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14화 (1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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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진명식

크르륵-

낮게 목을 울리며 들어온 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김새는 개를 닮았으나 크기가 황소만 했다. 머리에는 유니콘의 뿔이 달려 있으며 매끄러운 몸체를 뒤덮은 긴 털은 눈부시게 하얀색이었다.

갑작스러운 짐승의 출현에 에단의 손이 검집으로 향했다. 크리스티나는 팔짱을 낀 채 힐끗 내려다볼 뿐이었다.

개를 닮은 거대한 짐승은 점차 그들 가까이로 다가왔다. 경계하듯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콧김을 뿜어내던 짐승은, 앞선 두 사람을 지나쳐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서 있는 쥬다스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철컥.

에단이 검을 뽑아 들던 찰나였다.

“헤브, 이리 와.”

청량한 목소리가 예배당을 감돌았다. 셋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를 향했다.

거기엔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흑발을 세 갈래로 묶어 내린 여인이 서 있었다.

이제 갓 20대가 되었을까 싶은 젊은 여성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자르지 않은 것처럼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은 에단의 것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는 듯 생기 있게 반짝였다.

그에 반해 그녀의 눈은 어쩐지 초점을 잃은 하늘색이었다.

“크릉.”

헤브라고 불린 짐승이 순한 양처럼 돌아섰다. 척 앉은 짐승의 콧등을 쓸어주며 검은 머리 여성이 살며시 덧붙였다.

“놀라지 말아요. 헤브는 나의 수호견이니까.”

“……당신은?”

“아참, 내 소개를 안 했군요.”

에단이 검을 갈무리하며 묻자 여인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위그드라실. 성 위그드라실의 이름을 이은 자녀 중 하나입니다, 형제여.”

“……성녀께 인사드립니다. 에단 헤이가입니다.”

성녀 위그드라실.

성녀라 불리고는 있었으나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종족이라곤 지목할 수 없었지만, 일단 위그드라실로 태어난 이상 교황청 엘리시움에 머물며 단 한 발짝도 그 안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성녀 위그드라실이 성서에 기록된 역사간 줄곧 지켜온 약속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줬다 일컬어지는 수호견 ‘헤브니시우스’를 데리고 엘리시움을 지키는 성스러운 존재.

300년이 넘도록 처녀의 모습을 유지하는 위그드라실은 총수명인 500년을 채우고 나면 다음 대 위그드라실에게 수호견을 양도하고 소멸한다.

오랜 옛날부터 반복되어 온 성녀의 사명은 그 존재만으로도 넘쳐흐르는 신성력을 전달해 주고, 인간의 기도를 대신 들어주며, 신성을 위협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마치 교황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크리스티나 델피아입니다.”

그 도도하던 크리스티나도 위그드라실 앞에선 고개를 숙였다.

“형제자매님들께 축복이 함께하길. 그런데 세 분이 오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의문을 접한 두 사람은 자연히 쥬다스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 시선을 따라가지 못한 것은 위그드라실뿐이었다. 에단이 미세하게 인상을 굳혔다.

‘소문대로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 ……그런데 그녀도 역시 느낄 수 없는 건가.’

성녀 위그드라실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수명과 신성력을 몸에 품고 있다.

그런 만큼 패널티라 불릴 법한 유전도 타고나는데, 그것이 바로 상실된 시력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사람의 기척을 읽어 판별해 내야만 했다.

어차피 몸을 가득 메운 신성력을 통해 사람과 사물을 판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지금 쥬다스의 기척만큼은 읽어지지가 않았다.

“쥬다스, 루바르잔 아르키디온이라 합니다.”

위그드라실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쥬다스가 그녀의 앞까지 다가가 빙긋 웃었다.

학생으로서 교황청에 방문한 이상, 그 역시 황자가 아닌 일개 학생일 뿐이었다.

공손한 말투에 위그드라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맞지 않는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그를 담았다.

“……아, 당신이…….”

위그드라실이 하얀 손을 뻗어 쥬다스의 볼을 매만졌다.

과연 인간의 손이 아닌지라 체온 없이 차갑기만 했다. 차갑긴 했어도 신성력이 가득한 손길이라 닿는 즉시 온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푹 자고 일어난 듯한 개운함에 축축 처지던 몸에 혈색이 돌았다.

잠시 그의 볼을 매만지던 위그드라실이 손을 떼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강인한 당신에게 빛의 인도가 있기를.”

그녀가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축언이었다.

곧이어 위그드라실은 그들에게 교황청의 상황을 설명했다.

봄은 한 해가 순환하는 계절이며 지금 교황청에선 이를 ‘순행절’이라 하여 각 곡식의 씨앗과 가축의 첫 새끼를 잡아다 예배를 올리는 절기다. 예배는 약 2주간 진행된다.

이때를 맞춰 진명식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예식이 길어지다 보니 대기 시간도 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며 위그드라실은 인내를 당부했다.

“오늘 안에 형제자매님들께 호명이 갈 것입니다. 편안히 머무시며 차례를 기다려 주세요.”

“…….”

결국 기다리란 뜻이었다. 할 말을 마친 위그드라실이 예배당을 떠나자 크리스티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 여기 앉아서 예배나 보기엔 시간 낭비가 크군.”

“진명식에 허가되는 외출 기간은 총 열흘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넉넉히 내어준 시간일 테죠.”

“그래서? 말해 두지만 그대, 멍청하게 앉아 시간만 죽이는 건 사양이야.”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에단과의 짧은 공방 끝에 크리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운 바다빛 머릿결이 허리께에서 찰랑였다.

“리포트에 담을 내용은 있어야 하니. 근처를 둘러보고 오겠어.”

그간 크리스티나가 계속 돌아다닌 이유였다.

그녀는 성과 없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무엇을 하든 그 결과물이 따라야 한다.

다른 학생들이 단순히 놀러갔다 오는 시간처럼 생각하는 외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원에서 요구하는 리포트라고 해봤자 외출 기간 동안의 일을 간추린 일지나 다름없었으나 그마저도 형편없는 결과물을 제출하고 싶지 않았다.

거침없이 홱 돌아서는 그녀를 에단이 붙잡았다.

“……그러다 호명하는 시간을 놓치면.”

“설마 내가 그리 생각이 없어 보이나?”

붙들린 팔을 탁 빼낸 크리스티나가 불쾌한 듯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다정한 부름이 들려왔다.

“크리스티나.”

“……?”

“에단의 말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기회란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니. 그래도 가봐야겠다면 우리도 함께 가자꾸나. 여기에 온 것도 공동의 과제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 말대로 진명식은 일종의 조별과제였다.

교황청을 방문했다는 확인서에는 조원 3인의 인증이 모두 있어야 했고, 앞선 그녀의 말처럼 다녀와서 이에 대한 출석 리포트도 적어 제출해야 했다.

어쩌면 팀워크를 평가하는 학원의 노림수일지도 몰랐다.

크리스티나는 걸음을 멈춰 세우고 쥬다스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않는 태연함을 확인한 그녀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요, 그런 거라면 차라리 그냥 여기서 함께 있는 편이 낫겠군요. 하면…….”

크리스티나는 빙글 방향을 돌려 쥬다스의 앞에 섰다. 똑바로 내려다보는 청록색 눈동자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어떻게 해야 ‘그냥 기다리는’ 대신 이 시간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쥬다스 님.”

“의미라…….”

어떻게 보면 건방지게도 들릴 수 있는 말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았다.

“허허, 아무래도 내게 따로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로구나.”

크리스티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쥬다스를 주시한 건 아니었다. 갓 입학할 때 즈음, 소문의 1황자를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려두었다.

황자에게선 그 무엇도 그녀를 매료시킬 만한 건더기가 없었다. 황자는 작고, 나약했으며, 심지어 강단조차 없었다. 그저 숨만 쉬며 살아갈 뿐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태였다.

이는 나라의 주인이 될 자가 결단코 아니다. 크리스티나는 확신했다. 그릇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매사에 성과를 추구하고 유능을 덕으로 보는 가치관의 크리스티나가 이를 눈여겨볼 리가 없었다.

관심 밖에 난 황자를 다시 마주쳤을 때 그의 건강은 상당히 악화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희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렸으며 자라난 또래에 비해 성장하지 않는 몸은 점점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백로황자라는 별칭과 함께 스멀스멀 돌기 시작한 조롱은 당연한 수순처럼 그를 괴롭혔다.

알게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그는 학원 루바흐에서 침몰해 갔다.

분명 그렇게 끝났을 일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학원의 그 누구도 저 ‘백로황자’가 기적처럼 회생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회생? 아니, 그보다 더하지. 마치…….’

다시 태어난 듯한.

그 외에는 다른 표현을 찾을 길이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다 죽어가던 금색 눈동자에 따뜻한 생기가 스며든 것은 대체 언제부터였나.

최근 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울컥 솟아오르는 이질감과 압박감에 당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 부드러우면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어찌 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황자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저도 해피엔딩을 좋아합니다, 여러분.ㅎ

사족으로 한 독자님께서 이그레트가 92년간 모태솔로였냐는 질문에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독자님들도 92년간 솔로시면 대정령술사가 되실 수 있..;;쿨럭;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후원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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