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229화 (229/275)

229. 전장의 여신(4)

“…….”

화염을 내뿜으려 준비하던 드래곤이.

“…….”

전류를 뿜어내던 인간형의 지배자가.

틈을 노리던 암석 거인과 난쟁이 지배자가 모두 멈췄다.

“너희는….”

그들도 느끼는 것이다.

지금 전장에 난입한 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라는 것을.

아니 그걸 넘어서.

“어떻게 인간이 그런 힘을…!”

자신들을 압도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을.

전장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내가 저 피카츄를 맡지.”

제우스가 말했다.

“당신은 그럼 라이츄입니까?”

장난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신은…!”

아테나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이준경.

그가 아테나의 또 다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아테나가 경악한 이유는.

‘기척을 못 느꼈어.’

길드장이야 그렇다고 칠 수 있다.

그의 속도는 자신이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으니.

하지만 이준경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분명 기척을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전장이기에 모든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는 지금도 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옆에 서 있건만 유령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도리어.

화악!

그가 기운을 내보이자, 그 어떤 것보다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때 헤임달이 구했던 아이….’

언더독, 언더독.

이름은 많이 들었었다.

한국에서 또 다른 걸출한 영웅이 탄생했다고.

하지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아테나가 이준경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헤임달이 그를 구하면서부터였다.

씨익.

아테나를 바라보며 입가를 말아 올리는 그.

어쩐지.

‘그가 생각나.’

헤임달이 떠올랐다.

이준경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드래곤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드래곤에는 관심이 많거든요.”

지배자들은 방금 전까지 아테나를 죽일 듯 기운을 끌어올렸지만,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장난스러운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려던 붉은 드래곤도 아가리에 화염을 머금은 채 가만히 있었다.

꿀꺽.

아테나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는 난쟁이를 맡겠습니다. 녀석이 제일 엿 같거든요.”

아테나의 말에 이준경이 놀란 듯 동공을 떨었지만, 곧.

“좋네요.”

웃으며 대답했다.

하나가 남는다.

암석 거인은.

“자기 몫을 처리한 녀석이 해치우지.”

제우스가 그렇게 말할 때.

구구구궁.

땅을 거세게 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준경이 무스펠의 창을 집어 들며 말했다.

“암석 거인은 상대가 따로 있을 것 같습니다.”

멀찌감치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거인들.

그리고 헌터들.

그들이 제 역할을 빠르게 수행하고 합류하는 듯했다.

그들에게 한 명은 맡겨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이 버러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마침내 난쟁이 지배자가 땅을 박차며 달려왔다.

체구가 작아서인지,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헌터보다도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콰앙!

북이 터지는 소리.

어느새 아테나가 앞으로 돌진하며 이지스로 난쟁이를 밀쳐내고 있었다.

이준경이 앞을 보았다.

자신의 상대, 붉은색의 드래곤.

녀석 또한 머금고 있는 화염의 브레스를 더 이상 유지하기는 힘든 듯 발사하려고 했다.

이준경은 한 번 숨을 내뱉었다.

드래곤 하트에서 끓어오른 격렬한 마나가 숨과 함께 내뱉어졌다.

“……!”

드래곤의 동공이 커졌다.

그도 느낀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도 가지고 있다는 걸.

이준경은 그 당황을 놓치지 않았다.

타앙!

땅을 밀어 깊숙한 족적을 남긴 이준경의 신형은 어느새 그곳에 없었다.

이준경이 나타난 곳은.

쿠와아아아앙!

마침내 발사된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 앞.

그 앞에서 이준경은 창을 내밀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황, 초고열이 모두에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이준경의 몸이 녹아 없어질 것이라 모든 지배자가 예상했다.

하지만.

“무스펠의 창이 마침내 진화할 수 있겠네.”

붉은색의 창이 화염을 먹어치우는 장면을 보고 그들은 입을 다물며 전투를 시작했다.

***

시뻘겋게 달아오른 붉은 색의 창이, 그보다 옅은 붉은색의 드래곤을 향해 찔러나갔다.

창을 들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찌르기.

그러나 이준경이 찔러낸 창이 품은 위력은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쒜에에에에엑!

공간이 짓이겨지는 듯한 환상이 보인다.

일렁거리는 화염이 창의 주변으로 토해지며, 마치 태양처럼 보였다.

뾰족하기 그지없는 창 촉이 우주의 태양을 담아냈다.

땅을 녹이고 공기조차 불태우는 태양.

그것이.

쿠우우웅!

거대한 붉은 색의 드래곤에 직격했다.

단단한 비늘이 있는 등 부분.

거기다 화염에 대한 내성이 강한 레드 드래곤인 지배자.

그의 등이.

퍼퍼퍼퍼퍼펑!

터져나갔다.

폭발은 짧았고.

치이이익.

결과는 참혹했다.

단 한 번의 찌르기에 직격당한 레드 드래곤의 등이 눈에 띄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더 이상 잡담을 할 수는 없었다.

레드 드래곤은 그저 느끼는 고통에 본능적인 비명을 내지를 뿐이었다.

이준경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창을 회수해 뒤로 돌아.

푸욱!

다시금 창을 박아넣었다.

방금처럼 거대한 화염의 힘이 스며든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무너져 내린 레드 드래곤의 등에 박히기에는 충분했고.

퍼어어엉!

이준경은 그 안에서 화염의 힘을 터트렸다.

안 그래도 녹아, 보기 흉했던 레드 드래곤의 등.

그것이 이제는 완전히 터져 살점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크오오오오오오!

더욱더 처절한 비명이 전장을 울렸다.

어떤 세계에서는 드래곤이 최상위의 포식자.

신 바로 밑의 존재라 칭송받는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저 짐승.

아니.

“몬스터와 다름 없구나.”

이준경은 그렇게 말하며 길게 뻗은 다리를 내리찍었다.

쿠우웅!

포효하던 레드 드래곤의 머리가 이준경의 발에 직격당해 추락했다.

땅과 부딪힌 드래곤이 거대한 먼지구름을 내뿜고 있었다.

잠시 동안 주변을 보았다.

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귀에 들려온다.

샤치와 스림.

유비 삼 형제, 정인창, 원화가 힘을 합쳐 암석 거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성장이 느껴진다.

조금은 밀리는 듯하지만.

투캉!

아테나가 집어던진 방패가 암석 거인의 머리를 세게 때리며 부메랑처럼 돌아갔다.

휘청이는 암석 거인을.

우오오오!

두 명의 서리 거인이 각각 한쪽 팔을 붙잡아 고정했다.

정인창이 그람을 꺼내 든 것이 보인다.

이제 곧 암석 거인의 심장은 꿰뚫릴 것이다.

‘격변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어.’

지금 죽은 지배자들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물론.

‘헬.’

녀석을 불러 그들이 되살아나지 못하게끔 할 것이다.

파짓! 파지짓!

저쪽을 바라보니 온통 안개 낀 공간이 보였다.

먹구름에 휘감긴 듯, 먹구름들은 푸른빛 전류를 뿜어내고 있었다.

누구의 마력인지는 알기 쉬웠다.

저렇게 시리도록 빛나는 푸른 빛은 제우스.

그의 것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채엥! 채엥! 채엥!

아테나를 보았다.

다른 이들과 달리 조금은 고전하는 것이 느껴졌다.

많이 지친 것이 분명한 그녀에게로.

스으응.

요정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체력과 상처들이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아테나의 권능.’

그녀가 선포한 전장에서 그녀는 지정된 횟수만큼 완전회복할 수 있다.

그 능력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도착하기 전 그녀는 죽음을 맞이했겠지.

아마 방금 쓴 그것이 그녀가 아껴둔 마지막 횟수일 것이다.

난쟁이는 쌍검을 사용하는 검사와 같았으나, 그 실력은 단순히 검사라고 말하기에는 무리였다.

검왕.

혹은 검의 군주라고 불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채엥!

아테나의 실력 또한 그 못지않았다.

그녀 또한 안들랑그를 겪은 헌터.

그곳에서 그녀는 창술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슬쩍 보아도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아테나의 창이 난쟁이의 쌍검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난쟁이의 어깨를 찔러내었다.

저쪽도 곧 끝이 날 것이다.

-크오오오오!

하지만 아직 자신조차 끝내지 못했다.

땅바닥에 처박혀 기절했던 것이 분명한 레드 드래곤이 포효를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가 움직임에 따라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준경은 하늘에 있었다.

태양 빛을 가리는 그 위치에 서 도도하게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잉. 지잉. 지잉.

이준경의 주변으로 문자와 그림들이 떠올랐다.

멀린의 마법, 창을 쓰는 자신은 아서의 검술보다 멀린의 마법을 자주 활용했다.

-크오오오!

포효하는 레드 드래곤의 등 위로.

지이잉!

문자들이 내려앉는다.

이준경이 만들어낸 마법진은 중력을 담고 있었다.

거대한 중력, 레드 드래곤의 육중한 무게조차도.

쿠우우욱!

짓눌러 버릴 수 있는 거대한 중력.

그럼에도.

“역시….”

레드 드래곤은 숨이 붙어 있었다.

처음 화염을 내뿜은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지배자.

하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은 이어지고 있었다.

-크오.

지친 숨을 토해내며 녀석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머리라는 것은 있는지, 브레스를 모으거나 하지 않았다.

되려.

지이잉!

녀석을 짓누르던 문자들을, 마법진을 지워버렸다.

드래곤의 또 다른 이름.

“마법의 종주.”

마법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드래곤이라는 이야기.

그렇기에 마법에 한해서는 드래곤을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

-크오.

녀석의 몸 주변으로 문자가 떠올랐다.

이준경은 잊지 않았다.

‘녀석은….’

불사다.

자신의 또 다른 심장이 된 용혈석.

드래곤 하트.

불사의 권능을 선사해준 이것의 진정한 주인이 바로 녀석이란 소리였다.

그렇기에 보인다.

자신이 만들어둔 녀석의 상처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공격으로는 녀석을 해치우기 무리라는 것을.

쿠와아아아앙!

그때 저 멀리서 거대한 천둥이 울었다.

이준경은 한 명의 지배자, 인간의 모습을 한 녀석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제우스는 끝났다.

“늦었네.”

이제 자신이 끝내야 할 차례였다.

이준경의 손에 들려있던 무스펠의 창이.

화륵.

화염을 토해냈다.

터져 나온 화염이 이준경의 팔을 뱀처럼 휘감아 올라갔다.

한 단계 진화한 무스펠의 창, 녀석이 뿜어내는 화염과 이준경의 심장 어림에 있던 마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준경의 눈에서 화광이 피어올랐다.

보인다.

마력이….

보인다.

화염이….

보인다.

뚜렷하게 보이는 그 일그러짐에 따라 이준경이 손을 내뻗었다.

과과광!

공간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준경의 팔이 조금씩 나아가며 변화했다.

무스펠의 화염을 먹어치운 자신의 팔은.

-그, 그건!

어느새 거대한 화염 거인의 오른손이 되어 있었다.

[수르트의 신체 일부를 구현하셨습니다.]

안들랑그에서 숱하게 연습했다.

내가 가진 힘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릇.

그건 인간인 자신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쿵! 쿵!

심장이 펌프질하며 끊임없이 마력을 팔에 주입했다.

끝도 없는 바다와 같은 마력이 심장에 담겨 있음에도, 그 소모 값이 느껴진다.

이준경이 땅을 내려다보았다.

오로치를 먹어치우고, 아포피스가 되었던 세트를 상대로 승리했던 자신의 기술.

그러나 지금은 한 단계 더 발전해.

쿠아아아아앙!

양손을 구현해내었다.

수르트의 양팔이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드 드래곤을 향해 짓이겨 들어갔다.

녀석이 쏘아낸 마법진은.

화륵!

그대로 불이 붙어 사라졌다.

마법진을 태워버리는 화염.

그 말도 안 되는 화염의 주인이.

“죽어라.”

한쪽 팔로 레드 드래곤의 목덜미를 잡았다.

심장은.

‘남긴다.’

나머지 팔이 레드 드래곤의 가슴을 향해 짓이겨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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