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부터 플레이어-271화 (271/275)

271. 비극의 끝(7)

“마왕을 공격해!”

마왕을 옭아맨 지금이 기회다.

마왕은 화염의 쇠사슬에 갇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태초의 힘이 함축된 화염이었다.

또한.

“지금껏 모은 힘을 단번에….”

마왕이 중얼댔다.

후원자들을 상대하며 폭주한 듯했었던 그 거대한 힘이 사실상 사슬의 형태로 변해 그를 옭아매고 있다.

마왕은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태초의 힘, 그것이 가진 파괴의 본능에 먹히지 않았다는 건가?”

화염의 사슬이 그를 녹여가고 있음에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정도로… 태초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고?”

그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보다 이준경이 그를 속였다는 사실에 감탄한 듯했다.

‘의심되었다.’

맞다.

이준경은 그를 속였다.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의심하게 된 계기는.

‘헤임달과 아테나의 아들아.’

‘나의 조카야.’

자신을 헤임달의 아들이라 말한 부분 때문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게헤나를 뒤지며 마왕을 찾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만약 내가 정말 형의 아들이라면….”

팽창했던 화염의 거인은 어느새 작아져 있었다.

마왕이 말했던 이형.

후원자의 형체를 버리고 있었다.

그 형체를 이루던 모든 힘은 마왕을 옭아매는데 쓰였다.

투둑. 투두둑.

껍질이 벗겨지듯 화염이 떨어져 내린다.

그 안에서 이준경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든 일에….”

뜨겁게 화염이 일렁거렸지만, 이준경의 눈가에서는 분명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네가 연관되어 있을 것 아니야.”

이준경이 말했다.

자신이 만약 헤임달의 아들이라면.

형이라면.

‘내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야.’

본 시대에서 한마디의 언질이라도 했을 거다.

과거로 돌아와서라도 모든 것을 기억했던 헤임달이라면.

“너와 부딪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망치게 했겠지.”

자신이 아는 헤임달이라면, 아들을 결코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들이라는 마왕의 말은 거짓이 아닐 거다.

마왕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는 건.

“네가 모든 걸 그렇게 만든 거야.”

마왕.

그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답뿐.

헤임달의 아들을.

“네 소망을 위해 이용되도록 만든 거겠지.”

영겁을 회귀하는 괴물.

그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거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라.

헤임달에게 결코 달가운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눈치가 빠르구나.”

마왕이 말했다.

그의 몸을 옥죄는 화염의 쇠사슬은 더욱 굵고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눈치챈 ‘너’는 한 번도 없었거늘.”

그가 웃는다.

의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준경은 게헤나에 와 마왕을 만나게 되는 것을 기다리며, 다른 것 또한 기다렸다.

‘나의 편을 들어주었던 후원자들.’

후원자들이 발생시킨 자신을 죽이라는 미션.

그럼에도 몇몇 후원자들은 미션을 발생시키지 않거나, 자신을 오히려 살리라는 미션을 내렸다.

그리고 종말의 하늘에게 후원받으며 그와 사이가 좋아 보였던 다른 후원자들의 존재.

그것들이 의문이었다.

그 의문이 마왕을 만나면 풀릴 것이라 생각했거늘.

“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왕을 만났을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모든 후원자를 죽이고자 했고, 실제로 대부분의 후원자를 죽였다.

그의 곁에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그와 좋은 관계인 듯했던 후원자들이 존재치 않았다.

그렇기에 의문이 생겼다.

‘후원자들은 종말의 하늘을 도운 것일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사실이 의심으로 바뀌었다.

만약 그를 도운 것이 아니라면.

‘나를 도왔다.’

왜?

이유야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마왕을 의심하게 된 까닭은.

“죽고 싶은 것이 네 목적이라면….”

그와 자신이 조우하고 벌어진 일들이었다.

마왕은 자신이 죽고 싶기에 이 모든 일을 벌였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과 조우한 이후, 그의 행보는 이상했다.

후원자들을 사냥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해야 하는 일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따로 있다.’

자신을 일부러 폭주시키려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태초의 힘을 끌어내게 만들고, 계속해서 분노를 들끓게 했다.

그 언행과 행동을 보며 이준경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그가 바라는 것이 죽음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를 속였다.

‘미스틸테인.’

에레브와 싸우며 얻었던 그것.

세계수였던 미스틸테인.

그것에서 얻은 지식과 태초의 힘.

그것은 마왕이 계획해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가 계획했다면.

‘내가 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걸 알았을 거야.’

자신이 이미 태초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는 일부러 폭주를 연기하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다.

복잡한 것들이 머릿속을 뒤집었기에, 진실로 폭주할 뻔했다.

하지만 간단한 답이 있었다.

마왕은 죽고 싶다 했다.

그렇다면.

“죽어라.”

그 목적을 실현해 주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가 반항한다면.

아니,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태초의 힘에 의한 쇠사슬이니. 네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다.”

그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리고 그 증거인 또 다른 이들.

“공격해 어서!”

마왕과 맞서며 자신을 깨워주려던 후원자들에게 소리쳤다.

“네가 이야기 중이지 않았던가.”

크게 울리는 거인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지이이잉.

마력의 공명음이 들려왔다.

뒤에서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파아아앙!

화염의 쇠사슬을 향해 쏘아졌다.

무지갯빛의 빛줄기와, 이준경이 만들어낸 화염의 사슬보다 일시적으로 고온을 내뿜는 동그란 구체.

서거거걱.

공간은 물론 무엇이라도 가를 것 같은 참격과.

우우웅!

물의 마법들.

그리고.

“크하하하하!”

광소와 함께 주먹의 형상에 한 곳에 몰려 떨어졌다.

바로 마왕이 있던 그 자리에.

이준경 또한 힘을 집중했다.

마왕을 옭아매는 쇠사슬에 일시적으로 더 강한 힘이 주어졌다.

마왕이 그토록 말하던.

‘파괴의 힘.’

마왕에게로 모여든 여러 가지 힘이 압축되며.

지이잉.

공간을 뒤틀었다.

콰아아아앙!

섬광이 일었다.

게헤나 전체를 집어먹을 듯, 강렬한 섬광이.

***

까닥.

이준경이 손가락을 까닥댔다.

하지만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온몸 그 어느 곳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는 곳이 없었다.

“……끅.”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머리는 멍했고, 귀에서 삐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고 있었다.

필름이 끊긴 것 같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이준경은 생각했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자신은 마왕을 옭아매기 위해, 그를 죽이기 위해 힘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무지개의 수호자.

살아남은 후원자들과 조우했을 때.

‘마왕을 공격했다.’

서서히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았던 힘으로 마왕을 속박했고.

‘지금 공격해!’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왕을 향한 일제 공격이 쏟아졌다.

그 광경이 떠오르자.

흠칫.

감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떨렸다.

그 강대한 힘의 집결은 이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때 모였던 힘을 가늠해보았다.

그건.

생명체를 죽이기 위한 힘이 아니었다.

행성, 아니 그것을 넘어서 우주의 일부라도 부숴버렸을 정도의 힘이었다.

응집했던 힘이 깨어지며 섬광이 일었었다.

‘그리고….’

그리고.

“……!”

이준경이 동공을 확대했다.

기억났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실패….”

마왕을 단숨에 죽이려던 자신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마왕은.

우주의 일부라도 파괴시켰을 그 힘에 직격당하고도.

‘훌륭하다. 정말 훌륭해.’

살아남았다.

물론 멀쩡한 꼴은 아니었다.

처음에 이준경에게 꿰뚫렸던 오른팔은 재생하지 않았고.

결집된 힘에 의해 당하며 온몸에 부상을 입었다.

마왕의 온몸은 흐물거리며 녹았고, 그 틈새에 후원자와 태초의 힘이 응집하여 그를 괴롭혔다.

그는 녹아내리는 얼굴을 뜯어내며.

‘아주 훌륭하다.’

웃고 있었다.

‘공격해…!’

그런 그를 향해 다시금 공격이 이어졌다.

허나 더 이상 그를 옭아매던 화염의 쇠사슬은 없었다.

무지개의 수호자가 그를 향해 달려갈 때.

스윽.

이미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가 나타난 곳은.

콰아아앙!

물처럼 흐물거리는 거인이 있던 자리.

그곳에서 굉음이 들렸다.

순식간에.

‘죽었어…?’

거인 중 한 명의 기운이 소실되었다.

‘대체…! 얼마나 괴물이라는 소리야!’

이준경은 그렇게 소리쳤다.

분명 당장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다.

그것도 태초의 힘, 완전한 불사를 파괴하기 위한.

아니 세상 그 무엇이라도 분해해 버릴 수 있는 힘을 이용한 함정과 공격이었다.

그는 죽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죽음을 바랐어야 했다.

하지만.

콰아아아앙!

연달아 들려오는 폭음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준경은 떨리는 눈으로 수르트를 손에 잡은 채 마왕의 몸을 쫓았다.

‘당신… 역시 죽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어.’

그리고 깨달았다.

‘당연한 것 아니냐?’

지금 마왕이 이토록 힘을 낼 수 있는 까닭을.

그는 그 스스로 몸을 분해하고 있었다.

태초의 힘을 이용해 스스로 몸을 분해하며 생성되는 파괴적인 힘으로 거인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죽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죽어도 그는 회귀한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다. 다만 이 개 같은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의 눈동자는 곧 죽을 이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몸을 얻을 거다. 완벽하고 완벽한. 이 저주에서 벗어나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담을 몸을 말이다.’

그의 눈이 광기로 일렁일 때.

콰아아앙!

폭음이 들렸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

저벅.

이준경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기도 전 발소리가 들렸다.

거인의 발자국처럼 지진을 울리는 것이 아닌, 사람의 것이었다.

이준경이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네가 나의 그릇이다.”

온몸이 녹아내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형체.

태초의 힘을 스스로 몸, 그것을 파괴하는 데 사용했기에.

이잉. 이잉.

그의 몸은 분열되듯 벌어졌다 융합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구나.”

“컥!”

마왕이 이준경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훌륭하구나. 나의 조카야.”

숨 막히는 듯 호흡조차 제대로 못 하는 이준경을 들어 올린 마왕.

온몸, 얼굴마저 녹아내렸기에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마침내 네가 나의 저주를 풀어주는구나.”

그의 입만큼은 웃고 있다 확신했다.

이준경의 눈이 마왕 너머를 바라보았다.

“…….”

자신과 잠시 동안이라도 함께 싸웠던 후원자들은.

“고맙다.”

모조리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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