 쑥스러운 것인지 고개를 내리깔았다.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죽지 않게 했을 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이준경의 따뜻한 목소리에 원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경이 깨어났다.

그로 인해 권속이 강화되었다.

헬의 능력은 영혼을 다루는 것, 영혼이 떠나기 전 김수영을 붙잡은 것이었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육체는.

‘아직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원화 씨뿐입니다.”

굳은 믿음이 느껴지는 이준경의 말.

원화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놓쳤던 기회를 얻었다.

살리지 못했던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털썩.

김수영의 고개가 떨어졌다.

하지만 분명 그의 숨은 붙어있었고, 심장 또한 뛰고 있었다.

“왜 이제야 깬 겁니까. 매번 이런 식인 겁니까?”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지친 안색으로 말하는 정인창.

“그리고 이건 이준경 씨가 한 겁니까?”

그가 손가락으로 옆을 쿡 가리켰다.

그와 함께 날뛰던 산군.

녀석은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처럼 멈춰 서 있었다.

“네. 잠시뿐이지만요.”

“으흐… 그럼 전….”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쓰러지는 정인창.

“이, 인땅!”

공주가 재빨리 달려가 쓰러지는 정인창을 붙잡았다.

무언가 변화가 있었겠지만, 아직 그가 완전히 다루기는 힘든 힘.

그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말했듯.

‘산군은 잠시 멈추어 두었다.’

이 주변에 즐비한 마력과 헬이 다루는 영혼이 산군을 속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 동안의 얘기.

산군은 곧 풀려날 테고.

‘미친 자식.’

산군은 아군을 향해 발톱을 드러내며 다시금 달려들 것이다.

그렇기에.

스윽.

이준경이 그를 쳐다봤다.

녹색 빛 폭풍에 휘감겨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이.

“오딘.”

지금 이 상황의 원흉.

가장 빨리 쓰러트려야 할 적이지만.

“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텐데. 언더독.”

얄밉게 말하는 녀석의 말처럼, 지금은 녀석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크허허허헝!”

포효와 함께 이준경의 속박을 풀어낸 산군.

녀석을 신경 쓸 때였다.

아무리 이준경이라도 지배자급의 둘을 상대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오딘을 상대하면 산군은 날뛴다.

‘완전히 먹혀버릴 것이고.’

자신의 아군들은 아군과의 전투에 휩쓸릴 것이다.

그리고 산군을 상대한다면.

“흐흐….”

저 속 모를 오딘에게 한 방 먹는 것이었다.

자신과 산군의 전투를 기다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녀석.

이준경은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은 당연히.

“네 상대는 따로 있어. 오딘.”

산군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이준경의 말에 오딘이 이채를 띠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경어조차 쓰지 않는 것이냐? 나는 네 상관이거늘.”

완전히 뒤돌아 산군을 바라보는 이준경에게 말하는 오딘.

이준경은.

“네가 네 지랄 맞은 권속을 통해 보여준 장면은 의도된 것이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크허어어엉!”

답을 전해 듣기도 전, 산군이 이준경을 덮쳐왔다.

***

‘후원자가 무엇인지 아느냐?’

누구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는 아스가르드의 회의장.

그곳에 허락 없이 들어온 이가 말했다.

‘이 세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아느냐? 헌터란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가 한 것이라고는 질문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들에 오딘은 못이라도 박힌 듯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그 뒤에 들려온 말 때문이었다.

‘나는 안다.’

탐구심, 호기심.

그것이 오딘이 가진 욕망의 전부였다.

인간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는 욕망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

모든 것의 정점에 섰다.

무너지지 않을 성을 쌓았다.

그 후 오딘은 변했다.

정점에 서는 것에, 성을 쌓는 것에 욕망을 가졌던 오딘.

그의 욕망은 이뤄지기에 거대했던 것이었지만, 결국 이루어졌다.

모든 것이 끝난 후 그가 느낀 것은.

‘허무.’

이루어진 욕망은 그저 부스러기가 될 뿐이었다.

욕망에 의해 움직이던 오딘.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했던 장효진.

그러나 욕망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노력했다.’

더 단단한 성을 쌓자고, 더욱더 높은 곳에 올라가자고.

그렇게 세워진 새로운 목표.

‘후원자를 죽인다.’

오딘이 생각하기에 모든 일의 원흉은 후원자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더더욱 좋은 세상에서.

‘나는 더욱더 단단한 성을 가졌을 것이다.’

헌터들이 등장하기 전에도 그는 한국을 주물럭거리는 거대한 기업의 총수였으니까.

오히려 후원자로 인해 일이 틀어졌다.

또한 그가 힘을 위해 겪어야만 했던 그 지옥 같은 나날들.

그로 인해 후원자는 오딘, 장효진의 욕망이 되었고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편의 욕망일 뿐.

오딘의 진정한 욕망은 언제나.

‘호기심과 탐구심.’

지식에 쏠려 있었다.

이해하는 자는 이용할 수 있다.

이해하는 자는.

‘지배할 수 있다.’

이해하지 못 하는 자는.

‘지배당한다.’

욕망과 달리 그것은 본능.

지배에 대한 본능이었다.

그 호기심과 탐구심 때문에 언더독에게 관심을 가졌으나.

‘궁금하지 않은가?’

진정한 답을 줄 수 있는 자가 등장했다.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꿈틀거렸다.

저자는 진심이다.

‘진짜로 아는 건가?’

무언가에 홀린 듯, 그렇게 오딘은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가?’

쌓아 올린 성.

굳건한 조직.

하지만.

‘버리겠다.’

오딘에게는 탐구심이 더욱 중요했다.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고, 더욱 많은 것을 안다면 그것으로 다시금 성을 쌓아 올릴 수 있다.

‘그럼 좋다.’

그는 그렇게 후드를 벗었다.

오딘은 인생을 살아오며 그토록 놀랐던 적이 없었다.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시간의 잔재다.’

자신을 소개하던 그의 말을.

‘나는….’

그의 웃음을.

‘진정한 마왕이다.’

콰아아아아앙!

오딘의 상념이 폭발음에 깨어졌다.

눈앞에서 벌어진 마력의 폭발이 일대를 휩쓸며 태풍처럼 나아갔다.

저것이.

‘지배자급의 싸움.’

그는 말했다.

지배자라는 존재에 대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그는 말했다.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지배자를 만들어내는 방법.

‘지배자가 되는 방법.’

하지만 오딘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배자가 되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패배다.”

그것은 오딘에게 있어 패배나 다름없었다.

단기의 성장을 위해 미래를 저버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다.

오딘이 이준경과 산군을 바라봤다.

그중에서도.

‘언더독.’

그의 눈은 오직 언더독을 향해 쏠려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믿기지 않는다.

그와 똑같은 얼굴, 그가 말해준 이준경의 정체.

그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 동화 속 환상과 같았다.

‘지금 죽일까.’

아직은 이준경이 자신보다는 약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산군이라는 적도 만들어진 상황.

이준경을 죽이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그의 명령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가 받은 명령은 그에게 무닌을 사용해 기억을 깨운 후 살려 보내는 것.

산군과 관련된 일이나 펜리르와 관련된 일은 모두 오딘의 독단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의 부하가 아니었다.

‘죽인다.’

원래는 이준경이 온 시점 이곳을 벗어났어야 할 오딘이었건만, 지금 계획을 틀었다.

호기심.

‘운명을 거슬러 보자.’

이준경에게 할당된 운명을 여기서 끝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녹색 빛의 기류가 오딘의 손끝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준경의 등은 분명 단단하고 틈이 없었지만, 자신이라면 뚫을 수 있었다.

천천히.

녹색의 와류가 형체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궁니르.”

오딘의 절대적 권능.

절대적 무력.

그것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속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였고,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궁니르는.

“심장을 꿰뚫어라.”

상대의 심장을 꿰뚫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궁니르를 쏘아내려는 그때.

투둑. 투두두둑.

아까 전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거세졌다.

어깨를 젖히고 궁니르에 물방울이 닿아갔다.

그리고.

“……!”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궁니르는 마력의 힘이다.

물방울이 닿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을뿐더러.

“어떻게…!”

이곳은 장막으로 갇혀 있는 도시였다.

그것도 오딘의 능력으로 봉쇄된 도시.

비가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무언가.

“계획이 틀어졌다!”

궁니르를 만들어가며 고개를 치켜세운 오딘.

그의 눈에.

“오랜만이다.”

그가 보였다.

갑작스레 떨어지는 소나기.

젖어 든 궁니르.

이건.

“오딘.”

최악의 상황이었다.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번개가 오딘을 향해 내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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