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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진명식
쥬다스는 펍이 많은 골목 대신 상단이 늘어선 대로 쪽을 택했다.
그러나 대로는 아예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상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대로는 확실히 유동 인구가 많았다.
도저히 붐비는 사람 틈을 비집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허어, 이거 참. 예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졌구만.”
「그러게? 진짜 무슨 꽉 찬 콩나물시루 같아.」
“……표현이 많이 늘었구나, 유니.”
그와 함께 지내면서 정령들의 입담은 날로 구수해졌다. 이게 좋은 영향인지 그 반대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던 탓에 쥬다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쨌든 허약하기 그지없는 몸 상태로 인파가 바글거리는 시장을 구경하다가는 좋은 꼴 못 볼 게 분명했기에 그들은 노선을 바꿔 대로 옆 변두리길로 들어섰다.
대로를 중심으로 하여 총 5갈래로 갈라진 변두리길은 변두리라곤 해도 제법 많은 행상이 자리해 있었다.
쥬다스가 들어온 길목은 주로 골동품과 주술적 의미가 담긴 액세서리 를 판매했는데, 그래서 비교적 다른 길보다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 없으니 조금 숨통이 트여 느긋하게 걷던 쥬다스에게 익숙한 옆모습이 보였다.
“……바이칼?”
분명 바이칼이었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던 복장은 루바흐 학원 교복이 아니라 검은 비둘기가 새겨진 학자복, 즉 로브였다.
그는 쥬다스를 발견하지 못한 듯 급한 발걸음으로 골목 너머로 사라져 갔다. 쥬다스는 뛰듯이 사라지는 뒤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아이도 진명을 받으러 온 겐가. 한데 분위기가 영…….”
잔뜩 굳어 있던 표정하며 입고 있던 생소한 로브까지 낌새가 좋지 않았다.
따라갈 체력도 되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는지라 그저 의문만 품었을 뿐이었다.
수염 대신 말끔한 입가를 쓸며 걸어가던 그에게 한 노파가 말을 걸어왔다.
“아가, 점 한번 보고 가렴.”
무심코 지나치려던 쥬다스는 저 ‘아가’란 호칭이 자신을 향하는 말임을 두 번째 부를 때서야 깨닫고 멈칫 돌아보았다.
때 탄 로브를 뒤집어쓴 노파가 쭈글쭈글 늙은 입매를 올리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는 죽기 전의 이그레트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해봐, 이그레트! 저런 거 신기해.」
「점이 뭐다요?」
「미래를 읽는다나 봐.」
「미래를 읽어? 어떻게? 어떻게?」
정령들의 추임새가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왔다.
쥬다스는 못 말린다는 듯 한숨처럼 웃으며 그들의 뜻에 응했다. 그냥 지나칠 줄 알았던 그가 발길을 돌려 다가오자 노파가 낮게 웃으며 손짓했다.
“내가 봐주는 점은 매우 신통하단다. 이 바닥에서 정확하기로 유명하지. 끌끌, 후회하지 않을 게야.”
“……인생의 큰 흐름이 있음엔 동의하나, 정해진 미래를 읽는 점술은 별로 내키지 않는구려.”
아이답지 않은 말투는 고사하고 그 말뜻마저 연륜이 가득하여 노파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그저 손님을 끌기 위해 쥬다스를 불렀던 노파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아래위로 훑었다.
“허! 자네, 이제 보니 평범한 인상이 아니시구만?”
“아니, 점이 아니라 관상도 볼 줄 아시오?”
아가에서 자네로 바뀐 호칭에 쥬다스는 빙긋 웃으며 받아쳤다.
심상치 않는 눈으로 그를 살핀 노파가 소맷자락에서 그림 카드 더미를 꺼내 탁상에 엎었다.
후두둑 볼품없이 쏟아진 카드 더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쥬다스에게 이내 주름진 손가락을 쑥 내밀어 보였다.
“3장. 내키는 걸로 고르시게.”
“조금 전 내키지 않는다 하였거늘.”
“내가 궁금하여 그러우. 복채는 필요 없으니 어서 뽑아나 보아.”
쥬다스는 볼을 긁적이곤 망설임 없이 맨 위에 쌓여 있던 카드 3장을 골라 건넸다.
무성의해 보이는 손길이었지만 결국 가장 마음에 든 카드를 고른 셈이 되었으니 노파는 조용히 그 3장의 카드를 뒤집어놓았다.
“[태양], [사슴], [3개의 칼].”
“…….”
“자네, 태양처럼 빛나는 자리에 있구만. 한데 빛이란 건 강할수록 그 밑에 생기는 그림자가 짙게 마련이니, 그 목을 노리는 이가 많을 게야.”
마치 1황자의 상황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쥬다스가 루바흐 학원 교복을 입고 있었고, 황조 적통의 머리색을 가리지도 않았으니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물론 그와 비슷한 은발이나 백발은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까진 그의 정체를 유추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기에 쥬다스는 덤덤히 노파의 다음 말을 경청했다.
“사슴이란 영혼을 상징하지. 어린아이의 순수한 영혼 말이야. 끌끌, 그것도 4마리나 있군그래. 기쁨과 감사를 선사하는 영혼이라, 좋은 연을 맺고 있어. 그림자로부터 해를 입고 싶지 않거든 가급적 이들을 곁에 두시게.”
점이란 원래 애매모호한 구절을 이야기함으로서 보편적인 상황에 해석이 가능하도록 한다.
어찌 들으면 이 얘기 같고, 또 달리 들으면 저 얘기 같도록 모호한 여지를 남겨두는 화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신통한 기분이 들었다.
쥬다스는 버릇처럼 턱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카드를 응시했다.
3개의 검이 가슴을 관통한 그림이라.
“쯧쯧, 안타까운지고.”
노파가 혀를 차며 카드를 모았다.
“자네에게 3명의 인재가 모여들 것이네. 앞으로 자네가 쓰고자 함에 따라 훌륭한 수족이 되어줄 수도 있을 테지만…….”
“…….”
“결국 그들이 자네의 심장을 찌를 것이야.”
***
손님이 떠난 후에도 노파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그가 떠난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점은 정말로 신통하여 잘 맞아들었지만, 신성을 우선시하는 교황청에서 금지하는 부덕한 행위였기에 이렇듯 숨어서 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그나마 산트리안이기에 가능한 영업장이었다.
노파는 조금 전 손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태양의 자리.’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첫 카드를 뒤집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손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보석 같은 은발이며 금안이 모두 고귀한 황조의 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백발이려니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겨우 7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태양을 품고 있었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하나 그 미래를 뜻하는 점괘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안타깝다, 안타까워.’
그녀는 연신 혀를 찼다.
돈을 안 받겠다고 한사코 손을 내젓던 노파에게 어린 손님은 이내 고맙다며 무언가를 쥐어주고 떠났다.
손을 펴보니 박하사탕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원, 노인네 같은 아가로구나.”
노파는 그만 실없이 웃고 말았다.
***
「뭐야, 저 인간 기분 나빠.」
돌아가는 길에 유니가 볼을 뚱하니 부풀렸다. 노파가 말해준 점괘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저 단순한 점일 뿐이고, 설명해 주었으나 유니는 쉽사리 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치만 심장을 찌르네 마네! 감히 누굴 해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내가 절대 그렇게 안 둬!」
“이런, 이런. 너무 흥분했구나, 유니.”
「끄으으, 짜증 나!」
그런 유니를 보며 토니가 우물쭈물 덧붙였다.
「진정하라요, 유니. 점을 보자고 한 건 유니였잖…….」
「넌 진정을 하라는 거야, 더 약을 올리는 거야?!」
괜한 말을 했다가 유니에게 볼을 잡혀 버린 토니가 바동거렸다.
「후에에. 자, 자못해떠어.」
“자, 자. 둘 다 그만하고 이리 오련.”
쥬다스가 내민 손바닥에 두 정령은 사이좋게 내려앉았다. 어떤 상황이 되었든 그의 말을 거스를 정령은 없었다.
얌전한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앉은 정령들을 향해 칭찬의 시선을 건넨 그가 곧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하늘이었다. 같은 장소, 같은 하늘이었지만 그 자신만큼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정해진 흐름은 있을지 모르나,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야. 점이라 한들 믿지 않으면 그거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이그레트…….」
“그저 지금, 여기에 살아갈 뿐. 그런 게 인간이지 않느냐.”
쥬다스는 오랜 벗들을 향해 허허롭게 웃었다.
***
출발한 지 3일째 되는 날, 세 사람은 마침내 교황청으로 이어지는 최종 포탈에 탑승했다.
검은 에너지 기류에 휩싸여 눈 깜짝할 사이 이동된 그들은 어느 틈엔가 잘 닦인 대리석을 밟고 서 있었다.
“방랑자에게 축복을.”
교황청의 포탈 관리자도 역시 사제였다. 긴 사제복을 입고 축복의 인사를 건넨 관리자가 그들을 작은 예배당으로 안내했다.
교황청 건물은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예배당도 여러 군데 지어져 있었다.
그중 그들이 안내받은 곳은 미사용 소예배당으로 다른 성도는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관리자는 자리를 떠났다.
셋만 남게 된 예배당은 정적이 감돌았다.
에단은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고, 크리스티나는 그들과 말을 섞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아 있던 쥬다스는 일어나 강대상 앞으로 나아갔다.
유리로 지어진 강대상에는 교황청의 상징인 십자 표식과 함께 기도하는 두 손이 새겨져 있었다.
강대상 뒤로는 거대한 창이 자리해 있었는데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었다.
들어오는 빛줄기는 각각 푸르고 붉은색을 입어 은은하게 비추었다.
천사와 비둘기, 포도나무 등이 기록된 창문을 구경하는 사이 철컥 예배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별생각 없이 돌아본 셋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한 분 한 분 '이그레트'에 관심과 애정이 있으니 남겨주시는 코멘트라 생각하고 모든 의견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보답으로 정말 연참이라도 하고 싶은데 평일엔 시간이 부족하네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연참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ㅎ
오늘은 이 시간부터 무척 졸리네요.; 비몽사몽한 채로 업로드인지라....이상한 구석 있으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후원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오타 및 비문 지적은 참고해서 조금씩 수정중입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